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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내용을 발체하여 올리겠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의 이면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읽어보면 아시겠습니다만 정사에 가려진 생생한 뒷면을 맛나게 그려내고 있답니다
김진
: 경기도 양주출신 10세때 가족과 만주 이사,(상전댁 이사로 인해 함께 이사) 통화(일본인이 불령선비지역)에서 이사한 봉천의 중학교 형편상 중퇴 - 일본인 상대로 해야만 돈벌이 가능인식
17살때 늘 들르던 가게의 길건너 헌병분견실에서 처음으로 몸수색당하고 중,일,한 삼국어시켜본 인연으로 헌병 상등병인 김창수(평북 신의주 출신 다섯살 위)와 인연 당시 일본은 이이제이, 자중지란을 전략으로 밀정을 운용했고 헌병대 사환이 됨. - 또 일본인 상사에게 천거, 특무기관의 보조원으로 취직, 봉천 외사과의 촉탁 승진, 1943년 봉천 영사관에 촉탁으로 파견 해방까지 근무
돈벌러 다니면서 모은 재물로 봉천 중심지에 집, 점포마련 아버지 결핵 헐값처분 1945.12조선입국, 바로 아버지 사망
새살길을 찾으러 서울을 어슬렁거림 미군정청이 공식적 유일 권력기구, 일제부터 유력자가 많은 서울은 좌익은 불리하리라 판단,
1946. 2말 쯤 합숙소에서 나와 남대문 시장에서 수제비 사먹으러 길을 건너던 참 횡단보도에서 야 카네다! 하고 불러 돌아보니 만주시절 정보장교이던 이희철 CIC(미군 특무기관)에서 사람을 모으고 있다고 함.
김창수와 헤어진 이듬해 신경으로 전출, 관동군 사령부 산하 정보학교에서 단기 교육
김창수
: 가난한 집안 보통학교 졸업 농업학교 중퇴 후 일본인 공장취직 만주 단동역 직원(사환비슷) - 역내의 헌병분견소를 드나들면서 검문 조력꾼? 관동군 헌병대 군속이 됨? 준사관 오장진급
신의주 출신인데 해방 후 이휘철의 말을 듣고 김진 찾음. 길건너 남대문 시장 선술집에 데리고 감, 봉천서 너말구 삼용이 있잖아 재워주고 밀고해서 소련군과 청년보안대가 몰려왔더라구 약식재판으로 사형선고 받고 함흥에 전범재판소 이송, 취조실에서 졸고 있는 소련군 패고 도망 나왔다.
이희철(리노우에 중위)
나가노 육군정보학교 출신 상해의 코다마 기관에서 첩보경력, 관동군사령부 산하의 정보학교(김진도 포함)에서 교육시킴, 귀국전 여러 상황을 판단 일본내륙의 국부군 첩보대에서 미군동향 파악 “미군은 조선을 일본과 동일한 방식으로 접수한다.” 였다 이를 김진을 만나서 이야기함, 미군정청이 된 조선총독부로 일본군 장교를 만나러 왔다(당시 행정관리들과 일부 장교들은 미군측에 인수 인계 작업중) - 계급장 없는 일본군 사관이 접견. 나가노 정보학교 출신등 서류철에서 군번등 확인받고 환대받음(때마침 당신 같은 사람이 귀한 터) 항복 열흘 뒤에야 인천에 미군 상륙, 일본측 기밀은 파기, 조선통치, 불온분자와 정치인, 친일인사성향등 조선인 행정관리, 경찰 군인정보는 인계됨 며칠 뒤 이정호 미군중사(미국교포)가 CIC의 한국인 조선선발 창설반장
1939년(김진이 특무대 보조원이 된) 관동군은 이십만 병력동원, 만주 대토벌작전 그중 훈춘과 봉천 특무기관은 대소첩보, 독립군 공작이 주임무 또 그 무렵 항일유격대의 근거지였던 조선부락에 대한 초토화작전 유격대소탕을 주임무로 하는 철석부대(간도특설대) 편성 이들이 출동전 첩자들의 정찰과 정보수집 회유공작
김진과 김창수 간도 파견된 이유는 대토벌 작전을 위해 통합정보부 산하가 소속이 됨, 조선인 만주군관과 밀정들 인맥형성 계기 만주 항일군 괴멸 후 일부는 중국 연안쪽 팔로군 흡수 조선의용군, 일부 생존부대는 소련령 연해주로 들어가 조선인 유격대원 동북항일연군 제1군 총사령관 양정우 사살된 후 부검해보니 위장속은 초근목피였다. 1941년 김창수가 소만국경으로 정탐지를 옮긴 것이 이와 관계있었다.
일본이 항복하자 조선출신의 만주군관들 처음 우왕좌왕 하면서 현지 청년들을 모아 조선의용대 또는 광복군을 자칭하는 등 했으나 진주한 소련군에게 무장해제 당하고 흩어짐
G2 : 군사정보 수집 분석하는 정보참모부
CIC(미군특무기관) : 첩보 및 방첩 공작 임무등을 수행
P.104
동양척식회사를 이름만 신한공사로 바꾸고 일제의 재산(적산)을 미군정의 소유로 바꿈
토지 개혁은 커녕 소작료를 조금 낮춤 농민들은 토지의 몰수와 재분배 소작료의 재조정을 요구 갑작스런 배급제의 폐지와 시장자유화정책 추진으로 쌀 소비가 급속히 늘었고 곡가 폭등 일년도 안되 20배, 뒤늦게 배급제로 수매가는 턱없이 낮고 식량 사정이 더욱 악화 노동조합의 파업 산업별로 퍼짐 전평은 총파업선도, 철도, 체신, 해운 전기, 출판등 교도 동맹휴학 → 10월항쟁(1946년)의 도화선이 됨 민족주의계아 중도계를 포함한 각종 성향의 사람들이 망라된 사위와 폭동 -진압후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좌익과 민중 - 아제는 확실하게 친미 친이승만 반공만 살아남을 수 있게됨
서북청년단이 정식발족, 우익청년단체의 전위가 됨
이희철은 경비사관학교(태릉) 2기생입교, 정보장교임관, 동기로는 박정희 중위도
김진은 이정호(실명 이순용 미군중사)반장의 도움으로 집 몇채를 잡음 또 미군은 불교사찰 신사 천리교 사찰등은 개신교단에 일방적 불하, 공장, 산업시설, 백화점 여관 상가등은 상공회의소등을 주축으로 불하됨,
김진의 신당동 집은 마당에 향나무와 편백나무 울타리가 있고 한쪽에는 정갈한 다실도 있었으며 본채는 커다란 복도와 장지문이 달린 다다미방이 연달아 있는 이층집
재미교포 이정호 반장이 도쿄와 원대복귀하면서 공석이된 CIC한국요원 책임자는 김진에게로
1947 3초순의 어느날 김진에게 전령이 준 일일정보고서 며칠전 3.1절 행사에서의 충돌과정을 간략하게 서술 시위인원 규모, 정치적 성격, 주모자와 단체 제주도 전역은 총파업
P.109
4.3 사건
1947.제주 북국민학교에서 3.1절 28주년 기념 제주도대회 경찰 읍내 요로에 배치군중귀가 종용 수만군중이 집결 14시에 거리행진 돌입 14시50분경 시위대가 관덕정 앞을 지나간 뒤에 가도 관람인파 기마경관이 탄 말에 어린이가 채어 소란이 일어남
P.112 저사람이야기로는 공산주의도 민족주의도 아니라는 말이죠 동네의 우발적인 사건 육지와의 조직적인 연결의 증거×김진이 다시 말을 꺼냈다.
제주도는 고립된 곳, 폭동의 시범지역으로 상황을 진전시킨다면? 그 상황을 역이용할 수 있다. 작전장교가 싸늘하게 웄었다 만주사변식인가? 정보장교가 김진의 의견에 동조했다
폭동진압대책에 나오는 기본 내용이죠... 불로 불을 끄는 식.진압과정을통해서 전국의 정치적 상황을 정리해낼 수 있습니다
회의에서 상황악화의 원인으로는 외지에서 증원하러 간 충청남북도 경찰병력이 문제라고 지적되었지만 그점은 묵살되고 오히려 전라남북도의 경찰증원결정했다. CIC본부에서는 우익청년단(서북청년단)의 파견을 권유 상황을 더욱키우겠다는 정치공작적 의도가 분명.
읍내 칠성통의 제주 CIC지부나 관덕정 근처의 군감대 파견소에는 요원외ㅣ에 서북청년단 수십명이 조력자로 드나들었다. 단원들은 카빈총, 권총등으로 무장 구인민위원히와 민전 세력의 일제검거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2500여명의 제주청년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 구금 부상 고문중 사망등 시신바다투기들통, 민심 들끓었다.
47.7월중순에 CIC에서 관리하던 백의사의 염동진(본명 : 염응택)미군용 콜트 45권총을 서북청년계의 젊은이에게 전달했고 그는 며칠전부터 여운형의 집 주변을 맴돌았다 그날 여운형은 명륜동의 친지집에 들었다가 계동 집으로 귀가 하여 옷을 갈아입고 영국팀과의 친선축구경기가 열릴 동대문 운동자에 나갈 참, 명륜동에서 출발하기전에 집에 옷준비하라고 전화, 혜화동로타리에 이르렀을때 파출소앞에 있던 트럭이 갑자기 나오면서 길을 막았다. 급정거한 차량의 뒤범퍼를 딛고 올라탄 저격수가 총 두발,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뒤, 한국문제는 미국을 주축으로 한 한국임시위원회로 넘겨지고 유엔 감시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남한에서만 단독선거 실시예정 김구 김규식은 분단을 막으려 남북협상 제의
예상대로 1948년 4.3에 제주도 무장폭동 발발, 제주도민들은 스스로를 의거자, 미군정측은 와익폭동 간주 토벌, - 군정장관 딘 장군의 정치고문이라는 자가 단시일네에 폭동이 진압되지 않으면 미국의 입장이 난처 코리아의 독립에도 유해,
초토화작전은 인도적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고 전시에도 명령, 묵인한사령관은 전범을 모면하기 어려움 그런대도 미국이 이런 명령을 내린것은 분단의 확정이 시급한 일임을 반증
p.119
P.133
1948. 10월에 일어난 여순반란사건(군반란)
여운형의 암살사건이후로도 남한 단독정권을 반대하며 선거를 거부했던 김구 임정이래 민족지도자의 상징
반란시작 이틀뒤 ‘반란군에게 고한다’ 정부포고문은 남로당과 민족주의 우파를 함께 싸잡아 공격 →조금후 전남현지의 민간인 자익분자들이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군대를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발표 지방에서 신생 정부의 실정에 저항하여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코리아에서 소련의 지배권을 확대하려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음모라는 식이였다.
이승만(대한독립촉성회 →자유당)
김구(한국독립당)과 소장파의원은 이승만정권의 위협요소 즉 미국에 대한 위협요소
미국무성 발표 여순사건의 주체는 남로당
김창수는 국방부 정보국장 겸 육군 총사령부 정보처장인 변중령이 경찰로 부터 넘겨받은 불온분자 명단을 기초로 숙군의 범위를 결정했다.
김진은 상사계급이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미군 CIC고문단의 군속노릇을 계속했다
P.243
4장. 개와 늑대의 시간
어머니는 시장 모퉁이에서 술국도 팔고 소주와 막걸리도 팔아서 양태(실명 조양은) 남매를 길렀다. 점심때는 국밥을, 저녁이 되면 술도 팔았는데 처음엔 술장사를 꺼리던 어머니도 그쪽이 수입이 낮고 아무래도 귀갓길이 손님이 불쑥 들어오는 사례도 많아서 아예 밤까지 장사를 했다
- 오빠야 지금 난리 낫네, 언넘들이 와서 주정하구 장판굿을 벌렸어야
만취한 녀석 셋이서 탁자 위를 쓸어버리고 빈병을 집어서는 조리대 위의 살강에다 던지고 있었다. 와장창하면서 그릇들이 깨지고 굴러 떨어지고 김치 항아리가 박살이 나서 냄새가 진동했다.
- 아짐 우릴 뭘로 보는 거여, 외상은 줄 수 없다? 시방 우릴 못믿겠다는 거여 뭐여, 씨부랄
어머니가
- 아니 이 새끼들이 어서 욕질이여
양태(실명 조양은)가 끼어들었다
- 허 이새낀 또 뭐여?
- 고만하슈.
녀석은 물러나지 않고 양태(실명 조양은)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내리쳤다.
- 어야 가자 가.
- 꼬마야, 너땜에 느이 에미 봐줬다잉
양태(실명 조양은)는 다른 사람들의 눈도 있고 해서 그날은 참아 넘겼다. 양태(실명 조양은)가 그들 또래에서 어떤 아이인지 알았다면 청년들은 절대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태(실명 조양은)는 한번 당한 일은 절대로 잊지 않았다. 몇날 며칠이 걸리든 침착하고 끈질기게 기회를 노리다가 반쯤 죽여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양태(실명 조양은)는 보름지난 며칠 뒤 어둠속에서 신문지로 둘둘 휘감은 쇠파이프를 옆구리에 끼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심가에서 벗어난 곳이라 밤 열시만 넘으면 인적이 끊기는 동네였다.
저쪽 길 아래에서 두런대며 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야, 긍께 니가 나한테 꾼 것은 갚아야제 그냥 띠묵을라나잉.
.....
양태(실명 조양은)는 이제 고등학교 이학년이지만 걸어오는 남자들은 이십대의 청년들. 내친김에 두녀석의 다리 몽댕이를 감쪽같이 꺾어버릴 작정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한달 뒤
같은 또래로 그의 수하노릇을 하던 농고의 태권도 반장 영섭이라는 녀석이 조심스럽게 말을꺼냈다
- 희춘이 형님이 널 좀 보자구 허는디... 위찌 한번 가볼텨?
- 뭔일로 ?
- 내가 알겄냐 꼭 데꼬 오라더만..
희춘은 양테네 농고를 졸업한 뒤 조직에 들어간 바로 윗대 선배.
충장로 어구의 거상당구장으로 찾아가니 또래들 셋이서 쓰리큐션을 돌리고 있었다
- 니가 지산동 아들 손을 좀 봐줬담서? 그 새끼들 다리가 톡 뿌러져 갖고 쌍짚팽이 짚고 다니드마.
- 나는 모르는 일인디라우.
- 야 새까. 뚝 허면 뒷집에 호박 떨어지는 소리제 누가 모르겄냐? 그 작것들 쪽팔려서 제입으로 말도 못한다드만. 건 그렇고잉. 우리 큰형님이 널 좀 보시겠단다.
그렇게 되어 양태(실명 조양은)는 충장로파의 정덕수에게 소개되었다.
- 양태(실명 조양은)라는 꼬마 데려왔슴다. 형님.
- 응 그려, 밥은 묵었냐?
- 개안슴다 형님.
- 네가 시방 몇 살이냐?
- 열일곱입니다.
- 애덜이야 곰방곰방 크니께, 거 누구여 딱부리한테 맡기면 잘 키워줄 텐디....
딱부리 인철은 광주 충장로 파의 행동대장이었다. 이십대 후반의 목포 출신이었는데 또래의 중간층들이 양동시장과 황금동 주점가 등을 맡고 있었다.
다부진 몸매에 딱 맞는 정장을 차려입은 인철이
- 니가 중학교때부터 방 출입했담서, 천안살았냐
- 김천요
양태(실명 조양은)는 신입이 되고 반년도 되지 않아 퇴학 맞았는데 경쟁세력들과 충돌이 잦아 대소수십전이 있은 후 수배기간을 피해 다니다 와보니 학교에는 이미 제적처리가 되어 있었다
한편 홍양태(실명 조양은)와 나이 한살 차이로 엇비슷하게 성장한 강은촌(실명 김태촌)이 있었다. 그를 주위에서 홍깡(양태(실명 조양은))과 구별하기 위해 깡또끼라고 불렀다. 비슷한 시기에 조폭 행동대의 최일선에 등장한 둘은 인연도 묘했고 쌍둥이처럼 인생도 한데 얽히게 된다. 강은촌(실명 김태촌)은 나중에 성장해서 도시의 북쪽을 장악하여 북구파를 형성했다.
두사람이 마주친 것은 충장로파와 북구파의 사각지대인 종합터미널부근 먼저 차지하면 임자인 구역이라 양측의 행동대가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10대들이 먼저 충돌했다.
홍양태(실명 조양은)는 양동시장에서 십대후반 십여명을 이끌고 가서 진압한 다음 똘똘한 애들 윗선으로 지명해서 관리했다.
어느날 시장 사무실에 나가니 구역장 꺽새형이 다급하게 말했다
- 아야, 인자 나오냐? 시방 빠스 차부애들이 깨졌다고 기양 난리 장판굿이 났는디 싸게 가봐라. 애덜 판에 우리가 나설 수도 없고이.
홍양태(실명 조양은)가 눈짓으로 희춘에게 어디 놈들이냐고 묻는 시늉을 했다
- 거 머시여 도끼란가 하는 새끼가 꼬마들 몰고 왔다등만
그들이 십여명의 대오를 짜서 터미널 근방으로 나가보니 서너 명이 깨지고 부러져서 이미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이었다. 그날은 저들의 동선만 대강 더듬고 며칠 동안 뒷조사를 벌여서 북구파의 아랫것들이 모인다는 서방시장쪽으로 대거 침공하기로 결정이 났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고 차량들이라야 6.25전쟁 때 불하받은 지엠씨 트럭뿐이라 모래 실어나르는 차를 빌려서 이십여명이 올라타고 풍향동 뒷골목을 지나 시장부근에 집결했다.
시장동쪽의 화물 내리는 공터였는데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시장통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벌써 한떼가 모여 있었다. 양태(실명 조양은)는 연장 가진 애들을 먼저 앞세우고 뒷전에 서 있는데 키가 작달막하고 어깨가 딱 벌어진 녀석이 저쪽에서 몇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 느들 죽을라고 여글 왔냐? 서루간에 지킬건 지켜야제 .
그래도 머리털 좀 길렀다는 희춘이 점잖게 앞으로 걸어 나가 대꾸했다.
- 서루간에 알만한 사이 겉은디. 느이가 먼저 넘어 왔응께 우리가 온 거 아녀?
- 니가 그집에 오야냐? 꼭 오입쟁이 맹키로 보이구마이.
- 이새끼 주둥이 터졌다고 막 말허네.
희춘이 같잖게 보고는 그에게로 나서는데 서너 발짝 거리에 떨어져 섰던 강은촌(실명 김태촌)이 휘익 공중으로 뛰면서 두발당상으로 올려 찼다. 정통으로 면상을 맞은 희춘이 뒤로 벌러덩 나가 떨어졌다. 우우하면서 달려들려는 패거리를 손짓으로 제지하고 양태(실명 조양은)가 뒷전에서 앞으로 나섰다.
- 나 양태(실명 조양은)여 너는 누구냐?
- 통성명 좋제. 나가 은촌(실명 김태촌)이여
서로간에 상대가 누군지 대번에 알았고 은촌(실명 김태촌)이 다시 말했다.
- 한 반데 묵었으면 다른 한 반데는 양보를 해얄거 아녀.
- 구역은 우리가 결정할 일은 아니고.... 우리도 당했응께 아프지 않겄냐?
- 하 자식 말이 많구마이. 너 쌈하러 왔냐 연설하러 왔냐 함 붙어봐야 할 거 아녀 인마.
깡도끼 은촌(실명 김태촌)의 이죽대는 말에 홍깡 양태(실명 조양은)가 차갑게 웃으며 받았다
- 먼 체육대회 하냐? 야덜아 조져!
양태(실명 조양은)가 손을 쳐들자 마자 열을 지어 섰던 패거리가 각목과 야구방방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은촌(실명 김태촌)은 좌우 펀치로 선두의 둘을 해치우고는 몸을 낮추어 뒤로 빠졌고 그쪽 패거리들도 연장을 휘두르며 몰려나왔다. 은촌(실명 김태촌)네 패는 소식을 듣고 시장부근에 있던 녀석들을 급히 모아온 터라 양태(실명 조양은)네 숫자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정예도 아니어서 금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중간이 뚫리면서 칠팔명이 널브러지자 남은 대여섯명은 뒤로 주춤 주춤 밀리다 일시에 달아나기 시작했다.
양태(실명 조양은)가 시장어귀 골목 어귀에서 패거리들을 불러 모았다.
- 어야. 냅둬라 깡도끼? 차식 벨것두 아니구마.
맞아서 널브러진 일고여덟 명 가운데 북새통에 몇놈 달아나고 다섯놈이 머리통에 피를 철철 흘리며 다리가 부러졌는지 옴쭉도 못하고 주저 앉아 있었다. 은촌(실명 김태촌)에게 발로 차여 코피가 터진 희춘이 야구방망이를 집어 번쩍 치켜드는 것을 양태(실명 조양은)가 말했다.
- 자네 분풀이는 뒀다 하소. 글고 너는 뭐시냐. 도낀가 촌놈인가헌테 가서 알려라이.
양태(실명 조양은)가 터진 머리통을 두손으로 감싸쥐고 피투성이로 앉은 놈에게 일렀다
- 느그 아그덜 우리가 데꼬 갈텡께. 양동 오륜탁구장으로 찾으러 오라구 말여.
홍양태(실명 조양은)는 트럭에 네 놈을 싣고 자기네 구역으로 돌아와 탁구장으로 몰려갔다. 피투성이가 된 녀석들을 탁구대가 놓인 홀 안쪽의 사무실에 처넣으려니 주인이 쫓아 들어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 야, 느그 합숙소로 가야지 여그서 일 치먼 우짤라구 그러냐.
- 오늘 이 집 몽땅 전세여. 다이값 주먼 될 거 아뇨?
눈을 부라리면서 희춘이 말하자 주인은 투덜거렸다
- 느그들 땜시 탁구장도 못해 먹겄다. 단속 나오면 대번 폐업인디 누가 채금질 거여.
양태(실명 조양은)가 터진 안면을 씻은 희춘과 함께 시장 사무실로 가니 구역장인 꺽새형이 앉았다가 흡족한 얼굴로 반겼다.
- 우리 체면이 섰구마. 인자 딱 금 기리갖고 빠스 차부서 광주천 이남은 우리 구역여 딱부리성(인철)이 느그들 술 묵으라고 위로금 보냈드만.
- 똘마니들 닛을 잡아왔는디라우.
양태(실명 조양은)가 보고하자 꺽새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기합 좀 넣어주고 보내 뻔지지 멋허러 데꼬 왔냐?
- 아녀라우 맞았다는 종합터미널 아그들 불러다 기심 좀 살래 줄라고요
- 낭중에 협상 들올텐디 딱부리성 난처하지 않게 잘해라이.
희춘이 옆에서 양태(실명 조양은)의 의견을 거들었다
- 빠따 좀 돌린다고 무슨일 있을랍디여.
꺽새형은 그가 밉다는 듯이 곁눈질로 흘겨보면서 핀잔을 주었다.
-얀마 아그덜 앞에서 콧대가 나갔는디 큰소리여? 넌 새꺄 좆잡고 반성이나 혀라. 글고 병원가서 엑스레이 찍어야제. 냅두면 김기수맹키로 코가 휘어부러.
-오메 코피가 자꾸 나네. 얼음찜질이라도 해야 쓰겄다.
희춘이 사무실에서 나가자 꺽새가 픽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 펴엉신, 실력이 안되면 연장질이라도 한달지 깡다구가 있달지, 저래갖고 우아래 관리가 되겄냐?
양태(실명 조양은)가 담배 한 대를 물고 앉았는데 방금 나갔던 희춘이 아이 하나를 끌고 되돌아왔다.
-도끼가 애덜 찾으러 오겠담서 전화가 왔는디요.
-얼루 와야?
- 탁구장으로 온답디다.
- 니가 접대혀라. 나넌 이따가 슬슬 가볼 탱께.
꺽새가 그렇게 이르자 양태(실명 조양은)는 탁구장으로 가서 아이들을 불러모으고 탁주 두 양동이에 튀김이며 안주붙이를 시장통에서 사다가 마셨다. 깡도끼 강은촌(실명 김태촌)이 온다는 시간에 얼큰해진 애들이 입구에서부터 늘어서고 일부는 광주천 다리목까지 나아가 살폈다. 은촌(실명 김태촌)이 단신으로 터덜터덜 걸어서 학생의거탑을 지나 시장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누군가 발견하고 알려왔다.
- 혼자 오는디 곽 잡아와부러?
- 냅둬라. 지 발로 들오게....
양태(실명 조양은)는 게임 보는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은촌(실명 김태촌)이 좌우로 연장을 들고 선 아이들 사이를 거침없이 지나서 탁구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안을 둘러보다가 양태(실명 조양은)를 발견하고 앞으로 다가왔다. 은촌(실명 김태촌)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 맡겨둔 물건 찾으러 왔는디.
- 긍께 맨손으로 와야?
양태(실명 조양은)도 이죽거리듯 말했고 은촌(실명 김태촌)이 접는 의자를 끌어다 옆에 앉았다.
- 치료비넌 피차마차 역마차고잉. 오늘은 인자 너덜이 이겼응께 술 가져오니라.
험상궂은 얼굴을 풀지 않은 양태(실명 조양은)의 수하가 양동이를 거칠게 내려놓았고, 양태(실명 조양은)는 위에 띄워놓은 바가지로 탁주를 그득 떠서 알루미늄 공기에 따라 은촌(실명 김태촌)에게 내밀었다. 둘은 서로 힐끗 보고는 각자 단숨에 마셨다.
- 니가 그렇게 쌈을 잘함담서?
양태(실명 조양은)가 묻자 은촌(실명 김태촌)이 되받았다.
- 나는 누구맹키로 뒷전에서 서서 구경은 안하구마.
양태(실명 조양은)가 눈을 날카롭게 떴다가 가볍게 웃고는 눈가의 힘을 풀어버렸다.
- 나가 쌈허기 싫어서 그런다. 맬겁시 힘 빼기 싫어서 니가 맨손으로 왔응께 우리도 값을 받아야 안 쓰겄냐.
양태(실명 조양은)가 둘러선 수하들에게 물었다.
- 터미널 아그들 았냐?
머리에 붕대 감고 다리에 깁스를 한 녀석들 셋이 절뚝이며 앞으로 나왔다. d양태(실명 조양은)가 눈짓을 하자 아이들이 사무실에 꿇려놓았던 은촌(실명 김태촌)네 수하 네명을 끌어다 탁구대 앞의 공간에 엎드려 뻗쳐를 시켰다. 희춘이 지켜보다가 야구방망이를 털썩 집어던지자 터미널에서 온 똘마니 중의 하나가 집어들었다. 은촌(실명 김태촌)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 머시여. 니덜이 시방 빠따를 돌린다는 거여?
- 안거서 지둘러. 잠깐이먼 끝날팅겨. 야 느그들 각자 한 놈에 열 대씩 돌린다 알겄냐?
옙 하더니 방망이타작이 시작되고 하이고 데고, 그런 소란이 없었다. 은촌(실명 김태촌)은 분을 참느라고 자작하여 탁주를 따라 마시더니 저 보는 앞에서 매타작이 끝나자 벌떡 일어났다.
- 인자 빗지고 간다마는 갚을 날이 오겄지
그는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놈을 일으키고 꾸짖으며 기중 못 걷는 놈을 부축하여 나가면서 양태(실명 조양은)를 쏘아보고 말했다
- 너 나한테 걸리믄 죽는다.
희춘이 야구방망이를 손으로 잡아 비틀어 빼앗고는 강은촌(실명 김태촌)에게 말했다
- 너하구는 길이 다른게 넘어오지 말그라이
홍양태(실명 조양은)에게 그날부터 맞수가 생기게 되었다. 구역분쟁은 결국 충장로파의 행동대장인 딱부리 인철과 북구파의 영재가 보스를 대신해서 회합을 갖고 타협을 했다. 충장로측이 럭키백화점을 포기하는 대신 종합터미널은 접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타협은 형식에 지나지 않았고 앙숙이 되어 버린 두파의 수하들은 서로를 찾아서 눈에 불을 켜고 골목을 뒤지고 다녔다. 먼저 양태(실명 조양은)가 검거되고 뒤이어 은촌(실명 김태촌)도 후리가리에 걸렸다. 그맘때에야 미성년이었으니 오래 살아봐야 모두 일년미만짜리 징역이었고 선배들은 애들이 크면서 고뿔이나 홍역치레를 하듯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빵을 들락날락하고 별이 늘어갈수록 이웃 도시와 다른 도에까지 그들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하고 안면도 넓어졌다.
홍양태(실명 조양은)는 이십대 초반에 벌써 딱부리를 제치고 행동대장이 된 뒤 오랫동안 별러온 대로 태권도 선수 출신 영섭과 칼잡이 임철등 또래와 후배들 여섯명을 데리고 60년대말에 상경했다.
서울에 목포출신 선배 오종오와 박종식 등이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는 무교동에 박은 북창동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홍양태(실명 조양은)가 얻은 일자리는 선배들이 내놓은 무교동의 주류도매관리였다.
북창동과 무교동은 고급요정과 일식집이며 바가 많고 이른바 방석집이라 불리는 대중적인 요정도 많은 서울의 최대 환락가였다. 북창동에서 무교동과 광교를 거쳐 종로 화신 앞까지가 대강의 구역이었는데, 군사혁명이후 골목이 극심한 판도의 변화를 겪어 종로와 명동 일대는 전통적인 세가 남아있었지만 호남세가 약진한 지역으로는 구세력들이 좀처럼 들어오지 못했다. 호남패가 이렇게 자리잡게 된 것은 객지타관에서 밀리면 죽는다는 식의 억척같은 생활력과 연대감 덕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홍양태(실명 조양은)도 늘 농담하듯
- 우리가 가진 건 달랑 두쪽뿐인디 빨가벗고 뛰어야 안쓰겄냐
오종오와 박종식은 양태(실명 조양은)가 후배들을 데리고 상경하자 요정에서 조촐한 환영식을 열었다.
오는 양태(실명 조양은)의 짧은 상의와 ‘삐뚜름한 넥타이 꼴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혀를 찼다.
야 이 사람아 그 주제비꼴이 뭐여? 양복이라도 몇벌 맞춰야 쓰것다.
홍양태(실명 조양은)는 무교동 한복판에 여관을 잡아두고 옆방에는 아우들을 묵도록 했다. 무교동과 북창동일대의 바나 요정의 관리인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들은 교대로 오전에 양태(실명 조양은)를 수행하여 전날 내간 주류대금을 수금하러 다녔다.
전용 지프차의 앞자리에 양태(실명 조양은)가 타고 뒤에는 덩치 큰 아우 둘이 버티고 앉앗다. 지배인격이 나와서 정중하게 맞고는 계산대에 가서 어제의 판매대금을 내주었다. 아우들이 들고 간 보스턴 백이 현찰로 빵빵해질 때가지 모든 집을 돌아다녔다. 수금을 마치고 점심먹고 주류도매점에 나가면 아우들과 일꾼들이 트럭에 실어온 정종을 조심스럽게 개봉하여 드럼통에다 모조리 붓고는 물과 주정을 타서 새로 제조했다. 기술자들에게는 가짜술를 제조한 특별일당을 지급했다. 오후 네시경 다시 밀봉한 정종을 차에 싣고 각 술집에 보급하러 나가면 그날 일과 는 끝이었다 목금토 삼일만 신경 쓰면 나머지는 좀 한가했다. 조직의 사무실은 무교동에 있었는데 오종오와 박종식이 번갈아 지키거나 함께 있을 때도 있었다. 경리가 한명 나머지 사원들은 모두 비번의 조직원들인 셈이었다. 그들은 유흥가에서 일을 하며 교대로 사무실에 나와서 경비를 섰다. 수하 두명과 수금한 보스턴백을 들고 올라가니 박종식이 낯선 사내와 함께 앉아 있다가 손짓을 했다.
- 수고가 많다지 나 조창호라 칸다
조창호는 원래 도꼬다이 주먹이었는데 맞짱으로 그를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 역시 고등학교 시절부터 싸움으로 또래들 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십대 때부터 권투와 씨름, 유도를 배웠고 태권도를 배우기도 했는데 몇 년을 단련한 것은 아니고 반년에서 몇 개월씩 이것저것 알짜 기술만을 연습했다. 그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오는데 따라 대응방식을 다르게 하여 허점을 찔렀다
중앙청과시장에서 친척 일을 도우다가 경비과장을 맡았다. 당시에는 모든 채소와 청과물이 화물열차로 서울에 집결했기 때문에 양아치 각설이 뚜쟁이 등이 시장으로 몰려들어 하루에도 몇차례씩 정리에 나서야 했다. 그는 모두 맨손으로 맞상대를 해서 차례로 쓰러트렸다
부자지 차기는 물론이고 눈 찌르기 명치 관자놀이 인중 같은 급소 치기에서 장딴지 박아치기, 발등 밟기, 턱에 인수먹이기, 목젖 지르기 신장이 있는 잔허리 치기 같은 싸움기술이 동원되었다. 어찌나 빨리 끝내는지 구경꾼들은 조의 잽싼 동작을 놓치고 싱거운 느낌을 가졌다한다. 그는 혼자 시장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유명해져서 대구로 낙향해 있는데 오종오과 박종식이 자리잡고 연락한 뒤 다시 상경했다.
그렇게 후배들은 북창동 무교동일대의 바나 요정의 관리인으로 나가게 되었다. 교대로 오전에 양태(실명 조양은)를 수행하여 전날 내간 주류대금을 수금하러 다녔다. 수금을 마치고 돌아오면 주류도매점에 나가면 아우들과 일꾼들이 트럭에 실어온 정종을 조심스럽게 개봉하여 드럼통에다 모조리 붓고는 물과 주정을 타서 새로 제조했다. 이른바 가짜술 조직원들은 사무실이 있는 무교동의 이층(아래층은 다방) 그들은 각자 유흥가에서 일하며 교대로 사무실 경비를 섰다. 보통때처럼 수하 2명을 데리고 수금한 보스턴백을 들고 올라가니 박종식이 낯선 사내와 함께 앉아 있다가 손짓을 했다.
어 양태(실명 조양은) 오나? 인사 올려라 우리 큰형님이시다. 그는 어깨가 딱 벌어지고 날렵하게 보이는 중년남자였다. 수고가 많다지 나 조창호라 칸다
형님은 전에 서울 계시다가 대구로 낙향하셨는데 이참에 우리럴 두우러 오셨구마 잘 모셔야 헌다. 알겄냐?
조창호는 원래 도꼬다이 주먹이었다 맞짱으로 그를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는 고교 때부터 권투와 씨름 유도 태권도를 배우기도 했는데 알짜 기술만을 연습, 서울변두리 대학에 입학, 학부가 폐지되자 자연스럽게 중퇴가 되었고 중앙청과물시장에서 도매상을 하는 친척아저씨의 일을 거들면서 지냈다. 시장은 양아치, 뚜쟁이 각설이 등이 시장으로 몰려들어 하루에도 몇차례식 정리에 나서야 했다 호가 나자 사대문 근처의 건달들이 도전하러 찾아오기 시작햇다. 부자지 차기는 물론이고 눈 찌르기 명치 관자놀이 인중같은 급소 치기에서 장딴지 박아치기 발등 밟기, 턱에 인수먹이기, 목젖 지르기 신장이 있는 잔허리 치기같은 싸움기술이 동원되었다. 그것도 맞서자 마자 1분 이내에 타격을 하는 것이다. 혼자 너른 시장바닥을 감당하기는 너무 유명해졋다는 걸 깨닫고 일단 퇴각하고 낙향했었다. 이들은 주류와 청과물 생선 등의 도매권을 장악하는 것을 이권이라 보았고 특히 12월 김장철이 대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종식과 오종오도
p305
당시는 강남개발이 이미 시작되어 한강건설의 압구정동 아파트 분양사건이 말썽이 나기 시작한 때 강북 중심가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고 유흥가규제로 강남이사준비 신사동 압구정동 논현동 역삼동 일대에 호텔과 숙집 건물이 한달이 멀다하고 생김,,, 강남에 건설되는 호텔의 이권을 선접하려는 조폭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기 시작, 갈등
행동대장인 현수에게 영업상무(북창동시절부터 잘 안다는 )가 찾아와 호텔에 입주하는 나이트클럽을 동업하자는 애기였다. 이 계통에 빠곰이이라 우리말을 잘 들을 것 같습니다
영업상무는 그렇고 업주는 모델하던 젊은 여자요, 호텔동업계약이란 하찮은 일이었으나 후배들의 구역관리에 체면을 세워주는 업무에 지나지 않음
1979년 10.26이 일어나고 유신체제가 끝났다. 홍양태(실명 조양은)는 서울에서 어느 파보다 우세하게 구역을 점령하고 있었고 지방도시도 대도시는 거의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이었다. 계엄령이 조폭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으나 5.16 군사정변 후 건달들이 어떤 참혹한 꼴을 당했는지 자세히 들었다. 이듬해 봄 강남의 조직 사무실에서 현수는 순천 중앙파의 보스를 데리고 왔는데 그가 서울에 올라와 있는 동안 바로 아래급 행동대장이 반기를 들었다는 것. 일벌백계 건의 (현수가) 솜씨 좋은 싸움꾼 십여 명을 거느리고 행동대원은 광주에서 보충해서 현지에 합이 육십 여명 순천의 터미널 뒤편 공터에서 사시미칼 낫 쇠파이프 등으로 하나가 죽고 중태에 부상자는 각각 이십 여명 정도였다. 본서에서 나온 기동대까지 끼어들지도 못한 무서운 싸움판 홍양태(실명 조양은)는 광주외곽의 어느 여관 은거 군경합수부의 추적으로 검거, 현수는 때마침 급한 일로 상경한 직후여서 강원도로 도피 은거(계엄해제) 신군부는 광주항쟁을 강경진압하고 연이어 사회치안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삼청교육대 설치, 깡패소탕을 선언 강은촌(실명 김태촌)도 군법재판소에 추가 기소됨(범죄단체 조직협의)
첫댓글 감사합니다.
길어서 책 한권 읽는것 같습니다.
등급이 낮아서 올려봤습니다
김진은 현윤석렬대통령집자리인 옛 삼풍백화점회장입니다
이휘철은 장영자남편인 이철희
홍양태는 우리나라 건달중 회칼로 상대편 두목의 무릅을 난자한 사보이 호텔사건의 조양은 깡패 김태촌 박정희대통령등 여러인물들이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