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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내밀한 삶
작가와 작품 설명 통합 정리
※ 앞서 정리한 이론 부분을 제외하고, 후반부에 수록된 작가와 작품 설명을 통합하였다.
[1] 낸 골딘(Nan Goldin)
1. 내밀한 사진의 중요한 출발점
낸 골딘은 내밀한 삶을 다룬 동시대 사진에 가장 직접적이고 분명한 영향을 끼친 사진가이다. 골딘은 친구들과 연인들로 이루어진 자신이 선택한 가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였다. 그녀의 작업은 친밀한 관계망의 서사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밀한 사진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골딘 사진의 중요한 특징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강렬하면서도 즉흥적으로 관찰하는 감각을 고도로 세련된 미학적 감수성과 결합한다는 점이다. 사진은 꾸밈없고 솔직하지만 풍부한 색채와 회화적인 성질을 지닌다.
2. 초기 작업과 컬러 슬라이드
골딘은 1970년대 초부터 친구들을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십대 후반에 만든 첫 연작은 흑백사진으로 이루어진 《드래그 퀸즈》였다. 자신이 함께 살았던 드래그 퀸들과 그들의 사회적 관계망, 일상적인 삶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기록하였다.
1970년대 중반 보스턴 뮤지엄 오브 파인 아츠 스쿨에 다니던 골딘은 학교를 쉬는 동안 암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컬러 슬라이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78년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로 이주한 뒤에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 우정과 사랑의 관계를 계속 기록하였다.
골딘의 슬라이드가 처음 대중에게 상영된 곳은 1979년 뉴욕의 클럽들이었다. 그녀는 사진을 자신과 친구들에게 개인적인 울림을 주는 음악과 결합하였다. 슬라이드 쇼의 관객들 가운데 상당수는 골딘의 친구였으며 동시에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었다. 사진을 만든 사람, 사진 속 인물, 사진을 보는 관객이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3. 《성적 의존의 발라드》
골딘의 대표작 《성적 의존의 발라드》는 처음부터 사진집으로 만들어진 작업이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보스턴·뉴욕·베를린·프로빈스타운 등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음악에 맞춰 보여주는 라이브 슬라이드 쇼로 발전하였다.
이 슬라이드 쇼는 거의 700장에 이르는 스냅사진 같은 초상으로 구성된 매우 사적인 시각적 서사였다. 1985년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에 소개되면서 미술 제도 안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았고, 1986년 약 700장의 슬라이드 가운데 126장을 골라 애퍼처에서 사진집으로 출간하였다.
제목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쿠르트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에 나오는 노래 제목에서 가져왔다. 여기서 ‘성적 의존’은 성관계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랑, 욕망, 의존, 질투, 폭력, 외로움과 상실이 뒤엉킨 인간관계의 불안정한 구조를 뜻한다.
사진에는 연인들의 포옹, 친구들의 파티, 술과 약물, 침실과 클럽, 폭력 이후의 얼굴, 에이즈와 죽음의 그림자, 퀴어 공동체의 삶이 함께 등장한다. 골딘은 이들을 외부에서 관찰하지 않았다. 사진 속 인물들과 같은 세계 안에서 함께 살고 사랑하고 상처받았다. 따라서 사진들은 다큐멘터리이면서 자전적 기록이고, 사적인 앨범이면서 1970∼8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퀴어 공동체의 역사적 증언이 된다.
사진은 플래시, 흔들림, 강한 색채, 즉흥적 구도와 어두운 실내의 빛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형식은 이후 ‘스냅사진 미학’과 ‘고백적 사진’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골딘은 사진을 의식적으로 주제별로 배열하였다. 관객이 구체적인 개인들의 삶만 보는 데 머물지 않고 성적 관계, 남성의 사회적 고립, 가정폭력, 약물 남용과 같은 보편적인 인간 경험을 생각하도록 하였다.
4. 사진을 찍어야 했던 심리적 이유
골딘이 열한 살이었을 때 열여덟 살이던 언니가 자살하였다. 이 사건은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중요한 사람과 순간을 사진으로 붙잡으려는 절박한 충동의 근원이 되었다. 사진은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기만의 버전을 붙들어두는 방법이었다.
골딘에게 사진은 추억을 아름답게 보관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사라질 사람들과 감정,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붙잡아두기 위한 절박한 행위였다.
5. 에이즈·중독·상실의 기록
1990년대 골딘의 사진은 축하와 상실을 서로 맞물리게 하였다. 친구와 연인들이 HIV와 에이즈 관련 질병으로 죽어가는 과정, 약물 중독과 재활이 공동체에 남긴 영향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기록하였다.
〈질과 고초의 포옹, 파리〉는 고초가 에이즈 관련 질병으로 죽어가는 연인 질을 돌보던 시기에 제작한 연작의 일부이다. 두 사람의 부드러운 포옹은 사랑의 장면인 동시에 다가오는 죽음과 이별의 장면이다.
골딘은 가까운 친구 쿠키 뮐러가 에이즈로 죽어가는 과정도 기록하였다. 〈틴 팬 앨리의 쿠키〉, 〈비토리오의 관 앞에 선 쿠키〉 등의 사진에서 한 사람의 생기 넘치는 삶과 죽음 이후의 상실이 연결된다.
6. 《내가 너의 거울이 되어 줄게》
《내가 너의 거울이 되어 줄게》는 1996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중간 회고전과 함께 출간된 전시 도록이자 대형 작가론이다. 총 491쪽으로 이루어졌으며 골딘의 초기 25년 작업을 폭넓게 정리하였다.
1970년대 보스턴과 뉴욕의 파티 문화에서 출발하여 약물 사용의 환희와 절망, 에이즈 위기, 공동체의 생존 의지, 시간과 상실의 문제로 이어지는 작업을 포괄하였다. 《성적 의존의 발라드》의 자기 초상과 관계의 장면, 《다른 편》의 드래그 퀸과 트랜스젠더 인물들, 쿠키 뮐러의 죽음을 기록한 사진 등이 포함되었다.
7. 《다른 편》과 이후의 변화
《다른 편》은 보스턴·뉴욕·베를린·방콕·마닐라 등에서 만난 드래그 퀸과 트랜스젠더 인물들을 보여준다. 골딘은 이들의 화려한 공적 페르소나뿐 아니라 무대 뒤의 실제 삶과 취약성도 함께 기록하였다.
21세기에 들어 골딘은 약물 중독의 악순환에서 벗어났으며 미국의 오피오이드 중독 위기를 일으킨 제약 산업에 맞서는 활동가가 되었다. 작업의 빛도 달라졌다. 초기에는 클럽과 바의 어두운 공간을 플래시로 밝혔지만 이후에는 자연광과 낮의 빛을 사진에 끌어들였다.
골딘이 자신의 상처받은 유년 시절과 중독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은 사진을 단순한 유사 공감적 관찰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에 대한 진정한 기록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2] 아라키 노부요시(Nobuyoshi Araki)
아라키는 1960년대 일본의 거리 생활을 담은 거칠고 역동적인 사진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프로보크》와 관련된 잡지와 책에 참여하였으며,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이 결합한 일본 사진의 대담하고 실험적인 시기를 형성하였다.
아라키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사진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다양한 카메라를 사용하여 여성의 몸, 꽃, 음식, 거리 풍경 등 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다. 거의 모든 대상에 실제적이면서 심리적인 성적 긴장을 부여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500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였다. 사진들은 격자, 병치, 반복과 배열을 통해 활기차게 구성된다.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초였다.
젊은 일본 여성들을 촬영한 사진은 그의 성생활에 관한 시각적 일기처럼 읽힌다. 남성은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나타날 때에도 여성들의 고객이나 성적 파트너로 제시된다. 사진가와 모델의 관계는 때때로 협업으로 설명되며, 아라키와 카메라는 여성들의 성적 환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해석된다.
그러나 작업을 사진가의 진정한 욕망을 기록한 일기라고 읽으면 사진이 지닌 포르노그래피와 착취의 문제에 대한 논쟁이 제한될 수 있다. 삶과 욕망의 진정성을 앞세우는 해석이 사진가와 모델 사이의 권력관계에 대한 비판을 막을 위험이 있는 것이다.
[3] 래리 클라크(Larry Clark)
1. 《털사》
래리 클라크는 십대와 젊은 성인들의 성, 약물, 총기, 폭력과 자기파괴적인 삶을 노골적으로 묘사하였다. 대표적인 사진집은 《털사》, 《십대의 욕망》, 《1992》, 《완벽한 어린 시절》이다.
《털사》는 1963년부터 1971년 사이 고향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촬영한 흑백사진으로 구성된 첫 사진집이다. 외부 관찰자로서 청년 문화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속해 있던 친구들의 세계를 내부에서 촬영하였다.
사진에는 약물 사용, 총기, 성적 관계, 무기력, 폭력적인 분위기, 젊은 남성들의 불안정한 몸짓이 나타난다. 클라크는 그 세계를 도덕적으로 비판하거나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았다. 거칠고 입자가 굵은 흑백사진, 직접적인 장면, 친밀하지만 불안한 거리감은 이후 내밀한 사진과 주관적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2. 《십대의 욕망》과 《완벽한 어린 시절》
《십대의 욕망》에서 클라크의 시선은 자신보다 더 어린 세대로 이동하였다. 그는 십대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허무주의적인 성인기 진입 과정을 내부자의 위치에서 기록하였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찍었더라면 좋았을 사진을 어른이 된 뒤 찍으려 했다고 설명하였다.
《완벽한 어린 시절》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이다. 일반적으로 ‘완벽한 어린 시절’은 보호받고 안전한 성장기를 의미하지만, 클라크의 사진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순수하거나 안전한 시기가 아니다. 욕망이 폭발하고 폭력과 자기파괴가 시작되며 사회가 감추려는 불안정한 에너지가 드러나는 시기이다.
이 사진집은 콜라주, 발견 이미지, 1960년대 후반 오클라호마 사진, 스케이트보드 소년의 새로운 초상을 결합하며 클라크가 반복적으로 탐구한 ‘영원한 청춘’의 신화를 다룬다.
3. 영화 〈키즈〉
1995년 영화 〈키즈〉는 《털사》와 《십대의 욕망》에서 다루었던 십대의 성, 약물, 폭력, 무감각과 자기파괴를 영화로 확장한 작품이다.
영화는 뉴욕의 십대들이 하루 동안 거리를 돌아다니며 성관계, 약물, 스케이트보드, 파티와 폭력적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따라간다. 이들을 도덕적으로 설교하지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도 않는다. 관객을 불편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세계 안으로 밀어 넣는다.
또한 십대의 삶을 성인 사회의 폭력, 욕망, 무책임, 중독과 질병의 구조 안에 놓는다. 특히 당시 미국 사회의 중요한 공포였던 HIV와 에이즈 문제를 십대들의 성적 무지와 무책임한 행동 속에 배치한다.
〈키즈〉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극영화이다. 카메라는 인물을 가까이 따라가며, 대화는 즉흥적으로 들리고, 거리와 실내는 실제 관찰된 장소처럼 보인다. 연출된 허구임에도 ‘실제 삶의 날것 같은 기록’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내밀한 사진, 스냅사진 미학과 주관적 리얼리즘을 영화로 확장하였다.
[4] 코린 데이(Corinne Day)
코린 데이는 패션 모델로 활동하면서 사진과 관계를 맺었다. 함께 일하던 모델들을 촬영하였고, 그 사진들은 런던의 잡지 《더 페이스》에 소개되었다. 사진에서 허세와 과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카메라 앞과 뒤의 삶을 모두 알았던 데이는 패션 사진이 만들어낸 화려한 신화를 깨뜨리려 하였다. 어린 모델, 짙지 않은 화장, 꾸미지 않은 머리, 평범한 실내와 교외 공간을 사용하면서 패션 사진에 일상의 현실감을 끌어들였다.
사진집 《다이어리》는 1990년대 후반 자신의 삶을 기록하였다. 생명을 위협하는 발작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뇌종양이 발견된 시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수술을 앞두고 입원한 모습과 회복 과정은 친구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상승과 침체의 장면 사이에 짧고 강하게 끼어든다.
책의 텍스트는 손으로 쓴 사진 제목이 거의 전부이다. 자신과 친구들의 취약하고 내밀한 순간을 기록하려는 태도는 낸 골딘이 확립한 고백적 사진의 전통과 연결된다.
[5]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틸만스를 패션 사진에서 출발하여 순수미술로 옮겨간 작가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는 처음부터 잡지, 미술관과 사진집 등 여러 맥락을 실험하며 이미지의 의미와 유통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탐구하였다.
1990년대 초 친구들, 더브 음악 문화와 레이브 문화에 속한 사람들을 스냅사진의 방식으로 촬영하였다. 이 사진들은 런던의 청년문화 잡지 《아이디》에 실렸다.
더브는 자메이카 레게에서 출발하여 보컬보다 베이스·드럼·에코·리버브·딜레이 등 소리의 질감과 공간감, 반복되는 리듬을 강조하는 음악이다. 레이브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유럽에 퍼진 전자음악 기반의 밤샘 파티 문화이다. 틸만스의 사진에서 이는 음악 장르만이 아니라 클럽 문화, 반상업적 잡지 문화, 친구들의 관계와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틸만스는 사진의 복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엽서, 잡지에서 뜯은 지면, 잉크젯 프린트와 컬러 프린트를 서로 다른 크기로 섞었다. 액자에 넣은 사진을 같은 높이로 일렬로 거는 전통적 전시 방식에서 벗어났다.
과거의 사진을 원재료처럼 사용하고 전시 장소마다 새로운 리듬과 관계로 배열하였다. 인물, 클럽, 옷, 정물, 신문 이미지, 추상적인 빛의 흔적, 하늘과 정치적 사건을 위계 없이 함께 놓았다. 어떤 사진이 중심이고 어떤 사진이 보조라는 서열을 만들지 않았다. 관객은 각각의 사진뿐 아니라 사진의 크기, 종이, 인쇄 방식과 벽면의 관계까지 물질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6] 재커리 드러커와 리스 언스트
(Zackary Drucker and Rhys Ernst)
《관계》는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던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서로를 촬영하고 주변 환경을 기록한 연작이다. 원래 대중에게 공개하려고 만든 작업이 아니었으며 소셜미디어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전에 시작되었다.
사진은 커플의 삶, 가정의 내밀한 일상과 가족 휴가를 기록한다. 동시에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두 사람이 각각 겪은 젠더 전환 과정이 중요한 서사를 이룬다.
두 사람이 예술가로서 지닌 이미지 제작에 관한 지식은 사적인 사진의 저장고 안에 스며들어 있었다. 큐레이터의 제안을 통해 개인적인 사진 협업이 그 자체로 하나의 내밀한 예술작업으로 재해석되었으며, 2014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두 사람은 2012년 22분 분량의 비디오 〈She Gone Rogue〉도 공동 제작하였다. 제목은 “그녀는 통제를 벗어났다”라는 뜻이다. 주인공이 환상적인 세계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성과 퀴어 문화의 역사적 계보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만나는 구조이다.
[7] 잭 피어슨(Jack Pierson)
피어슨은 자연, 반쯤 벗은 인물과 남성 누드를 촬영한 감각적인 사진을 혼합 매체 설치에 결합하였다. 일상적으로 찍힌 듯한 사진이 설치에 리듬과 서사적인 장식성을 부여하였다.
내밀한 사진은 작가가 누구에게 시각적·성적 욕망을 느끼는지를 암시하고, 작업이 자전적인 서사에 근거한다는 인상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사진 가운데 상당수는 연출된 것처럼 보이며 대중매체의 상투적인 형식을 사용한다. 따라서 단순한 사생활의 고백이라기보다 일상사진과 대중사진의 시각적 어휘를 동시대 예술에 의식적으로 끌어들인 작업으로 볼 수 있다.
[8] 닉 와플링턴과 빈카 페터슨
1. 닉 와플링턴(Nick Waplington)
《다수 속의 안전》은 사진과 손글씨 메모를 결합하여 세계적인 이동이 활발하던 시기의 청년 문화를 빠른 리듬으로 보여준다. 뉴욕·도쿄·시드니 등 여러 도시와 사회집단을 통과하면서 사람들의 구체적인 모습뿐 아니라 그들이 공유하는 태도와 감각을 기록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 잡지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다. 이 잡지는 1991년 런던에서 흑백 A2 접이식 포스터 형식으로 시작하였다. 패션·음악·미술과 클럽 문화를 결합한 실험적인 독립 매체였으며, 복사물·팬진·클럽 전단과 같은 거칠고 즉흥적인 시각 언어를 사용하였다.
2. 빈카 페터슨(Vinca Petersen)
《노 시스템》은 1980년대 후반 영국의 레이브 문화와 1990년대 유럽 곳곳을 이동한 사운드 시스템 공동체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기록하였다.
단순한 클럽 사진집이 아니라 이동, 공동체, 우정, 파티와 저항적인 삶의 방식을 담은 사적 기록이다. 사진과 함께 일기, 전단과 여러 에페메라 자료를 수록하여 대안적인 가족 앨범처럼 구성하였다.
‘노 시스템’은 단순히 체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국가·전통적 가족·직장·상업적 클럽 문화의 바깥에서 스스로 공동체와 축제를 만들어낸 청년들의 태도를 의미한다.
[9]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맥긴리는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던 중 사진을 시작하였으며 자신과 친구들의 삶을 촬영하였다. 2003년 휘트니 미술관 전시는 내밀한 사진이 동시대 미술 안에서 이미 확립된 장르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사진의 상당수는 낸 골딘이 활동했던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촬영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1970년대 후반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크게 변하였다. 맥긴리의 사진은 선행 세대가 확립한 내밀한 사진의 유산을 21세기의 조건에서 다시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전 내밀한 사진에 강하게 나타났던 불안과 비애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촬영 대상과 협업하여 미술계라는 공적인 맥락에 제시될 서사를 함께 만들어간다. 즉흥적인 사생활의 기록처럼 보이지만 공적 전시를 염두에 둔 수행과 연출이 포함되어 있다.
[10] 런 항(Ren Hang)
런 항은 독학으로 사진을 배웠으며 베이징에서 자신의 내밀한 삶과 가까운 친구들의 관계망을 기록하였다. 사진은 소셜미디어, 자가 출판 사진집과 국제 전시를 통해 세계의 관객에게 알려졌다.
그의 사진은 젊은 남녀의 몸, 성애와 퀴어성을 대담하고 자신감 있는 시각적 서사로 제시하였다. 성애와 퀴어성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과 충돌하였으며 음란물의 제작과 배포를 규제하는 폭넓고 모호한 법률에 따라 여러 차례 체포되었다.
런 항의 작업은 사적인 신체와 친밀성이 개인적인 문제에 머물지 않고 검열, 표현의 자유와 성적 정체성의 가시성이라는 정치적 문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1] 엘 페레즈(Elle Perez)
엘 페레즈는 사진 설치와 전시를 통해 인간의 내밀함과 날것의 관계성을 형상화한다. 작업은 촬영 대상과의 협업에 바탕을 두며 제스처와 시점을 적극적으로 연출하여 사진적 상황의 상상적이고 변형적인 힘을 끌어낸다.
관객에게 친밀성을 전제로 한 가까운 거리를 제시한다. 관습적인 재현이 만들어내는 거리 두기의 시선을 넘어 사진 속 인간이 실제로 현존하는 듯한 경험을 만든다.
그러나 인물의 감정과 취약성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관객은 타자성의 공간과 개인적 서사, 연대의 관계 안으로 초대된다.
[12] 히로믹스(Hiromix)
히로믹스의 스냅사진에는 자화상, 친구들, 여행과 가정생활이 등장한다. 아라키의 즉흥성과 즉각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세대의 여성 사진가로서 자기만의 태도와 이야기를 형성하였다.
그녀의 사진은 내밀한 사진이 제공하는 예술적 해방감을 보여준다. 사진가의 페르소나는 청년 문화나 성별 이분법의 고정관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방식과 결합한다.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이미 다섯 권의 사진집을 출간하였다. 이는 일기적이고 내밀한 사진이 사진집 형식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집은 지면에서 이미지를 병치하고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 서사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발전한 이러한 사진집 문화는 이후 서구의 사진집 디자인에도 영향을 주었다.
[13] 카 샤오시와 양 용
1. 카 샤오시(Ka Xiaoxi)
카 샤오시는 상하이의 패션·음악·예술 문화에서 활동하며 그 문화를 기록한 사진가이자 새로운 창작자들을 지원하는 문화적 매개자이다.
초기 작업은 뉴욕과 런던의 패션·예술사진가들이 잡지, 사진집과 패션 촬영을 제작한 방식에서 영향을 받았다.
《플래닛 부즈에 절대 작별을 말하지 말라》는 200장의 사진을 통해 클럽, 사적 공간과 야외 축제의 친구와 낯선 사람들을 가까이 보여준다. 사진 속 사람들은 중국의 동시대적인 삶과 창조적 표현을 실제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이다.
2. 양 용(Yang Yong)
양 용은 ‘새로운 중국’을 살아가는 젊은 도시인들의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을 촬영하였다. 초기 사진은 중국의 금융 중심지인 선전의 거리에서 주로 밤에 촬영되었다.
촬영 대상과 협업하여 장면을 연출하였지만 사진은 지나치게 수행적이거나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다. 권태와 기다림, 달리 할 일이 거의 없는 듯한 분위기가 중심을 이룬다.
인물들은 자신의 삶에 패션·라이프스타일 잡지를 연상시키는 태도와 자세를 의식적으로 불어넣는다. 이는 1990년대 예술사진에서 형성된 전 지구적인 청년문화의 재현이 중국적인 형태로 나타난 사례이다.
[14] 엘리나 브라더러스(Elina Brotherus)
브라더러스는 자신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고 느꼈던 시기의 삶을 초상과 자화상으로 기록하였다. 내밀한 삶은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있는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고립되고 홀로 떨어진 개인의 심리적 상태도 포함한다.
《프랑스 모음곡》은 1999년 프랑스에서 레지던시를 수행하던 시기에 제작하였다. 익숙한 일상에서 떨어져 있다는 느낌과 외국어로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다룬다.
그녀가 배우던 프랑스어 단어와 구절을 적은 포스트잇이 거주 공간 곳곳에 붙어 있다. 아이처럼 짧은 문장은 낯선 나라에서 생활하기 위한 실질적인 도구이면서, 고립과 소통의 어려움을 감동적이고 희극적으로 드러낸다.
[15] 아넬리스 슈트르바(Annelies Strba)
슈트르바는 두 딸과 손자를 포함한 직계 가족을 오랜 기간 촬영하였다. 사진 찍기를 일상생활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가족의 성장과 생활을 기록하였다.
기울어진 카메라 각도와 흐릿한 이미지는 가족의 습관과 상호작용을 방해하지 않고 빠르게 촬영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가는 화면에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무엇을 언제 촬영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방식에서 가족 안에 자리한 그녀의 위치와 시점이 드러난다.
《시간의 그림자》는 1974년부터 1997년 사이의 가족사진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가족이 성장하는 과정뿐 아니라 풍경, 건축, 오래된 가족사진과 재난의 장소를 함께 배열하였다.
고베·히로시마·체르노빌 같은 장소와 가족의 사적인 이미지가 함께 놓인다. 따라서 사적인 가족의 시간은 세계사의 시간, 장소의 기억과 상실의 분위기와 겹쳐진다. 가족 앨범이 한 가족의 기억에만 머물지 않고 역사적·지리적·개인적 맥락을 지닌 예술작업으로 확장된다.
[16] 라토야 루비 프레이저
(LaToya Ruby Frazier)
프레이저는 가족 안에서 사진가로 맡은 역할을 더 깊고 넓은 저자성으로 확장하였다. 가족의 이야기를 탈산업화된 환경이 개인의 삶과 공동체에 남긴 유산이라는 비판적 맥락에서 다루었다.
그녀의 가족은 20세기 초부터 펜실베이니아주 브래독에서 살았으며, 여러 세대가 에드거 톰슨 제철소와 관계를 맺고 살아왔다. 프레이저는 12년에 걸쳐 사진, 연구와 글쓰기를 진행하여 《가족의 개념》으로 완성하였다.
작업은 정물, 풍경과 초상으로 이루어진다. 프레이저는 가족을 관찰하는 동시에 그들과 협업하였다. 가족 구성원들의 유대와 강인함을 드러내면서 산업의 쇠퇴가 공동체와 노동자의 몸에 남긴 흔적을 보여준다.
개인의 질병과 가족사는 사적인 불행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른바 ‘더러운 산업’의 쇠퇴, 환경오염, 의료 불평등, 노동과 계급의 문제가 가족 구성원의 몸에 어떻게 새겨지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증언이 된다.
[17] 엘리노어 카루치와 루스 에르트
1. 엘리노어 카루치(Elinor Carucci)
카루치는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 결혼생활, 임신과 출산, 쌍둥이 자녀의 성장 과정을 촬영하였다. 가족사진을 통해 모녀의 유대, 아이들의 성장통과 같은 개인적 삶 속의 원형적인 서사를 강조하였다.
《마더》는 임신과 출산 이후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약 10년의 과정을 기록하였다. 모성의 사랑과 기쁨뿐 아니라 혼란, 피로, 불안, 갈등, 출산 후 달라진 몸과 돌봄의 반복적인 노동을 함께 보여준다.
어머니를 희생적이고 숭고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모성이 실제 삶에서 얼마나 육체적이고 감정적이며 복합적인 경험인지 드러낸다. 가정의 개인적인 장면을 단순한 가족 앨범으로 남기지 않고 모성, 여성의 몸과 가족 안의 긴장을 동시대 예술사진의 주제로 확장하였다.
2. 루스 에르트(Ruth Erdt)
루스 에르트는 친구, 연인과 가족을 오랜 기간 촬영하였다. 자연스럽게 포착한 초상과 인물이 의식적으로 자세를 취한 초상을 함께 배열하였다.
이러한 구성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사진 찍기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그리고 촬영 대상이 어떤 방식으로 협조하고 사진 제작에 참여했는지를 보여준다.
3. 두 작가의 공통점
두 작가는 개인적인 관계를 기록하면서도 사진의 세부를 의식적으로 줄인다. 옷차림, 실내 장식과 시대적 유행처럼 사진을 특정 시대와 가족에 묶어놓는 요소를 절제한다.
그 결과 사진은 어느 한 가족의 사적인 기록에 머물지 않고 어머니와 딸, 아이의 성장, 가족의 애정과 긴장이라는 보편적이고 상징적인 관계로 읽힌다.
[18] 카렌 미란다 리바데네이라
(Karen Miranda Rivadeneira)
《다른 이야기들》은 작가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중심으로 확장 가족의 여성들을 다룬다. 정체성, 내밀성, 기억과 원주민 지식을 중심에 놓으며 에콰도르계 유산을 나타내는 사물과 상징을 사진 안에 배치하였다.
여성 친척들과 협업하여 가족의 기억과 정체성을 재구성하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 어머니와 할머니와의 관계, 에콰도르계 혈통, 원주민적 상상력과 구전적 이야기 구조가 사진 안에서 겹쳐진다.
스페인어 부제 ‘Historias Bravas’는 ‘거친 이야기들’, ‘용감한 이야기들’, ‘길들여지지 않은 이야기들’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공식 역사나 일반적인 가족 앨범에서 쉽게 말해지지 않았던 여성들의 기억과 몸의 이야기를 가리킨다.
[19] 쉬 관위(Guanyu Xu)
《일시적으로 검열된 집》은 중국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제작되었다. 작가의 자화상, 다른 남성들을 찍은 내밀한 사진, 가족사진과 십대 시절 잡지에서 뜯어낸 이미지를 부모의 집 벽·바닥·가구에 설치하였다.
현재 미국에 사는 작가가 중국의 부모 집으로 돌아가는 행위는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자 게이 남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고 인정하는 사진적 행위이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정체성과 중국의 가족 안에서 말할 수 없었던 과거의 정체성이 한 공간에서 충돌한다. 사적인 부모의 집은 성적 정체성이 말해지지 않았던 장소이자 LGBTQ+의 가시성이 검열되고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국가의 축소판이 된다.
[20] 알레산드라 산귀네티
(Alessandra Sanguinetti)
산귀네티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 농촌에서 성장한 두 사촌 소녀와 장기간 협업하였다. 작업은 소녀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를 중심에 둔다.
소녀들은 연극적인 수행과 역할 놀이를 통해 자신이 되고 싶은 인물과 미래의 모습을 연기하였다. 사진가는 모든 장면을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녀들의 자기표현을 기록하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돕는 역할을 맡았다.
사진가와 두 소녀 사이의 가까움과 신뢰는 연출된 역할극과 관찰적인 사진을 모두 가능하게 하였다. 소녀들이 성장하여 젊은 여성이 된 이후에는 자신들이 연기했던 인물에서 벗어난 실제 삶의 모습도 촬영할 수 있었다.
[21] 티나 바니(Tina Barney)
바니는 미국 동부 해안의 부유한 가족과 친척들을 촬영하였다. 가족적 유대를 일상적인 스냅사진과 다른 방식으로 시각화한 중요한 사례이다.
자신의 작업을 인류학적 조사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숨은 관계를 드러내는 의례, 몸짓과 생활환경을 기록한다.
촬영이 이루어지는 동안 카메라 뒤에서는 활동과 움직임이 계속된다. 바니가 빠르게 장면을 구성하면 가족들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촬영에 협조한다. 완전히 우연한 스냅사진도 아니며 완벽하게 통제된 연출사진도 아니다.
인물 사이의 공간적 연결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심리적 가까움과 거리감을 나타내는 징후가 된다. 누가 누구 곁에 있고, 누가 떨어져 있으며, 어떤 몸짓과 시선으로 관계를 맺는가가 가족의 보이지 않는 질서를 드러낸다.
[22] 바라트 시카(Bharat Sikka)
《사퍼》는 아버지와 성인이 된 아들의 관계를 오랜 기간 기록한 작업이다. ‘사퍼’는 과거 인도 육군 공병대에서 복무했던 아버지를 가리킨다.
사진은 아버지의 환경, 행동과 성향을 세밀하고 다층적으로 묘사한다. 사진과 사진적 오브제를 별자리처럼 배열하며 작업 전체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걷고 동행하는 서사를 형성한다.
가부장인 아버지도 사진가인 아들도 상대보다 우위를 차지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사진적 공간에서 협상된 평등이 이루어진다. 생각은 교환되고 관찰은 조용히 이루어지며 저자성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유동적으로 이동한다.
[23] 쉬라나 샤바지(Shirana Shahbazi)
샤바지는 테헤란의 일상생활을 촬영하여 중동, 특히 이란의 삶에 대한 미디어 주도의 통념과 기대를 가로지른다.
모자이크와 같은 설치에서 형식적으로 정돈된 사진과 일상적이고 우연적인 구도의 사진을 함께 사용한다. 또한 자신의 사진을 이란의 빌보드 화가들에게 맡겨 대형 회화로 옮기게 하였다.
이슬람 미술과 일상적 현실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혼란스럽게 만든다. 오랜 역사와 복합성을 지닌 거대한 문화는 하나의 시각 형식만으로 결코 재현될 수 없다는 점을 제안한다.
[24] 리처드 빌링엄(Richard Billingham)
빌링엄은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며 부모 레이와 리즈, 동생 제이슨의 생활을 촬영하였다. 처음에는 회화를 제작하기 위한 ‘스케치’로 사진을 사용하였다.
사진에는 아버지가 집에서 만든 술을 마시고 넘어지는 모습, 부모가 다투는 모습, 동생이 컴퓨터 게임을 하는 모습과 비좁고 어수선한 공공임대주택이 나타난다.
그러나 사진들은 회화를 위한 보조 자료를 넘어 가족관계의 역학을 직접 드러내는 독립적인 작업으로 인정받았다. 1996년 최소한의 텍스트와 사진을 배열한 《레이가 웃는다》로 출간되었다.
빌링엄은 가족과 마주치는 일상적 장면에서 형식적인 구도를 발견하기 위해 카메라를 사용하였다. 사진은 자신의 일상적인 현실을 더 비판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담고 있다.
그의 작업을 예술적 비전이나 창조적 저자성이 없는 단순한 가족 스냅사진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진의 시각적 능력보다 작가를 미술의 사회적·문화적 외부자로 규정하려는 제도적 태도를 보여준다.
[25] 리에코 시가(Lieko Shiga)
시가는 2009년 일본 동북부 해안의 작은 마을 기타카마에 살기 시작하여 마을과 주민들을 촬영하였다. 이 작업은 2013년 사진집 《라센 카이간: 나선 해안》으로 이어졌다.
마을에서 생활하며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주민 개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집단의 역사를 배웠다. 주민들이 손도구만으로 소나무를 파내 농지를 만들었던 기억 등 장소의 구전 역사를 사진과 연결하였다.
시가는 마을의 준공식 사진가가 되어 축제와 의례를 기록하였다. 한 노년 여성은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과 오래된 장소를 함께 촬영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로 기타카마가 파괴되고 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마을에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방향으로 이어지던 소나무 숲도 쓰러졌다.
시가는 재난 이후에도 촬영을 계속하였다. 과거와 현재의 장소, 죽은 주민들의 기억과 영혼을 불러내는 듯한 현상학적 사진을 만들었다. 작업은 한 공동체와 장소에 바치는 깊이 개인적인 송가이자 재난 이전과 이후를 연결하는 기억의 기록이 되었다.
[26] 전체 작가군의 핵심 흐름
이 장에 수록된 작가들은 단순히 자신의 가족과 친구를 촬영했다는 공통점만 지니는 것이 아니다.
초기의 작업에서는 사진가가 실제로 속해 있는 가족·친구·연인·하위문화 공동체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태도가 중요하였다. 이후에는 사적인 사진을 사진집과 슬라이드 쇼, 잡지, 영상과 설치로 확장하고, 이미지의 배열과 유통 맥락을 적극적으로 구성하였다.
21세기의 작업에서는 사진가가 촬영 대상을 일방적으로 관찰하는 관계가 약해졌다. 촬영 대상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연출하고, 사진가와 함께 서사를 만드는 협업이 중요해졌다. 저자성도 사진가 한 사람에게만 고정되지 않고 촬영자와 피사체 사이를 이동한다.
또한 가족과 연인의 사적인 삶은 개인적인 고백에 머물지 않는다. 에이즈와 중독, 젠더와 성적 정체성, 검열, 계급과 노동, 산업의 쇠퇴, 환경오염, 이주, 재난과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이 장의 작가들에게 내밀한 사진은 사생활을 단순히 공개하는 사진이 아니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삶에서 출발하여 가족과 사회가 감추어온 관계, 상처, 욕망과 권력의 구조를 공적인 예술의 장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