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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추석 재넘어네 귀성일기 ~ 서울-당진-충주-제천-괴산-문경-영동-계룡-당진-서울~ < 2016. 9. 12. ~ 9. 16. > 올해는 추석연휴가 길기도 하지만... 삼식이가 된 터라 맘을 먹고(무리가 좀 있지만) 시간을 냈다. 이번 귀성에 이동하는 편도거리만 해도 450 키로미터 이고 이에 소요되는 운행시간은 5시간 50분 가량이다. 예정대로 4박5일 여정이 이어진다면 2박을 한 다음 고향집에 도착할 것이다. 건축지 입구길 포장공사를 맡은 업체에서 명절 전에 포장을 마치겠다며 귀성하기 전에 건축주인 내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서 루트가 정확한지 확인해 달랜다. 하여 귀성하면서 당진을 들러가야 했는데.. 덕분에 가뭄이 심한 배추밭에 물을 뿌릴 겸 죽향골에 들렀다. < 9/12, 텃밭, 진입로공사 > 그렇게 업체 대표와 만나 최종적인 조율을 하는데... 공사인부들의 기분좋은 추석을 위하여 임금을 지급하고 싶으니 공사비를 미리 줄 수 없는지 묻는다. 간절한 부탁같아 쿨하게 입금해줬다. < 9/12, 충주, 수안보 온천가 > 서울서 텃밭으로 내려올 때 이용했던 서해안 고속도로에 올라 잠시 상행선을 타고 서해대교를 건너 평택~제천간 고속도로에 올랐다. 목표지점을 충주시 수안보 온천관광지 그중에서 꿩요리를 잘한다는 어느 식당에 도착했다. 이번 귀성은 휴일이 길어 고속도로 정체가 심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통행이 아주 순조로왔다. 시간도 이르지만 평일인지라 손님까지 없어서 텅 빈 식당 안에 우리만이 자리를 잡았다. 식당 벽 사방에는 꿩음식을 칭송하는 글들로 도배돼 있으니... 진짜 맛이 좋을 거라고 잔득 기대하였다. 출장이 잦았던 직장을 근무한 경력으로... 보통 사람들에 비해 적지 않은 지역을 다녔고 음식도 다양하게 접한 것 같다. 그 중에서 밀양과 거창의 꿩탕이 기억에 남아 혹여 아내와 그 지역을 찾으면 찾아가리라 생각은 했건만... 실상은 그 지역을 가지 못했고, 안산시 어디와 시흥시 어느 식당을 수소문 해 찾아간 적은 있으나 두 식당 모두 맛이 없어 실망만 안겨줬었다. 그렇지만 내가 맛봤던 그곳(거창, 밀양)이 아니지만... 그 보다도 훨씬 유명한 것으로 검색되기에.... 이번엔 정말 맛있을 거라 자신하고 찾아 간 것이고.. 맛기행 블로그 검색에 등장하는 꿩사브코스를 주문하였다. 잠시후 기다리던 음식이 차려졌다. 꿩고기는 냉동육이 아니라 인근의 농장으로부터 공수된단다. 하여튼 처음에 나오는 것은 꿩 앞가슴 샤브샤브 부터 시작되나 보다. 육수가 펄펄끓 때 야채를 넣고 잠시뒤 썰어나온 가슴고기를 대쳐 먹는 방법이다. 우찌된 일인지 기대했던 맛이 나질 않아서 실망스런 가운데 꿩 안심육회와 꿩전이 나왔다. 아내는 별로 맛이 없어 내키지 않는 눈치다. 그래서 샤브샤브처럼 익혀서라도 먹었으면 좋으련만 육회는 극구 사양하고 전만 겨우 챙기더라는... 나 역시 기대했던 맛이 아니어서 아리숭 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 국도변을 정차해 구입한 찰옥수수를 먹으면서 왔기 때문이지 싶다. 암튼 대학찰옥수수가 원인이거나 블로거가 글을 뻥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어떻거나 다릿살꼬치구이를 간신히 먹었다. 맛을 못느끼면서도 투자된 거금을 생각해서 억지로 먹는 기분..ㅜㅜ 도우미는 베트남에서 시집왔다는 젊은 아짐이었다. 그가 꿩잡채 불고기라며 가져와 익히는 동안에.... 옛날 사대부 부잣집에서나 설날에 즐겨 먹었다는 꿩떡국을 생각하며 우린 꿩만두 두 개씩을 마지 못해 먹었다. 그나저나 배가불러 잡채를 입에도 대지 못 할 형편이다. 주인장을 불러 남은요리를 포장해 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그렇단다. 아직 남아있는 꿩 얼큰칼국수용 재료는 요리후 포장하는 것보다 언 채로 가져가 끓이면 된단다. 하여 야영후 내일 아침에 끓여 먹기로 했다 단단히 포장을 해 주는 것을 차에 실었다. 속으로는 맛이 없었지만... 베트남에서 시집온 젋은 아낙의 서비스를 생각해서 잘 먹었노라 말하고 식당을 나왔다. 뜨거운 날씨 속에 고사리밭 김을 매느라 고생한 옆지기... 수고한 그대여 오랜만에 귀성 캠핑여행 합시다. 했던 것, 아내의 주장대로 잠은 텐트에서 자고 향토음식을 사먹기로 했기에... 웬만한 짐을 다 내려놓고 출발하였다. 그렇지만 혹시 필요한 물통, 버너와 코펠, 라면 몇개... 난방용 발전기 만은 실은 것은 당연하다. < 9/12. 제천, 월악산국립공원 > 물색해 두었던 월악산국립공원에 진입하였다. 충주와 수안보온천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며 오염되지 않은 월악산은 수안보온천과 함께 주위의 고적과 자연경관을 함께 볼 수 있는 유리한 조건과 위치에 있다. 오늘밤 한뎃잠은 닷돈재자동차캠핑장이나 송계자동차야영장을 타깃으로 하고 이번 귀성의 들러 갈 곳으로 정했다. 예전에 월악산을 갔다온 경험이 있는 아내 왈 송계계굑에 야영할 만한 곳이 부지기수로 많다는 주장에... 기대를 안고 계곡을 향한다. 월악산 송계계곡 송림이 송이 산지일까 불법채취를 금한다며 진입을 금지하는 띠가 쳐 있었다. 이미 해가져 어둠이 깔리는 도로 < 9/12, 월악산국립공원, 닷돈재야영장> 잠시후 닷돈재 자동차캠핑장에 도착했다. 그 옛날 산적들이 들끓던 시기 이 고개를 넘으려면 산적들에게 돈 닷냥을 내야 했다는데서 유래돼 닷돈재나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먼저 한바퀴 둘러 보며 1박2일 이용요금이 4~5만 원이라는 요금표를 본 아내는 다른 곳으로 가자 한다. 사실 우리는 필수적인 캠핑 장비는 준비되었기에.. 1박 2일에 2만원이면 되는 싼 야영장을 이용해도 문제 없고, 비어있는 곳이 많아 예약을 하지 않은 우리도 이용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듯한데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잖다. <9/12, 월악산국립공원, 송계자동차야영장> 하여튼, 중간에 계곡 몇몇 곳을 정차해 염탐하며 월악산 입구까지 갈 예정이다. 그러나 월악산에 닿기 전 벌써 텅빈 송계자동차야영장을 찾고서는 더이상 좋은 곳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시각이 막 18시를 넘기고 있을 때였다. 개수대와 화장실까지 있어서 우리에겐 딱이다. 화장실과 개수대 사이에 차를 세우고 텐트까지 올렸다. 포장해 온 음식을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하기에 도둑 고양이 영역을 피해 텐트 옆 차량 지붕에 올려 두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니 오후 6시 반.... 아내는 짐을 간소화하자고 하구선 연속극을 못 봐서 서운하단다. DMB가 나오지 않는 것을 생각치 못했나 보다. 하지만 어쩌랴 위성안테나와 세탑박스 등을 다 내려뒀는 걸... 구름이 옅게 낀 상태, 텐트 위로 둥그런 달이 떴다. 그렇게 우린 따뜻한 텐트에 누우며 사방에 모기장을 치고 문을 활짝 열여 두었다. 아내가 하는 말, 집에서는 문을 조금이라도 열어두면 목이 칼칼해 져서 감기 증상이 일어나는데... 텐트에서는 아무리 추운 겨울일지라도 감기증상은 커녕 오히려 호흡기가 깨끗해 지는 그 신비한 연유를 알 수 없다는 거다. 그렇게 누워 TV를 대신해 핸드폰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하늘에선 선회하는 군용기 소음이 이따끔 들려와 청취를 방해하였지만 포근한 밤이었다. 아내는 갑자기 일어나 매쉬망 밖을 연신 살폈다. 고양이가 차량 지붕에 올라 포장음식을 헤치는 것 같이 흔들린단다. 아무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누웠다. 그리고 한 시간도 못되었을 때 갑자기 장정 여럿이 차량( 텐트)을 흔드는 것 같아 깜짝놀라 누워 있던 우리는 일어 났다. 밖을 내려다 보니 아무런 사람의 흔적이 없다. 허~참!! 잠은 저멀리 달아났다. 뭔가 이상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이곳으로부터 192키로 떨어진 곳에서 지진이 났었으며 별 피해가 없다는 보도다. 잠시후 서울의 딸에게 전화가 올 정도로 강력했나보다. 지진의 첫경험을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9/13, 송계자동차야영장> 암튼 아랫배가 팽배하여 잠에서 깨어났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카메라를 잡을 때의 시각은 새벽 3시 달 때문에 밤하늘의 별이 잘 안보일 줄 알았는데... 예상밖에도 많이 보였다. 자정 전에는 충주를 비롯한 근교의 조명으로 광해가 심했으나 자정후엔 소등되는 관계로 광해가 경감됐나 보다. 그래도 도시방향은 붉은 광해가 나타났다. 먼 지평선, 월악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월악산을 못 올라 봤는데 다녀가면 어떻겠냐고 아내에게 넌즈시 말을 붙혀 보았더니... 무릎이 시원치 않아 겨우 쓸만한데 거기에 가면 다시 아플 거라며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다시 침낭에 들어가 눈을 감았고 부엉이를 비롯한 온갖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여명을 맞았다. 아내는 부엉이 우는 소리를 오랜만에 듣는다고 하면서 주변에 부엉이가 많이 사는 것 같단다. 여섯시 무렵 월악산 쪽에 구름 한 조각이 걸렸고 그 구름은 약간의 노란빛이 감돈다. 동쪽하늘 전체가 붉지 않은 것을 보니.. 오늘 일출은 볼 게 없을 것이 뻔하다. 그렇지만 야영장의 몇그루 단풍나무 빛이 발그스레 해 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일출은 볼품이 없을 것 같아서 발을 돌려 야영장 이곳저곳을 다니기로 했다. 월악산 국립공원 안내도 윤곽지도를 보니 월악산 국립공원은 대부분이 제천시에 속하고 있으나 충주시와 괴산군 그리고 단양군과 경북 문경시와 닿아 있었다. 월악산 정상의 높이는 1,097미터이고 현위치에서 다녀 오려면 최소 4 시간을 잡아야 한단다. 야영장 가까이에 월광폭포와 지관사란 절이 있나보다. 오전 6시가 되자 환한 아침이다. 아내도 일어나 세수하러 가고 나는 텐트를 접을 준비를 하느라 들어 갔다가 밖의 모습을 담았다. 이슬을 맞아 눅눅해진 텐트는 잠시 햇빛을 쪼여 조금이라도 더 건조를 시켜야 다음 번 캠핑이 쾌적하다. 이 넓은 야영장을 우리 만이 전세를 냈다니... 2008년 겨울 지리산 달궁야영장 캠핑이후 단독 전세는 처음 인것 같다. 38개 사이트 중에서 가운데 쯤인 20번에 우리가 있었다. 아마도 이 야영장은 닷돈재 야영장이 포화할 때 이곳을 이용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용손님이 없는데도 직원을 배치할 필요까진 없으니까. 아무도 근무하지 않지 않는듯 하다. 텐트는 마르라고 펼쳐두고 이리저리 산책하기로 하면서 송계계곡 물이 보고 싶었다. 가뭄 때문에 많지는 않지만 물은 맑기만 하다. 그 맑은물 중간에서 피래미인지 갈겨니가 모여 햇빛을 쐬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물은 결국 충주호로 흐르는 것 같은데... 지금 보고 있는 상류쪽 저 큰 산에서 내려오지 싶다. 아내로부터 아침식사 준비가 끝나고 있다며 연락이 왔다. 텐트로 가면서 외롭게 핀 달맞이꽃을 담았고 가뭄에도 굳건히 피어난 달개비를 담았다. 며칠전 TV에서 쪽빛 염색에 대해 나왔었는데... 참 이쁜 저 색을 닮았었다. 어제 수안보 온천가에서 저녁식사후 다 먹지 못한 여분의 음식(꿩칼국수)재료를 포장해 왔는데.... 육수와 칼국수는 냉동된 상태이기에... 언 육수를 녹여 끓을 때 칼국수에 라면을 추가하면 맛좋은 꿩칼국수 라면이 되지 싶었다. 허나 실상은 그렇게 맛있지 않았다. 어제 역시 포장된 꿩잡채를 투입하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이맛도 저맛도 아닐거라며 시도하지 못했다. 암튼 꿩맛이 아닌 라면 스프 맛으로 먹었지 싶다. 까마귀들이 날아와 입맛을 다시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선 까치를 길조라고 배웠지만... 외국의 경우는 까마귀를 길조로 여기는 것 같았는데. 내가 보기에도 까치보다는 까마귀가 훨씬 길조 같다. 내 경험상 까치와 비둘기 그리고 꿩은 고라니와 함께 우리 텃밭의 적이다. ㅎ 식사를 마치고 텐트를 접어 철수 준비를 하였다. 수안보 온천가로 이동해 온천욕을 한 다음 여정을 잇기로 했다. 철수 준비를 마친 다음 떠나기 전 우린 계곡물을 보기로 했다. 캠핑장 바로 앞의 뚝방에 오르면 계곡이 보인다. 아내는 예전에 본 송계계곡에는 많은 물이 흘렀었다고 회고 하면서 가뭄을 걱정했다. 암튼 많지는 않지만 흐르는 맑은 물과 물가의 무성한 갈대들을 보면서 송계야영장을 떠났다. <9/13, 덕주야영장> 송계야영장에서 2키로미터 쯤을 지나 어제 오면서 진입했던 학술림 가는길 다리 부근에 멈췄다. 하차하여 다리를 보니 이름이 "자연교"였다. 자연교 위에서 송계 하천을 상류쪽을 본다. 소나무가 계곡 양편에 펼쳐 있어 계곡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좌측편(도로쪽) 송림은 덕주야영장이었다. 자동차를 옆에 둘 수 없는 것이 단점이지만.... 노송들 아래여서 송계야영장보다는 한뎃잠에 좋을 듯하였는데, 송림에서 나오는 은은한 솔향이 그만일 듯해서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동계엔 별도의 난방을 해야하기에 야영준비를 마친 저 텐트 옆에 등유통이 보인다. 남자는 열심히 텐트를 세팅 중이고 배우자인 듯한 여인은 안락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듯하다. 야영장을 파노라마로 주욱 훑었다. 저들도 이 넓은 곳을 독채 전세 캠핑하지 않을까. 암튼 저 끝까지 돌아 보려 했다 . 아니 저기 맛잇는 갓버섯이 보였다. 에전에 흔하던 버슷인데 요즘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버섯,,, 어릴 때는 저 버섯만 먹을 수 있다고 엄니께 배웠었다. 더우면 저기로 내려가 발을 담글 수 있겠으나 산골은 벌써 선선해서 한 낮에나 가능 하지 싶다. 덕주야영장 사용요금이 일반형 텐트가 7천 원이고 대형텐트의 경우는 9천 원이라는.. 주욱 둘러 보았지만 버섯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 9/13, 제천, 닷돈재야영장 > 이제 덕주야영장을 떠나 닷돈재 야영장으로 간다. 수안보 방향으로 3키로미터 쯤에 있었다. 요즘의 캠핑 분위기가 어떠한지 느끼고 싶었다. 아내 역시 큰 캠핑장을 한동안 이용하지 않아 그리운가 보다. 그래서 이곳 닷돈재 야영장을 1순위로 정했는데... 이용가격표를 보고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던 것이다. 둘러보니 우리의 옛적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듯하다. 장비의 국산화가 많이 되었기에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들지 싶다. 그래도 저 정도의 장비를 차에 실으려면 승용차로는 어렵지 싶다. 나도 승용차로 캠핑을 시작하여 결국 RV차로 바꾸었다. 텐트와 타프, 테이블과 의자, 식기류, 난방기기 등등... 식구가 많아 이불 등을 비롯한 여러 옷가지까지 실으려면 승용차 가지고는 어림이 없다. 특히 하루가 아닌 2박 이상을 야영 할 경우 식품류만 해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요즘은 4계절 사용가능한 개수대가 갖춰지고 전기까지 공급하는 곳이 많아 다행이다. 모든 가족이 힘을 합해 준비를 하고 야외서 잠자고 먹기 위한 텐트를 치는 과정을 분업하므로 저절로 화합하고 소통의 장이 조성된다. 하여 가족 구성원끼리나 함께한 친구끼리도 더 가까워지고 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캠핑이 좋다. 평소 실행하기 어려운 자연과의 동화를 만끽한다는 것.. 요즘 많은 이들이 그러한 캠핑 매력에 빠져 어디선가 주말의 캠핑계획 때문에 설레임을 안고 힘든 주중을 견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캠핑에 푹빠져 지내다 보면 어느덧 캠핑은 놀이 문화에서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혹자들은 캠핑이란 여럿이 야외에서 어울려 마음껏 마시고 대화하는 것 쯤으로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왁자지껄 떠들기 보다는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을 지내는 것이 바람직 한 것 같다. 이제 닷돈재 야영장을 출발해 수안보 온천가로 향한다. 그곳까지의 거리는 약 13키로 미터 < 9/13, 충주, 수안보 온천가 > 어느새 온천가에 도달했고 길가 어르신께 어느 공중탕이 좋은지 넌즈시 여쭸더니.. 저 건물을 가르키면서 여러가지로 괜찮다고 하신다. 주차후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9분을 지난다. 아내는 9시 10분 출구에서 만나자고 했으나... 나는 10분 더해서 아홉시 20분에 꼭 만나자고 했다. 여태 목욕을 하면서 아내가 약속을 지키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에...10분이란 덤을 더 줬다. ㅎ 여자들은 무슨 이유로 씻을 곳이 그리 많은지... 목욕 시간이 그리도 길어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머리카락이 아무리 길어도 남자들 보다 10분 더 이면 족하지 않을까 온탕에 들어가 있는 분들은 관광객 보다 현지 주민들 같은 분이 더 많았다. 온천탕 주위에 수안보 온천의 우수성을 홍보하거나 이곳의 음식인 꿩요리를 선전하는 문구가 있었다. 옆에 계신 어른께 꿩요리에 대해 물었더니... 꿩요리는 겨울철에 먹어야 더 맛있다고 한마디 하신다. 나는 몸을 다 씻고도 시간이 남아 머리까지 깎았다. 목욕탕에서 홀랑 벗고 머리깍는 것은 난생 처음인 것 같네... 기분이 야릇하다고 했더니 깍사께서 웃으신다. ㅎ. 약속시간에 입구에 갔더니 역시 없다. 하여 이용안내문 등을 사진 찍으며 기다렸다. 요금이 6천 원, 온천이 우리동네 목욕탕보다 2천 원이나 더 저렴하다. 하여튼 약속시각 보다 20분이 더 걸려 나오신 우리마님 동네 보다 더싼데도 물이 훨씬 좋다고 난리다. 당연한 것을 내가 약속 안지킨다며 잔소리할까봐 선수치는 것인 게다. 티맵의 목적지를 영동읍사무소로 하고 출발했다. 거리 약 150키로미터란다. 3번국도를 이용해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IC를 진입하고 김천JC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바꿔 타는 루트다. 황간IC에서 국도로 진입하면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물론 올뱅이국밥으로 말이다. <9/13, 괴산, 수옥정> 얼마지 않아 수옥교차로가 나오고 수옥정이란 문화재(관광지?)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본다. 옆지기에게 수옥정이 무엇인지 들러갈까?하고 물었더니 시간 충분한데 그러자고 하였다. 수옥정으로 가는 길은 옛길 같았다. 그 도로 우측으로 MTB 타는 이가 보였다. 도로 위 하늘색 띠가 자전거 도로를 나타 내는 것같다. 도롯가 좌측을 보고 깜짝 놀랬다. 무슨 사과가 저리 빨간 것인지 처음보는 광경이었기에... 하지만 우린 한바탕 웃고 말았다. 사과를 싼 봉지의 색깔이 새빨간 색이었다는....ㅎ 봉지를 빨간색으로 하면 뭔가 더 유리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백미터도 되지 않은 거리에 수옥정과 수옥폭포 입구 주차장이 있었다. 차량은 우리 뿐이지만... 하차하여 이정표가 안내하는 대로 걷는 길, 그 길가에 나팔꽃이 보였다. 입구에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마을의 어느집 옆에 백일홍이 이제피려 한다. 그집을 지나자 수옥정과 가까운 농가주택... 새로 지은 집이었는데 그 집 옆에 사과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그 앞에는 이곳(수옥정, 수옥폭포)이 몇몇드라마를 촬영란 장소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수양버들 아래로 폭포수가 흐르나 보다. 그리고 괴산군의 주요관광지와 문화유적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였으며 좌측으로 정자 수옥정이 나타났고, 그 오른편에 폭포가 보였다. 가뭄으로 수량이 많지 않지만 멋진 폭포였다. 이물은 흘러흘러 달천에 닿으며. 충주호에서 내려온 물과 합세하여 한강으로 흐른단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이 낮아 폭포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넓은 바위 표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보기가 좋았다. 직벽 우측에는 한자로 새겨진 글씨가 보였는데... 이끼가 잔득낀데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글씨에 대한 설명이 소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사람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짐작해 보았다. 우기에 물이 많이 흐를 때 더욱 보기가 좋을 듯한 수옥폭포.. 앉아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자동차로 가는 길 어느집 마당을 지나면서 산초나무 열매를 채취하여 건조시키는 것 같다. 열매만 쓰는 줄 알았더니 잎도 이용하나 보다. 다시 3번국도에 올라 길을 가는데 옥수수파는 곳이 보였다. 들러갈까 몰었더니 그러자는 옆지기... 아침이어서 옥수수를 삷기 시작하는 것 같다. 방금 찐 옥수수가 없어서 별수 없이 어제 것인 듯한 옥수수를 구입해야 했다. 한 봉지에 3천 원씩하던 옥수수가 어제도.. 오늘도..5천 원이라니 2천 원씩 올리기로 업자끼리 담합했나 보다. ㅜㅜ 이화령터널을 지나... < 9/13, 문경시 > 문경새재IC에 진입하였고 < 9/13, 영동, 황간 > 어느새 고향땅 영동에 접근하였다. 우선 반야사 배롱나무꽃이 피었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반야사로 갔지만..벌써 다 진 상태였다. 서운한 생각에 월유봉에 잠시 들렀고 황간시내로 가는 길에 바구니 파는 차량이 보였다. 그곳에 추수한 알곡을 골라내는대 사용하는 "키"가 보여 멈춰섰다. 우리 텃밭에서 들깨를 수확하면서 키가 필요할 듯 해서다. 작년까지는 얼기미채와 선풍기로 해결했지만.. 올해는 수확량이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옛어른 들처럼 키가 있어야 편리할 것 같다는 옆지기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키 질을 배우지 못했다는 아내는 그래도 하나 장만 하자고 했었다 주변의 아짐들이 금방 배운다고 하더란다. 키를 살펴보니 목직했으며 여태까지 대나무로 만들었는 줄 알았는데... 대나무가 아니어서 이거 대나무가 아니네요? 했더니 상인 말씀이 키는 옛부터 버드나무를 엮어 만들었으며 만일 국산이라면 무척비쌀 텐데 중국산인 까닭에 2만 5천원 이라고..했다. 키를 차에 싣고 안성식당을 찾았을 때 시각이 오후 1시 30분을 넘어섰다. 매번 올뱅이국 보통을 시켰는데.... 주문받는 아짐에게 "특"은 무엇이 다른지 물었더니 올뱅이(다슬기)가 더 많이 넣는다고 한다. 그럼 우리 특으로 주시우~ ^^ 아내 왈 음식은 이처럼 맛이 있어야 하거늘... 맛탱이 없는 꿩요리가 무슨 소용이 있냐며 한마디 했다. 맞는 말이어서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 < 9/13, 영동, 지촌리 > 아내를 읍내 처제네 대려다 준후 나는 심심한 나머지 작년에 갔던 지촌리로 능이버섯을 채취하러 갔다. 농막(컨테이너)을 햇빛에서 보호해 덥지 않게 하는 지붕씌운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나는 아래부터 기둥을 별로도 세워야 하는줄 알았더니 네모서리의 컨테이너 골조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에어컨까지 설치한 모습을 본다. 농막 만드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듯한 사진이다. 한참동안 산을 헤멨으나 능이는 발견할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가물어서 독버섯 조차 나지 않는다고.... 터덜거리며 내려오다 지촌저수지를 만났다. <9/13, 영동읍> 영동읍사무소와 영동천 사이에 있는 정자에 올랐는데.... 어느 중년의 신사가 트럼펫을 불고 있었다. 처제와 동서가 사업상 바쁜 실정이어서 아내와 읍내에서 식사를 하였다. <9/14, 황간, 노근리평화공원> 아내는 오늘 방 처제네서 자고 싶다고 하므로 나는 노근리 평화공원을 야영지로 정하고 이동하였다. 그 때의 시각이 밤10시쯤 되었던 것 같다. 참고로 평화공원은 한국전쟁당시 미군기의 오폭으로 희생된 약 300여명의 피난민(양민)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사건이 있었던 곳에 생긴 추모 공원이다. 아까 황간에서 읍내로 들어가면서 보니 공원에서 이름모를 영령들을 생각하며 한뎃잠을 자는 것도 평화를 기원하는 것이겠기에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평화공원 주차장이 국도와 가깝기도 하지만... 경부선 철도와 근접한 곳이기에.... 열차다니는 소음이 무척이나 컸다. 그리고 열차가 이정도로 빈번히 다니는 줄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 소음으로 잠에서 자주 깨었지만.. 그레도 정령들이 도왔는지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아침에 깨어나 주변을 산책했다. <9/14, 영동읍내> 그리고 아내가 기다리는 처네네로 가는 길, 장시 정차하고 감익는 풍경을 담았다. 올해 감나무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은 것 같다. 폭염 때문이거나 가뭄 때문이 아닐까 생각됐다. 체제집 베란다에 핀 붉은 꽃과 주자창 옆 호박넝쿨아래에 핀 유홍초를 보면서 용산 고향집으로 향했다. <9/14, 영동, 신항리마을> 귀성길에 마련한 한과를 아내가 6촌형님댁에 전달허러 간 사이... 마을 앞 논에서 누런 벼이삭을 보았다. 사촌 형님댁에도 선물을 배달한 뒤 고향집에 도착하면서 대문 켠의 매달린 녹두꼬투리를 본다. 형수님은 아랫채 그늘에 자리를 펴고 손수 만드신 칼국수를 썰고 계신다. 내 어릴 때는 양식이 부족해 집집마다 국수를 많이 먹던 그런 시기였나 보다. 특히 저녁 식사로 저런 국수를 해먹었는데. 나는 정말 먹기 싫었었다. 하여 찬물에 씻어서 겨우 먹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먼저 도착한 제수씨와 조카댁이 전을 부치고 있다. 파전이며.. 배추전 고추전 등등.... 수돗가 화분에는 바위솔이 자라고 있었다. 옛적 기왓장이나 바위에 자라는 그런 바위솔을 아닌 것 같다. 우리집 장손이 대추를 수확하고 있다. 부부교사인 이 아이들과 아이들 아빠인 장조카가 수고 많구만이라.... 명절에는 식구들이 더 늘어나는 만큼 잠 잘 곳이 마뜩잖다. 그렇더라도 우리부부는 차 지붕에 설치된 텐트를 올리고 편하게 이용해왔다. 그런데 나를 본 딴 동생과 조카들도 루프텐트를 자기들 차량에 올렸는데 여번 추석땐 여태 내가 사용하던 자리를 선점당했다. 내가 사용하던 자리이니 비껴 달라고 떼를 쓸수는 없는 노릇, 별수 없이 오늘 한뎃잠 잘 곳을 물색하러 가야겠다. 내가 하고다니는 야영이나 여정을 부러워하였는지 동생과 장조카에 이어 장손자까지 루프텐트를 설치하였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 같다. 하여튼 잠자리는 평평해야 편하다. 따라서 자동차를 평평한 곳에 세워야 지붕의 잠자리가 편하다. 경사가 지면 질수록 인체의 균형감각이 민감해지고 결과적으로 잠자리가 불편해 진다. 날망에 있는 고향집 주변길은 한자리만 빼고 경사가 져 있어 바퀴에 받침을 대야 겨우 수평을 유지할수 있다. 지난 설 명절 경험으로 그 경우 차라리 다른곳을 찾는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어서 그 장소를 찾으려 간다. 이느새 나는 저수지 옆 뚝방길을 걷구 있다. 귀촌한 사람들이 지은 전원주택 두 채가 떡하니 들어 서 있고 윗 쪽에도 집을 지으려고 하는 것 같다. 뚝방길 아래 바리미마을 풍경을 본다. 저수지 뚝방에는 누가 심었는지(혹 자생?).... 잡초 속에서 코스모스 몇그루가 예쁘게 꽃을 피웠다. 아무래도 저수지 주변길은 다른 차량 통행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 하여 서낭당 아래로 더 올라갔다. 동편이 훤히 트여 백화산이 잘보인다. 그래 오늘 한뎃잠 잘 장소를 찜하고서 집으로 돌아 가는 길.... 애기나팔꽃이 보였다. 대전 전민동에서 발견한뒤 몇년만에 처음 본다. 관평동에선 분홍색 애기나팔꽃도 있었다. 어제 송계야뎡장에서 보았던 달개비를 여기서 또 본다. 저수지 뚝방을 지나고 있다. 나 어릴땐 흙길이었는데 지금은 풀밭으로 변했다. <9/15, 영동, 신항리마을> 어젯밤 저녁식사후 서낭당 아래 찜해 둔 곳으로 이동해 한뎃잠을 자고 아침에 백화산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까 했으나 큰 형님이 만류하는 바람에 장 조카네와 우리는 대문을 열고 고향집 마당에 주차를 하였으며 마당에 차를 세우고 한뎃잠을 자게 되었던 것이다. 집안 마당 한가운데서 한뎃잠을 자다니..ㅋ 다음날 새벽, 일찍 깨어나 고향집 주위를 산책한다. 안개가 자욱하지만 달이 떳는지 수숫대가 멋지게 보인다. 수숫대를 보니 얼핏 텃밭 진입로 포장공사하는 사장님 말씀이 생각난다. 둘이서 텃밭으로 침범해 번져오는 대나무들을 저지하는 방안에 대해 상의를 한 적이 있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예전 어른들의 말씀에 수숫대를 쌓아진 곳은 대나무가 나지 않는 다는 얘기가 있단다. 실험하진 않았으나 직접들었다고 했기에....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았으나 그런 정보는 찾지 못했다. 암튼, 고등학생 시절 필름카메라로 수수이삭과 보름달을 두고 B셔터를 만지작 거리던 생각이 난다. 잠시 뒤 예전 구용친구네 집앞까지 왔다. 얼마전 귀촌한 도시사람이 이집으로 이사를 왔단다. 그집 울타리에 향양제란 글이 써 있다. 볕을 향해 가지런히 서있는 집이란 의미를 지닌 글씨 같다. 동향집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인가? 집으로 다시 들어갈 때 시각이 새벽 4시 48분 자고 있는 아내 옆에서 잠을 더 청하였다. 날이 밝자 아내가 일어서며 차례상과 아침 밥을 준비해야 한다며 나간다. 그러구 보니 우리집 여인 서열 3위인 아내는 제수씨나 질부들을 지휘하거나 수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에 와 있는 것이다. 잠시후엔 질부도 옆 텐트에서 내려와 부억으로 향했고 "행복한그대"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장조카도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다. 저때의 시각이 아침 6시 16분 추석인 오늘아침은 유난히 안개가 심하다. 나는 형제들과 세 친척집을 다니며 차례를 올릴 것이고 십리이상 떨어진 선산 두 곳까지 석묘를 갈 것이다. 내 어릴 때 처럼 새 노랑고무신을 신고 아버지를 따라 먼 석묘길을 다니던 생각이 난다. 자동차가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산길을 걸어 고개 두개를 넘어야 했고 그후엔 읍내로 가는 신작로를 이용해 걸었다. 신작로 양편에는 미루나무가 서 있는 모습하며 신작로 한쪽에 구비 흐르는 맑은 금강을 보는 것이 그저 좋았다. 이따끔 지나며 풍기는 차 냄새마져 좋기만 했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선산에 가봐야 별거 없었는데... 왜 그리 열심히 좇아다녔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선산에 따라다니지 않는다. 어른들도 아이들의 행동을 진즉에 포기한 상태다. 아이들은 TV에 정신이 팔려 선산같은 것은 거들떠 보지 않는다. 하여튼 텐트를 다 접고 세수도하고 양복을 차려입고 첫차례가 올려질 6촌형님댁에 도착했다. 우리집은 사람이 너무 많아 우리 5형제만 차례에 참석할수 있어 할아버지가 된 조카 조차도 차례상에 끼지 못할 형편이라는... 암튼 6촌형님댁 마당에 가꿔진 꽃을 보기 시작하여 울타리에 핀 나팔꽃도 보았으며 그늘에 매단 옥수수를 보고서야 풍성한 추석을 느낀다. 두 번째 장소인 우리집 차례를 모시고 , 이제 세번째 차례장소인 4촌형님댁으로 갔다. 매년 풍성하게 열리던 감이 올해는 빈약하다. 지역 대부분의 감나무가 가뭄 피해를 받은 것 같단다. 가뭄피해는 마당의 과꽃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촌형님 손녀딸이 은빈이가 벌써 초등학교 학생이다. 2학년 은빈이의 지난 방학 생활기록표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에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하여야 하도록 되어 있어 흥미로 왔다. 등교 때는 2키로 거리의 학교에 아빠가 태워다 주고 하교때는 학교버스가 대려다 준단다. 작은아버지와 어머니께 차례를 올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데...포도알이 얼마나 크던지 증거사진을 남겼다. 귤사이즈와 포도알 사이즈 가 비슷할 정도로 크다. 거봉보다 몇곱절 큰 저 포도는 추풍령에서 제배된 것이란다. <9/15, 영동, 전주동마을> 세 친척네를 다니며 정성스레 차례를 모신 다음 가족들은 삼삼오오 차를 나누어 타고 10리 밖 선산을 향했다. 전주동 마을 길가의 벼가 잘 여물었다. 선산 묘소 앞쪽에 헌집이 헐리고 새집이 들어섰다. <9/15, 영동, 신항리> 여섯개의 산소에 성묘를 마치고 십오리 거리의 수릿골 선산으로 다시 향했다. 그곳에는 산소 50여 개가 모여 있는데... 모두가 동성동몬이지만 평소 알지 못했던 먼 가족들도 많다. 암튼 가까운 직계 쪽에만 성묘를 드리고서 집으로 이동하면서 우리 고향마을을 담아 보았다. 이제 공식적이 행사가 다 끝났으니 각자 자기들 집으로 돌아 갈 시간이 다가 온 것이다. 그러기 전에 버려지기 십상인 차례상 음식을 모두모아 비빕밥을 만들어 먹는 전통을 이어간다. 오늘 비빔밥 담당이 아내였는지 30여 명분의 밥을 차례상을 비롯한 아침식사에서 남은 반찬을 이용해 비비는 것이다. 몇개의 상에 차려지는데 우리 형제들 상이 먼저라는...ㅎ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나면 각자 집집마다 음식과 농산물 등이 분배돼 차에 싣고 고향집을 떠난다. < 9/15, 계룡시 > 그렇게 고향집을 떠나 장인장모가 계신 계룡시 처남댁에 처가식구들과 모이고 다시한번 행사를 치룬뒤 우리는 귀경 정체가 심한 시간을 피해 당진 텃밭의 농막으로 갔다. 진입로 공사상태를 살피고 김장배추에 물을 준 다음 <9/16, 당진, 죽향골> 정체가 풀린 다음 날 아침시간을 이용해 안전하게 귀경하였고 그 다음 날은 손주들을 맞이 하는 것으로 올 추석 명절 일정을 마쳤다. ~ 끝 ~ ^L^ |
첫댓글 심신이 건강한 대소가의 정겨운 모습
일상같은 유유자적 부부 나들이
야영장의 캠핑
평화로운 고향마을
텃밭의 농막
우리 보통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삶을 사시네요
사진작가이신가 봐요
사진들이 ~
특히 달빛의 수숫대가 인상적이네요
재넘어네 추석 귀성일기
재미있고 부럽게 봤습니다
내 놓을 것은 없으나
보편적인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꿈이 크진 않으나..
때때로 여행을 하면서
텃밭을 소일하면서 보내려 합니다.
수수가 온전하면 더 나았을텐데..
일부는 수확을 해서 조금은 아쉽습니다.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재넘어님을 글과 사진을 읽다 보면 고향의 푸근함 같은 정을 느낍니다
기회가 되면 책으로 내시면 좋을듯 하다는 제생각을 적어 봅니다
푸근한 느낌을 갖는 것은
천성적으로 서투리님의 가슴이
아주 따뜻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