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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아산 마하위하라 보리수관욕
불과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주 오랜 옛날에 일어난 일 같다. 지난주 월요일에 있었던 사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부처님오신날은 사월보름 어제였다.
해마다 두 번 부처님오신날을 쇤다. 마치 신정을 쇠고 또 다시 구정을 쇠듯이 이중과세하는 것과 같다. 사월초파일에는 한국불교 절에 가고 사월보름날에는 테라와다 사원에 간다.
어제 사월보름이었다. 한국불교에서는 스님들의 하안거가 시작되는 날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사월보름은 웨삭데이라 하여 홀리데이(Holy day)이다. 마치 기독교의 크리스마스처럼 성스러운 날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테라와다불교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불교는 동아시아의 대승불교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임제종 계통의 선불교이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테라와다불교도 전래되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테라와다 선원이나 사원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충남 아산에 있는 마하위하라 사원이다.
어제 웨삭데이를 맞이하여 마하위하라에 갔다. 일감이 밀려서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운전대를 잡았다. 더구나 그제 청파동 담마와나 선원에서 열린 한국테라와다불교 붓다의 날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일을 핑계로 가지 못한다면 허물이 될 것 같았다.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년에 한번 있는 행사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아침 일찍 백권당에 와서 선작업을 했다. 마하위하라에 다녀 와서 또 일하면 되는 것이다. 오후 2시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돌아와야 한다.
오전 7시 반에 차를 몰았다. 안양에서 마하위하라까지는 65키로 거리에 1시간 20분이다. 평일 출근 시간이어서 군포시에서 막혔다. 그러나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거침 없이 쾌속 질주했다.
마하위하라에는 9시 20분에 도착했다. 웨삭데이 행사는 9시 반부터 시작된다. 9시 반에 보리수 관욕이 있고 10시부터 법회가 있다.
마하위하라, 일년만에 다시 와 보았다. 작년 이맘 때 오고 처음이다. 그 사이에 변화가 있다. 갑자기 넓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도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입구에 두 마리 사자상이 눈에 띄었다. 작년에 보지 못하던 것이다. 스리랑카가 사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사자는 스리랑카를 상징한다. 마치 우리나라 사원 입구에서 볼 수 있는 금강역사상이나 사천왕상을 보는 것 같다.
입구에는 커다란 소나무도 한 그루 있다. 작년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마치 벌판에 서 있는 듯한 스리랑카 풍의 사원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마하위하라는 아산 음봉면에 있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 있는 사원이다. 국도 변에 있는 사원으로 주변은 논이다. 논에는 물이 가득 차 있다. 모내기 하려는 것 같다.
마하위하라는 드넓은 개활지에 있다. 주변에는 건물이 없어서 마치 독립가옥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다. 들어가니 사원은 잘 정비되어 있다. 우리나라 연등처럼 생긴 등이 이곳 저곳 걸려 있다. 꼬리가 여러 개 있는 마치 연처럼 생긴 사각등이다.
어제 사월보름날은 평일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왔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아마도 한국명상원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묘원선생이 해마다 웨삭데이날 참석하기 때문이다.
아산으로 떠날 때 준비한 것이 있다. 담마끼띠 스님에게 줄 꿀을 준비 했다. 그리고 이날 참석자에게 줄 이미우이음악씨디 스무 장을 준비했다.
날씨는 맑고 깨끗했다. 햇살은 쏟아져서 마음도 상쾌했다. 비록 평일날 행사를 하지만 이날이 진정한 부처님오신날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5월 4일 웨삭행사를 가졌다. 스리랑카 이주민노동자들이 평일날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당겨서 행사를 가진 것이다. 무려 500명 가량 되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웨삭데이날 마하위하라는 한산했다. 사오십명 정도 되는 한국사람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이날이 진짜 부처님오신날이다. 그것도 성도와 열반을 동시에 기리는 트리플데이인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관불의식이 있다. 아기부처님 머리 위에 물을 부어 주는 의식을 말한다. 사월초파일 절에 가면 비빔밥을 먹는 것과 함께 빠지지 않는 의식이다. 그러나 마하위하라는 다르다. 보리수 관욕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보리수 관욕은 9시 반부터 시작되었다. 사원 한 켠에 온실이 있는데 그곳에 보리수가 있다. 높이가 4-5미터에 이르는 큰 보리수이다. 일년 만에 보았는데 더 커진 것 같다.
보리수의 역사를 알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마하위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보리수는 법당 안에 있었다. 화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해 부터인가 온실로 이식되었다.
보리수는 생장이 빠른 나무 같다. 온실에서 급속도로 자랐다. 법당 실내에 있던 보리수가 불과 몇 년 만에 급속성장을 하여 천정에 닿을 기세이다. 아마 매년 온실의 천정을 높이는 것 같다.
스리랑카불교에서 보리수는 부처님의 상징과도 같다. 이는 무불상시대 때 보리수가 부처님을 상징했던 전통이 그대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스리랑카에서는 불상보다도 사리탑보다도 보리수를 더 중요시 여기는 것 같다.
보리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불상이나 사리탑은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보리수는 부처님을 상징한다. 또한 보리수는 가르침을 상징한다. 보리수는 승가를 상징한다. 보리수는 불법승 삼보를 상징한다.
불교인들은 부처님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언젠가 정법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는 과거에 부처가 수없이 출현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처가 출현하면 정법시대가 된다. 그러나 정법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후대를 내려 갈수록 변질된다. 마침내 사라져 버리고 만다. 다시 깜깜한 암흑의 시기가 된다. 그러다가 한량없는 세월이 흐르면 또다시 부처가 출현한다. 또 다시 정법시대가 시작된다. 그러다가 또다시 변질되어서 사라진다. 이러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상윳따니까야 12번 상윳따에서 보는 과거칠불의 출현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부처의 출현은 희유한 일이다. 그러나 정법이 머무는 시기는 잠깐이다. 그래서일까 이날 법회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실려 있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인간의 수명 얻기 어렵고
정법을 만나기 어렵고
깨달은 이의 출현도 어렵다.”(Dhp.182)
법구경 182번 게송이다. 붓다의 날에 딱 맞는 게송이다. 도덕적으로 많은 착하고 건전한 업을 쌓아야 비로소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사람 몸 받기 어렵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백세이다. 인간은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한다. 또한 업대로 살기 때문에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죽어야 하는 자가 사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진리를 설하는 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설령 정법시대라도 변방에서 태어난다면 접할 수 없다. 외도의 견해에 빠져서 평생보낸다면 역시 정법을 만나기 힘들다. 많은 겁을 지나더라도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올바른 가르침을 듣는 다는 것은 어렵다.
부처님의 출현은 만나기 어렵다. 왜 그런가? 부처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디빵까라붓다 앞에서 수기를 받은 후에 사아승지십만겁 동안 십바라밀을 닦았다. 수천꼬띠의 한량없는 겁을 지나더라도 부처의 출현은 매우 희유하고 드문 일이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었다. 보리수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한다. 이런 보리수는 무불상시대 때 부처님의 상징과도 같았다.
불교인들은 절에 가면 불상에 예배한다. 흙이나 나무, 철로 된 부처님 상에 예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리랑카 사람들은 살아 있는 보리수에 예경한다.
보리수는 살아 있는 식물이다. 생명이 있는 식물은 잘 돌보고 잘 가꾸어야 할 것이다. 만일 잘 돌보지 못하면 보리수는 시들면서 죽어 갈 것이다.
보리수는 불교를 상징한다. 보리수가 시들면 불교도 시든다고 볼 수 있다. 보리수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불교도 사라질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보리수는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돌보아야 할 생명수이다.
마하위하라 보리수 관욕
보리수에는 생명이 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성장을 의미한다. 잘 가꾸고 보살피면 점점 커나갈 것이다. 마침내 거대한 보리수가 되었을 때 부처님 가르침도 널리 퍼지고 또한 불교도 성장해 갈 것이다.
보리수는 불교의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 즉 정법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과 같다. 보리수가 성장하면 부처님 가르침도 또한 성장한다. 반대로 보리수가 시들면 불교도 쇠퇴할 것이다.
마하위하라 온실에서 보리수 관욕을 했다. 사람들은 스님들의 낭송과 함께 차례로 보리수에 물을 부었다. 부처님 가르침이 오래 오래 지속되도록 발원하는 것과 같다. 불상에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바라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웨삭법회는 10시부터 시작되었다. 이덕권 선생이 사회를 보았다. 삼귀의와 오계, 구공덕게를 빠알리어로 낭송했다. 이어서 마하위하라 주지 담마끼띠 스님이 법문했다.
담마끼띠 스님은 스리랑카사람이다. 그런데 스님은 한국사람보다 한국말을 더 잘한다는 사실이다. 스님은 한국말로 웨삭데이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했다.
웨삭데이는 유엔이 인정하는 공식 부처님오신날이다. 이날은 부처님 탄생뿐만 아니라 성도, 열반을 동시에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전세계적으로 이 날은 성스러운 날로 간주되어서 기념행사를 한다. 또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사월보름을 왜 웨삭데이라 하는가? 세 가지 사건 즉, 탄생, 성도, 열반을 기념하는 날인 것이 가장 크다. 그래서 담마끼띠 스님은 웨삭데이에 대하여 가장 뛰어난 날이라고 했다. 또한 이 날보다 더 좋은 날은 없다고 했다. 웨삭데이는 최고의 날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웨삭데이는 평일이다. 공휴일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오기 힘들다. 그럼에도 마하위하라에 사람들이 왔다. 이에 담마끼띠 스님은 일부러 평일인 월요일에 찾아 준 것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말했다.
마하위하라에서 평일임에도 웨삭데이 행사를 했다. 담마끼띠 스님에 따르면 한국명상원 묘원 선생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삼 년 째 행사를 하는 것이다.
테라와다 사원에서 붓다의 날 행사는 주말에 열린다. 올해의 경우 일요일에 열렸다. 하루를 앞 당겨 열린 것이다. 이는 평일에 열리기 힘든 것임을 말한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을 감안하여 토요일이나 일요일 행사를 갖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웨삭데이는 기념일로 지정될 수 있을까? 공휴일로 지정되어 행사를 할 수 있을까? 대승불교권인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테라와다불교의 교세가 강해진다면 공휴일이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표가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담마끼띠 스님은 바가와(세존)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했다. 구공덕게에서 핵심은 바가와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바가와인가? 이를 세 가지 이유를 들어서 말했다.
첫째, 바가와는 존경과 존중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라는 뜻의 세존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둘째, 바가와는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분이라고 한다. 이는 바가와의 뜻이 끊거나 자르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탐, 진, 치리는 뿌리가 되는 번뇌를 끊는 것이다.
셋째, 바가와는 분리해서 말씀하신 분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는 분별론자를 뜻하는 ‘위밧자와딘(vivajjavādin)’이라는 말에 근거한다. 미세하게 분리하여 설한 것을 말한다.
한국불교에서는 분별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분별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분별을 설했다. 심지어 자신은 ‘분별론자’라고 말했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나는 분별하여 말하는 사람입니다.(Vibhajjavādo kho aham ettha)”(M99)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부처님이 분별론자인 것은 대념처경에서도 확인된다. 이는 “예를 들어, 수행승들이여, 숙련된 도축업자나 그의 도제가 소를 도살하여 사거리에 따로따로 나누어 놓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이 몸을 이와 같이 ‘이 몸속에는 땅의 세계, 물의 세계, 불의 세계, 바람의 세계가 있다.’라고 세계로서 확립되고 구성된 대로 개별적으로 관찰한다.”(D22)라고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위빠사나 수행은 명색을 구분하여 새기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16단계 지혜 가운데 1단계는 ‘나마루빠빠릿체다냐나(nāmarūpa pariccheda ñāna)’가 된다. 여기서 빠릿체다(pariccheda)라는 말은 ‘measure; limit; boundary’의 뜻으로 한정하다는 뜻이다. 정신과 물질로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을 말한다.
발을 뗄 때는 정신과 물질, 물질과 정신 작용에 따른다. 의도가 먼저 있어서 발을 뗀다. 이때 의도라는 정신을 새겨야 한다. 또한 움직임이라는 물질을 새겨야 한다. 이렇게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여 따로따로 새기는 것이 위빠사나 1단계에 해당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몸과 마음을 내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지 않고 덩어리로 아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내 몸, 내 마음이라고 한다. 오온을 내것으로 보는 것이다.
위빠사나는 개념(paññatti)이 아닌 실재(paramattha)를 보는 수행이다. 나라는 개념을 부수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명색으로 구분하여 새기는 것이 출발점이다.
담마끼띠 스님은 분별론자로서의 부처님에 대하여 재미 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아소까 대왕 당시 3차 결집이 있었는데 그때 외도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법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하여 분별론자라고 말하지 못하면 환속시켰다고 한다.
바가와에 대하여 세 가지 의미가 있음을 알았다. 특히 바가와가 분별론자를 말하는 것을 알았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교학의 대가와도 같은 담마끼띠 스님은 “분리하고, 분석하고, 분별하여 설했기 때문에 바가와(세존)이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법회에서 담마끼띠 스님에 이어 두 분의 법문이 더 있었다. 한국명상원의 묘원 선생과 동국대 명예교수인 박인성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묘원선생은 오늘날 웨삭데이 법회가 있게 한 사람이나 다름 없다. 웨삭데이가 평일에 있어서 열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대부분 일요일에 당겨서 행사를 치룬다. 그럼에도 평일에 행사를 하는 것은 이날이 진정한 부처님오신날이고, 이 날이 진정한 성도의 날이고, 이날이 진정한 열반의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묘원선생은 자신의 수행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거해스님을 만나서 위빠사나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미얀마에 가서 마하시선원에서 4년 수행했고, 쉐우민선원에서 3년 수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곡선원에서 십이연기를 배웠다고 한다.
묘원선생은 수행자의 자만에 대하여 말했다. 교학보다는 수행에 전념한 사람은 수행자의 자만이 일어나기 쉬움을 말한다. 이는 교학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쉽다.
왜 수행자의 자만이 생겨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묘원선생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것이 큰 이유라고 했다. 그 결과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담마끼띠 스님으로부터 교학을 배웠더니 삶이 풍성해졌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자만은 있다. 학식이 있는 자에게는 배운 자의 자만이 있고, 막대한 부를 이룬 자에게는 부자의 자만이 있고, 가문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자는 태생의 자만이 있다.
자만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라며 은연 중에 나타난다. 심지어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도 나타난다. “내가 수다원인데.”라는 자만 같은 것이다.
자만은 미세한 번뇌에 속한다. 그래서 자만은 아라한이 되어서나 사라진다. 이렇게 본다면 수행자에게 “나만큼 수행한 자 어디 있으랴?”라며 자만이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나에게도 자만이 있다. 그것은 글 쓴 것에 대한 자만이다. 지난 19년 동안 팔 천개의 글을 썼고 또한 백오십이 권의 책을 만들었다고 떠들어 댔다. 이런 것도 것도 자만일 것이다. 아니 교만에 가깝다.
나의 자만에 부채질 하는 경우도 있다. 이날 법회에서 이덕권 선생은 내빈을 소개하면서 나에 대해서도 말했다. 사부니까야를 다 읽은 사람, 글을 수천 개 쓴 사람, 인터넷 검색하면 글이 걸리는 사람 등으로 소개한 것이다. 더구나 일어나라고 했다. 일어나서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건강의 교만, 젊음의 교만, 삶의 교만도 있다. 그러나 모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만은 헛된 것이 된다. 건강은 질병에 종속되기 마련이고, 젊음은 늙음에 종속되기 마련이고, 삶은 죽음에 종속되기 마련이다.
수행자에게 자만이 있다면 학자의 자만도 있을 것이다. 삼장을 모두 암기하고 강의하는 삼장법사에게도 당연히 자만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승을 비난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체험 영역 밖에 있는 것이다.
묘원선생은 한국테라와다불교의 산실과도 같은 한국명상원을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명상원을 거쳐갔다. 이날 마하위하라에는 한국명상원 사람들이 많이 왔다. 이처럼 수행을 오래 한 묘원선생에게서 수행자의 자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으로 솔직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세번째로 박인성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동국대에서 정년을 맞이한 명예교수이다. 선생에 따르면 교학의 대가나 다름 없다. 중론, 아비달마, 구사론 등의 교학을 전공했다. 또한 산스크리트어를 익히고 티벳불교도 공부했다. 선사들의 화두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박인성 선생은 대승불교와 초기불교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용수의 중론 게송 하나를 들었다. 이는 “까띠야나에게 한 설법에서 ‘있다’와 ‘없다’ 둘이 있음과 없음을 잘 알고 계신 세존에 의해 부정되었네.”(근본중송, 15장 7번 )라는 게송을 말한다.
선종에서 무자 화두가 있다. 박인성 선생에 따르면, 무자 화두는 초기경전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깟짜야나곳따의 경(S12.5)에 실려 있는 절대유와 절대무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답한 것이 좋은 예라고 한다. 있음과 없음을 해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무문관 1칙도 부처님 말씀과 같다고 했다.
박인성 선생은 교학의 대가인 것 같다. 그러나 초기불교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미얀마에 가서 수행도 배워 보았지만 맛만 본 것이라고 했다. 스리랑카 켈라나야 대학에 교환교수로도 갔다고 한다. 최후로는 초기불교를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법회에서 담마끼띠 스님, 묘원 선생, 박인성 선생으로부터 법문을 들었다. 수행의 대가 묘원선생은 이곳 마하위하라에서 사념처 수행을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고, 교학의 대가 박인선 선생 역시 이곳 마하위하라에서 2개월에 한번씩이라도 강연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회가 끝났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법당 뒤편에 마련된 텐트가 식당이 되었다. 봉사자들은 비빔밥을 준비했다. 떡과 과일도 준비되었다. 오십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묘원선생과 마주하여 밥을 먹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글을 잘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부끄럽습니다.”라고 답했다. 자만에 비추어질까 염려해서 말한 것이다.
선물을 준비했다. 이미우이음악씨디를 말한다. 식사 중인 사람들에게 씨디를 한장씩 나누어 주었다. 스무 장 가져갔었는데 부족했다. 특히 봉사자들에게 줄 것이 없었다. 돌아와서 열 장을 택배로 발송했다.
2025년 웨삭데이가 끝났다. 평일날이어서 참석이 쉽지 않았지만 시간을 내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수많은 행사가 있다. 그러나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또한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때 기록을 남기면 누군가는 보게 될 것이다.
스리랑카는 교학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담마끼띠 스님은 교학의 대가인 것 같다. 유인물에서 웨삭데이와 관련된 경전문구가 이를 증명한다.
웨삭은 탄생, 성도, 열반, 이렇게 세 가지 사건을 동시에 기념하는 날이다. 당연히 이 세 가지 사건에 대한 경전문구도 등장한다. 특히 열반과 관련하여 “와야 담마 상카라 압빠마데나 삼빠데타”(D16)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은 “압빠마데나 삼빠데타(appamādena sampādetha)”이다. 이 말은 “부지런히 정진하라.”라고 해석된다. 한역으로는 “불방일정진(不放逸精進)”이다. 주석에서는 “늘 사띠를 유지하면서 해야 할 일을 성취하라.”라고 설명되어 있다.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홉 가지 출세간의 원리(구출세간법)’이다. 이는 사향사과와 열반을 말한다. 특히 열반이다. 왜 그런가? 열반을 성취해야 사향사과의 성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되면 해야 할 일을 다하게 된다. 탐, 진, 치로 대표되는 번뇌의 뿌리를 모두 소멸시켰을 때 불사(不死: amata)의 경지가 된다. 불사이면 불생이므로 더 이상 윤회하지 않게 된다. 괴로움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마지막 말씀에서 “와야 담마 상카라(vaya dhamma saṅkhāra)”라는 말이 크게 와 닿았다. 이는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게 마련이다.”라는 말이다. 마치 위빠사나 16단계 지혜에서 소멸의 지혜, 무너짐의 지혜, 괴멸의 지혜를 말하는 것 같다.
한번 생겨난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는 조건발생한 것이 사라짐을 말한다. 그런데 사라질 때는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찰라멸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주석에서는 무상, 고, 무아의 삼법인에 대하여 위빠사나 5단계의 지혜에 해당되는 ‘괴멸의 지혜’에 대한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두 번 치루었다. 일주일 전에는 한국불교 사찰에서 보냈다. 수원에 있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사찰에 갔었다. 일주일 후인 어제는 아산에 있는 스리랑카 마하위하위하라 사원에서 보냈다.
한국불교에서 부처님오신날은 어떤 의미일까? 비빔밥을 먹고 아기부처님에게 관불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 스리랑카불교에서의 붓다데이는 어떤 것일까? 보리수에 관욕하고 법문 듣는 날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한국불교에서 부처님오신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수많은 불자들이 절에 가서 비빔밥을 먹고 관불의식을 행한다. 그런데 이날 장사하는 절도 있다는 것이다. 밥은 백설기 한조각으로 대체한다. 그대신 이곳저곳에 먹거리 장터가 열린다. 경건한 날은 마치 시장바닥같이 된다. 더 나아가 산사음악회라도 한다면 마이크 소리로 떠들썩할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은 경건한 날이다. 더구나 탄생, 성도, 열반을 기리는 웨삭데이는 축일 가운데 축일이다. 사람들은 이날 사원에 와서 부처님의 탄생의 의미, 성도의 의미, 열반의 의미에 대하여 새긴다. 스리랑카 사원에서는 법회가 오전과 오후 내내 이어진다고 한다.
한국에서 스리랑카불교 체험을 했다. 음봉면 국도에는 스리랑카 사원뿐만 아니라 태국 사원도 있고 미얀마 사원도 있다고 한다. 웨삭 행사나 카티나 행사가 열릴 때 문화체험하면 좋을 것 같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호시절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불두화는 피어난다.
쌀나무라 불리우는 이팝나무에는 흰꽃이 가득하다. 이렇게 축복받은 계절에 부처님 찬탄 게송이 떠오른다.
“여름날의 첫 더위가 오면,
숲의 총림이 가지 끝마다 꽃을 피어내듯,
이와 같이 열반에 이르는 위없는 묘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부처님 안에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stn233)
“없는 것을 알고, 위없는 것을 주고,
위없는 것을 가져오는, 위없는 님께서,
최상의 위없는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깨달은 님에게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 지이다.”(stn234)
2025-05-13
담마다사 이병욱
첫댓글 사두ㅡ사두ㅡ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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