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칸에서 오직 주문한 물품이 오기만을 기다리며(항해이야기)

[윤선장]

 4월19일

 눈을 뜨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는데 큰 통증은 없었다. 다리의 붓기는 많이 빠졌다.

팔꿈치와 정강이에 파스스프레이를 뿌렸다. 오토바이를 빌린 김에 그 낚시꾼 농장에

가보기로 했다. 그가 말하기로는 10킬로미터쯤 된다고 하였는데 장장 55킬로를 갔는데도

산토스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서 물어보았더니 지나왔다고 하였다. 33킬로 쯤

지나왔고 그의 동네는 산토스중에서도 칼칸쪽으로 가까운 킨키마을이었다. 정말 포구에서

20여킬로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제께 다친 곳도 욱신거리고 헤메고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다. 그의 집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오토바이를 시간보다 빨리 반납하고

배로 돌아왔다. 요트가 2척 더 늘어서 모두 4척이 되어있었다. 영국인 배와 러시아인 배였다.

러시아인들은 말이 없고 무뚝둑했고 영국인들은 친절했다. 영국인이 타고 있는 43피트

베네토요트는 챠트정라고 하였다.

3주간 빌리는데 8천달러라고 하였다.

 스위스배에서 새끼양고기를 구워놓았다고 먹으로 오라고 하였다. 갔지만 몸상태가

좋지 않아 금방 돌아왔다. 배에 누웠는데 약간 추웠다. 따뜻한 구돌목이 생각났다.

객지에서 몸이 좋지 않는 것만큼 서글픈 것도 없다.

 4월20일

 여전히 부딪힌 곳이 욱신거리지만 행동하는데 불편한 것은 없다. 소금에 절인 로프들을

맹물에 담귀서 소금끼를 뺏다. 소금끼가 절여있으면 로프가 뻗뻣해서 다루기가 힘들다.

스텐파이프는 녹이 빨리 슬어서 자주 닦아주지 않으면 볼상 사납다. 태국에서 광택내는

사람이 황산액을 사용한 다음부터 이런 현상이 시작되었다. 원천적인 처치가 없으면

자주 힘들게 되었다. 파이프 몇 개를 닦았다. 하루 종일 사소한 일거리를 찾아서 했다.

 고장난 오토파일럿을 대신해서 윈드베인 날개에 틸러식 오토파일럿을 장착하기 위해

미국에다 주문을 했다. 일주일쯤 걸린다고 한다. 몸 상태도 좋지 않으니 칼칸에서 쉬면서

배를 정비하기로 했다.

 요트 3척이 나가서 혼자 남았는데 저녁 무렵 한 척이 또 입항하였다. 독일 국기를 달고

있는데 챠트정이라고 하였다.

 4월21일

  27년 전 오늘 아침 나는 머리를 빡빡밀고 해운대 53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하였다.

잘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가끔 다시 군대에 있는 꿈을 꾼다. 특명이 늦게 내려와 12일

더 붙잡혀 있다 와서 그런가 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 꿈을 꾼다고 들었다.

 구름이 높은 산허리를 감싸고돌고 있다. 구름이 내려앉은 탓에 바람이 차가웠다. 다시

한 번 낚시꾼 농장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 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서 방문을

알렸다. 산토스 방향으로 가는데 맞바람이 불어서 갓길로 시속4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달렸다. 편안한 속도다. 이번에는 장소를 알고 있어서 덜 지겨웠다. 30분 만에 킨키 마을

입구에 도착하였다. 칼칸에서 22킬로미터였다. 이틀 전에는 이곳을 놓치는 바람에

33킬로미터나 더 갔다. 그에게 전화하고 마을 입구에서 10분쯤 기다려서 2대의

오토바이에 나누어 타고 온 그의 일행을 만났다. 2사람은 포구에서 만났던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통역을 위해 왔다.

 마을중앙에는 식당 몇 곳과 몇몇 상점들이 있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보통마을이었다.

그 한가운데 그의 집이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마음이 넉넉한 시골 농부였다. 그곳에서

약간의 토마토와 오이, 오렌지를 받았다. 그리고 집 뒤의 나무에서 이름 모를 과일을 더

따주었다. 

 집과 좀 떨어진 비닐하우스를 보러갔다. 토마토줄기는 키가 크고 열매는 작았다. 오이도

마찬가지였다. 키가 2미터가 넘었다.

 점심은 마을 식당에서 먹었는데 음식이 입맛에 맞았다. 돌아오는 길에 산토스 유적지를

잠시 둘러보고 오후3시경 배로 돌아왔다. 수리를 위해 육상에 올려져 있던 배들이 한 척도

빠짐없이 모두 바다에 내려져있었다.

 잠시 후 카타마란 한척이 입항하였다. 양쪽으로는 터키깃발과 미국깃발 그리고 뒤에는

영국깃발을 달고 있어 물었더니 자기는 영국, 아내는 미국국적이라고 하였다. 젊은 부부였다.

줄기에 달린 빨간 토마토와 오이2개 오렌지 하나를 선물했더니 기뻐했다. 옆에 터키

선주들도 전기나 물을 쓰려면 말하라고 하였다. 바쁘지 않은 하루가 또 지나갔다.

2월22일 

 산보를 다녀왔다. 미국배의 젊은 부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켈리포니아

ASA요트스쿨(American Sailing Association)에서 만나 결혼했다고 하였다. 내가 한국에서

ASA요트스쿨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매우 반가워했다. 같은 스쿨을 거친 사람들이어서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실 출발 당시 ASA요트스쿨 메거진 담당자가 나의 기사를 매월 싣기를 원했다. ASA요트스쿨

인스트락터가 단독세계일주 요트여행을 하는 이야기는 좋은 소재거리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런

부탁에 나는 응해주지 못했다. 영어실력 때문이었다. 만약에 기사를 꾸준히 실어 왔더라면

재미있는 일이 가끔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23일 

 저녁에 미국 배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닭고기를 조금 사서 쌀과 감자 그리고 당근과

마늘을 넣고 푹 삶아서 들고 갔다. 켈리포니아식 저녁을 준비했다고 하였다. 넓고 얇은

빵사이에 치즈를 넣고 구운 빵(피자와 비슷)과 토마토와 여러 가지 야채가 들어가 있는

스프를 내어놓았다.

 토마토는 우리나라에서는 과일에 가까운 데 이곳에서는 야채이다. 토마토를 끓여서 먹는게

익숙하지 않다. 심지어 언제가 토마토를 먹는데 나는 설탕을 겻 들여서 먹고 서양인들은

소금을 뿌려 먹었다.

 ‘Are you crazy?'

 서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문화차이다.

 켈리포니아식을 다 먹고 닭죽을 먹었다. 역시 내게는 한국식이 제일이다. 6개월 된

김치도 좀 가져갔는데 그들이 먹기에는 너무 강력했다. 집에서 담권거라 안에 고기젓갈

같은 것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 향이 너무 진하고 오래되어서 외국인이 먹기에는 좀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한 조각씩 먹고는 맛있다고 하였다. 나중에 말했는데 정말

힘들었다고 하였다. 그에 비해서 닭죽을 잘 먹었다.

2월24일 

 아침 나들이를 갔다왔더니 독일배는 떠나고 없었다. 배에 들어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미국배에서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그들을 따라가서 계류줄을 풀어주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30여마일떨어진 케코바지역을 방문하였다가 다시 칼칸으로 온다고 하였다. 미국에 주문한

물건이 늦게 도착하면 다시 볼수도 있을 것이다. 주문한 물건은 지금 미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있다고 하였다. 아직 3일정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아이슬란드 화산폭팔로

비행기 일정이 좋지않다고 한다.

 노동이 주는 휴식의 즐거움을 안 날이다. 무료하기 이를 때 없는 날이었다. 노동없이 누리는

긴 휴식은 나를 병들게 한다. 좀 더 많은 일을 찾아서 해야 할 것 같았다.

 오늘은 한척의 요트도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에는 건너편 레스토랑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있었다. 많은 폭죽을 쏘다대고 자정까지 음악과 함께 축제가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요트가 정박한 곳 부근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밤만 되면 낚시꾼들이 찾아와서

낚시를 하는데 한 번도 고기를 낚는 것을 본적이 없다. 낚시꾼들 이야기로는 이곳 칼칸에는

잡혔다하면 몇 킬로그램쯤 나가는 큰 물고기라고 하였다. 그게 이들을 밤마다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이유였다.

2월25일 

 새벽에 밖이 시끌벅적했다. 배가 한 대 들어왔나 보다하고 아침까지 잤다. 아침에는

우리 배 바로 옆에 누군가가 배를 붙이려고 했다. 나가보니 46피트 베네토(독일사람들4명)였다.

다른 곳이 이미 요트로 꽉 차있었다. 세어보니 모두 10대였다. 전부 베네토였는데 같은 무리였다.

모두 챠트정이었다. 옆에 붙인 독일 사람들의 배도 챠트정이었다. 챠트한 배를 타는 사람들과

크루즈 항해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

 점심때가 지나 차트정 10척은 모두 떠났다. 독일요트는 인트레피드에서 떨어져 나가서

포구암벽에 정박했다. 오후에 부부가 탄 미국요트가 한 척 들어왔다. 오늘은 모두 3척의

배가 칼칸에서 잤다. 이곳에 온지도 일주일이 되었다. 배가 들어오면 때로는 정박장소를

유도하고 계류줄을 받아서 묶어준다. 그들은 이곳에 대해 내게 정보를 물어온다. 내가

하는 행동이 이곳의 터줏대감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4월26일

 주문한 오토파일럿을 확인하였다. 미국을 출발하여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뒤 그곳

중간집배처를 막 떠났다고 한다. 28일까지가 회사가 정한 배송기한이다. 그 기간이

지켜지길 간절히 바란다.

 오늘은 아마추어 무선시스템을 연결하기로 했다.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힌 후 천천히

작업을 했다. 바같쪽 튜너에서 배안쪽으로 선을 넣어 좁은 배 뒤공간으로 들어가

배선을 뽑아냈다. 구멍이 없는 곳은 드릴로 뚫어가며 선실 챠트테이블까지 선을

리드해내었다. 요트에서 작업은 공간이 좁아서 몸을 최대한 꾸겨야한다. 선내의

기계까지 선을 이어와서 연결하는 것만 남겨두었다. 특수한 볼트가 필요한데 가지고

있는 것은 사용한 것이어서 마무리가 좀 복잡하다. 억지로 하면 가능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교훈삼아 정확한 부품을 구해서 잇기로 했다.

 독일요트가 떠나고 그 자리에 거대한 범선같은 요트가 한척 들어왔다. 크기가 족히

100피트는 되어보였다.

[청청]

ㅋㅋ 군대 가는 꿈 그게 젤 무섭어요 ~~

[간비오]

대한민국 성인 남자들중 군대 얘기 빼면 할 얘기 많지 않을 것이지만, 이제 세일링 경험담이야말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도록 멋진 세일링 기원합니다.

[바람과 파도]

윤선장님 해운대 53사단 선배 시군요. 저도 장산의 독수리 출신입니다. 그래서 해운대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싼다는...
100일 항해 하실때 오천항에서 뵙고난 후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윤선장님 또 그만큼 멀리 가 계시는군요. 좋은 항해 바랍니다.

[micron]

미국인 부부에게 그 젓갈김치를 먹이시다니 대단하십니다...ㅎㅎㅎ 그 사람들 얼마나 혼났을까...ㅎㅎㅎ 그런데 영어가 굉장히 많이 느셨을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