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或謂孔子曰 子奚不爲政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정사를 맡지 않으십니까?”라고 하니, 定公初年, 孔子不仕, 故或人疑其不爲政也. 노정공 초년에 공자님이 벼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공자님께서는 정치를 하지 않으신다고 의심했던 것이다. 新安陳氏曰 吳氏云 夫子在魯不仕 其故有三 待賈而沽 一也 季氏逐君 二也 陽貨作亂 三也 史記云 季氏强僭 離於正道 陽貨專政作亂 故夫子不仕季氏 蓋以平子逐君 若謂强僭離於正道 則季氏數世皆然 而夫子何以又仕桓子乎 定五年季平子卒桓子嗣立家臣陽貨作亂 則定五年以前 夫子不仕者以平子 而定五年以後不仕者以陽貨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오씨가 이르길, ‘공자께서 노나라에서 벼슬하지 않은 것은 그 이유가 셋이 있는데, 좋은 매수자를 기다렸다가 자신을 파는 것이 첫째요, 계씨가 임금을 쫓아낸 것이 둘째요, 양화가 난리를 일으킨 것이 셋째다.’라고 하였다. 사기에 이르길, ‘계씨가 강제로 참월하여 정도에서 벗어났고 양화가 정사를 전횡하여 난리를 일으켰기 때문에, 공자는 계씨에게 벼슬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대체로 계평자가 임금을 쫓아냈지만, 만약 강제로 참월하여 정도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면, 계씨가 몇 세대에 걸쳐 모두가 그러하였던 것이니, 공자께서 무슨 연유로 또한 계환자에게 벼슬을 하였단 말인가? 노정공 5년에 계평자가 죽고 계환자가 그 뒤를 이었으며, 가신 양화가 난리를 일으켰으니, 그렇다면 노정공 5년 이전에 공자께서 벼슬하지 않으신 것은 계평자 때문이지만, 노정공 5년 이후에 벼슬하지 않으신 것은 양화 때문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子曰 書云 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서경에 이르기를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여 정사에 시행한다.라고 했으니 이것이 또한 정사를 맡는 일인데, 어찌 정사를 맡지 않는다고 하겠는가.”라고 하셨다. 書, 「周書君陳」篇. 書云孝乎者, 言書之言孝如此也. 善兄弟曰友. 書言君陳能孝於親, 友於兄弟, 又能推廣此心, 以爲一家之政. 孔子引之, 言如此, 則是亦爲政矣, 何必居位乃爲爲政乎? 蓋孔子之不仕, 有難以語或人者, 故託此以告之, 要之至理亦不外是. 서경은 주서의 군진 편이다. 書云孝乎라는 것은 서경에서 효에 대한 말씀이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형제에게 잘하는 것을 友라고 한다. 서경에 이르길, 군진이 능히 어버이에 효도하고 형제에 우애하며, 또 이 마음을 능히 미루어 펼칠 수 있었으니, 이로써 일가의 정사를 삼았다고 하였다. 공자께서 이를 인용하여 이와 같이 말한즉, 이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인데, 어찌 반드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만 정치를 하는 것이 되겠느냐는 말이다. 아마도 공자께서 벼슬하지 않는 것을 그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의탁하여 그에게 알려준 것 같다. 요컨대 지극한 이치는 역시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新安倪氏曰 書言孝友而起語 獨言孝者 友乃孝之推 孝可包友也 신안예씨가 말하길, “서경에서는 효도와 우애를 말하면서 말을 시작하였는데, 단지 효도만을 말한 것은 우애란 곧 효도를 미루어간 것이고, 효도가 우애를 포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惟孝友于兄弟 謂孝然後友 友然後政 其序如此 能推廣此心以爲一家之政 便是齊家 緣下面有一箇 是亦爲政 故不是國政 又曰 在我者孝 則人皆知孝 在我者弟 則人皆知弟 其政豈不行於一家 又曰 政一家之事也 故不止是使之孝友耳 然孝友爲之本也 주자가 말하길, “‘惟孝 友于兄弟’라는 말은 효도를 한 후에 우애를 하고, 우애를 한 후에 정사를 하니, 그 순서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능히 미루어 넓혀감으로써 일가의 정사를 할 수 있으니, 바로 이것이 제가라는 것이다. 아래에 하나의 ‘是亦爲政’이라는 문구가 있기 때문에, 국정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나에게 있는 것이 효도라면, 남들도 모두 효도할 줄 알고, 나에게 있는 것이 우애라면, 남들도 모두 우애할 줄 알게 될 것이니, 그 정사가 어찌 일가에 행해지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政이란 一家의 일이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효도하고 우애하도록 하는 것에 그칠 따름은 아니다. 그러나 효도와 우애는 그 근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此全在推字上 今人只是不善推其所爲耳 范氏言明皇友兄弟而一日殺三子 正以不能推此心也 이것은 온전히 推라는 글자 위에 달려있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미루어감에 능하지 못할 뿐이다. 범씨가 명황은 형제에 우애하였지만, 하루에 세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였으니, 바로 이 마음을 미루어갈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新安陳氏曰 孝友兄弟 行於家者 施於有政 行於國者 居家理故治可移於官 書之本意 不過如此 朱子特發出推廣以爲家政之意 신안진씨가 말하길,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것은 일가에 행하는 것이고, 정사가 있는 곳에 베푸는 것은 나라에 행하는 것이다. 일가에 거하는 이치이기 때문에, 그 다스림은 나라의 관직으로 옮겨갈 수 있으니, 서경의 본래 뜻은 이와 같음에 불과하다. 주자는 단지 미루어서 넓혀감으로써 家의 정치를 행한다는 의미를 드러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孝於親 則必友於兄弟 孝友篤於家 則施於有政 亦是心而已矣 雖不爲政而家庭間躬行孝友 爲政之道 固在是矣 或人勉夫子以爲政之事 夫子告以爲政之道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부모에 효도한다면, 반드시 형제간에 우애할 것이고, 효도와 우애를 일가에 독실하게 행한다면, 나라의 정사에 베푸는 것 역시 이런 마음일 따름일 것이다. 비록 정치를 하지는 않을지라도, 가정에서 효도와 우애를 몸소 행한다면, 정치를 하는 도는 본래부터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혹자는 공자에게 정치를 하는 일로써 권면한 것이고, 공자께서는 정치를 하는 도로써 알려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