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화일조몽(槿花一朝夢)

[이강부]

근화일조몽(槿花一朝夢)

   인간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나타내는 말을 근화일조몽(槿花一朝夢)이라 하며 백거이(白居易)의 칠언율시(七言律詩) 방언오수(放言五首)에서 볼 수 있다.

   근화(槿花)는 무궁화로 여름부터 가을까지 연이어 피지만 꽃 한 송이 한 송이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데서 그 뜻이 유래한다.

   이 말은 원래 백거이(白居易 白樂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방언 5수(放言五首)의 다섯째 수에 나오는 송수천년종시후(松樹千年終是朽) 근화일일자위영(槿花一日自爲榮)의 근화일일영(槿花一日榮)이 변해 영화라는 말 대신 꿈(夢)을 넣어 실감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백거이(白居易)는 중국 중당기(中唐期)의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이요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며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 뤄양(洛陽) 부근의 신정(新鄭)에서 출생했으며 이백(李白)이 죽은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지 2년 후에 태어났으며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된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5세 때부터 시 짓는 법을 배웠으며 15세가 지나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재를 보였다.

   대대로 가난한 관리 집안에 태어났으나 29세로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32세에 황제의 친시(親試)에 합격했으며 그 무렵에 지은 장한가(長恨歌)는 유명하다.

   36세에 한림학사가 되고 이듬해에 좌습유(左拾遺)가 돼 유교적 이상주의의 입장에서 정치 사회의 결함을 비판하는 일군의 작품을 계속 써냈다.

   신악부(新樂府) 50수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며 40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에 어린 딸마저 잃자 인생에 있어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됐으며 불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태자 좌찬선태부(左贊善太夫)에 임용됐으나 이듬해에 일찍이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시가의 대상이 됐던 고급관료들의 반감을 사서 주장(九江)의 사마(司馬)로 좌천됐다.

   그 곳에서 인생에 대한 회의와 문학에 대한 반성을 거쳐 명시 비파행(琵琶行)을 지었다. 중저우자사(忠州刺史)가 됐으며 임기를 마치고 장안(長安)에 돌아오자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하여 자진해서 항저우자사(杭州刺史)가 됐다.

   항저우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에 촉발돼 시작(詩作)은 계속됐고 문학적 지기(知己)로서 트고 지내던 원진(元拂)과 만나게 돼 그것을 계기로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 50권을 편집하고 쑤저우자사(蘇州刺史)로 전임했으나 중앙으로 불리어 비서감(秘書監)에 임명됐다.

   58세가 되던 해 뤄양에 영주하기로 결심하고 허난부(河南府)의 장관이 됐던 때도 있었으나 대개 태자보도관(太子補導官)이라는 명목만의 직책에 자족하면서 시와 술과 거문고를 삼우(三友)로 삼아 취음선생이란 호를 쓰며 유유자적하는 나날을 보냈다.

   원진 등 옛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자 인생의 황혼을 의식하고 뤄양 교외의 룽먼(龍門)의 여러 절을 자주 찾았고 그 곳 향산사(香山寺)를 보수 복원해 향산거사라는 호를 쓰며 불교로 기울어졌다.

   이에 문학에 대한 충동도 번뇌로 보여서 참회하는 입장에서 광언기어(狂言綺語)의 문집인 유백창화집(劉白唱和集) 5권, 백씨문집(白氏文集) 60권을 다시 65권, 67권을 마음의 증표로서 연고 있는 사찰에 봉납했다.

   71세 때 형부상서(刑部尙書)의 대우로 퇴직했는데 백씨문집은 70권에 이르렀고 그 뒤로도 광영(狂詠)은 계속됐고 정부의 불교탄압정책을 풍자하는 작품을 통해서 자기 시대의 종말을 예감하고 인생의 마무리로서 75권의 전집을 편정(編定)했으며 그것이 완성된 이듬해 그 생애를 마쳤다.

   이 밖에 시문(詩文)을 짓는 편의를 위해서 고사성어를 모은 백씨육첩사류집(白氏六帖事類集) 30권도 있다.

   그 긴 생애 동안에 그의 문학은 자주 변모해 젊은 날의 낭만주의적인 경향은 지적인 빛을 띠며 이상주의적 입장으로 옮겨갔고 문학의 존재의의를 주장하며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다가 이윽고 정치나 사회 가운데서 개인을 발견해 자기의 내면을 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다시 개인에 비추어 널리 인간의 생활 자세를 추구해 인생의 지혜를 표상하는 문학을 지향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정형(定型)의 한계적 조건하에서 언어의 온갖 기능을 다 구사하는 창화(唱和)라는 새로운 형태의 창조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그 속에 일관하고 있던 것은 문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생활의식이나 생활감정이 뒷 밤침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이었다.

   따라서 제재는 경험적이고 언어는 일상성을 띠며 발상은 심리의 자연에 따르고 구성은 논리의 필연에 따르며 주제는 보편적이어서 유려평이(流麗平易)한 문학의 폭을 넓혀 당(唐) 일대(一代)를 통해 두드러진 개성을 형성했다.

   그의 생존 시에 이미 그의 시는 민중 속에 파고들어 소치는 아이나 말몰이꾼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고 배나 절의 기둥이나 벽에 써 붙여지기도 했으며 멀리 외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는 한국에도 일찍부터 전해져 널리 애송됐으며 현재 전하는 것은 백씨장경집 75권 가운데 71권이 있고 백향산시집 40권도 있다.

   현존하는 작품 수는 3800여 수이고 그 중에서 비파행, 장한가,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는 불멸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의 한자

槿 : 무궁화 근, 花 : 꽃 화, 一 : 한 일, 朝 : 아침 조, 夢 : 꿈 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