쥬얼리 칼럼 / 어려운 이민자의 장학금- -05.2.5
장윤우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이사장/시인)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 어느 전공(電工)이 집과 가재(家財)를 몽땅 팔아 모운 돈 1000여만원을 장학금으로 사회에 내놓아서 장안(長安)의 화제를 만들었다. 한국 전력에서 기술공으로 대학교육도 받지 못한 이 젊은이(김태희 32세)는 월 9만원정도의 어려운 봉급생활자였다. 항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높은 고압전주(電柱)에 오르는 고된 작업으로 푼푼이 뫃았던 것을 선뜻 쾌척하였다. 지금부터 30여년전 일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정말 모두의 감격으로 깊히 새겨져야 할 일이기에 당시 나는 출연하는 동아방송에서 스스로 부끄러움에 낯을 붉히며 방송을 내보낸 적이 있다.
이민(移民) 부움이 일고 있다. 살기 힘든 고국땅을 등지고 멀리 낯선 타향(他國)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하염없이 떠나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그럴 리가 없겠으나,
단 한푼이라도 더 가지고 날려고 온갖 수단과 편법을 가리지 않는 요즘 판국인데 그는
“나는 아직 젊었으니까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억센 두팔로 힘껏 벌어 조금이라도 나를 키워준 국가에 봉사하여보겠다”는 결의와 행동을 그 자신은 전혀 사회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것뿐이 아니다. 그는 매년 50만원씩이나 드려서 피아노를 사가지고 어려운 교회에 기증을 해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전재산을 몽땅 처분한 돈을 자기처럼 못배운 어려운 학생들에게 내놓아서 도우려는 뜻을 노환(老患)중인 부친과 상의하였더니 교인인 부친은 그의 손을 마주 잡고 울었다고 전한다. 몸은 비록 멀고 먼 타관(他關)으로 떠나 다시 돌아올 기약은 없지만 뜨거운 피는 태극기 휘날리는 조국에 두고 가 언제라도 신명을 다하겠다는 젊은이들이 있는 한 이나라는 어둡지마는 않으며 희망과 도약(跳躍)이 보일 것이다.
여유가 있어서내 놓는 몇억의 장학기금보다 몇십배, 아니 몇 백배의 가치가 있는 장한 이야기의 주인공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퍽 오래전 일이나 동아방송 고정출연 푸로에서 내가 생방으로 인용하면서도 가슴이 찌잉~하였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를 않는다. (77.2.21.동아일보 생방송)
오늘, 이땅을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무작정 이민은 오히려 살기 편한 지금 시기가 더 많아진 듯하다.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이니까, 계층간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져서 살기가 매우 힘겨워지니까, 살벌한 사회가 겁이 나서, 혹은 자녀들의 진학, 교육비 과중과 유학문제로, 멀리 낯선 이국(異國)으로 기약없이 떠나가는 것이다. 기러기 아빠도 늘어간다.
이른바 “묻지마” 혹은 “기러기아빠” 이민뿐만이 아니라 입양아 문제도 심각하다. 어린 핏덩이를 무책임하게 유기하거나 외국입양기관에 팔아넘기거나 살기조차 힘겨워서 떼어버린 부모들- 그러나 행복하게 모자람이 없이 자란 저들, 혹은 서럽고 소외당한 체 낯선 외국땅에서 자라고 성인이 된 오늘날- 자신을 내다 버린(?) 친부모, 피붙이를 그래도 몾잊어 고국땅을 찾아오거나 애타게 그리워 하고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젖줄, KOREA~ 허나 지구상에서 가장 말썽이 많고 힘든 국가
그토록 오랜 5000년 역사를 지닌 배달겨례가 유일하게 他意에 의해 분단(分斷)된 체 왜 이런 위기에 계속 내몰려야만 하는가.
남북 이산가족의 비극을 떠 안고 수십년을 살아가는 실향민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시기인데.....
내나라, 내땅, 내부모형제와 이웃들- 모두가 껴안고 싶고 슬픔이 사무친다마는 어찌 이런 일들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걸까.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가장(家長)들, 젊은 부부들,순간적인 돌출(突出)행위가 아까운 생명을 포기하게 된다. 죄없는 아녀자들까지 희생되간다. 따뜻한 겨레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너나없이 어렵게 살아왔던 시절을 나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잊지 못한다. 한옹큼의 쌀이라도 나눠 먹고 북돋아주던 50~60년대 그때가 다시 그리워지는 이유가 무얼까.
최근 통계에 의하면 사치성 이민의 부유계층이 억만대의 재산을 이민을 위장하여 따돌리거나 지속적으로 유출시키는 액수가 수십억불에 이른다는 실상이 보도되여 놀람을 금할 수가 없다. 가난하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부유했던 그 애국청년 김태희씨는 지금 어디에 살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틀림없이 성공하였을 것이고 우리 대한민국의 번영과 못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할 것이다. 많이 늙었겠지만 그분이 오늘 유난히 그리워진다. 어렵던 시절의 의지- 그 모습이 다시 떠올려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엄청난 인재와 화재(火災)나 수재(水災),화마(火魔) 태풍. 등이 쉴사이 없이 한반도를 휩쓸어서 전국적으로 재난(災難)이 겹치고 지구촌에서는 이른바 “쓰나미”까지 있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런 때일수록 따뜻한 동포애가 아쉽다. 빈궁했던 나라살림과 개인생활이였지만 따스한 손길과 의인(義人)들이 있었기에 훈훈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의 가파른 정국은 이런 비극과 황폐화를 외면하고 넘어간다. 남이야 어쩌건 “내 몫만은 꼭 챙겨야겠다”는 극도의 이기심과 배타심(排他心)이 팽배한 우리사회가 개탄(慨嘆)된다.
1950~60년대- 일찍이 자유당시절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사분오열(四分五裂)된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웨쳤다. 사회의 혼란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다. 사회,정치,경제 뿐이 아니다, 문화도 도덕도 엉망진창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내 배가 아프다”는 속언(俗言)을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가장 필요한 이시기에 이땅엔 의인(義人)이 없다 있다해도 돈에 쫓기고 바쁜(?) 시민들은 본체도 안한다 오로지 자기만이 옳다. 남을 짓밟고서라도 자신만은 올라서야 한다. 심지어는 부모와 형제도 모른다.
“냄비문화” 금시 끓고 금시 식어 버린다. 학교교육도 일관된 교육철학과 이념이 실종되고 조석변(朝夕變)이어서 학부모와 당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벌건 대낮에 흙탕물이 된 조야(朝野)- 진흙탕에서 물고 뜯는 개처럼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로 끝도 없이 표류(漂流)하고 있는건가.
첫댓글 선행은 있는 者보다도 없는 분이 더 하고 있다~ 길이 빛나고 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