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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같은 청풍호에 양 날개를 펴고 솟은 산, 비봉산(飛鳳山)에 올라 봉황처럼 날아볼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교차점이다. 몸에 비늘처럼 붙어 있는 아집과 미련, 턱없는 불만들을 떨쳐내고 가벼워질 수만 있다면 엊그제 갔던 산, 또 못 가랴. 비상을 꿈꾸는 봉황새 한 마리를 찾아 다시 청풍으로 향한다.
이틀 전 달렸던 길을 다시 달린다. 비봉산 2차 산행이다. 이틀 전 날씨는 참혹했다. 새벽안개가 짙더니 한낮이 되어도 두터운 연무가 걷히질 않았다. 바다 같은 청풍호로 거의 사면이 둘러싸인 비봉산은 주변 산세가 조망될 때 그 진가가 빛나는 산이다. 북쪽으로 대덕산과 국사봉, 동쪽으로 작성산과 동산, 작은동산은 물론, 남으로는 금수산과 월악능선에 빙빙 둘러 청풍호 조망까지, 천혜의 전망대로 손꼽히는 비봉산에서 이렇다 할 조망 한 번 못해 보고 산을 내려오는 기분은 패잔병의 그것 같았다.
- ▲ 정상 직전의 능선에 오르면 눈앞에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다. 오른편으로 동산과 작은동산, 멀리 작성산과 청풍대교가 보인다(위). 82번 도로에서 바라본 비봉산(아래).
- 간밤엔 황사와 함께 된바람이 불었다. 이른 아침 산행준비를 마치고 차에 오르는데 바람을 타고 희끗희끗 눈발이 날린다. 옳지, 됐다. 무릎을 친다. 증평, 괴산을 지날 무렵부터 두터운 구름층 사이를 뚫고 쨍한 코발트블루의 하늘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만에 보는 푸른 하늘색인가. 양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경사가 완만한 광의리 봉정사 들머리로 향한다.
산불예방 입산통제 안내판과 비봉산 이정표가 나란히 서 있는 봉정사 초입에 차를 세운다. 비봉산은 산불예방기간에도 입산이 허용된다. 청풍호로 둘러싸여 주변 산에 산불이 번질 위험이 없는 까닭인 듯하다. 봉정사 직전 왼쪽 들머리로 들어선다. 봉정사는 고려시대에 창건한 절로 왕사로 추대된 청풍현의 큰 스님 청공(淸恭)화상이 수행하던 암자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고지대로 인한 심한 식수난으로 70여 년 전, 현 위치인 광의리 57번지로 이전했으며 예로부터 기도 터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특히 봉정사에서 바라보는 청풍호의 해질녘 풍광은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해질 무렵 봉정사 법당에 앉아 환하게 트인 시야로 내려다보는 청풍호의 노을 젖은 물빛은 삼라만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씻어줄 듯 평화롭고 고요하다고 하여 은근히 욕심도 나지만 불자도 아니면서 불쑥 들어가 청할 염치는 없다.
봉정사 들머리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20여 분 오르면 경사가 완만한 오솔길이 이어지고 소나무 참나무 숲 사이로 청풍호가 조망되기 시작한다. 코끝이 맵게 바람이 세지만 오랜만에 쾌청한 하늘을 볼 수 있는 기쁨에 바람도 달다. 앞서 가던 종려씨가 걸음을 멈추고 목에 둘렀던 버프를 치켜 올려 머리와 얼굴을 감싼다. 완만한 소나무 숲의 정취도 좋고, 참나무 숲 마른 잎 밟히는 소리도 명랑하다. 조망이 조급한 마음에 수시로 뒤를 돌아본다. 여러 달째 칙칙한 사진만 카메라에 담다가 오랜만에 드맑은 하늘빛 사진을 담으니 마냥 즐겁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달다. 돌아보면 호반의 물빛은 푸르고 흰 새들이 점점이 떠 있다.
빙 둘러 첩첩이 산이다. 정상 직전의 조망터에서 기어이 걸음을 멈춘다. 멀리 청풍대교와 작성산, 동산과 작은동산이 보이고 그 아래 청풍리조트와 청풍힐호텔이 선명하게 보인다. 지난 연초에 올랐던 작은동산의 추억에 종려씨가 두 팔을 벌려 환호한다.
- ▲ 1 능선의 패러글라이더장. 비상을 꿈꾸는 건 봉황새뿐만이 아니다. 2 산에 든 지 한 시간 만에 바짝 가까워진 정상을 보며 호흡을 고르는 휴식시간이 꿀맛 같다. 3 들머리인 광의리 봉정사.
- 정상 쪽으로 목조데크와 함께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비봉산 정상의 목조데크는 올라봐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계단을 오르면 정상 중앙에 봉수대가 있고 그 옆으로 정상석이 있다. 한쪽으로는 목조 테이블과 벤치가 놓여 있다. 활공장을 둘러싼 난간 주위로는 벤치들이 놓여 있고 세 방향으로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작은 산의 일반적인 정상 풍경을 생각하면 다소 과하기까지 한 인위적인 풍경이지만 비좁은 정상지대를 효율적으로 이용한 면에 있어서는 수긍이 간다.
정상 남쪽으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운동장처럼 펼쳐져 있다. 활공장 서쪽에는 대류리에서 시작하는 모노레일이 보인다. 패러글라이더들을 위한 리프트다. 산 정상에 이 무슨 시설물들이냐 하는 반감이 비봉산에서만큼은 일지 않는다. 활공장으로 이보다 더 좋은 여건일 수 없다는 것이 문외한의 시선으로도 충분히 짐작되는 까닭이다. 호수의 주변 산들은 또 보통 산들인가. 금수산과 저승봉, 월악의 영봉들을 감상하며 봉황의 날갯짓으로 호수 위를 활공하는 패러글라이더들의 기분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름값을 하고 있는 비봉산이다.
더 없이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뭉실뭉실 떠 있고 산 아래 사방으로 다도해 같은 풍광들이 펼쳐져 있다. 바람의 방향 탓일까, 기대했던 패러글라이더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세찬 바람을 피해 데크 아래 양지를 찾아 자리를 잡고 따끈한 차와 간식을 먹는다. 맞은편으로 월악의 영봉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바람 부는 겨울산에서 친구와 둘이 나란히 앉아 따뜻하고 정겨운 대화가 그치질 않는다.
- 엊그제 짙은 연무 속에 올라왔을 때 비하면 천국이다. 조망이 되지 않아 발을 구르는 필자를 보고 하필이면 최근 들어 가장 험악한 날씨에 왔다고, 산불감시원 이상운씨는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차라리 새벽 일찍 올라오면 멋진 운해를 볼 수 있는 곳이 비봉산이란다. 호수를 둘러싼 사방 산봉우리들이 운해 위로 봉곳봉곳 솟아 있는 풍경이 비경도 그런 비경이 없다는 것이다. 산행취재원보다 산불감시원이 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계산리 쪽으로 하산하겠다고 하자 이상운씨가 만류한다. 모노레일을 설치하면서 계산리 쪽 길이 망가졌단다. 그렇다면 대류리는? 대류리 길 역시 모노레일 설치 후 사람들이 출입을 하지 않아 흔적이 희미하다며 연곡리 길을 권한다. 청풍호에 둘러싸여 섬 같은 비봉산 일대를 돌아보고 싶었던 마음을 접고 연곡리로 향한다. 정상으로 올랐던 길을 10여 m 내려가면 대류리 이정표가 있다.
이상운씨의 말대로 길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30여 m 더 내려간 곳에 광의리와 연곡리 이정표가 있다. 연곡리 하산길은 숲에 가려 조망도 없이 경사가 급하다. 중간의 급경사지대엔 로프가 매여 있으나 부드러운 흙길로 그리 험하지는 않다. 30여 분 만에 흑돼지를 키우는 축사를 지나 연곡리 못안마을 도로에 닿는다. 빈 밭에 옥수수대궁과 배추 겉잎들이 널려 있다. 비봉산을 올려다본다. 알을 품은 채 양 날개를 펼친 봉황의 자태는 여기서 더욱 사실 같아 보인다.
광의리를 향해 걷는다. 지나는 차도 한 대 없는 조용한 길이다. 봉정사 초입까지 2km, 30여 분 오른쪽으로 청풍호반을 끼고 비봉산 아랫자락을 걷는다. 코끝이 맵싸한 찬바람도 상쾌하고 노란 햇살도 기분 좋다. 섬 같은 비봉산 아랫자락 마을들을 한 바퀴 걸어서 돌아보는 것도 특별한 재미다. 연곡리, 계산리, 양평리, 도곡리, 대류리, 신리, 물태리 같은 마을들을 지나면 비봉산자락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양평리 길 끝자락에 서면 흡사 바다 한가운데 섬에 온 듯 고독하겠다. 불과 531m의 높이로 왕복 2시간30여 분의 짧은 코스이나 청풍호 건너편으로 큰 산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비경으로 인해 결코 작지만은 않은 비봉산. 모처럼 창공을 힘차게 날아본 봉황의 날개처럼 괜히 내 어깻죽지가 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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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광의리~봉정사~비봉산 정상~연곡리~광의리 <2시간30분 소요>
비봉산은 금수산이나 월악산, 동산, 작은동산, 저승봉(미인봉), 청풍문화재단지 등 주변 명산, 명소로 인해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비봉산 정상에 서보면 안다. 비봉산의 이름이 왜 비봉산인지. 알 품은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자태는 청풍 만남의 광장 쪽에서 볼 때와 연곡리 쪽에서 볼 때 더 사실적이다. 정상에 서면 삼면으로 둘러싸인 청풍호가 거의 사면으로 둘러싸인 듯 보이고 호수를 경계로 비봉산을 빙빙 두른 큰 산이 펼쳐진다.
짧은 산행을 마치고 비봉산 아랫자락에 깃들어 있는 마을들을 하나하나 탐방하며 마을 순환도로를 걷는 맛도 일품일 듯하다. 봄이면 벚꽃과 진달래가, 여름이면 푸른 물빛과 울창한 숲이, 가을이면 주변 산들의 단풍이, 겨울이면 설경이 발아래로 무장무장 펼쳐지는 산이다. 불자라면 봉정사 스님의 허락을 받고 해질 무렵 법당에 앉아 낙조를 바라보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겠다. 산불감시원 이상운씨의 추천처럼 정상에서 바라보는 새벽 운해도 욕심난다. 활공장 아래 공간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하며 호반에 물드는 석양빛과 총총한 별빛과 새벽 운해를 봐도 좋겠다. 계산리 산행로와 대류리 산행로는 모노레일 설치 후 출입이 드물어 길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교통
대중교통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제천까지 수시 운행하며 2시간이 소요된다. 제천에서 광의리나 연곡리까지 직접 가는 버스는 없다. 제천에서 청풍까지 제천시내버스(900번대)를 이용한다. 청풍에서 광의리 및 연곡리 계산리 행은 하루 세 번 07시, 10시 20분, 17시 25분에 있다. 택시는 제천택시를 이용한다.
승용차 제천IC에서 82번 도로를 타고 청풍랜드를 지나 청풍대교를 건넌다. 청풍문화재단지를 지나 청풍면 소재지에서 종합운동장 쪽으로 들어서는 길을 택해 고개를 넘으면 갈림길이 나온다. 연곡리는 오른쪽 길로 간다. 갈림길에서 약 1km 가면 느티나무가 선 연곡리 못안마을이다. 느티나무 아래 차를 세워둘 만한 공간이 있다.
숙식(지역번호 043)
숙소 호반별장(청풍면 용곡리 비봉교회 앞. 예약전화 02-2057-1561), 갈잎소 펜션(청풍면 광의리 646-6646), 청풍리조트(청풍면 교리 640-7000), 꺼먹돼지민박(청풍면 물태리 648-3156)
식당 꺼먹돼지집(꺼먹돼지전골, 손두부 647-1004), 교리가든(민물고기매운탕 648-0077), 청풍쏘바메매운탕(민물고기매운탕 648-2700). 청풍면사무소 홈페이지에 숙소와 식당 등 다양한 정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