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며 나온 게 ‘생멸치 파스타’.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밥반찬으로나 쓰이는 식재료인 멸치를 파스타의 주재료로 쓴다는 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재료와 조리법에만 안주하려는 고용 조리장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손질되어 배달받는 재료들로 편하게 만들고픈 조리사들로서는 작은 멸치의 비늘과 내장 가시를 꼼꼼히 손질해야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요리사가 스스로 하겠다고도 않고 또 업주가 시킨다고 순순히 만들 리도 없었다.
이곳은 오너셰프 식당이었기에 가능했다. “업주이면서 조리장인 제 지시에 조리사들이 잘 따랐고 저도 솔선하여 재료의 손질과 조리에 직접 참여하며 과감한 메뉴를 정착시킬 수 있었습니다.” 흔한 메뉴 일색인 기존 이탈리아 식당에서 지루함을 느껴 오던 고객들은 즉각 반응을 보였는데, 생멸치를 잘 손질하여 올리브기름과 마늘에 구워 면과 함께 내는 생멸치 파스타는 그 완성도 또한 높았다. 참신함과 맛 두 가지 면에서 인기를 모으며 그란구스또의 대표 메뉴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 ▲ 그란구스또의 대표 메뉴 생멸치 파스타
생멸치 파스타는 신선한 생멸치를 구할 수 있는 계절에만 판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연중 가능한 메뉴를 개발해야 했다. 메뉴로 추가된 것이 ‘제주도산 고등어와 대파를 곁들인 올리브오일 파스타’. 제철에 사들여 급속냉동해 둔 제주산 고등어로 항상 균일한 맛을 낸다. 이 메뉴는 생멸치 파스타와 함께 이곳의 인기몰이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에 진한 향이 가득한 성게알 파스타, 꽃게살 파스타, 굴과 버섯을 곁들인 크림소스 파스타가 인기 있다. 충남 예산 광시산 한우 암소를 쓰는 이탈리아식 스테이크도 좋은데, 음식들의 단품주문보다는 다양한 구성의 코스요리가 낫고 코스 중의 파스타와 고기구이 종류는 선택이 가능하다.
그란구스또의 성공 비결은 이경태 셰프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요리사가 아니라 기업인 출신이다. 남들은 은퇴를 준비하는 50세에 잘나가던 회사를 정리하고 식당 창업에 뛰어든 무모한 중년이었다. 그는 양정고·고려대를 나와 미국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국내의 대기업 근무를 거쳐 자신의 회사를 운영해 오면서도 언제나 조리사로서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회사 한쪽에 전문식당급 주방을 차려놓고 지인들을 불러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길 즐겨 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레스토랑을 한다고 하자 지인들은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2006년 당시에는 맛집이 적었던 대치동에 해산물 전문 이탈리아식당 그란구스또를 오픈하였고, 검붉은 녹이 뒤덮은 독특한 외관과 높은 실내 공간의 벽면 일부를 천장까지 포도주 저장고로 이용한 아이디어 등으로 외형적인 개성을 충분히 갖추었다. 개업 후 7년이 지난 요즘도 그란구스또는 인기가 높다. 밤 10시 이후에는 포도주 주문 시 무료로 파스타나 피자 혹은 사이드 메뉴 중 하나를 골라 즐길 수 있게 한 것도 호평 요인이다.
단순히 돈벌이로만 혹은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만 식당을 운영하고 음식을 만드는 이들과 그 시작점과 목표점이 분명 다른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격식 차리는 레스토랑이기보다는 이탈리아 밥집이면서 분위기도 있어 고객들께 추억을 선사할 수 있는 곳이 되길 원합니다.”
그란구스또(Gran Gusto·이탈리아어로 ‘대단한 맛’)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962-11 엘포트빌딩 1층
(02)556-3960 www.grangusto.net 주차대행
박태순 2003년부터 각종 포털과 매체에 독특한 관점의 음식 칼럼을 게재하고 있는 우리나라 음식 분야 정상급 파워블로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