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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사목』 가톨릭 신자들이 창조영성을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창조영성을 통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피폐된 자연환경을 회복시키고 창조의 협력자로서 계속되는 창조사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
킬리만자로의 표범
우리에게 ‘킬리만자로 산’은 잘 알려져 있는 산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국민가수 조용필씨가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 때문일 겁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자나 ♬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하며, 비장하게 부르는 조용필 씨의 이 노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노래방에서 불러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또 이산은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조용필이 노래하고, 헤밍웨이가 글로 적은 킬리만자로 산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5,895m)으로 만년설과 빙하가 있는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산꼭대기에만 약간의 눈과 얼음이 남아있을 뿐 모두 녹아내렸습니다.
물에 빠져죽는 북극곰?
북극의 ‘만년설(萬年雪)’도 녹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만년동안 녹지 않는 눈인 만년설은 빙하지역에 내린 눈의 밑 부분을 뜻하는 말인데, 이 만년설이 지난 1970년대부터 매우 빠르게 녹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은 바다에 떠있는 얼음판을 건너다니며 물개를 잡어 먹는 북극곰에게는 매우 슬픈 소식입니다. 얼음이 녹아 사라지면 북극곰은 더 먼 거리를 헤엄쳐 다녀야 하고, 먼 거리를 헤엄치는 북극곰은 다음 얼음판에 닿기 전에 지쳐서 물에 빠져 죽기도 합니다.
온실가스의 복수!
킬리만자로 산과 북극의 만년설이 매우 빠르게 녹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대기 가운데 ‘온실가스’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태양에너지가 대기에 들어오면 그 가운데 일부가 지구와 대기를 덥히고 적외선 형태로 다시 우주로 나가야 하는데, 온실가스가 적외선 일부를 가두어 우주로 나가지 못하게 해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온실가스는 우리 생활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산업과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하였고, 이 가운데 ‘이산화탄소’ 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자동차 이용과 가정, 직장, 공장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등을 태울 때 이산화탄소가 생기고, 인류의 생활 편의를 위해 많은 숲을 없애고 그곳에 도시를 만들며 이산화탄소 배출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환경주의자=가톨릭신자
이러한 전 세계적인 생태학적 위기 상황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큰 위기입니다. 때문에 지난 해 로마 교황청은 ‘지구촌 환경오염’을 오늘날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현대사회의 커다란 죄악으로 규정했습니다. 교황청의 지안프랑코 지로티 대주교는 “환경오염은 현대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인류가 참회해야 할 큰 죄”라고 말했고, 이 말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현상은 사회적인 죄이며, 고해성사가 필요한 교회법상의 죄라는 의미로 해석되었습니다. 또 베네딕트 16세 교황께서도 2007년 4월 바티칸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에서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전 세계 10억 가톨릭 신자들은 모두 환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황청의 지구 환경에 대한 이 같은 선언은 실천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2007년 6월 로마 교황청은 교황님께서 날씨가 좋지 않을 때나, 겨울철 대접견 행사에 쓰이는 건물인 '바오로 6세 홀'(1969년 건립)을 태양열 전지판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한 뒤, 이 건물의 지붕을 같은 색깔의 2,700개 태양 전지판으로 교체해 지난해 11월부터 강당의 조명과 냉ㆍ난방 전력을 모두 태양열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 교황청은 앞으로 바티칸 내 공사가 가능한 모든 건물에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할 계획이고, 교황청이 주관한 청소년 행사에는 이미 재활용 소재로 만든 배낭과 썩는 플라스틱 용기 등 친환경제품을 사용했습니다. 또 교황님은 2007년 브라질을 방문하였을 때 아마존 복원을 위한 기부의사를 밝혔고,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을 위한 탄소배출권제도에 적극 찬성해 직접 ‘탄소배출권’을 구입했습니다.
가톨릭 직장인들의 소명, ‘창조보전’
교회의 이 같은 환경보호활동을 생태신학에서는 ‘창조보전’(Integrity of creation)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이 창조 보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신앙 실천 행위입니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우리 교회의 가르침과 노력에 우리 가톨릭 직장인들도 함께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도 선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한편의 영화를 소개해드리죠.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 2006)입니다. 이 영화에는 우리가 잘 아는 한 사람이 나오는데, 바로 미국 전(前)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Al Gore) 입니다. 엘 고어는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환경운동을 해왔고 지난 2000년 대선 실패 후에는 정치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 직장인들도 집과 직장에서 창조보전을 위한 소중한 선택을 실천할 때, 우리 모두의 집인 ‘초록별 지구’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추억의 도시락
맹주형 아우구스티노(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부장)
『환경사목』 가톨릭 신자들이 창조영성을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창조영성을 통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피폐된 자연환경을 회복시키고 창조의 협력자로서 계속되는 창조사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
새해 중순 새벽 아침
새해하고도 보름이 지난 어느 날 새벽 아침, 며칠 동안 저녁 술자리가 없었던 까닭인지 번쩍 눈이 떠졌습니다. 마루의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문 앞 신문을 가져와 화장실에 다녀오니 배가 고픕니다. 주방을 둘러보니 어제 남은 된장찌개와 밥솥엔 찬밥이 조금 남아 있어 우선 쌀을 씻습니다. 쌀뜨물은 설거지에 쓰려고 한데 모아놓고 찬밥은 데우고 어제 남은 뒤포리 육수 국물을 된장찌개에 부어 다시 끓이니 주부의 아침 준비 분위기가 납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유정난이 있어 계란도 하나 부치고, 지난 주 본가에서 막내 동환이가 좋아해 어머니가 싸주신 조개젓도 식탁위에 놓으니 제법 그럴듯한 아침 밥상이 됩니다. “참! 김도 있다.” 김 생각에 냉동실을 열어보니 진도 가톨릭농민들이 만든 돌김이 없습니다. 조미 김보다 기름 안 바르고 살짝 구운 김을 좋아하는 제가 다 먹어버리고는 깜박 잊은 거죠. 간만에 차리는 아침 밥상에 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주방 수납장을 열어보니 비록 기름 바른 김이지만 동네 유기농 매장에서 사온 김이 있어 뜯어 놓고, 데운 밥을 푸고 남은 누룽지에는 물을 부어 놓았습니다. “밥 먹는 동안 누룽지는 끓겠지...”하는데 조금 소란스러웠던지 아내가 “새벽부터 모해...?”하며 나옵니다.
밥상과의 전쟁
요즘 아내는 아이들 방학을 맞아 ‘밥상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방학기간동안 밥도 현미밥으로 바꾸고, 설탕과 인스턴트 먹을거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동안 침도 맞고, 병원도 다녔던 큰 아이의 비염을 이참에 먹을거리로 고쳐볼 요량입니다. 그 전에는 비록 동네 유기농매장에서 사왔다고는 하지만 데워먹는 짜장 소스에 스파게티 그리고 남편의 계속되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현미 대신 백미를 먹곤 했습니다. 그런 집사람이 이번에는 나름 큰 결심을 한 것입니다. 식단을 현미밥과 친환경 채소, 된장과 같은 발효식품, 생선 중심으로 짜고 설탕은 무조건 금지! 그리고 방학기간 내내 삼시 세끼 엄마표 밥을 해먹이겠다는 나름 야심찬 프로젝트입니다. 그런 아내의 노력이 기특해 오늘은 퇴근하며 현미와 현미찹쌀을 사다 줄 생각을 합니다.
밥집을 찾아!
소란 끝에 김장 김치와 김, 그리고 조개젓, 계란 부침, 데운 된장찌개를 식탁에 올려놓고 보니 제법 잘 차린 아침 밥상입니다. 그것도 스스로 일어나 손수 차린 밥상이니 대견스럽기 까지 합니다. 밥을 다 먹을 쯤 누룽지는 끓고, 누룽지를 먹고 숭늉으로 깨끗이 그릇을 비웁니다. 이제는 도시락 준비. 도시락이라고 해야 집에서 남은 밥만 싸가고 형편 되면 남은 반찬을 싸가는 정도지만 요즘엔 싸가지고 다닙니다. 저희 사무실이 있는 명동 가톨릭회관 지하에 직원식당이 있긴 하지만 반찬이 대부분 짜고, 언제부터인지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 안가 본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사먹는 밥도 그렇습니다. 매일 12시만 되면 물밀듯이 밀려나오는 직장인들은 명동에 있는 ‘밥집을 찾아!’ 한바탕 전쟁을 치룹니다. 그나마 좀 맛있는 집은 10-20분 기다리는 것은 예사이고, 먹고 난 뒤 감당 못할 조미료 맛은 정말이지 고역입니다. 하여 지난해 말부터 사무실에서 실무자들이 함께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고, 요즘엔 특별히 점심약속이 없는 한 매일 도시락을 먹고 있습니다.
도시락 예찬!
함께 일하는 식구들이 한두 개 싸오는 반찬을 모아 놓으면 제법 풍성한 밥상이 됩니다. 얼마 전 순일언니가 직접 담근 김장김치를 가져다 놓았고, 경진이 어머니의 정성이 듬뿍 담긴 겨울 동치미도 함께 먹는 별미입니다. 무엇보다도 밥을 천천히 먹을 수 있고 속도 편합니다. 사무실 식구들과 밥을 먹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특히 TV를 보지 않는 제게는 요즘 잘나가는 ‘1박2일’과 ‘웃찾사’의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예전 농민회에서 그랬듯이 “밥알이 누울 때 까지 앉아있자”고 제안합니다. 총각 시절, 대전 가톨릭농민회관에서 먹고 자고 할 때 재돈 형님께 배운 습관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밥상을 살리고, 농촌을 살리는 사람들이 소중한 밥을 모셨으니 천천히 음미한 뒤 일어서자는 나름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설거지도 돌아가며 합니다. 사무실이 있는 6층에는 함께 쓰는 탕비실이 있는데 이곳에 친환경세제와 친환경수세미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같은 층에 있는 다른 사무실 식구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이자, 환경을 생각하자는 무언의 압력(?)이기도 합니다. 가끔 설거지하다 보면 일반 세제는 없고 친환경세제가 바닥나 있으니 함께 쓰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추억의 도시락
앗! 이제 출근 준비할 시간입니다. 아까 쌀을 씻으며 모아 놓은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고 오늘의 도시락을 쌉니다. 찬밥은 다 해치웠으니 아침에 새로 한 밥을 식혀 놓고 계란 한 알 더 부치고 남은 현미유에 김치를 볶습니다. 고추장도 약간 넣고, 어제 저녁 썰어놓은 양파와 함께 볶습니다. 이윽고 식은 밥 위에 계란을 올리고, 반찬통에 볶은 김치를 담으면 이것이 오늘의 도시락, 바로 ‘추억의 도시락’입니다! 저는 오늘도 이 도시락을 맛있게 먹을 것입니다.
도쿄 시부야 이야기
맹주형 아우구스티노(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부장)
『환경사목』 가톨릭 신자들이 창조영성을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창조영성을 통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피폐된 자연환경을 회복시키고 창조의 협력자로서 계속되는 창조사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
젊음의 도시 ‘시부야’
일본을 여행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동경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 가운데 하나가 ‘시부야’입니다. 이곳에는 시민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 옷가게, 주점과 바, 백화점, 가게 등이 몰려 있어 비교적 나이 어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입니다. 때문에 ‘시부야’에는 일본말로 ‘이치마루큐’라 불리는 패션빌딩 ‘109’와, 백화점, 라이브하우스 등이 있고, 최근에는 고층 비즈니스 빌딩이 들어서고 IT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첨단도시로 바뀌고 있습니다.
시부야발(發) 농업 혁명
그런데 얼마 전 이런 동경 젊음의 거리인 ‘시부야’에서 ‘농업 혁명’이 시작되었다는 기사가 지난 달 말 일본 산케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청년 문화의 발신지인 도쿄 ‘시부야’에서 10대 후반에서 20대 여성들이 농업 식량 자급률 향상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시부야’의 젊은 여성들이 올 봄부터 패션모델들과 함께 쌀 만들기에 도전하고, 가을에는 ‘젊은 여자들이 만든 쌀’이라는 의미의 "Gal 미(米)"의 상품화를 지향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Gal'은 영어 ‘Girl’의 구어(口語)로 ‘미혼의 젊은 여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후지카씨 이야기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인물은 놀랍게도 올해 스물 세 살의 젊은 여성인 ‘후지카’(志穂)씨입니다, ‘후지카’씨는 젊은 여성들의 취향을 알기위해 4년 전 마케팅 회사를 설립했고 현재는 "Gal”이라는 회사의 사장으로, 생태 개발과 에이즈 예방과 같은 사회 공헌 활동에도 주력 해왔습니다. 그리고 ‘후지카’씨는 이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젊은 여성들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신나는 농업’을 지향한다고 말합니다. ‘후지카’씨가 이런 발상을 하게 된 계기는 ‘먹을거리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가운데, 농사일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논과 밭이 노는 땅이 된 것을 본 다음부터입니다. 또 그녀는 ‘시부야’에 오는 젊은 엄마들과의 대화에서 그녀들이 미용과 패션과 마찬가지로 ‘먹을거리 안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후지카’ 씨는 나가노 현(峴) 내 농민들의 도움을 얻어, 논과 밭을 빌려 모내기와 체험행사를 기획했고, 올해는 밭을 빌려 채소 농사에도 도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 일본에서 유명한 모델과 탤런트들에게도 이 프로젝트의 참가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패션과 농업의 만남!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이 함께 재배한 쌀과 채소로 만든 주먹밥과 음식을 상품화할 계획도 가지고 있으며, 또 젊은 여성들을 위한 패션 정보의 발신기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패션의류회사인 ‘아빠레루메카’ 등과 제휴하여, 농사일에 편하면서도 세련된 농업 복장도 개발하고, 이를 시부야의 패션 빌딩 ‘이치마루큐’(109)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후지카’ 씨는 “젊은 여성들의 의식의 변화가 농업 종사자의 증가로 연결된다.”고 전망합니다. 일본 동경 ‘시부야’의 젊은 여성 문화인 ‘Gal 문화’에서 ‘농업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는 올해 스물 세 살 ‘후지카’ 씨의 이야기는, 최악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취업난이 악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직장인들에게, 생각과 관점이 바뀌면 얼마든지 농업과 관련되어서도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업이 가능하다는 의미 있는 사례입니다.
최 씨 할아버지 소 워낭1)
맹주형 아우구스티노(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부장)
『환경사목』 가톨릭 신자들이 창조영성을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창조영성을 통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피폐된 자연환경을 회복시키고 창조의 협력자로서 계속되는 창조사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
얼마 전 일요일, 가족이 함께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그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는 그만 매진이었습니다. 일요일 오후인지라 대부분의 영화가 매진이었는데 한 시간 정도 뒤에 ‘워낭소리’는 좌석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소가 나온다는 영화를 좋아할 리 없는 아이들을 설득해 함께 영화관에 들어갔습니다.
경북 봉화 산골짜기 마을. 영화 속 주인공은 단출합니다. 팔순이 넘은 최 씨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삼십년 가까이 함께 살고 있는 소 한 마리, 이들이 다입니다. 최 씨 할아버지는 우리 시골 농사꾼 모습 그대로 입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젊어서 머슴 일을 하며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것이 평생 몸에 배었고, 어릴 적 병을 앓아 다리 한쪽이 불편한 노인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삼십년 넘게 함께 해온 늙은 소 한 마리. 이 소가 최 씨 할아버지의 가장 친한 벗이고 이동수단이자 농기구입니다.
이들의 느린 산골 일상이 흐르자 아이들은 몸을 뒤척이기 시작합니다. 헐리우드식의 크고 빠르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던 아이들이 마주한 느린 화면은 아마도 큰 고욕일겁니다. 느리고 소박한 삶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살자고 이야기하던 저도 할아버지의 느린 소달구지 움직임 앞에 가슴 한편이 막막해집니다. 새벽에 일어나 쇠죽을 쒀 소에게 먹이고, 해 뜨면 소달구지 타고 논과 밭에 나가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며 하루 종일 밭 매고 꼴 베고 다시 해지면 소달구지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자꾸만 불편해집니다. 힘든 노동 때문에 “머리… 아파…”하는 할아버지의 혼잣말도 불편합니다. 소달구지를 타고 찾아간 동네 병원에서 의사는 일을 줄이라고, 일을 줄이지 않으면 돌아가신다고 짐짓 겁주며 이야기하지만, 다음날이면 다시 밭으로 나가는 할아버지의 소 심줄 같이 질긴 고집이 자꾸만 미워집니다.
미움과 불편함이 지나더니 이젠 부끄러워집니다. 농민들을 위한 삶을 살겠노라 총각시절부터 지금껏 떠들고 살아온 제 지난 삶이 부끄러워집니다. 할머니의 모진 잔소리와 한탄 속에서도 논밭에 농약과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까닭이 다만 소에게 먹일 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사료를 먹인 소는 새끼를 잘 낳지 못하기에 꼴을 먹여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단순한 생명의 논리가 저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듭니다. 진리는 그렇게 단순한 가 봅니다.
할아버지에게 약치지 않는 무농약, 유기농 농사는 무슨 거창한 명분이나 논리가 없었습니다. 그냥 오랜 친구이자, 식구인 소를 위해 철마다 힘들지만 묵묵히 꼴을 베고 밭을 매고 소죽을 쑵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소를 팔러 우시장에 갔다가 결국은 못 팔고 돌아와, 술에 취한 당신을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준 젊을 적 소 이야기와 함께 취해버린 할아버지께 누군가 이야기합니다. 어르신들에게 소는 업(業)이라고…. 불가에서는 업(業)을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선악의 소행들이라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소에게 의지해 한평생 살아왔지만 결국 소는 업(業)이 되어 그 소 때문에 힘겨워합니다. 삶의 업(業)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자꾸만 귓가에서 워낭소리가 들려옵니다. 땅같이 투박하게 생긴 할아버지 손끝에 매달려 있던 워낭소리가 자꾸 들려옵니다. 빠름이 최상의 선(善)이고 정지는 바로 죽음인 이 세상 속에서, 느림의 거룩함이 무시되고 사라져가는 속도의 사회 속에서, 도시의 업(業)을 지고 살아가는 농촌을 기억하라고. 빠르고 편안한 도시의 업(業)을 묵묵히 지고 살아가는 농민들의 고단하고 느린 삶을 기억하라고, 영화 속 최 씨 할아버지 늙은 소 목에 달린 빛바랜 워낭이 자꾸만 흔들립니다.
1) 말이나 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꼬다리 전과 나머지 조림, 막걸리 한잔
맹주형 아우구스티노(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부장)
『환경사목』 가톨릭 신자들이 창조영성을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창조영성을 통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피폐된 자연환경을 회복시키고 창조의 협력자로서 계속되는 창조사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
이상한 밥집
얼마 전 성당 환경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서교동에 있는 ‘문턱 없는 밥집’에 들렸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 투쟁이 테러가 되고 일제교사를 거부했다고 해직당하는 요즘 세상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가 어느새 강자들만의 사회가 되었음을 참 많이 느낍니다. 사회적 강자인 정부와 검찰, 경찰과 기업들은 그들만의 국익을 이유로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내와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요즘 세상 속에 이 밥집은 참 이상한 밥집입니다.
돈이 없어도 유기농산물 재료로 만든 밥을 먹을 수 있고, 내가 가진 게 부족하면 천 원 한 장 달랑 내고 가도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한 밥집입니다. 이 밥집에서 한 사람 만났습니다. 2007년 5월부터 밥집 돌보는 일을 맡고 있는 심재훈(프란치스코)씨입니다. 뜽금없이 밥집이 궁금해 찾아왔다는 저를 보고 심재훈씨는 ‘웰빙’ 이야기부터 꺼냅니다. ‘웰빙’이라는 말에는 잘사는 사람들의 관점이 담겨있다고. 그렇습니다. 한 끼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웰빙’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일 것입니다. ‘문턱 없는 밥집’이 시작된 이유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먹을거리에 대한 웰빙적 접근이 아니라 건강한 먹을거리는 누구나, 특히 가난하고 노동으로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쉽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매일 점심이면 100여명의 사람들이 밥집을 찾습니다. 그 가운데 30~40명은 천 원 이상의 돈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고 나머지 60~70명은 근처 직장인들입니다. 특히 요즘은 청년 실업자들이 많이 옵니다. 또 취로 사업하는 분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지급하는 무료 식권을 들고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번은 멀쩡해 보이는 청년이 돈을 내지 못해 사정을 들어보니, 지하 단칸방 월세를 30만원에 살았는데 몇 달 고향에 다녀온 사이 월세가 50만원으로 올라 쫓겨난 사연이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 그 청년은 다시 밥집을 찾아 고시원 총무로 지내며 월급 30만원을 받게 되었다고 거금 5천원을 내고 밥을 먹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식당에 실업자나 노숙자들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밥값 천원을 붙여놓았습니다. 무료 급식에 길들여진 이들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였는데 지금은 이마저도 없어졌습니다.
‘꼬다리 전’과 ‘나머지 조림’
‘문턱 없는 밥집’은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고 만들고 먹는 밥집입니다. 먹을거리 재료는 윤구병 선생이 사는 변산 공동체에서 유기농업으로 만든 농산물이 올라옵니다. 음식 만들기도 그렇습니다. 올라온 채소와 농산물은 흙만 씻고 모두 껍질째 만듭니다. 화학조미료는 말할 것도 없고 유전자조작농산물도 없습니다. 음식을 만들고 남은 꼬다리는 ‘꼬다리 전’으로 변신하고, 멸치, 다시마, 뒤포리 등 국물 내고 남은 재료는 다시 ‘나머지 조림’으로 태어납니다. 이들 남은 재료로 만든 ‘꼬다리 전’과 ‘나머지 조림’은 인기 메뉴이자, 좋은 술안주가 됩니다. 껍질 째 만들고 그나마 남은 재료도 이렇게 다시 쓰니 버릴 게 없습니다. 먹는 사람들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다 먹고 숭늉에 그릇을 닦아 먹는 ‘빈 그릇 운동’을 실천합니다. 신기하게도 처음 오는 사람들도 잘합니다.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열의를 느낀다고 합니다. 대량 소비와 폐기 그로 인한 지구 생태 위기 속에서 한 끼 밥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기분 좋은 가게
밥집 옆에는 기분 좋은 가게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기분 좋은 가게’입니다. 들어가 보니 재활용 가게라는 느낌보다 분위기 좋은 찻집 같습니다. 자본과 이윤의 논리로 만들지 않은 착한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공정무역을 통해 만들어진 커피와 초콜릿, 축구공이 있습니다. 건강한 도서들도 많습니다. 모두가 기증한 것들이지만 ‘가장 아끼는 것을 기증해 달라’는 원칙에 따라 내어 주어 모두가 좋아 보입니다. 가게 한편에는 ‘되살림 공방’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안 쓰는 천을 되살려 다시 옷을 만듭니다. 넥타이로 만든 치마와 퀼트 분위기 물씬한 천 가방이 좋아 보입니다. TV 마다 소비자 고발 프로가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아끼고 덜 쓰고 상상하는 공간입니다. 돈들이지 않고 되살려 써도 멋 내는 욕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 대안의 공간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쓸모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아끼고 다시 쓰고 조금 가난하게 살아도 멋있고 자신감 있는 삶을 살수 있다는 상상력과 그래서 참된 인문 교육이 필요합니다.
가게를 나와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는 길옆에는 엄청난 규모의 아파트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옆 중세의 성(城)을 생각하게 하는 거대한 모델 하우스… 전에 보았던 서교동 작은 집들과 골목길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성(城)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진보라고,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강자이자 대세인 세상 속에서 그래도 그날 저는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삶에 지쳐 힘 빠질 때, 곁에 꿈꿀 수 있는 사람들 두루 모아 앉아 ‘꼬다리 전’과 ‘나머지 조림’에 심재훈씨가 극찬한 ‘참살이 막걸리’ 한 잔 주~욱 들이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만간 이 꿈을 꼭 이룰 겁니다.
잔치국수
맹주형 아우구스티노(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부장)
『환경사목』 가톨릭 신자들이 창조영성을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창조영성을 통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피폐된 자연환경을 회복시키고 창조의 협력자로서 계속되는 창조사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
가톨릭교회의 창조보전운동
지난 주 제가 일하는 환경사목위원회에서는 첫 번째 가톨릭에코포럼을 열었습니다. ‘생태위기 시대와 가톨릭교회’라는 주제였습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가톨릭교회의 그간 창조보전운동실천에 대한 발표 한 꼭지를 맡아 우리 교회의 창조보전운동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영광핵발전소 반핵운동부터 한때는 굴업도 핵 폐기장 반대운동. 그리고 이 굴업도에 최근 CJ 그룹에서 98% 이상의 땅을 매입해 자연 파괴의 상징인 골프장과 대규모 리조트 단지를 구성한다는 사실도 이번 발표 준비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규현 신부님과 오영숙 수녀님으로 대표되는 사제, 수도자의 참여로 시작된 새만금 개발 반대운동과 4대 종단 성직자들의 ‘삼보일배(三步一拜)’. 그리고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불거진 한반도 대운하반대운동과 최근 경인운하 재추진 반대운동 까지. 참 많은 환경운동에 우리 교회가 함께 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돌아보니 90년대 이후 가톨릭농민회의 생명공동체운동부터 우리밀살리기운동, 우리농촌살리기운동, 그리고 삼보일배와 지난해 진행되었던 ‘대운하백지화 천주교 연대’ 구성까지 앞에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사건별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일을 만들고 조직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무자와 창조적 쉼
그런데 포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문득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아왔지?” “과연 운동단체의 실무자란 무엇이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최근 함께 일하던 조직의 실무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그들의 결정을 바라보며 어찌할 수 없었던 저의 고민도 아마 한몫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가슴 한구석에 외면하고 있었던 보다 근본적인 운동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교회 내 환경운동과 농촌살림운동을 한다고 십년 넘게 살아온 시점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하는 의문이 든 겁니다.
사실 운동단체 실무자들은 3년을 넘기면 많이들 지쳐 떠나갑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워갑니다. 떠나가는 사람들은 재충전도 없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에 지쳐 떠난다고 한탄합니다. 실제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여 저희 조직에도 ‘안식년’ 또는 ‘안식월’이라도 제안해보곤 했지만 아직은 어려워 보입니다. 분명 문제입니다. 창조보전운동을 하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민사회운동을 하며 인격적으로도 성장하고 더욱 창조적인 일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사이 실무활동가들은 일에 밀려 한해 한해가 너무도 빨리 가고 그 가운데 소진되어 결국 그만두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합니다.
남몰래 꾸는 꿈 하나
이럴 때 필요한 게 ‘꿈’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남몰래 꾸는 꿈 하나 있습니다. 적당한 때가 되면 도시가 아닌 지역으로 가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작게 이름 적어놓은 민박집 하나 꾸려놓고 삶에 지쳐, 일에 지쳐 혼자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푹 자고 맛있게 먹고 천천히 사는 꿈입니다. 편안하고 깊은 잠 뒤에 보글보글 맛난 된장찌개와 장아찌와 아침밥을 먹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필요하면 동네를 걷고 자전거를 타고 텃밭을 돌보고 또 멍하니 하늘과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그냥 있는 겁니다. 제가 이런 혼자 꾸는 꿈을 몇몇 친한 분들께 이야기하면 그분들은 꼭 이뤄달라고 말해줍니다. 꼭 불러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꿈을 위해 가끔 집에서 밥도 하고 찌개도 끓이고 김도 굽습니다. 얼마 전에는 늦은 저녁 아이들이 출출하다 하여 냉장고를 열어보니 우리밀국수가 있어 잔치국수를 끓였습니다. 사실 생각한 것은 잔치국수였는데 재료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콩나물도 들어가고 감자도 들어간 조금은 엉뚱한 잔치국수가 만들어졌습니다. 여하튼 다시마와 국물멸치로 국물을 내고, 김치 썰어 넣고 양념장도 따로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출출했던 아이들은 이런 정체불명의 아빠 표 잔치국수를 맛있게 먹어주었습니다.
잔치국수 같은 삶
운동단체의 실무활동가로서의 고민 끝자락에 문득 “그런 잔치국수 같은 삶이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에게 고명되어 얹혀지고, 서로에게 국물 되어 마셔지고, 서로에게 양념장 되어 섞여져 일 많아 지치고 ‘운동’이라는 소명으로 일하지만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턱도 없는 활동비로 어려운 생활을 살아가는 우리들 서로가 잔치국수 같이 살면 좋겠습니다. 비싸지 않고, 어찌 보면 조금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새참이지만, 배고프고 힘들 때 서로에게 국물 되어 배부르게 해주고 마음 뜨뜻하게 해주는 잔치국수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훗날 서로가 간직한 소중한 꿈을 이루게 도와주는 든든한 국물들이, 탱탱한 면발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돼지국밥
맹주형 아우구스티노(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부장)
『환경사목』 가톨릭 신자들이 창조영성을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창조영성을 통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피폐된 자연환경을 회복시키고 창조의 협력자로서 계속되는 창조사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
지난 주말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부산 지역의 유아교육 담당 선생님들과 함께 가톨릭생태유아교육을 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모처럼 기차를 타니 기분이 좋습니다. 한 숨 자고 일어나 보니 구포역을 지나, 지난 해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며 수녀님들과 함께 걷던 낙동강 하구가 보입니다. 낙동강 하구를 보니 온 국민이 반대했던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이제 다시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 정부 생각이 나 기분이 언짢아 집니다.
이윽고 기차는 부산역에 도착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부터 교육이 있는 터라 전부터 알고 지내던 후배 집에서 하루 묶기로 했습니다. 후배는 부산 지역에서 십년이 넘게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녁 무렵 만난 후배는 보자마자 “형님! 우리 집 근처에 싸고 맛있는 국밥집 있는데 안 가실랍니까?” 합니다. 함께 후배 집 옆에 있는 돼지국밥집에 갔습니다. 수년 전 후배의 결혼식에 가보지 못한 묵은 죄(?)도 있어 아내도 부르라 했습니다.
싸고 맛있는 돼지국밥
후배와 둘이 돼지국밥에 소주 한 잔 먹고 있는데 제수씨와 두 돌 지난 딸 현정이가 들어옵니다. 바짝 마른 체구의 후배와는 달리 푸근한 인상의 제수씨는 고향이 길림성인 중국교포입니다. 언니가 먼저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고 후배는 아는 선배의 소개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제수씨는 길림성에서 사범대학까지 나왔는데 한국에서는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다시 방송대학을 3년 다니고 졸업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중국어와 한문을 가르칩니다. 후배는 아내가 돼지국밥을 잘 먹는다고 슬쩍 말해줍니다. 싸고 맛있는 저녁밥이었습니다. 많이 벌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뜻있게 살고자 하는 우리네 삶을 닮은 따순 국밥이었습니다.
거룩한 가난
밥을 먹고 후배 집에 아이를 위해 작은 케이크 하나 사서 들어갔습니다. 작은 케이크지만 몹시 고마워하는 제수씨 모습이 고맙습니다. 자기 집은 아니지만 둘이 함께 일해 마련한 작은 집이었습니다. 집 안 곳곳에는 제수씨가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세수대아를 쓰는 화장실 하며 아까 식당에서 먹던 현정이 우유까지 제수씨는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옷장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서로의 옷을 잘 정리해놓았고 아이의 장난감들과 종이가방과 옷걸이까지 방 한쪽에 잘 정리해 놓은 모습에서 제수씨의 소박하고 착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십 수 년 전 결혼할 때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님이셨던 김승오 신부님께서 “거룩한 가난을 살라”고 혼배미사 강론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도시에 살아가며 너무 많이 쓰고 버리며 잊어온 품위 있는 가난을 제수씨는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제수씨가 없을 때 후배에게 “너 장가 정말 잘 갔다”하자, 후배도 아마 아내와 결혼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었을 거라며 조용히 웃습니다. 그날 밤 저는 참 오랜만에 푸근한 잠을 잤습니다.
더 가난하게 살아도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제수씨는 저와 남편을 위해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어묵 탕과 새벽부터 일어나 무친 파와 깻잎무침이었습니다. 후배는 함께 밥을 먹으며 부산 사투리로 마치 저 들으라는 듯이 말합니다. “우와! 현정 엄마! 깻잎이 일취월장하는데!” 평소 아침을 잘 먹지 않는 저도 이날은 맛나게 밥 한 공기 다 먹고 뜨끈한 누룽지까지 두 공기나 먹었습니다.
부산에서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기차에서 어제 저녁 후배와 함께 먹은 돼지국밥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거칠어 보이지만 뒤 끝 없고 사람 좋은 부산 같은 국밥. 싸지만 맛나고 풍성한 돼지국밥처럼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소비주의에 찌들어 이 것 저 것 가진 것이 많아진 제 삶을 생각했습니다. 제수씨는 제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가난’을 잊지 말라고. 더 버리고 더 가난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참 고마운 만남이었습니다.
농부님들과 신학생들
맹주형 아우구스티노(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부장)
『환경사목』 가톨릭 신자들이 창조영성을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써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창조영성을 통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피폐된 자연환경을 회복시키고 창조의 협력자로서 계속되는 창조사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
100년 공소, 대안리 공소
지난여름 서울교구 신학과 1학년 학생들과 함께 원주교구 대안리 공소에 갔었습니다. 서울교구 신학생들은 매년 대안리 공소에서 생태농촌봉사활동을 합니다. 대안리 공소는 100년이 넘은 공소로 근대건축물로 지정을 받은 오래된 공소입니다. 그리고 공소 마을 신자들은 대부분 생명농법으로 쌀과 감자, 옥수수 농사를 지으십니다. 올해도 스물다섯 명의 서울교구 신학생들은 이곳 백 년 넘은 공소를 찾았습니다. 스물다섯명의 신학생들은 그곳에서 5일 동안 생명농업 농사를 짓는 신자분들의 논과 밭에서 땀 흘려 일했습니다.
감자 꽁보리밥
대부분 신학생들은 태어나 첫 농촌봉사활동이었습니다. 첫날 저녁부터 밥도 스스로 짓고 반찬도 만들었습니다. 국은 유정란을 풀어 만든 계란 국에 반찬은 어묵무침이었습니다. 대안리 공소 회장인 종범 형님의 형수는 그런 신학생들 모습이 기특했는지 이웃집 안나 할머니와 함께 신학생들 먹으라고 겉절이 김치를 담궈 주시고 산에서 취나물을 캐다 나물도 무쳐주십니다. 겉절이가 맛있게 만들어지자 안나 할머니는 집에서 보리에 감자를 넣어 찐 감자 꽁보리밥을 해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자란 우리콩과 강원도 맑은 물로 만든 된장을 뚝배기에 지저오십니다. 배추 겉절이에 취나물무침과 강된장, 밥은 강원도 감자 꽁보리밥입니다. 공소 마당 앞에는 공소만큼이나 오래된 커다란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 아래 평상과 마당에서 종범형님과 형수, 안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신학생들이 함께 둘러 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대동세상
서양에서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라는 말을 동양에서는 ‘대동(大同)세상’이라 말합니다. 이 ‘대동(大同)’이라는 말은 ‘함께 천막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을 본 따 만든 말이라고 합니다. 바로 공소 마당과 평상이 제겐 유토피아였습니다.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맛있는 저녁밥이었습니다. 농활 첫날 밥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공소 윗집 할머니가 하루 종일 안 보이신다고 할아버지가 걱정하셨습니다. 윗집을 바라보니 많이 어두워졌는데도 불이 꺼져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종범 형수는 서둘러 밥을 먹고는 윗집으로 올라갑니다. 이윽고 형수는 웃으며 할머니를 모시고 내려옵니다. 주무셨다고 합니다. 모두가 웃습니다. 할머니는 이가 다 빠지셨지만 그래도 우물우물 맛나게 밥을 드십니다. 신학생들은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논과 밭에서 허리 숙여 땀 흘리며 일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처음 논에 들어가 보았고 처음 피를 뽑아보았습니다. 피와 벼를 구분 못해 마을 어르신들께 혼도 많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신학생들의 손과 발은 서서히 누런 흙빛이 들어갔습니다. 농활의 마지막 날 신학생들이 나름 준비한 먹을거리들과 동네 분들께서 준비해주신 맛난 돼지고기로 마을 잔치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이 듬뿍 담긴 막걸리 잔들이 몇 잔 오고 간 후, 신학생들은 돌아가며 생태 농활을 마치는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농부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어릴 적 농사지으시던 제 할아버지 손, 발이 누랬던 이유를 몰랐습니다. 이번에 제 손과 발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보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농활을 통해 농민들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농민’이라 부르지 않고 ‘농부님’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직접 5일 동안 몸으로 땅과 함께 하는 삶을 경험한 신학생들의 솔직한 이야기들과 농민 분들의 넉넉한 격려 속에 서로의 정과 막걸리 한 잔 술에 취해 깊어간 기분 좋은 밤이었습니다.
땅의 배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신학생들은 이번 농활을 통해 크고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 성당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공소 생활의 불편함과 농사일의 수고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은 어느 덧 물량주의와 성장주의에 물들고 있는 도심 속 커다란 성당이 아니라, 무더위 속에서 호미로 땅을 골라 들깨 모종을 심고, 몇 천원 어치 제초제를 뿌리면 거울처럼 깨끗해지는 편한 선택을 하지 않고, 바보처럼 손으로 풀을 뽑는 농민들의 삶속에 계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손톱에 물드는 풀빛, 흙빛의 소중함도 느꼈을 것입니다. 부디 그 땅의 배움이 우리 교회의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느님은 농부이십니다(요한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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