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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서식지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벼운 산행을 가곤한다
서식지의 앞으로는 금호강을 건너 앞산과 비슬산이 있고
서식지의 뒷쪽으로는 팔공산이 있는데
더 가까운 곳은 팔공산이다
오늘도 특별한 일정은 없는지라
생수한병과 몇가지를 더 챙겨넣은 배낭을 대충 울러메고
서식지 근처 팔공산국립공원 내 가산지구를 향한다
얼마전 몇몇 회원분들 이벤트 산행으로 다녀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긴 서식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
수도없이 올랐던 곳인데
도선굴은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놈이라
아니!! 이럴수가 있냐며 살짝 배신감 비스무리 한걸 느끼는데 ㅋㅋ
오늘의 나!!
보물찾기를 하듯 온~ 가산을 이 잡듯 뒤져서라도 꼭 찾아내어
기필코 보고 오리라 마음을 먹고
구경치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으리~ 하며
운전대를 잡아 본다 ㅋㅋㅋ
우선 가산으로 가 탐방센터 앞 주차장에
휘리릭~ 주차하고 오르려는데
다부동전투, 일전에 오계산에서도 본 적이 있지
6.25 전사자 유해 발굴지 표지가 탐방지원센터 바로 건너편 입구에 있으니
처음 오시는 분들은 한번 쯤은 꼭 읽어보셨으면 하고
탐방지원센터에서 이짝으로 가든 저짝으로 가든
맘에 드는곳 하나 골라 잡아 잠시만 오르면
금새 마루금 가까이 닿게 되는데
이짝에서 오르면 가장 먼저
옥수수알처럼 가지런히 쌓인 가산산성의 첫 얼굴
바로 수문터를 만나게 된다
가산산성은 해발 900m가 넘는 험한 골짜기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특이한건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인데
축성시기는 각각 다르며
현재 사대문과 암문, 수문, 건물 터 등의 시설이 꽤나 많이 남아있는데 보이는 사진속 수문터 역시 그 중 하나다
수문터 지나 왼쪽으로는 관아터와 산성마을터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함께 둘러보시면 더욱 좋고
동문 앞 안내도이며
가산산성의 성곽현황도와
가산산성에 대한 간단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동문 앞 안내도를 촬영한 내용이니 참고하시고
이 중 눈 여겨 볼 것은
** 첫째
칠곡 가산산성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삼중으로 축성되었다는 점과
**둘째
1639년(인조17)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대략 8개월간
10만명을 동원해 축성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또한 축성이 완공되면서 5월에는 경산부(京山府)에 속했던 팔거현이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로 승격되고, 이후 약 180년 동안 읍치를 산성 내에 두어 4개 현(군위, 의흥, 신령, 하양)을 관장하였다는 점이다
이것들은 걸으며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고
우선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동문이다
유난히 파란하늘에 하얀구름, 날씨까지 멋진 오늘!!
그래서인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아름답게 보이는 동문이다
사실 보통 가산으로 산행을 올때면 들머리를 탐방센터로 하기보다는 대체로 진남문에서 시작하는 편인데
오늘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 이쪽으로 왔다만
혹 여유를 가지고 오신다면 진남문을 더 추천 드리고 싶고
이유야 당연히 가산의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인 진남문을 보기 위해서라 말씀드린다
우선 동문 안으로 들어가보자
공산면 라호태
앞서 이벤트 산행 다녀오신 후 남겨주신 글을 보며
그간 그리 다녀도 보지 못했던 것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 아니 여기에 이런게 있다고..??
정말 깜놀하여서
찬찬히 찾아보며 혼자 보물찾기 하듯 놀아보고자 하는데
그 첫번째부터가 대물이다 ㅋㅋ
동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요기!!
앞서 언급한 "공산면 라호태" 라는 글이 있다
공산면이라함은 옛 지명일테고
라호태라면 분명 누군가의 이름인듯 보이는데..
글쎄 당시 축성에 참여하였던 책임자의 이름일까..??
음.. 그렇다고 하기엔 한글의 모양이 당시의 것이 아닌듯하고..
그게 아니라면 혹시..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무너진 성의 유지 보수 작업이 근현대에 와서 조금씩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그 당시 작업자 중 한사람의 이름인걸까..??
"라호태"라는 글자 아래로 희미한 글이 더 있지만
이건 정확히는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후기글 보며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일수도 있겠거니..
그저 추측만..
그나저나 이거 정말 뭘까..??
누군가의 단순한 장난 혹은 낙서인걸까..??
아님 정말 작업 책임자의 기록인 걸까..??
궁금해 보기도 하고 신기해 보기도 하며
반대쪽으로 나와서 만나는 예쁜 무지개
바로 홍예문
무거운 석재를 지지하기에 더없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아치형의 건축방법
거기에 아름답기까지한 무지개문, 홍예문이다
비와 바람에도 끄떡이 없이
이렇게 오랜 세월 견고하게 무너짐 없이 서 있는
저 돌땡이를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 없는데
이 문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아름다워 보여서 한참을 요리조리 구석구석 올려다 본다
문이 있었던 흔적으로 보이고
문을 세우고 빗장을 걸었던 흔적이 아닐까 상상해 보며
밖으로 나와 올라 내려다 본 동문의 모습이고
동문 상면에는 문루가 있었던 흔적, 주초석이 있다
이곳에 서서 예전 문루가 세워져 있을 당시의 모습을 잠시 그려보는데 오늘따라 이 동문이 정말 유난히도 예뻐보여 잠시 진남문과 겹쳐보이는데
혹 문루가 있었더라면 진남문과 같지는 않을까..?? 더 아름답지는 않았을까 그려보며
지금은 보지못하는 그 모습에 쩝쩝 입맛만 다시다 돌아선다
<아래/진남문사진 자료첨부>
동문 지나 성곽 위로 오르는데
살랑살랑~ 산들바람이 제법 불어오고
얼마전 다녀갔을때와는 다르게 깨끗하게 정리된 등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깨끗하게 정리 된 등로가 제법 맘에 들었던 건
비단 나 같은 산객만은 아니었나 본데
코 끝을 땅에 박고 킁킁~ 킁킁킁~
하는 멧선생님의 모습이 상상이 가는데
한참을 걷는 동안 등로가 계속해서 이 모양 이 꼴이다 ㅎㅎ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땅속에 코를 박고 있었던걸까??
하긴.. 나 역시도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코끝이 간질 간질~ 간지러웠는데
풀을 베고 난 자리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그 마른 풀 냄새가 어찌나 향긋하던지..
네 녀석도 나와 같았으려나??
아님 그저 단순히 배가 고팠던 걸까..?? ㅋㅋ
이짝이든 저짝이든 나와 같다 ㅋㅋ
잠시 올라서
구불구불~ 뒤 돌아본 길이고
앞으로 난 길인데
저 길 위로 보이는 저 구름말이다
깃털이 하나 하나 다 보이는 것이
꼭 하얀 천사날개인듯 보이지 않는가..??
데칼코마니 마냥 하늘을 반으로 접을수만 있다면
완벽한 좌우대칭을 만들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저 위로 보이는 곳은 동포루
아이~ 근데 지금은 그보다 하늘 구름에 더 마음을 빼앗겼다
좀 더 눈요기 하다가
동포루 올라
얼마전 오가팔환초 걸음하며
풀밭속을 수영하듯 양팔을 휘저으며 한티재 향해 내려갔던 길인데
이제는 복날 닭털을 뽑듯 털이란 털은 죄다 뽑힌 체 밥상위로 올라온 닭 백숙 마냥 깨끗하고 말끔하기만 하니
그 숨었던 뽀얀 속살이 다 드러나 있는데
대체 이 아이는 어찌된 영문인걸까??
노련한 작업자의 몰아치는 칼바람 속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한 녀석이 있질 않은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참말 곱기도 한데..
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애첩, 달기의 일화가 떠오른다
달기는 주왕을 망친 악녀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아름다운 미모로 더욱 유명하다
막장 행동들로 희대의 악녀라 비난 받으며
결국은 참수형을 받게 되지만
칼을 든 망나니 조차
달기의 그 곱디 고운 얼굴을 본 순간
차마 달기의 목을 칠 수 없어 손에 든 칼을 내려놓았다 하지 않았던가!!
과연 이 아이 역시 마찬가지 인걸까??
작업자의 실수로 살아남은 걸까..??
아님 작업자의 애틋한 사랑이었던걸까..?? ㅋㅋ
이유야 무엇이든 칼바람 속에서
목을 지킨 이 아이의 미모는 더욱 돋보일 수 밖에 없고..ㅋ
이어지는 길 역시 시원하게 깍아주신 덕에
그간 숨겨져왔던 속살이 죄다 보이는데
어디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보도록 하자
1639년(인조17) 음력 9월부터 동원된 10만의 인력이라..
아마도 인근 경상도 각지에서 차출했을테고
그 당시라 가정하면.. 어쩌면 내가 그 안에 포함되지도 않았을까??
ㅋㅋㅋ
탐방센터에서 올라오는 길
경사면으로 암괴류가 꽤나 보였는데
그 사이에서 커다란 바위하나 골라내어
정과 망치로 쪼개고 깍아 나르고
흙을 가져와 쌓은 돌이 무너지지 않도록 뒤를 받치는 과정을 반복해 지금의 보이는 가산산성의 축성이 이뤄졌을테지
당시라면 난 무얼하고 있었을까??
지게 이고지고 흙을 가져다 날랐으려나..??
아님 광주리 머리에 이고지고 주먹밥을 가져다 날랐으려나..??
음력 9월이라..
현재는 양력을 쓰니 오늘날로 따지면 10월이 될 것이다
다음달 쯤이 되겠지
이곳까지 오는 길 들판에 제법 누렇게 익은 벼가 보이던데.. 가을 추수가 끝나고 이제 좀 쉬려나 하던차에 끌려왔겠다 생각하니 괜히 억울하기도 한데
나라가 요구하는 역이라는게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뭐 어쩔수가 없었을테지
눈이 오고 비가 오면 일을 못할테니
4월까지 8개월이라고는 해도 그 보단 적었을테고..
노역이든 공역이든 보수는 없었을테고
아..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군
야, 이것들아!! 밥은 제대로 먹여 줘가며 일은 시켰냐??
아.. 그나저나..
음력 4월이면 축성을 마치고 나서 다시 쉴틈도 없이 곧장 논으로 모를 심으러 가야 할 때인데..
덴장덴장.. 하며 입툭튀 했을것 같고
당시 10만의 인력이 8개월간 쉬지않고 축성한 내성의 총 길이는 5키로가 조금 넘는데
가만히 들여다 본 성벽의 모습은
바닥으로부터 완벽한 직각으로 세워졌다기보단
흙담을 향해 살짝 기울어진듯 보이는데
돌 한단을 쌓고 흙을 날라 기댈 수 있도록 하고
다시 돌 한단을 쌓고 뒤로는 다시 흙을 채워 기댈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토담에 의지한 성곽은 아무래도 외부의 영향으로터 더욱 견고해 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고
저기 저 길을 보며
어쩌면 8개월간 내가 날라야 했을지도 모를 돌과 흙의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 상상해보는데
어마어마했을 양에 상상만으로도 벌써부터 팔 다리 허리 어깨 안 아픈데가 없다 ㅋ
똑똑하신분 계시면 계산 부탁드리고
난 그저 시대를 잘 만난것에 굽신굽신~ 감사하며..ㅋㅋ
성곽 위로는 새로 난 길이 보이고
성곽 아래로는 옛길이 보인다
암문은 총 15개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렇게 흔적이 분명한 것도 있는가 하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법 한것들도 제법 있다
커다란 선돌이 옛길위로 보이고
붕괴 위험??
공산면의 라호태님.. 이거이거 부실공사인가요??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거 알만한 분께서 왜 이러셨어요?? ㅋㅋㅋ
빨리 불어요~
건축실명제!! 어쩔!!ㅋㅋㅋ
오만가지 상상에 빠져 잠시 걷다
걸어온 길 뒤 돌아보니
오매오매~ 이것은 뭣이여??
구불구불 굵~다란 용의 몸통이 보이는가 싶더니
바로 눈 앞으로는 굵은 몸통에 걸맞는 커~다란
용의 머리(용바위)가 놓여 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성곽의 쌓아올린 돌 한장 한장이 말씀처럼 꼭 용의 비늘인듯 보이기도 하고
좀 더 올라가면 좌측 아래로 가산 정상석이 보이고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삼중으로 축성되었는데
당시 경상도의 산성 중 믿을 만한 곳이
진주산성, 금오산성, 천생산성 3성 뿐이라 적합한 곳을 찾아 축성하고자 했고
산세가 험준하고 성내 물이 풍부하여 산성이 들어서기에
최적지라 여겨진 팔거현의 가산에 축성이 결정되었다
산성 완공 이후 인조18년 5월부터 "칠곡도호부"로 승격되어
이때부터 약 180년 동안 부의 치소인 읍치를
하필이면 해발 약 900m의 산성 내에 두어
4개 현 군위, 의흥, 신령, 하양을 관장하게 하였는데
한번 생각해보자
오늘 나는 서식지에서 자가용으로 이동해 관아터가 있던 자리까지 오르는데 대략 2시간이 걸렸다
자가용이 없던 그 시대
말을 타고 올까..?? 가마를 타고 올까..??
걸어서 올수도 있는거지..
서식지가 하양이라고 가정해 볼까??
지난 금호강을 걸으며 하양에 들어와 집 근처를 지나기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집에서 관아터까지는..??
대략 18키로, 6시간만 잡아도 총 12시간이다 ㅎㅎ
주차해둔 내 자가용 문짝을 누군가 긁어 놓고 갔더라..
를 해결하기 위해 왕복 24시간이라..
내 물건을 누군가 허락없이 가져갔더라..
를 해결하기 위해 왕복 24시간이라니..
참을까 말까??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해 보아도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할것 같고
혹 이 송사가 한번의 방문으로 끝나는게 아니라면
과연 난 어떡해야하지..?? ㅋㅋㅋ
아니나 다를까..
칠곡도호부 관아가 험준한 산정에 있게 된 후, 읍민들은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었고
이런 불편함이 많아지자 당연히 관아 옮기기를 갈망했고
아~ 제발~제발~ 하던 차에
드디어 1819년(순조 19)에 왕명에 의하여, 평지인 팔거구지로 읍치를 옮기게 되었다
다시 걸음 이어가며
길 따라 늘어선 전나무가 제법 아름다웠던 가산 산성
잠시 걷다보면 중문으로 가는 갈림길이 보인다
가산산성의 총 길이는 대략 11키로가 조금 넘는데
내성 5키로, 외성4.6키로의 전 구간은 이제껏 봐오신것 처럼 암괴류를 깍아 쌓아올린 석성이나
중문으로 이어지는 이 중성의 벽은 돌이 아닌 흙을 가지고 쌓아올린 토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다시 걸음 이어가고
중간 중간 암문이 추가로 보이는 데
역시 이전엔 못 보던 것들이고
흙속에 묻혀서 머리만 살짝 보이는 것들인데
암문이란게 원래가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하고 위대하게?? 출입하는 용도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생겨먹었다간 몇 번을 더 와도 15개를 모두 찾기란 꽤나 어려운 일 일듯하다 ㅋ
오늘의 보물 찾기는 실패인건가..?? ㅋㅋ
백점은 글러먹었군 ㅜ
등로 중간중간엔 마치 기와처럼
가마에서 구워낸 듯한 검은색 돌이 꽤나 많은데
이런 것들이 상당히 여러개가 보이고
부서지긴 했으나 서로 형태와 두께가 상당히 유사해 같은 용도로 쓰임 받았을 듯 보인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겼을 예쁜 돌탑
무엇일지 궁금한데..
모두의 소원!! 로또당첨?? ㅋ
북문
북문과 서문은 성문의 양쪽 벽 위에 장대석이나 판석을 수평으로 걸쳐 만든 평거식 구조이고
진남문 동문 중문에 비해 크기도 작은 편이다
유실된 수문 터 인듯 하고..
이쪽으로는 물이 흐르는데
다른 곳에 비해 그늘이 지고
지면도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더 축축하고 질퍽한 편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 북쪽으로는 무너지거나 유실된 시설들이 좀 더 보이는 듯한데..
물로 인해 지반이 조금 약한 탓은 아닐까 하는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이다
이건 멧선생님의 애착 나무..??
유독 이 나무 하나만 이러하다 ㅋㅋ
얼마나 비벼댓길래 껍질이 다 떨어져 나갔더라는
코도 간지럽고 몸도 근질근질한 것이
너도 가을타는 것이냐?? ㅋㅋ
난 가을 타는 듯~
이제 멀지 않은 곳 가산바위가 있다
예쁜 길따라 살금살금 걸어 올라가는데
오른쪽으로 왠지 눈에 익숙한 구덩이 몇개가 연이어 보인다
참호일까..??
아니라면 6.25 전사자 유해 발굴지 일까..??
이곳에서도 꽤나 많은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하니
짧게 나마 그 영혼의 안식을 위해 묵념하고 오른다
드디어 황학지맥 분기점이고
서문
북문과 마찬가지로 평거식이며 다른 대문에 비해 규모도 작다
구불구불한 성곽위로 양떼같은 구름이 너무 예뻐서 한컷 찍어보는데
역시 토담을 향해 살짝 기울어진 성곽의 모습이 보이고
겨우 머리만 빼꼼히 보이는 암문이 또 하나 보이고
이 정도면 정말 보물찾기 맞는 듯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등로위로 깔려있는 오래된 돌
가마에서 구워낸 것이니
자연석은 아닌데 이곳 어딘가에서 쓰임 받았던 물건이 틀림이 없는데..
건축자재 중 하나였겠지..??
기와 파편들은 자주 보인다
서문에도 문루가 있던걸로 추정된다 하니
이곳에 있었던 문루에서 나온 것일수도 있을테고
원형에 가까운 것들은 네모가 반듯하고 마치 현재의 보도블럭처럼 생기기도 했는데..
관아가 있고 산성마을이 있었던 곳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라면
비나 눈으로 질퍽했을 이 길위에 어쩌면 오늘날의 보도블럭과도 같았을 이런 디딤돌을 깔지 않았을까..??
디딤돌이었을까..?? 아님.. 다른 무엇이었을까..??
걷는 내내 계속해서 보이는 바람에 무얼까..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고민하다 보니 벌써 가산바위다 ㅎㅎ
가산바위
가산바위 위로 쉬고 계신 산객분이 보여
사진 한장 부탁드리고자
정중히 모시고 함께 내려가 보기로 한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희미하게 보이고
내려갔더니 내부는 이런 모습이었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본 모습이고
아!! 위에서 늘 보던게 바로 이것인데.. ㅎㅎ
왜 진작 내려와 볼 생각은 못했던 걸까..??
너무 신기했다는.. ㅋㅋ
도선굴 입구의 모습이고
감사한 마음에 동행해주신 산객분 사진 한장 담아드리고
저기로 보이는 성곽길도 늘 다니던 길인데
늘 보던 모습인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얘기가 정말 딱이구나 싶었던 순간
절로 웃음이 나고
다시 돌아나와 가산바위 위로 올라가
반암
늘 보던 익숙한 모습이고
이것 역시 익숙한 모습인데
정말이지 이런 반전은 없었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능가하는 대박 반전!!
뒷통수를 쎄게 한방 얻어 맞은 듯
등잔 바로 밑에 뭐 이런 보물이 있었다니!! 악!!
아직도 얼얼한 내 뒷통수..
돌아나와 본 가산바위
이제서야 알고 보니 도선굴 쪽으로 자꾸만 시선이 가는데
조금만 생각해 봤으면 되었을 것을
이걸 왜 몰랐던 걸까.. 참 바보같다 생각하며
속으로는 낄낄낄~
그래도 찾았다며 골룸에 빙의되었다
My Precious~
ㅋㅋㅋ
어랏, 요것도 또 있다..
대체 무얼까 ㅋㅋ
다시 고민하며 걷는 길..
늘 오던 곳이지만 새로웠고
자주 걷던 길이었지만 오늘은 더 재미있었다
오늘의 보물찾기는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저는 이쯤에서 탐방센터로 내려왔으나
좀 더 내려가면 남포루가 있는데 여유되시는 분들은 꼭 찾아 들러보셨으면 하고
소개한 것들 외에도 사찰이며
천연기념물인 복수초 등 재미나게 찾아 볼거리가
많은 곳이니
대구 팔공산을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
오셔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잘 다녀 오셨내요
노랭이꽃은 없던가요?
함께 걸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쉅고요.
이어가는 산길 건강하게
안전하게 걸음하시길 바랍니다.
수고했어요
ㅎㅎㅎ
무심하게 걷던 그길위에서 보물찾기 하셨군요
길을 걸으며 모두가 인문이니 찾아보는 재미가 특별한데 보름간 작업하며 찾아본것들 모두 찾아보셨네요.
저도 바닥에 깔려있던 흙을 구워 질퍽한 성위로 깔았을법한 판석을 유심히 봤는데
제가 세워놓은 판석 돌탑은 세곳인가 그런데 두곳만 담으셨고 동포루의 빼곡한 잡초속에 남겨둔 마타리꽃과 보라색 꽃중 마타리 꽃이 보이지 않는데 누군가 꺾어 버린듯 합니다.
수고 많으셨구요 글 잘보고 갑니다.
이번주에 3일동안 관아터와 산성마을로 2차 풀작업 가는데 노랭이 마타리가 있는지 제눈으로 확인해야 겠네요
하얀 천사 날개라는 표현이 딱 맞는
요즘의 하늘은 너무나도 예쁩니다.
가산산성은 산행때 수없이 지났지만
자세하고 센스있게 써내려 간
타키님의 글과 한걸음이 되어
따라간 듯 읽어보았답니다.
도선굴 구경도 감사합니다 😊
청명한 날씨에 좋은 구경하셨네요.
수고했어요.
가을 하늘 가산산성 타키님의 글로 더욱 빛이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가산산성 예전엔 많이갔던 곳인데
요즘은 그리 갈 기회가 없네요
밁은날 혼자 유유히 밋션 찾으러
다녀왔네요
즐감합니다
아름다운 산행기
잘 봅니다.
공산면의 라호태님.. 이거이거 부실공사인가요??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거 알만한 분께서 왜 이러셨어요?? ㅋㅋㅋ
빨리 불어요~
타키님이 발본색원해서 자바가코 콩밥미기뿌소^^
곱디고운 인문이 살아 있는 참한 가산산성 산행기 즐감했어요^^
멋진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는 현대 과학이 아직 부족하죠!^^ 천사 날개같은 구름! 나름 시원한 날?ㅋㅋ 초가을에 구석구석 세밀하게 관찰 탐방하고 오셨네요! 멋진 굴도 보시고~ 탐방객이 몇분 계시네요! 아마 제초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찾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ㅎㅎ
트런모드로 한바퀴 달려도 좋을 듯한 코스 같습니다.ㅋㅋ 나중에 사임당선배님과 한번 돌아 봐야겠습니다. 나중에~ㅋㅋ
슬슬 설렁해지는데... 대구는 아직도 여름의 기운이 남아있나요?
홀로 날들이 같은 산행 잘 봤습니다.^^
글 남겨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리고
환절기 건강조심하시고
걸음걸음 늘 무탈하시기만을 기원드립니다
딱희님이 사진을 담는게 귀찮아졌나?
갑자기 어려운 문자가 많이 나오고
많은 글이 나오는 바람에 이거 뭐지???
달라진 산행기 스타일에는 천천히 적응해야겠어요.
나는 기존 스타일이 좋던데....ㅎ
그래도 볼 수 있을때 좀 예쁘게 봐주세요 ㅎ
여유로운 산행에 멋진 풍경이네요
수고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