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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전도에 대한 교회성장 이론 적용
본 장에서는 특별히 맥가브란과 와그너의 성장 이론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들의 성장 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주장하는 성장 이론이 전도훈련을 통해서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맥가브란은 교회에서 수적인 연구 방법은 교회성장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라고 하면서, 목회의 성공적인 평가는 수적인 결과와 책임있는 교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교회성장은 수적인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숫적인 교회성장과 질적이며 영적인 교회성장이 동반자적인 입장임을 주장한다. 이 두 학자의 교회성장 이론은 지도자의 확신있는 자세와 세계 복음 화의 분명한 비젼을 갖게 하며 세상 사람들을 잃어버린 영혼으로 보도록 하고 효과적인 전도 방법을 갖게 함으로 이는 전도훈련을 통해 반드시 필요한 이론이라고 본다.
A. 도날드 맥가브란의 교회성장 이론
인도에서 30년간 선교사로 사역했던 도날드 맥가브란은 성장하고 있는 교회와 성장하지 않는 교회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와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나름대로 교회성장의 체계를 세우게 되었다. 그는 선교학, 전도학이라는 전통적인 용어 대신에 교회성장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였고 그의 이론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교회성장과 전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네 종류의 성서적인 근거를 들어서 그의 이론의 전제를 잡고 있다. 첫째로 지름은 추수의 신학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주님은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둘째로 잃은 양, 잃은 은전, 왕의 혼인 잔치 비유는 모두 잃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강조점을 두고 있다. 복음전도는 생활 개선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들의 발견에 있다. 셋째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 이 땅에 오셨다. 복음 전파는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인간들의 구원이 바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넷째로 초대 교회는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이방인에게도 전도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그렇게 함으로 전도되어진 이방인과 함께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 나갔던 것이다. 교회는 크게 성장했고 유대인 공동체가 확실해짐에 따라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빠르게 전파되어 갔다. 맥가브란은 이런 4가지 성서적 원리에 따라 다음과 같은 교회성장 원리를 제시하였다.
1. 동일집단의 원리(Homogenous Unit Principle)
언어와 문화, 인종이 같은 사람끼리는 쉽게 모이게 된다는 원리이다. 이것은 전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가 속한 문화와 상치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원리에 의해서 교회를 구성하면 동료들끼리 모이기 좋아하는 습성에 의해서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특별히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월로우 크릭교회는 25세에서 50세까지의 결혼한 미국의 백인 중산층들이 주로 모이는 교회이다. 이 교회의 담임 목사인 하이벨즈는 "어차피 전도 대상자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교회의 전도 대상은 직장 일에 바쁘고 전통적인 교회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2. 대중운동의 원리(People Movement)
이는 동일한 장소와 집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전도하여 연쇄반응으로 회심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아원, 양로원, 군대, 학교등이 이에 해당한다. 맥가브란은 마 28:19의 '모든 족속'을 동일단위의 사람으로 이해한다. 3천명, 5천명의 회심도 대중운동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원리의 작용과 효능은 숭실 고등학교의 집단 전도의 경우에 나타났다. 숭실 고등학교는 일년에 한차례씩 전교생 심령부흥성회를 열어서 많은 결실을 보고 있는데 졸업생의 80%가량이 신앙을 갖게 된다고 한다. 나일선의 저서 교회성장의 원리 pp. 43-44에 보면 1950년 12월 21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 군대에 군목회를 조직했다. 1974년에 252명의 군목, 34명의 신부, 21명의 군승이 있었다. 이때 전 국민의 14%가 신자이지만 군대에는 50%가 세례교인이었다고 한다. 3군단 군종참모인 홍순영대령의 말에 의하면 1995년 현재는 350명의 군목, 20명의 신부, 60명의 군승이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 총 군인 수 60만 중 1년에 20만이 입대하고 전역한다. 그 중에서 10만에 12만명의 젊은이가 매년 세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특별히, 논산 훈련소에서는 매달 3천-6천명의 훈련장병들이 세례를 받는다. 이것은 훈련생의 절반 정도가 회심하는 것이다. 필자도 1년에 한번씩 가서 진중 세례를 집례하는데 초대교회의 집단 세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은 대중운동의 원리가 가장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3. 수용성(Receptivity)의 원리
복음을 더 잘 받아들이는 사람을 골라내서 전한다는 원리이다. 맥가브란은 새 정착민이 사는 곳, 교통의 왕래가 심한 곳, 다른 나라에 정복당했던 민족,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 통제가 심한 사회, 문화의 변화가 심한 사회등은 수용성이 강하다고 한다. 전도를 해보면 수용성이 있는 사람들을 알 수 있다.
르디 파델라 같은 이는 교회성장 이론가들이 매우 수용적 - 수용적 - 무관심 - 저항적 - 매우 저항적으로 나누는 것을 반대한다. 그 사람의 영적 상태와 구원 여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인데 인간의 판단으로 결정해서 컴퓨터에 입력시켜 놓고 글자판만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는 것은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론자들은 효과적인 복음 전달을 위해서는 이런 것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철저한 실용주의 입장에 있는 이들은 열매가 없으면 어떤 정책도 과감하게 수정한다.
경기도 부천시에 소재하고 있는 원종동교회는 일정한 지역을 계속적으로 축호전도하고 있다. 수용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전도편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 약 700여통의 서신이 매주 발송되는데 언젠가는 복음을 받아들일 예비신자로 보고 있다. 또한 반대했던 사람들에게도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한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하게 반대했던 사람들도 마음의 문이 열릴 때가 있다. 꾸준하게 관심을 보여주면 의외로 쉽게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4. 토착신학의 원리
이는 자립, 자치, 자력전파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지역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말한다. 교회성장의 원리는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W.C.C.의 에큐메니칼 선교가 주로 인권, 억압, 가난, 공해, 자원문제 개발등의 사회문제에 초점을 두고 해방신학과 창조신학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면,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은 '문화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맥가브란 교수의 선교이론은 19세기의 선교학자들인 헨리 벤, 푸프스 앤더슨, 네비우스등이 제창한 자립, 자치, 자력 전파하는 이른바 3차 원칙을 고수하면서 지역문화와 조화되는 토착신학을 말한다. 그는 비 서구문화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와 다른 인류 문화 사이의 충돌은 5%에 불과하고 95%이상은 충돌이 없다고 본다. 기독교는 대다수의 문화요소에 대해 전적으로 중립적이라는 맥가브란의 사상은 토착신학(Ethno Theology)으로 발전하였다. 토착신학은 신학과 문화를 결합한 일종의 지방신학(Local Theology)으로 발전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 토착신학은 신학과 문화인류학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크라프트 교수가 지적한 것 같이 "맥가브란은 교회성장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신학과 문화인류학에 크게 의존해야 함을 일찌기 직시했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바로 크라프트이다. 그는 "서구 신학은 헬라철학에서 나온 서구의 사변적 신학인고로 비서구에서는 인간과 문화와 하나님을 진지하게 취급하는 토착신학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5. 기타의 전략
맥가브란과 아안의 공저 교회성장의 열 단계 를 보면 먼저 그 상황 속에서 원리를 발견하고 둘째는 교회 밖의 사람들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보는 성서의 원리를 따를 때 교회는 성장한다. 셋째는 교회가 영혼을 구원코자 하는 목적에 전심, 전력할 때 성장한다. 넷째는 교회의 우선 순위를 복음 전도에 둘 때 교회는 성장한다. 다섯째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지체이며 도움을 주고 받는 유기체적인 공동체임을 자각할 때 성장한다는 것이다. 여섯째는 교회가 한가지 목표를 향해 전심을 기울일 때 성장한다. 일곱째는 제자 삼을 수 있는 단계에 있을 때 교회는 성장한다. 여덟째는 양육의 단계를 거쳐 신자를 재생산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 아홉째는 교회의 모든 조직과 기획이 성장을 위해 가동될 때 성장한다. 열번째는 교회가 성장을 위해 모험을 시도할 때 성장한다. 맥가브란의 전략 중 신학적으로 비중을 두는 것은 제자를 삼는 전도(discipling)와 양육(perfecting)을 구분하는 원리이다. 그는 마28:18 상반절 이하에 의하여 첫째 단계는 제자 삼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온전케 하는 양육의 단계라고 한다. 둘째 단계는 첫째 단계와 중복되지만 둘째 단계가 결코 앞설 수 없다. 첫째 단계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 다신론, 우상, 미신등 인간이 만든 종교와 인연을 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교회에 가입하여 적어도 '신자들이 우리의 양무리요 성경이 우리의 책이요 교회가 우리들이 예배할 집'이라고 깨닫는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교회에 가입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윤리적 변화가 일어나며 사회에 대한 신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단계이다. 맥가브란은 제자 삼음(discipling)도 D1, D2, D3로 구분한다.
D1은 불신자나 비기독교 사회가 처음으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하지만 대중운동과 관련된 집단적 개념이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옛 신앙을 포기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D2는 와그너가 지적한 것 같이 최근에 생긴 용어로 어떤 개인이 불신앙에서 예수를 믿고 교회에 가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D3는 교회 성장학 밖에서 생긴 용어라고 와그너는 지적하면서도 양육(perfecting)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D1, D2, D3는 국가 복음화에 맥가브란이 사용한 용어로써 필리핀교회에서 그의 이론을 적용하였다.
마지막으로 풀러 교회성장학에서 선교 구조 문제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맥가브란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가입하도록 설득(persuasion)을 중시하여 이것을 수색의 신학(Search Theology)이 아닌 추수의 신학이라고 하며, 그는 고교회관(The High View of the Church)을 믿는 전통적 복음주의 신앙이다.
B. 피터 와그너의 교회성장 이론
와그너는 교회성장이 성령의 역사임을 강조한다. 그는 교회성장이란 용어가 맥가브란에게서 나온 것임을 시인하면서도 전도란 "예수 그리스도와 아직 아무런 관계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와 더불어 교제를 갖도록 해주며 책임있는 교인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데 관련된 모든 사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교회성장에는 어떤 공식이 없다고 하였다. 한 교회의 성장 비결을 다른 교회에 적용시킬 때 그것이 성공한 예라고는 거의 발견할 수 없기에 교회 성장은 미묘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앞으로 21세기는 지도력이 있는 교회, 전도에 우선하는 교회, 구역이 잘 운영되는 교회, 승법번식하는 교회, 성경의 은사가 있는 교회, 새신자 양육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 치유목회, 목회자의 재충전, 주차장, 행정시설 자기관리를 하는 교회가 성장한다고 하였다. 강문석 목사는 교회성장의 요건을 다음과 같이 들었다. 복음적인 교회성장을 위해 힘쓰는 교회,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믿고 현세적인 축복을 잘 조화시키는 교회, 지역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교회, 긍정적이고 소망을 주시는 설교가 있는 교회, 예배에 열기가 있는 교회, 넓은 공간과 쉽게 눈에 보이는 교회, 새신자 양육과 교육이 잘되어 있는 교회, 미래에 비젼을 심어주는 교회, 행정과 조직이 잘되어 있는 교회, 우선순위를 성장에 두는 교회, 전도훈련을 잘 시키는 교회가 성장한다고 했다.
와그너는 건강한 교회의 일곱가지 원리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목사의 지도력이 교회성장의 열쇠를 좌우한다. 지도력이 있는 목사는 양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목사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힘찬 지도력을 가지고 전체 교회로 하여금 성장을 향한 활동을 하도록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지도자의 길은 외롭고 고독한 길이다. 그러나 지도자는 어디까지나 지도자여야 한다. 지도자는 겸손한 동시에 강해야 하며, 종인 동시에 지도자이어야 한다. 지도력은 얻는 것이며 분별하는 것이요 배워지는 것이다.
충현교회 신성종 목사는 21세기의 한국의 목회자는 사명감을 새롭게 하며 성장하는 교회의 지도력은 변화를 추구하며 큰 믿음을 가지며 문제를 해결하며 전도를 계획하며 새신자를 양육하며 새신자를 교인들과 융화를 시키며 성장을 위하여 설교하는 사람이다. 시대를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며 교회의 본질과 목회의 성격을 새롭게 규명하는 사람, 설교다운 설교를 하는 사람, 신앙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 통일을 위한 신학을 준비하는 사람, 다원적 목회를 하는 사람, 교회 연합운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미래 세계의 바람직한 목회자 상을 지도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신학 지식과 교양, 때묻지 않는 인격, 비젼이 있는 목회자 하나님과 양무리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목회자, 성경에 능통하고 말씀에 은혜가 있는 목회자, 기도를 많이 하는 목회자, 자기관리를 잘하는 목회자, 육적,지적,영적 재충전을 쉬지 않는 목회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성종목사는 한국에서 성장하는 교회를 열거하면서 고덕중앙교회는 지역공동체를 교회가 주민과 함께 이룸으로써 성장한다고 했다. 광림교회는 사회적 관심과 사랑으로 성장한 교회이다. 금란교회는 영성개발로 성장한 교회이다. 명성교회는 새벽기도로 부흥한 교회이다. 목양교회는 재림신앙으로 무장하여 성장하는 교회이다. 사랑의 교회는 평신도 제자훈련으로 성장한 교회이다. 수영로교회는 전도와 선교로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었다. 성령운동으로 순복음교회는 세계 최대가 되었다. 온누리 교회는 경배와 찬양으로 성장한 교회이다. 주안교회는 성령체험과 전도로 한신교회는 복음주의 신앙으로 성장한 교회이다.
2) 성령의 은사를 적극 개발하고 활용한다. 특별히 전도의 은사가 있는 분들은 발굴해서 훈련시켜라. 전도폭발 운동으로 부흥한 코랄릿지 장로교회의 케네디목사는 자신의 교회의 경험을 들어 10%의 사람만이 전도의 은사가 있다고 하였다. 이들이 일년에 한 명씩만 전도한다면 10년 사이에 3배의 성장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교회에 따라 다르다. 새로운 이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는 주택단지에 있는 원종동교회는 대략 30명 정도의 전도 은사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매주 축호노방전도에 사명을 갖고 참석하는 분들을 말한다. 이는 전체 장년교인 대비 1/10 수준이다. 10명에 하나 꼴이다. 더 있으나 아직 초신자가 많아서 발굴하지 못한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3) 교인들의 욕구와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넓은 주차장 예배 공간 교통이 편리한 곳 주택가등이 더 빨리 성장한다. 로버트 슐러목사는 자신의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쇼핑센타로 묘사하기도 했다. 지금은 은혜가 되는 곳이면 아무리 멀어도 타를 타고서라도 가는 경우가 있다.
4) 대예배와 모임과 세포조직이 능동적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성장한다. 와그너는 그의 저서인 교회성장 원리 에서 주일날 전 교인이 모이는 예배를 축제와 놀이 형태의 대예배로 25-250명까지 위원회 성격의 친교 모임을 모임으로 4가정 정도의 숫자가 모이는 모임인 것을 세포모임으로 규정하고 그럴 때 교회는 아무리 큰 교회가 되어도 계속 성장할 수 있으며 대예배는 있었으나 모임이 없어서 쇠퇴한 교회를 뉴욕의 제일 침례교회로 세포모임의 활성화로 성장한 교회를 슐러 목사가 시무하는 수정교회의 예를 들어 증명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성장하는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란 그 교회가 잃은 양떼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때 스스로 규모가 넉넉해진(충분히 커진)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아울러 그 교회 교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을 때, 또 새로운 개척교회를 세움으로써 교회를 확대시켜 나갈 때, 그 성장하는 교회는 스스로 규모가 넉넉해진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정의하였다.
한국의 실정에 비추어보면 대예배는 주일날 출석하는 교인을 의미하고 모임은 남,녀전도회와 각종 위원회를 의미하고 세포모임은 구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광림교회는 400여 종류의 각종 모임이 있다고 한다. 원종동교회는 3-4살 영아 40명, 유치 80명, 유년 100명, 초등 100명, 중.고등 130명, 청년부 30명, 장년부 350명으로 총 850명의 재적교인이 있으며 그중 약 500명 정도가 매주일 출석하고 있다. 와그너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원종동교회는 16개의 남,녀전도회 모임과 50개의 구역, 50여개의 주일학교 반과 18개의 사역위원회의 작은 세포모임이 있는 셈이다. 사역위원회는 전체 110명의 제직들이 하나나 둘정도의 원하는 부서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봉사하도록 하고 있다. 모임은 15-25명선이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리더쉽이 개발, 훈련되어지기 전에 나누게 되면 모임 자체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5) 교인들이 동질단위로 형성될 때 교회는 성장한다. 이는 복음전도의 효과적인 수행뿐만 아니라 다양한 집단들에 속해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큰 사랑과 조화 속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해주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전도란 책임있는 교인에 의해서 확인되어야 한다. 안면이 있는 사람 가까운 사람 앞에서는 사람들이 진지해 진다.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굳어져버린 소그룹으로 되어서 다른 그룹과는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암적인 요소가 될 수가 있다.
김선도목사는 현대 교회성장 세미나에서 현대교회의 병리적 현상을 같은 사람끼리만 똘똘뭉친 동질성 응결증, 지역사회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지역사회 변천쇠퇴증, 특수한 계층끼리만 어울리는 사회층별 거부증, 개척자 주권증, 교회보다 밖으로 힘을 쓰는 협동과잉증, 나누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친교과잉증, 시설협착증 그리고 영적인 욕구를 제한하는 영적발전 제한증이 한국교회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극복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하였다.
6) 성장하는 교회의 여섯번째 특징은 그 교회가 제자를 만드는데 두는 것이다. 맥가브란도 여기에 언급하기를 "복음전도의 목표는 제자를 만드는 것이다. 새 제자를 만드는 목적은 하나님께 성실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을 등록시키는 것만으로는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와그너는 말한다. 오직 제자를 만드는 것만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수천명에게 세례를 주었어도 예수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복음화 시키지 못한 것이다라는 것이다. 단순히 책임을 다하는 교인이 되었을 때 복음전도는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교회의 일원만 되었을 때 그러한 결심의 유효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7) 효과적인 교회성장의 표적은 교회가 구령열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수십 억의 인구가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논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뻔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다. 초대교회가 놀라웁게 성장한 것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교회 성장론자들은 수의 증가라는 목표가 절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수의 증가를 교회성장의 중요한 척도로 보고 있다. 맥가브란은 교회성장의 방법을 대중운동의 원리, 동일집단의 원리, 수용성의 원리, 토착신학의 원리로 제시하고 있다. 수용성이 있는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그들의 문화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이 전도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와그너는 이에 덧붙여서 목사의 지도력, 성령의 은사개발, 넓은 공간 작은 그룹의 활성화, 제자화가 되어질 때 교회는 성장한다고 하였다. 맥가브란이 전도의 대상에 치중한 반면 와그너는 지도력과 교회내의 조직과 기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조금 다르다. 이들의 이론은 우리가 누구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어떤 준비를 해야 되는가를 알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외에도 피터스는 교회성장의 비결을 외향성의 목회, 성장의 장애물 제거, 전도, 신자들의 총동원, 기도, 전도의 적당한 시기와 장소 선정, 사람을 위하는 목회, 동일 제단의 전도, 집단적 개인적 회심 유도, 유능한 일꾼확보, 지도력있는 목사, 능력있는 말씀, 적응성과 설득력있는 전달로 주장하고 있다.
충현교회 담임목사인 신성종목사는 "성경적인 관점을 가진 교회, 바른 교회관을 가진 교회, 불가능하다는 사고를 버린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21세기에 목회에 성공하려면 목회에 대한 소명이 뚜렷하고, 식사를 통한 교제가 많아야 하며, 주님과 동역하고 설교를 잘하며, 교인들이 교회 경영에 동참토록 하고, 목회자가 성장을 위한 공부를 계속해야 하며, 정보와 아이디어를 개발 관리하며, 사회의 변화와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창조적인 목회를 하며, 상담 목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인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간하배교수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서(창 2:3, 27:27)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에서(창 12:3) 교회성장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표현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밀알, 씨 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의 비유, 그물의 비유, 잃은 양의 비유등이 교회성장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마 28:28-30에서 다시 강조하였고 그것은 계 7:9-10, 14:4, 19:1-6에서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모여 오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교회성장이 하나님의 뜻임에는 분명하다. 나일선교수는 화목을 구하는 자, 예수님 절대성을 믿는 자, 성령의 사역에 이해가 있는 자,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 회심을 강조하는 자, 변화를 추구하는 자가 교회성장을 한다고 했다.
와그너는 성경에는 교회성장의 근거가 되는 말씀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눅 19:10, 벧후 3:9, 창 3:9, 막 16:15, 살전 1:5,9, 롬 10:13, 10:14의 말씀들은 하나님이 영혼구원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그 말씀에 충성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수행해야 될 청지기(고전 4:2)이며 이를 잘 감당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마 25:21) 칭찬을 듣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셨으며(눅 24:49, 행 1:8) 초대교회는 이에 충성했을 때 놀라운 성장을 가져왔다고 하였다(행 2:47).
맥가브란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8-20)는 말씀은 교회성장에 관한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제자 삼음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실제로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알렌 티펫 교수는 "성서적 개념으로서의 교회 성장"을 구약의 시 48:10, 사 56:7, 렘 3:17, 말 1:11, 합 2:14, 사 58:6-8, 시 96:6, 134:2, 150:1을 근거로 교회 성장의 당위성은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주장하고 신약에서도 요 3:16, 10:16, 마 28:19, 계 21:24, 22:2, 마 9:38, 눅 10:2, 마 13:47-48, 요 15:5,8, 마 13:31-32, 요 8:12, 요 9:5의 말씀들이 역시 교회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는 다윗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대의 수를 세어본 것은 동기가 잘못되어 징계를 받았지만(대상 21, 22장)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내광야에서 백성의 수를 세어보게 하심으로 택함 받은 백성이 아무도 잃어지기를 원치 않으셨다고 주장한다(민 1:17-19, 26:1-4). 통계자체가 목적으로 되어서는 안된다. 만약에 그 동기가 자기 영광에 있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우리가 한 일에 효과성을 평가하는데 사용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므로 괜찮다고 하였다. 동기만 순수하다면 숫자를 세는 것은 옳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에 덧붙여서 오늘날 한국의 성장이 정체되고 마이너스로 후퇴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성장학자들의 의견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그너는 일부 교회들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를 작은 교회 친밀감이 새로운 교인들로 인해서 깨어지기 때문에, 또한 사람들의 잦은 이동이 교회 성장을 방해하며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그는 신학적인 요인으로 남은 자의 신학사상이 저속성장 혹은 작은 교회, 혹은 목회사역의 실패를 합리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드온의 군대는 숫자는 줄었지만 질적으로는 더욱 좋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신실함과 성공을 구분하여 고전 4:2을 근거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실을 명하셨지 성공하라고는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와그너는 신실한 종은 열매로서 증명이 되면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열매를 남긴 그들을 칭찬하셨다고 하였다.
아세아 연합신학대학원의 전호진 교수는 나름대로의 분석을 통해서 1989년 9%, 1990년에 5%, 1991년에는 3.9%의 증가가 각각 있어왔으나 1992년에는 0.6%, 1993년에는 4%의 감소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소하는 이유를 고속 경제성장과 레저문화 발달, 스포츠의 대중화, 사회적인 안정, 영적인 부흥운동의 정체, 교회의 난립, 교회에 대한 신뢰도 격하, 어른 성도에만 치중하는 것,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교회출석 감소, 여성들의 직장진출(2/3), 농촌에서 도시지역으로 이동(이사가면 교회를 안 다닌다는 뜻) 절대적인 가치관의 퇴색과 다원주의, 상대주의의 사고확산, 자격 없는 목사들의 배출등을 지적하고 있다. 나일선교수 이외에도 한국의 교회 성장이 주춤하고 있는 이유를 양적 성장을 경시하는 풍조, 기도와 전도를 많이 하는 목사보다 공부 안이한 박사학위를 소지한 목사를 선호하는 것, 목사의 권위가 실추됨, 전도하지 않는 교회, 매스컴에서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묘사, 목사들이 교회의 구조상 소신껏 목회를 할 수 없는 것들이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넬슨교수는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5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전도사와 목사에 의한 성장방해 요인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일관성 없는 설교와 가르침, 권위주의적인 태도, 과중한 사역, 존경의 상실, 현실주의, 재정적 보조의 부족, 협력부재, 현상유지에 만족코자 하는 것, 비효율적인 행정, 목사와 사모와 교인간의 불화가 원인이라고 보았다. 둘째로는 성도에 의한 방해요인으로 믿음과 삶의 불일치, 집사직의 부족, 부담스런 분위기, 모임 부족, 일꾼 부족, 물질주의, 조상숭배, 선교의 무지, 과도한 파벌주의등을 들었다. 셋째로는 사역자에 의한 교회 성장의 방해로서, 목사와 장로와의 불화, 교회건물의 폐쇄성, 구제사역 부족, 건축강조, 새신자 등록신자의 돌봄의 부족, 성경공부 부재, 헌금의 강조,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반목, 토착화가 없는 서구신학의 추종, 양적 성장만 강조, 평신도의 사역화를 위한 프로그램 결여, 교육자료의 빈곤, 샤머니즘, 유교, 불교와의 혼합을 예로 들었다.
넷째, 교회 위치에 의한 방해요인으로 도시에 교회가 밀집화되어 있는 점, 건축이 어려운 점, 농촌교회의 재정적인 어려움, 교제를 위한 공간이 없는 점, 농촌의 경우 안수 받은 목사가 없는 점등을 꼽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와 사회에 의해 야기되는 방해요인으로 민중신학자와 복음주의 신학자와의 불화, 이단 사이비와 기독교와의 혼동, 청년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인 문제, 교회와 사회를 위한 봉사의 부족, 기본적 기도와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 대한 지나친 강조, 주일날 일하는 직업,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 부족, 교인들 간에 사회적 지위상의 차이, 전도의 부족을 들었다. 그러면서 나일선 교수는 등록된 교인들에게 복음을 정확히 설명함으로, 새신자가 제자가 되도록 철저하게 돌봄으로, 가족복음화에 주력함으로, 교회 밖에서도 봉사할 수 있도록 농촌 교회들을 도움으로, 선교조직의 활성화로 소그룹을 융통성있게 활용함으로, 강해설교와 개인 성경공부를 강조함으로, 기도하는 교회가 됨으로 한국교회는 다시 성장할 수 있다고 하였다.
C. 교회성장이론의 반대의견과 답변
1965년 풀러신학교는 인도에서 30년간의 선교경력을 가진 도날드 맥가브란 선교사를 초청하여 세계선교학원을 세움으로서 선교이론과 교회성장학을 발전시켰다. 맥가브란은 인도에서 얻은 경험을 1960년대 미국을 제외한 5대주에 적용했고, 1972년부터는 피터 와그너와 함께 이 이론을 미국교회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이론은 크게 환영을 받은 반면 동시에 비판도 받았다. 나는 교회성장학의 기본이론과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장학자들의 변증을 기술하려고 한다.
그러면 풀러 신학교 교회성장론은 무엇인가? 퍼킨즈 신학교(Perkins School of Theology) 전도학 교수 G. G. Hunter는 이것을 12가지로 설명하였는데 맥가브란 교수는 이러한 그의 요약에 전폭적으로 동의하였다.
이것을 요약하면 전도의 목적은 제자를 만들어 그리스도의 교회에 가입시키는 것이다. 교회성장학은 과거의 성장을 분석하고 새로운 성장을 계획함에 있어서 통계수자(統計數字)와 통계표를 중시한다. 교회성장학은 교회 성장의 목표 설정을 중시한다. 교회성장학은 어떤 특정한 전도 전략만이 모든 문화에 적용된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토착적 전략을 강조한다. 교회성장학은 선교전략을 개발하기 위하여 사회과학, 즉 사회학과 문화인류학을 중요시한다. 교회성장학은 효과적인 전도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실제적인 연구를 강조한다. 교회성장학은 과거의 전도 원리와 방법을 재평가하고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교회성장학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사람들(receptive peoples)이 있음을 믿는다. 교회 성장학은 과감한 교회개혁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교회성장학은 이론과 전략을 위한 세계 전체에 걸친 자료를 가지고 있다. 교회성장학은 결신자를 교회에 가입시키는 것이 전도의 목적이라는 고교회관(a high doctrine of the Church)을 믿는다. 즉 교회 중심주의를 말한다. 교회성장학은 교회 성장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한다.
맥가브란은 처음에는 선교학과 전도학이란 용어를 사용했으나 자유주의 자들과의 선교개념과 분리하기 위해 교회성장학이라는 글을 사용했다. 그의 성장학은 전도학 외에 목회학 일부를 포함한다는 면에서 포괄성이 있다. 와그너는 교회 성장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교회 성장이란 용어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직 아무런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와 더불어 교제를 가지도록 해주며 책임있는 교인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데 관련된 모든 사항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교회 성장학이란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관련된 교회의 설립확장, 기능, 건전성을 조사하는 학문이다. 교회성장학은 맥가브란이 세운 원리를 참고로 하여 교회 확장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신학적 원리와 현대사회과학과 행동과학의 가장 좋은 점을 결합하려고 노력한다"라고 하였다.
풀러신학교의 성장학 이론을 찬성하는 분들은 맥가브란과 와그너의 공로를 높이 평가한다. 그것은 첫째, 그들이 교회를 자극하여 교회 성장에 관심을 갖게 하였으며 둘째, 교회의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을 보게 하여 구원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게 하였다. 셋째는 사회과학을 이용한 전략개발의 가치성이며 넷째, 전도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 풀러신학교의 교회 성장 이론은 학국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맥가브란과 그의 저서들이 번역되고 있으며 아세아 연합신학원을 통하여 직접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아세아 연합신학원은 전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에서의 소개만은 아니다. 거기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우리의 현실에 적응하며 또 성경적인 이론 수립에 고심하고 있다. 여하튼 교회 성장이론은 한국교회에서 적극적 사고방식과 부정적 영향도 끼쳤지만 전도와 선교에 큰 자극을 주기도 하였다.
맥퀼킨(J. R. McQuilkin)은 Measuring The Growth Movement 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풀러의 수적 성장의 개념은 성경적이다. 이것은 허용만이 아니라 명령적이다. 수용성 원리는 성경의 근거가 있다. 대중운동은 성경적 명령은 없지만 전례가 있다. 문화인류학은 성경적 명령은 없지만 과학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교회 성장이론을 적용함으로써 대성장이 가능한가는 알 수 없다. 교회 성장운동의 가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든든한 신학적 기초에 의존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반대이론도 적지 않다. 남침례교의 마일즈는 교회성장학자들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회 성장 운동은 때때로 이미 정한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서 성경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제자 삼음과 양육을 분리하기 위하여 시도한 마 28:18-20에 대한 맥가브란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그 본문의 정확한 해석은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맥가브란은 억지해석을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트리니티 선교학 교수들은 "풀러의 성장학은 성경을 연구했다기보다는 이용했다"라고 하였다.
맥가브란의 동일집단 원리를 변호하기 위해 와그너는 그의 저서 Our Kind of People 에서 "예수는 이방인 사마리아인 헬라인을 초청하지 않았으며 12제자들도 아람어를 하는 갈릴리출신의 동일집단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마 10:5-6에서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말씀은 동일집단의 원리"라고 하였다.
이에 반해 영국의 에디 깁스는 "신약 어디서나 교회가 동질단위로 설립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지 않기 때문에 맥가브란은 성경본문을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인용한다"고 지적했다.
남미의 신학자 파딜라도 "교회 성장학파가 말하는 동질단위의 원리는 성경적근거가 없다. 교회성장학의 이론은 사회적 관찰에서 출발하여 선교전략을 발전시킨 후에 성경적 지지를 모색한다. 그 결과 성경이 말하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교회성장학에서 인류학에 대한 가장 큰 약점은 계시에 대한 완벽성의 결여이다"라고 하였다. 이종윤 목사는 "한국에서 이 원리를 수용하면 지방색이 재현되어 새로운 분열과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한국 상황에서는 적용을 달리해야 한다. 한국교회 분열에 지방색이 재현되는 현 시점에서 동질 단위의 원리는 경계해야 될 이론이다"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은 이제는 가족 혹은 성씨 중심의 사회가 아닌 모든 농촌도 도시화되어가고 있다. 도시에서는 모든 지방의 교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어느 지방사람들을 두둔하거나 비방할 수 없다. 선거 때에도 담임자는 어느 누구를 지지해서는 안된다. 교인들을 분열시킬 수 없다. 지방색을 강조하면 개척 초기에는 조금 부흥에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큰 교회는 그런 것을 모두 초월해야 한다. 한국교회에서는 군대를 제외하고는 동질 단위의 원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본인도 이종윤 목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대중운동원리도 왕이 개종해서 기독교 국가가 된 경우 오히려 영적 성장보다 부패가 있어왔다"고 주장한다. 서명원은(Roy Sherer) "한국교회의 성장은 부족의 개종이 아닌 가족단위의 대중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성장의 개념에 있어서도 아브라함 카이퍼는 "선교학은 수적 성장을 의미하는 증가학이다"라고 하였다. 교회성장학은 수적 성장에 치중함으로서 성장의 개념에서 중심을 상실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화란 자유대학의 벨 카본 교수는 "교회성장학은 수에 치우치며 미국적 실용주의이며 동질단위원리는 보편적 교회개념과 상치되며 인간을 영적 차원과 정치적, 사회적 차원으로 구분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런던 성서대학의 그리피스 교수도 "교회 성장학은 은혜중심보다 방법 중심이며 성공위주이며 신학이 결여되었으며, 프로그램중심이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레스리 뉴비긴 주교는 "바울 서신들에 관한 연구는 수적인 성장에 대해 어떤 관심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교회들의 크기나 교회들의 성장에 관한 질문에 관심을 나타내는 바울을 발견하지 못한다. 교회의 수적인 성장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고 하였다.
알그라스는 "내가 진지하게 질문하고 싶은 것은 주께서 교회를 성장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셨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올란도 코스타스는 "교회 성장 운동은 의심스러운 신학적 위치를 지니고 있다. 그의 신학은 교회 중심적이다. 성서신학의 위치는 교회 중심적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스는 "교회성장학은 성장의 척도로써 하나님의 산술이 아닌 인간의 산술을 사용하고 있다. 교회는 수적성장과 함께 은혜에 있어서도 성장해야 한다"고 하였다.
르디파네아는 "교회 성장에 있어서 수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숫자 숭배가 된다. 이는 통계적 성공의 철학이다"라고 말한다.
베스 미카엘슨은 "교회 성장의 우상화"라고 말한다.
란리 E. 샬러는 "우리는 숫자놀음에 관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질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허드슨은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프네 파릴라는 "컴퓨터로 인간의 신앙적 반응을 기록하는 것은 컴퓨터가 복음을 혼합적 기독교로 변질시키고 복음전도적 전략이 수학적 계산의 질문이 된다"고 말한다.
허드넛은 "교회 성장이 목적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의 신실함이 목적이다"라고 말한다.
마틴 마티는 "세상이 정의하는 방식의 성공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아니고 그리고 결코 목표였던 적도 없다. 교회는 순종하고 신실하라는 부름을 받았다"라고 하였다.
풀러신학교의 교회성장학의 이론에 대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지적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이론은 한국교회에 적극적 사고방식과 물량주의 위주라는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또한 전도와 선교에 큰 자극을 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들은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하지 않는다. 성경을 연구하였다기 보다는 이용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결론이다. 마 28:19-20의 모든 백성을 이방이 아닌 동질 집단으로 해석한 것과 제자 삼음과 양육을 분리한 것은 큰 착오로 지적되고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동질 단위가 하나가 될 것을 말한다. 교회야말로 '용광로'(melting pot)가 되어야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인종적 장벽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엡 1:3-4, 갈 3:28, 골 3:11). 이 교훈에 따라 초대교회는 이질 집단이 하나로 모였다. 무식한 자(행 4:13), 제사장(행 6:7), 바리새인(행 15:5), 가난한 자(행 2:44,45, 4:32-37)들이 모였으며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동질단위로 모였다는 증거가 없다. 동질 단위 원리에 의하면 한국인 목사가 일본인 교회에서 목회할 수 없다. 그러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구브로 출신의 바나바와 유대 출신의 바울이 동역으로 목회 했다. 이점에서 사도들은 제국주의적 획일성을 거부했고 분할된 획일성 역시 거부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할 때는 인종적, 사회적 편견과 고집이 제거되기 마련이다. 오히려 한 백성의 동질성은 문화적, 사회적 유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종교에 의한다.
동질 단위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떠한 것인가? 우리는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미국의 교포교회는 물론이거니와 국내 교회도 지방, 혈연, 동창, 직업등으로 모여드는 경향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이러한 양상은 오히려 리차드 니버가 말한 것 같이 교회의 도덕적, 신앙적 실패인지도 모른다. 동질단위 원리는 이미 동질집단(단일 민족)이 된 한국 사회에서는 그 적용을 달리해야 한다. 만약 교회 성장이론대로 지방, 혈연등으로 교회가 성장한다면 새로운 분열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와그너는 마 10:5,6의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를 동일집단의 원리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그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을 문화적으로 보고 여기에 이방인의 택한 자들이 포함되는 신학적 원리를 무시한다. 집단 개종의 경우에도 지도자나 왕이 개종하여 기독교로 바뀌어지는 경우 값싼 은혜의 종교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또한 기독교와 이교를 동시에 포용하는 모순도 띄게 된다. 대중 운동의 결과로 윤리적인 수준이 향상되지는 않는다. 결국 한국교회에서는 군대 이외에 대중 운동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공평한 관찰이라 하겠다. 또한 수적 증가가 그리스도인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사명을 바로 감당하는지를 반문해야 한다. 교회성장학파는 확장성장, 연장성장, 내적 성장, 선교성장을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평한 것 같이 수적 성장에 치우침으로 성장의 개념에서 균형을 상실하였다. 교회성장학파는 결과적으로 대교회주의를 찬양하며 수적성장에 지나친 낙관주의를 취한다. 외형적 성장과 대교회에 대한 찬양과 성공위주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우리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실정이다. 즉 몇몇 초대형교회의 성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교회가 정체하고 있거나 실제로는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 대부분의 목회자는 심한 좌절감과 무력감 혹은 패배의식에 젖어있다. 최선을 다했어도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했어도 양적인 성장이 수반되지 않으면 무능하고 불충한 종으로 인식이 되는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몇몇 스타 목사님과 교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목회자가 갖고 있는 처절한 절망감과 열등감도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은 교회개혁이 안된다. 전도가 안된다. 성장이 안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로버트 에반스는 "하나님의 신실함의 요구는 성장, 건강, 번성 또는 현세적인 생존가치 그 어떤 것도 전혀 보증해 주지 않는다. 복음이 값싼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에반스는 "교회가 그 복음을 말씀과 행위로 전파하는 것은 문화를 향해서이다"라고 강조한다.
라일스는 교회 성장을 "값싼 성장의 주창자들과 숫자 놀음이다"라고 비판했다. 감리교는 세계를 보다 우아한 처소로 만들기 위해 사회구조에 영향을 끼치는 소수의 위임된 사람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 글의 비판에 대한 교회성장학자들의 주장도 당당하다.
맥가브란은 "수적인 연구방법은 교회 성장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교회는 셀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수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영적인 것은 아니다. 수의 사용은 성서적 실천적 근거가 있다. 수의 사용이 정직한 재정적 취급만큼이나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양과 질에 있어서도 교회 성장은 절대로 질적으로 우수한 교회들을 비판하지 않는다. 파디야는 "교회의 수적인 확산은 성서를 중시하는 사람이면 그 누구에게나 합당한 관심사이다"라고 주장한다.
교회성장학자들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가 성장하기를 바라셨다. 그 교회는 성장하였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모든 일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작고 약하고 고루하고 정체된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하여 아무것도 행하지 못한다. 힘있고 살아 움직이고 증거하고 전진하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영광과 존귀를 돌린다"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성장할 계획이 있는지 없는지가 관심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반문한다. "복음을 들고 믿어 구원을 얻어야 될 사람들이 전 세계 인구의 35억이나 되는데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은 너무 뻔뻔스런 생각이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은 숫적인 열매가 나타나는데 바로 달란트 비유가 그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교회성장학자들은 소수보다는 다수가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의 신실함은 열매로서 증명이 된다.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제대로 교회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께 신실함의 증명을 전파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소수가 거룩하게 되고 더딘 성장이 훌륭한 성장이 되는 것은 남은 자의 잘못된 신학 때문이다. 컴퓨터에 복음에 관한 사람들의 반응을 입력하는 것은 더 수용적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교회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뿐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수단과 목적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교회 성장은 실용적인 가치를 중요시할 때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은 씨를 뿌리는 것만이 아닌 추수의 계절이다. 탐색의 신학이 아닌 추수의 신학을 가져야 한다. 주님은 추수할 것이 많다고 하셨고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마 9:35-38).
피터 와그너는 교장성장이해라는 맥가브란의 저서를 인용하여 "이 저서는 미국으로 하여금 교회성장원리에 눈을 뜨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저서는 교회성장원리를 전 세계적인 근거에서 다루었으며 자기 방어적인 사고방식의 오류를 철저하게 폭로시켰다. 그리고 이 책의 특색인 보편 타당한 원리를 천명하였다. 맥가브란은 성장원리를 거의 다 해외의 교회발전 상황을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이 저서는 교회 성장운동에 획기적인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어서 "선교사역에 있어서 실패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유가 있다. 그러나 성공하는 선교사들도 똑같은 이유 때문에 성공한다. 그것은 그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개 이와 같은 경우의 사고방식은 기존 죄의식과 타협을 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으로 결국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들은 열매의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은 자신들의 실패와 무성장에 대해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교회 성장에 관한 과학적인 측면은 전도활동의 성공여부에 관계되는 모든 요인을 분석하고 파악하는데 그 방향을 두고 있다. 과학적인 이론의 중요점은 이들 이론이 과거사를 해명해 주는데 유효할 뿐 아니라 미래사를 해결해 주는데도 유효하다"라고 말한다. 또한 "교회 성장학은 연구조사에 대한 새로운 체제를 제공해 주므로 옛 현상을 해석할 수 있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호칭, 새로운 양식을 제공해주므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능률을 증대시켜 준다.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보다 큰 영광을 돌리는데 우리의 힘과 모든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도록 하여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착오를 분석해볼 수 있게 해주므로 피해가 오기 전에 그와 같은 착오를 바로 잡을 수 있게 한다"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그는, "교회가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은 첫째로 그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할 것과 둘째로 성장을 위한 댓가를 지불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교회 성장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은 대부분 실패를 두려워하는 소심한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교회성장학은 대체로 교회론에 중점을 두면서 방법론, 전략,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교회 성장 신학의 대두는 그 역사적 배경이 달라 적용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교회에 큰 자극을 주었다. 교회 성장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속하지만 인간의 적극적 반응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이점에 있어서 교회성장학자들은 제각기 비판의 여지가 있음에도 교회의 우선권은 사회적 행동보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전도임을 강조하여 현대교회에 전도와 선교의 붐을 일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교회성장운동은 에큐메니칼 운동, 오순절 운동에 못지 않게 복음운동의 상징이 될만하다. 그러나 교회성장운동은 그 원리와 실천이 성경에서 먼저 나왔다기 보다는 경험의 소산물이라는 점에서 이의가 제기되고 있으며 다른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원리상 성경적이면서도 우리의 현실을 감안한 성장전략의 수립은 하나의 과제로 남아 있다.
다음 장에서는 전도훈련의 역사적 고찰을 예수님과 초대교회와 한국교회의 전도훈련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오늘날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D. 교회성장이론의 전도에의 적용
교회 성장에 반대하는 이들은 숫자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숫자의 우상이 된다고 강조한다. 파딜라는 통계학적인 성공의 철학을 반대한다. 선교사업에 대한 결과를 단지 양적인 의미로만 측정하려는 강한 경향에 반대한다. 이에 대해 쇨러는 "교회 성장 운동에 대해 가장 널리 퍼져있는 방어적인 반응을 우리는 숫자 놀이에 관심이 없으며 질에 집중하고 있다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찰스 싱글터리는 "교회의 유기체적인 성장이란 교회에 관련된 성서적인 제유형들을 조심스럽게 적응함으로서만 가능하다"라고 했다. 이는 양과 질이 종합적으로 발전되어야 교회가 진정한 성장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정운 교수는 한국교회 100주년 선교대회에서 한국교회가 선교 2세기를 접어들면서 건실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넓고(양적 성장), 깊게(질적 성장), 높고(전도, 봉사), 그리고 크게(세계 선교) 자라야 한다고 한다. 교회성장학자인 와그너도 "출석교인과 세례교인의 비교, 복음전파에 할당된 예산비율, 주님을 위해서 드려지는 시간 비율, 성도들의 헌금 비율, 출석교인들의 균형있는 연령분포등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1. 도날드 맥가브란의 교회 성장 이론과 그 적용
a. 동일집단의 원리, 언어, 문화, 인종등 서로 같은 부류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그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적용: 이는 연령별 남,녀 선교회와 직장별, 취미별 선교회를 구성하고 이들로 하여금 각 또래 집단을 전도하게 할 수 있다. 남녀 선교회와 직장별 신우회, 또는 취미별 선교회는 유사한 연령, 직종, 관심, 취미를 가진 사람들로 조직되므로 이들을 훈련시키고 전도의 동기를 심어주며 지원하면 전도의 놀라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b. 대중운동의 원리. 동일단위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개종시키는 일종의 연쇄반응에 의한 전도를 말한다.
적용: 이는 노인정, 양로원, 보호및 수용시설, 군대등의 전도에 주효한다. 이를 위해 노인정 및 양로원 전도반, 수용시설 전도반, 군선교반을 조직하여 인근 노인정, 양로원, 수용시설, 군부대 전도를 위한 계획을 수립할 때 큰 전도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원종동 교회는 2년전부터 정기적으로 교회 옆에 있는 군부대에 450명의 장병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저녁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맥가브란은 대중운동의 장점을 5가지로 말하는데 그것은 토착원리, 자립원리, 자발적 확장, 주변인들에 대한 전도의 기회의 풍부, 신자화에 바람직한 모형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중운동의 원리를 전도에 바르게 적용시킬 때 건전한 교회 성장을 이룰 수 있다.
c. 수용성원리: 어는 동질집단의 그룹 가운데서도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그룹과 그와는 반대로 저항적인 그룹이 있다는 것이다. 맥가브란은 수용성이 높은 그룹을 새 정착민이 사는 사회, 교통의 왕래가 심한 곳, 다른 나라에 의해 정복당한 나라,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 통제가 심한 사회, 문화 변용이 심한 사회등으로 보고 있다.
적용: 이를 전도에 적용한다면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집단과 계층 즉, 새로 입주한 APT, 개발지구, 상가, 군대등과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d. 사회과학원리 : 교회성장학은 전략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사회과학의 이용을 강조한다. 문화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통계분석 등은 교회 성장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전도에도 이를 적용하여 지역사회의 문화적인 상태, 각종 홍보물 및 통계관리등에 이러한 원리들을 활용할 수 있다. 전도를 위하여는 지역적인 토양과 삶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연구는 전도 전략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e. 토착신학의 원리. 지역문화와 조화되는 전도방법을 말한다. 다르게는 지방 신학이라고 한다.
적용: 지역사회에 대한 연구를 기초로 하여 복음을 전달할 때 특히 그 지역과 환경에 적합하게 전달하면 최상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빈민층, 중산층, 부유층의 각각 생활문화에 적당하게 전도의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효율적인 전도방법을 제시, 지원하며 그 결과를 평가해야 한다.
2. 피터 와그너의 교회 성장 이론의 적용
맥가브란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효과적인가를 주장하고 있는데 비해서 와그너는 그 이론을 적극 찬성하고 그 위에 교회가 어떻게 조직을 하며 지도자는 무엇을 해야하며 어떤 교인들로 성장시켜야 되는지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조금 더 한국적인 상황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는 성장하는 교회의 일곱가지 표적들을 열거하며 그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a. 목사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히만 지도력을 가지고 전체 교회로 하여금 성장을 향한 활동을 하도록 그 촉매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 성장은 목회자의 믿음 열정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적용: 전도에 있어서는 목사의 강력한 지도력과 역할이 전도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당회원 제직을 비롯한 모든 교인들이 영적 지도자를 신뢰하고 순종하며 귀중한 결정들은 그에게 위임할 때 전도운동은 강력히 추진될 수 있으며 열매를 거둘 수 있다.
b. 기동성있는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모든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고 또 그 성령의 은사들을 발전시켜서 성장을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교회 안에는 10%정도의 전도 은사를 받은 평신도들이 있는데 이들 중 0.5%만 그 은사를 활용하고 9.5%는 이를 묻어두고 있다.
적용: 전도훈련에 있어서는 전도 특공대 훈련, 또는 70인 전도대 훈련등과 같은 훈련을 통하여 전도의 은사를 특별히 받은 사람을 발굴하여 그들의 은사를 활용케 해야 한다. 이 훈련은 평일의 오전이나 저녁이 적당할 것이다. 다른 90%의 교인은 일반적인 전도와 함께 그들 나름의 은사를 가지고 해당되는 직능에서 일하게 할 수 있다. 와그너는 은사를 발견키 위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고 은사를 믿어야 하며 일하기를 원해야 하며 기도할 것을 권면한다.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은사에 관한 말씀을 배우며 은사에 관한 교회의 자세를 배우고 광범위하게 책을 읽으며 은사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배우며 서로 은사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도록 하며 은사가 있는지 실천해보며 우리의 감정상태를 조사하며 효과가 있는지를 평가해 봄으로 은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c. 교회는 교인들의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봉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넉넉함이란 공간의 확보와 충분한 봉사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수정교회는 16개의 찬양대, 중식만찬, 독신자, 이혼녀, 마약중독자, 각종 성경공부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다. 그리고 대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싶은 사람은 1층에서 작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싶은 사람은 2층에 있는 곳에서 드릴 수 있다고 선전한다. 그리고 여기서는 산타에나(Santa Ana)산과 먼대해에 더있는 캐타리나(Catarina)해도 볼 수 있다고 선전한다. 수백대의 주차장에서도 예배드릴 수 있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적용: 교회는 전도를 하면서 신자들이 교회에 관하여 자신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이 기대와 욕구에 부응하는 체제와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전도훈련을 위해서 충분한 이론과 실습을 통하여 전도에 관한 자신감과 사명감 그리고 전도되어 온 사람들이 편안하게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d. "대예배"와 "모임"과 "세포조직" 이 세 가지 사이의 능동적인 관계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적용: 결신한 사람은 우선 교회 주일 대예배에 참석을 권하고 남녀전도회에 소속을 시키며 구역에 소속을 시킴으로 교제, 친교, 양육과 성장을 바르게 꾀할 수 있다.
e. 교인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동질 구성단위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적용: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교회 안에는 모이게 마련인데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동질집단을 이루도록 그 벽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인과 젊은이, 지식인과 비지식인,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어울려 사랑을 나눌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벽이 제거될 때 교회는 하나되어 전도에 매진할 수 있다.
f. 전도방법은 "제자"를 만드는데 그 기초를 두고 있어야 한다.
적용: 전도훈련에는 결신자들에 대한 양육계획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양육을 위한 양육자를 육성하고 그 영적 성장과정을 평가하고 도와야만 한다. 양육을 위해서 서신이나 공부반, 세미나, 구역장을 위한 양육 훈련등을 할 수 있다.
g. 우선순위들을 성경적인 순위대로 정렬하여야 한다. 전도운동, 사회운동, 사회봉사의 순위여야 한다. 맥가브란은 복음전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선포하고 설득하여 그의 제자와 교회의 책임있는 지체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적용: 모든 자원과 조직을 전도훈련에 우선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것이 성서적이다. 교회의 영적, 물적, 인적 자원이 전도에 적용될 때 비로서 가능하다. 이상과 같이 교회 성장학자들의 제이론들은 전도훈련에 효율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맥가브란과 와그너의이론은 수많은 반대이론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게 지지기반을 쌓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론에 의하여 목회를 하고 있는 수많은 교회들이 대부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핀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맥가브란의 교회성장이론은 같은 문화와 동일장소에 있는 집단을 전도할 때, 수용성이 있는 사람, 지역 순회에 적응하는 전도방법을 모색할 때, 성서의 원리를 따를 때, 상황 속에서 원리를 비교할 때, 영혼구원에 최우선 목표를 둘 때, 제자 삼을 때, 한가지 목표에 전심전력할 때 성장을 위한 모험을 시도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와그너는 목사가 지도력이 있을 때, 전도의 은사가 있는 이들을 개발할 때, 교인들의 욕구와 기대에 부흥할 때, 동질단위로 교인들이 형성될 때, 교회가 구령열에 목표를 두고 있을 때, 교회가 성장한다고 했다. 이들의 이론을 한국교회에 적용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맥가브란이 전도대상에 관심을 둔 반면 와그너는 교회의 역할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영혼구원과 교회 성장을 위하여 교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효과적인 전도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데는 같다.
지금까지 맥가브란과 와그너의 성장이론을 살펴보고 그것이 교회 성장을 위한 전도훈련을 어떻게 시킬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을 잃어버린 영혼으로 보고 준비된 영혼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맥가브란의 추수의 신학과 찾음의 신학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직도 남북한 7천만 중 6천만명이 주님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참 진리를 찾고자 목말라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주님께로 돌아 올 많은 영혼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목회자가 성장을 위한 비젼을 갖고 계획하며 기도하며 희생할 때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구원의 사명과 비젼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전도훈련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 많은 사역의 열매가 있을 것을 확신한다.
다음은 전도의 역사적인 흐름을 4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전도훈련 방법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전도방법과 해방이전의 한국교회의 전도방법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전도자세를 점검해 보고 확인하는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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