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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로마 - ROMA >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멕시코 출신의
알폰스 쿠아론 감독...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또 자란 동네에서 직접
촬영한 자전적 영화 < 로마 > 를 통해,
관객들을 그의 유년기로 초대하면서 본인의
추억 어린 영혼을 오롯이 드러내 보입니다.
전작 < 그래비티 - Gravity >의 광활한
우주 공간 대신,
감독의 유년시절과 자신을 키워준 여성에 대한
친밀하고도 애틋한 기억 공간인 '로마'로
관객들을 초대한 ...
영화는 수천년 역사의 '이탈리아 수도 로마'가
아닌,
부정 부패의 질곡(桎梏),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했던 1970년대 초반 멕시코시티의 중산층
거주 지역 '로마'에서,
의사를 가장으로 둔 한 가족과 그 집의 젊은
가정부 클레오의 삶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특정한 시공간에서 비롯된 마법적인 보편성'의
감동을 건네주고 있지요.
이렇듯, 영화 < 로마 >의 중심 주제는 여러 비극적
사건들의 공유로 인해 오히려 단단하게 맺어지는,
다름아닌 '가족'에 놓여집니다.
어디선가 지저귀는 새소리,
무언가를 끄는 듯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그리고 질서 정연한 정사각형 패턴의 포석
블록으로 이어진 바닥에 쏟아지며 흰 거품을
품어내는 물소리의 아우성...
이윽고 물에 젖은 바닥에 빛이 반사되며,
사각의 창을 내듯 비치는 하늘 사이로
비행기가 소리를 내며 지나가지요.
마치 해변의 파도처럼 거듭 밀려들고
밀려나가는 물살 위로 비추어지며,
흩어졌다 다시 제 모양을 찾는 네모난 하늘,
(이 때 클레오가 청소하며 뿌리는 물과
그 거품은 흡사 일렁이는 파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피날레의 해변 장면과 겹쳐지며
그 오묘한 의미를 되새기게 만듭니다.)
그 풍경이 담겨진 바닥의 침묵 위로 조용히
떠오르는 네 글자의 영화 제목 'ROMA'...
이어 물청소를 하고 호스를 정리하는
한 여자의 모습과 함께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그렇게,
감독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인간애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녹여낸 작품 < 로마 > 는
그토록 정(靜)적인 극의 첫 페이지를 조심스레
열어가지요.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1970년대 멕시코,
바깥 세상만큼 가정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치게 됩니다.
그 격동의 물결로 흔들리는 가족 곁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다정한 손길로 그들을
보살피는 가정부 클레오(얄리차
아파라시오 분)가 있지요.
클레오가 일하는 집에는 부부,
그리고 네 자녀가 있는데,
이 집에서 그녀의 역할은 단순한 도우미
그 이상으로 그려집니다.
그녀는 한 가정에 더부살이 보모로 고용된
처지이지만,
엄마처럼 느껴질 정도로 친밀한 정을 함께
하며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로 인식되지요.
말 수는 적어도 그 누구보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클레오는 넉넉치 않았지만 따뜻했던,
하여, 가슴 깊숙이 자리한 기억으로의 과거를
묵직하게 건드립니다.
청소·세탁·집안 정리뿐 아니라 음식 준비,
그리고 아이들 등·하교와 취침·기상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손이 안 가는 곳이 없지요.
극 초반부,
클레오가 빨래를 하던 옥상에서 천진스런
주인집 막내는 그녀의 묻는 말에,
"자기는 죽어서 말을 못한다"고 얘기하지요.
클레오는 이토록 깜찍한 막내 꼬마와 함께
평상에 누우며 나직하게 되뇌입니다.
" 죽는 것도 나쁘지 않네..."
빨래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배경으로
클레오와 아이가 평온히 고즈넉하게 누워 있는
모습은 자못 인상적으로 각인되지요.
이 집안의 가장으로 의사인 안토니오
(페르난도 그레디아가 분)는 좁기만 한
주차 공간에 우스꽝스럽게 큰 고급 대형 세단
'갤럭시'를 타고 귀가합니다.
'닥터'라는 직업에 걸맞게도(?),
그가 주차할 때 차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중 2악장 '무도회(Un bal)'
입니다.
극 중 아주 짧게나마 유일하게 등장하는
클래식 곡입니다만,
무언가 미묘하게 뒤틀린 '4분의 3박자 왈츠 곡'
으로 풀어지는 베를리오즈 교향곡 속 무도회는,
그 표제 '환상'처럼 클레오와 그녀를 둘러싼
가족 들의 '삶과 꿈', 그리고 '열정'을 은유(隱喩)
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클레오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그녀가 임신하게
되면서 바뀝니다.
아내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 분) 역시 남편이
집으로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남편이자 아빠였던 안토니오의 외도로,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던 가정엔 차가운
냉기가 감돕니다.
소피아는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클레오에게도 불행이 닥쳐오지요.
클레오는 동료 아델라의 남자친구 사촌인 페르민
(호르헤 안토니오 게레로 분)과 사귀었는데,
어느 날 클레오가 페르민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자, 그는 무책임하게도 클레오의 곁을
떠나가고 맙니다.
여자들은 도망친 남자들의 대답을 생략한 채,
현실을 그저 묵묵하게 받아들일 뿐이지요.
홀로 된, 아니 혼자됨을 받아들여야 하는
소피아,
그녀는 작은 새 차를 몰고 좁디 좁은 주차장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들어 옵니다.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에둘러 말해 주지요.
" 엄마는 작은 차가 좋단다... "
클레오는 아이들 할머니와 함께 태어날 아기를
누일 조그마한 침대를 사러 가구점에 들릅니다.
그러나 이 무슨 비극적 운명일까요.
하필 '그 곳에서, 그 시각'에...
그녀는 남자친구 페르민이 속해 있는
극우단체가 시위 학생들을 잔인하게 살육하는
참상을 목도하며 큰 충격을 받습니다.
클레오 역시 너무도 가혹한 죽음의 위협에
사로잡힌 채 ,
이미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돼버린 사선의
현장을 힘겹게 뚫고 도착한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지만 끝내 아이를 사산하지요.
그렇게,
영화 < 로마> 는 남성에게 버림받은 '클레오와
소피아', 두 여성의 연대와 남겨진 가족들의
유대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며,
책임을 회피하고 떠나간 이기적이고 비겁한
남성들과 그들이 떠난 곳에 남아 살아가는
여성들을 차근차근, 또한 찬찬히 조망해
갑니다.
극의 피날레,
아빠와의 이혼을 알리며, 이별 여행 차
세단 갤럭시(중고상에 처분했던)를 마지막으로
타고 바닷가로 여행을 온 소피아와 아이들,
그리고 클레오...
하지만 엄마 소피아가 잠시 자동차 수리를
하러 간 사이에 바닷물 속에 들어간 아이들이
심한 파도에 휩싸이며 금방이라도 익사할
위험에 빠지자,
수영을 하지 못해 물이 두렵기만 했던
클레오였건만,
그녀는 죽음을 무릅쓰고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파도가 으르렁거리는 바다로 주저없이
뛰어들지요.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구해낸 생명의 은인
클레오를 고맙다며 감싸안는 소피아...
그녀는 그동안 마음 깊숙이 억눌러왔던
한(恨)스러움을 이제야 비로소 토로하며
울부짓습니다.
"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정말 '(비극의 주인공이 될) 그 아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
클레오와 소피아, 그리고 아이들 모두가
진정한 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이 장면에서야
카메라는 클레오와 함께 이동합니다만,
거센 파도를 극복하고 해변으로 나온 가족들이
꼬옥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 대사처럼 '언제나 푸르른 산'의 형상으로
그려지지요.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피할 수 없이
밀려오는 삶은 힘들고도 고단한 것이지만,
그 속에서도 떠밀려가고 또 오는 희망의 끈을
끈질기게 붙잡고 떠올라야만 하는 것을
담담하게 말해주는 듯 합니다.
영화 < 로마 > 는 클레오의 임신과 남자 친구
와의 파국, 그리고 소피아의 이혼으로 이어지는
개인사가 멕시코의 역사적 격변기와 진폭을
같이 하고 있지요.
엄마로서, 또한 가정부로서 아이를 키우는
두 여성이 남성과 결별한 후 극적인 순간
'가족애(familyhood)'를 완성하는 그림은
자연스레 현대 사회의 중요한 화두(話頭)와도
이어집니다.
자신 만의 사적 기억이 남아있는 시공간에서,
철저하게 개인 중심으로 제작된 영화가
감독의 그 어떤 작품보다 정치, 사회적인
함의(含意)를 갖게 된 셈으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직접 어깨에 맨 카메라는
흑백 화면의 담백한 영상미를 창출해내며,
시종 클로즈 업 없이 관객과의 거리를
무심하게 유지한 채, 현재의 유령처럼
행동하며 과거를 바라보지요.
하여,
얼룩지고 흐릿해진 기억을 단순히 재현하는
사적 영역에서 벗어나,
특정 시대의 공기를 목격하는 선명한 감도의
체험 영역으로 확장시켜 주고 있습니다.
'믹스텍(Mixtec, 멕시코의 아메리칸 인디언)'의
후손인 클레오는 대화의 절반을 원주민
방언으로 이어갑니다만,
이 방언은 계층, 인종, 직업별로 구분되는
멕시코 인들이 어떻게 다른, 또한 차별적
대우를 받는지를 가감없이 보여 주지요.
감독 알폰스 쿠아론.
그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정부 지원을 받은 우익무장단체 '로스 알코네스'
가 무려 120 여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른바
'성체축일 대학살' 사건 현장의 한복판을
'클레오의 눈'을 통해 조명한데 이어,
폭발하는 거리 시위와 소요, 무술 사범이
(한국어 구령과 함께) 지도하는 폭동 진압 훈련,
토지 몰수,
그리고 지진과 산불 등 암울했던 시대의
치열했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화면 속에
섬세하게 녹여냅니다.
< 로마 > 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나날을
맞이하듯 촬영되어, 삶과 밀착된 경험으로
완성되는 영화이길 바랬던 감독 알폰소.
그는 얘기합니다.
“아버지가 떠나가면서 가족이 무너지는 게
전체적인 이야기이지만,
그와 동시에 멕시코라는 사회가 얻은
혹독한 상처와 흉터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났지만 민주화를 위한
시위대의 노력은 그 시절 멕시코의 '시대 정신'
이었지요. "
소중한 기억을 찬연한 보편적 예술로
승화시킨 알폰소 쿠아론...
그만의 카메라의 시적 시선으로 품어진
유일무이한 이미지와 독창적인 음향은,
오랫동안 간직했던 지나온 삶의 서사를 강력한
공감의 공간으로 절묘하게 재구성하게끔
도와주지요.
감독은 덧붙입니다.
" < 로마 >는 제가 50년 전 쯤에 경험했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시대적 소명과 그 흐름에 반비례하게
역행한 멕시코 사회 계층의 현실과
민족적 역사를 탐구한 결과이자,
저를 사랑으로 키워준 여성들에 대한 친밀한
'초상화'이기도 하지요.
당대의 시대상이 만들어낸 거품을 누리고
사는 백인 중산층의 멕시코 아이였던 나,
그 '사회적, 계급적, 인종적 역학'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바로 제 자신의 감정이
투영된 작품입니다. "
아울러 차력사 조벡 교수의 묘기를 쉽게
따라하는 클레오의 희화적(戲化的)인 모습과
같이,
화면 속 쿠아론 만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목소리는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명확한 배경음악(BGM) 없이 오로지 정제된
사운드만으로 관객들을 몰입케 하는 화면 속엔,
대신 매 시퀀스에 걸맞는 뮤지컬 아리아와
팝송, 멕시코 노래들이 여럿 등장하지요.
버림 받은 클레오와 소피아의 심경을
어루만져 주는 듯,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속 막달라 마리아의
애절한 아리아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을 비롯해,
파티 장면에서 흐르는 'Those were the
days' 나 '오 마미 블루(Mami Blue)',
그리고 'Yellow River' 에 이르기까지,
즐겁고 행복했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는
곡들 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
도로 바닥에서 시작한 영화 < 로마 > 는
올려다본 하늘의 이미지로 마무리되지요.
여행을 마친 클레오...
그녀는 빨랫감을 들고 한발 한발 철제 계단을 올라
마치 정결한 승천의 이미지처럼 자신의 쉼터이자
마음의 안식처인 옥상으로 사라집니다.
서구 문명의 폐허를 돌아본 시인 T. S. 엘리엇의
434절에 이르는 장편시 '황무지(The Waste Land)'
마지막 구절인
'샨티 샨티 샨티(Shantih Shantih Shantih)'와
함께,
격동의 70년대를 소환하는 장대한 울림의
서사시 < 로마 > 는,
롱 테이크로 잡아낸 비행기의 모습이 하나 둘,
무연(憮然)히 조명되며 적요(寂寥)하게
그 막을 내립니다.
엔딩 크레딧 직전,
화면에 고요히 떠오르는
'리보를 위하여(Para Libo)'...
찬연(粲然)히 빛나는 이 헌사는 고통어린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야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유년 시절,
온갖 힘겨움과 슬픔에도 묵묵히 모든 것을
감내할 줄 알았던 감독의 보모 '리보'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게지요.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
- 클레오가 소피아의 아이들에게
('리보 로드리게스가 감독 알폰소 쿠아론에게')
- 李 忠 植 -
1. 영화 예고편
https://youtu.be/gzJrVpWSCZU
어느 한 개인의 삶과 그 내면을 둘러싼
'관계와 사회의 풍경'을 드넓고도 깊은 시선으로
포착하는 감독 알폰소 쿠아론.
그의 정치(精緻)하게 절제되고 압축된 흑백의
영상 미학은,
클레오의 시선을 통해 불안한 '1970년대
멕시코 사회'와 불안정한 '한 가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조해 내며,
그 어떤 영화보다도 생생하면서도 절절한
공명(共鳴)의 선율로 관객들의 마음 속
빈틈을 파고듭니다.
현재의 태도로 기억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 서사 < 로마 > ...
하여,
캐릭터가 아닌 카메라의 시선으로 존재하되
프레임 안에선 보이지 않는 시간여행자로서
시계바늘을 되감는 알폰소 쿠아론을 대신하듯,
극 중 막내 소년은 마치 예언처럼 알쏭달쏭한
말을 누나이자 엄마같은 클레오에게 건넵니다.
“내가 늙었을 때 뱃사람이었어.
그런데 큰 파도에 휩쓸렸어...”
2. 베를리오즈(Berlioz) '환상교향곡
(Symphonie Fantastique)'
2악장 '무도회(Un bal)' - 왈츠(Valse)
- 번스타인 지휘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
https://youtu.be/npg11G8ZkAY
베를리오즈의 자유분방하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을 온전히 드러내는 '환상교향곡'.
'꿈과 정열(Reveries , Passions)'의 1악장에
이어 우아하게 흐르는 'Allegro non troppo'
왈츠 풍의 2악장 '무도회(Un bal)'는
화려한 무도회장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
짝사랑의 여인이 그녀의 연인과 춤추다
홀연히 사라지는 모습이 그려진 악장이지요.
음악가는 자기가 인생의 가장 복잡미묘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축제의 소용돌이 속에 끼어들기도 하고
아름다운 전원미의 평온한 상념에 잠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마을이든 들에서든 어디를 가나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 그의 마음을
괴롭힙니다.
3.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 중
- 이본 엘리만(Yvonne Elliman)
https://youtu.be/kMf5FZ5WrTw
4. 릭키 쉐인(Ricky Shayne)의 '오 마미 블루
(Mamy Blue)'
https://youtu.be/VpoRCyx9hlg
5. 메리 홉킨스(Mary Hopkin)의
'Those were the days'
https://youtu.be/-9JOmU2jFUo
6. 제프 크리스티(Jeff Christie)의
'Yellow River'
https://youtu.be/lxu5zyUnVzE
첫댓글 < 로마 > 에는 온 가족이 < 우주탈출 >(1969)
이라는 영화를 관람하는,
'영화 속 영화' 장면이 등장하지요.
알폰스 쿠아론 감독의 전작으로 우주공간을
유영했던 < 그래비티 >(2013)의 씨앗이 됐을
영화로 그려집니다만,
이러한 시간 여행의 중심에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입주 도우미 클리오가 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클리오를 바라보거나
클리오가 보고 듣는 세계를 잔잔하면서도
너무 느리지 않게 전하고 있지요.
영화 < 로마 >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한
길바닥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모호한 시선의 프레임 안으로 잠시 후
세제 거품이 낀 물이 빗자루 소리와 함께
밀려들지요.
더러운 물이 도로 포장석을 덮어 이룬 수면에
하늘이 내려앉고 곧 비행기가 그것을 가로지르며,
고요하고도 청아한 마음의 열림,
그 놀라운 순간을 선사해 주지요.
관객들은 영화 후반에 이르러 이 비눗물의 춤과
대조를 이루는 파도의 이미지와 마주치게 됩니다.
마침내 조심스레 고개를 든 카메라는 마당 청소를
마무리 짓는 클리오를 시야에 담은 채 한동안
놓아주지 않지요.
좁은 별채에서 동료 가정부와 기거하는 클리오...
그녀는 고용주 가족, 특히 어린 4남매를 사랑하고
아이들도 클리오의 품을 정겹게 파고 듭니다.
그렇게,
감독 알폰소는 < 로마 > 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확신에 찬, 느린 호흡과 함께 관객들을
클리오의 세계로 데려가지요.
해서,
과거 속 아련한 기억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조금씩 발끝부터 적시며 차올라 어느새 사방을
둘러쌉니다.
감독 쿠아론은 가족이면서도 가족이 아닌
1970년대 멕시코 가내 노동자의 모호한 지위를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클레오는 가사 노동뿐 아니라 4남매를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도 대신 도맡아 하지요.
아침이면 노래를 불러 깨우고
밤에는 사랑한다 말하며 재웁니다.
소피아와 그의 어머니 테레사 역시 클레오가
임신한 사실을 털어놓자 두말없이 검진과
출산 준비를 도와주지요.
하지만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 로마 > 는 계층 사이를 엄연히 가로막는
벽 또한 날카롭게 끄집어냅니다.
영화 < 로마 > 에는 거대하고 중대한 (자신들이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가치를 찾아 떠난
남자들과 그 뒤에 남아 아이들을 껴안고 있는
여자들이 자리합니다.
소피아의 남편 안토니오는 가족보다
평생의 사랑을 선택하고,
클레오의 애인 페르민 또한 무술이 상징하는
초월적 파워를 익혀 ‘큰일’을 하겠다는 미명하에
그녀의 임신을 비겁하게 외면하며 도망치지요.
TV를 보는 주인 가족에게 간식을 가져다준
클레오는 자연스레 거실 바닥에 앉아 함께
쇼를 시청하며 웃지만,
남편의 차를 준비하라는 소피아의 지시에
곧장 일어서지요.
클레오를 산부인과에 데려간 할머니 테레사는
원무과 직원의 물음에 클레오의 생일도,
나이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같은 병원에 의사로 근무하는 가장 안토니오도
고통스러워 하는 클레오를 격려하지만,
막상 분만실까지 동석하겠느냐는 동료 의사의
제안에는 뒷걸음치고 말지요.
남편의 외도로 홀로 남겨진 소피아와
애인에게 버림받은 클레오...
이 두 여인네는 무책임한 남자들의 빈자리에서
아이를 보살피는 처지를 공유하고 교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