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36)
배를 타고 있던 학자가 선원을 보며 말했다.
“이제껏 공부를 해본 적이 있소?”
뱃사람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학자가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절반을 낭비했구려.”
뱃사람은 슬픔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그 순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엄청난 강풍이 불어와 배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뱃사람은 학자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수영할 줄 아시오?”
학자가 대답했다.
“못하오.”
그러자 뱃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전부를 낭비했구려. 지금 배가 가라앉고 있소.”
-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1207-1273), 『루미시집』, 정제희 옮김, 시공사, 2019
(※ 『루미시집』에서는 마지막 행이 ‘인생의 절반을’로 되어 있으나 맥락상 『루미의 우화 모음집』에 실린 ‘인생의 전부’의 오기로 보여 ‘인생의 전부’로 옮김. / 시집에는 제목이 없지만 관례에 따라 첫 문장을 차례에만 제목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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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치는 공부로 얻는 지식보다는 살면서 얻는 지혜에 더 있다는 말씀이겠습니다. 지금 제가 인용한 이야기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만, 다른 책(아서 숄리 엮음, 이현주 옮김, 『루미의 우화 모음집』, 아침이슬, 2010)에는 우화로 ‘지혜와 상식’이라는 소제목의 장에 「한 배에 탄 두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습니다. 번역된 시인의 여러 책을 읽다 보니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도 같은 내용의 이야기임에도 시, 우화, 잠언 등 내용이- 책에 따라 전부이기도 일부이기도 하는 등 조금씩 달라도- 여러 판본으로 수록된 걸 보면 루미의 시는 다양하게 회자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루미는 인류 문명에 깊은 영향을 준 천재 시인이며 이슬람의 대표적인 신비주의 단체인 메블레비 수도회의 창시자이다. 그는 카비르나 라마 크리슈나에 앞서서 종교적인 신념과 철학적인 이해를 넘어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신의 사랑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1207년 아프가니스탄 발흐의 학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루미는 가족들과 함께 몽골의 침략을 피해 이슬람권 국가들을 폭넓게 여행하고 메카를 순례했으며, 당시 셀주크 제국의 영토였던 아나톨리아의 코냐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루미의 아버지는 단숨에 종교적으로 학식이 높은 사람이자 수피교도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루미는 규범에 맞는 법학이론과 해석, 전통과 이론 등 당시 마드라사 학문의 주된 내용을 섭렵하는 등 높은 학식을 갖춘 사람으로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그를 경외심을 갖고 대했고, 수천 명이 넘는 이들이 그의 강의를 들으려고 했다.”고 할 정도로 이미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지만, 냉철한 학자였던 루미가 희열에 넘치는 시인으로 변모하게 된 건 루미가 37세 되던 해인 1244년 방랑하던 수피교도 샴스엣딘과의 만남 이후라고 합니다. 엄격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만난 지 3년쯤 되어 샴스엣딘이 돌연 모습을 감춘 이후라고 해야겠는데, 이때 그들의 관계를 시기한 가족과 제자들이 공모하여 샴스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합니다만, 샴스가 사라진 이후 2년 동안 그를 찾아 돌아다니던 루미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왜 그를 찾고 있는가? 내가 바로 그인 것을/그의 본질은 나를 통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을/내가 나를 찾고 있었구나!” 참고로 루미가 창시한 메블레비 수도회는 회전춤으로 유명합니다. “1273년 12월 17일, 세계적인 천재이자 인간애를 충실히 실천했던 사람, 페르시아 언어를 사용한 가장 위대한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육체는 코냐에 묻혔다.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슬람교도들과 유대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이 그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하려고 싸움을 벌였고, 다섯 종교의 종교인들이 그의 관을 따랐다. (…) 유네스코에서는 이런 루미의 탄생 800주년을 기리며 2007년을 ‘세계 루미의 해’로 선포하기도 했다”(이 글에서 인용한 내용은, 『루미시초: 내가 당신이라고 말하라』, 이현주 옮김, 늘봄, 2014, ‘역자 해설’ 일부)고도 하는데, 거의 같지만 여러 책에 소개된 루미의 약력 중 이 ‘역자 해설’을 고른 건 이 마지막 부분의 내용에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을 듯해서였습니다. “이슬람교도들과 유대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이 (…) 다섯 종교의 종교인들이” 여기서는 싸움이라고 했지만, 상황에 따라서가 아니라 늘 공존할 수 있는 세계가 꾸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문득 들어서였습니다. ‘공존’입니다. ‘평화로운’. (20240306)
첫댓글 루미의 시와 루미에 관한 정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