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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37
요한계시록 9:7-12
다섯째 나팔
다섯째 나팔을 통해 드러난 것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 여니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와 해와 어두워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황충이 땅 위에 나왔는데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드러낸다고 말씀한다. 거짓 선지자들이 드러내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권세로 드러내어 사람들을 미혹하나 그것이 바로 어두움의 상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으로 말씀한 것이다. 그 말씀에 이어 오늘 본문은 황충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7절). “황충”은 ‘메뚜기’이다. 즉 메뚜기 떼의 모양이 전쟁을 위해 준비한 말들 같다고 하였다. 머리에는 금 같은 면류관과 유사한 것을 썼고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단순히 메뚜기 떼라고 문자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이미 앞의 강론에서 말씀드렸다. 그러면 구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가를 보자.
4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5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6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욜 1:4-7)
이방인 바벨론을 들어 남 왕국 유다를 심판하실 것을 메뚜기의 모든 종류를 언급하여 남김없이 모조리 다 먹어 황폐하게 될 것으로 말씀한 것이다. 그래서 메뚜기 떼로 언급하지만 사실은 “사람 얼굴 같고”라고 밝힌다. 성경에서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한다. 죄의 권세 아래 죽은 존재는 짐승이요 동물이다. 이렇게 보자면 면류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14:14)와 같은 모습으로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얼굴을 하고 그 권세를 나타내는데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지난 강론에서 메뚜기를 먹는 세례자 요한이 선지자로 활동하였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말씀드렸다. 외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다가와 비진리, 비복음으로 권세를 행한다는 것이다. 요한 사도가 요한계시록에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이니 우리는 미래에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데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말의 현상을 말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세상이 종말의 상태에 있음을 드러내셨다. 그렇다면 지금 종말의 상태이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 이미 이렇게 전했다.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
여기서 “시인”한다는 말의 헬라어 ‘호몰로게오’는 ‘호모’(하나의, 동일한)와 ‘로고스’(말씀)의 합성어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말씀’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에 의해 같은 예수, 같은 복음을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영에 의해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말하는 적그리스도가 지금 세상에 있다고 선언하였다. 마지막 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15, 22-23)
“거짓 선지자”(헬, ‘프슈도프로페테스’)는 이리나 악마의 모습이 아니라 양의 옷을 입은 이리로 다가온다. 이런 점에서 “적그리스도”(헬, ‘안티크리스토스’)란 가장 예수 그리스도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존재이다. 그래서 다른 이름이 아닌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이적과 권능을 행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8절)라고 말씀한다. “여자의 머리털”이란 외적으로는 부드럽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그 이빨이 드러날 때는 사자의 이빨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요엘서 1:6에서도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라고 하였다.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9절). 요엘서 2:4에서도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라고 하였다. 언제나 전쟁에 능한 모습이다. “호심경”이란 가슴을 보호하는 가슴받이를 말하는데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3-17)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하나님의 전신 갑주”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상태를 의미하는데 진리, 의, 평안의 복음,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것으로 말씀한다. 생명의 상태를 다양한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라고 하였다. 이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호심경이 아니라는 것을 “철 호심경”이라고 표현하였다. 성막(성전)에서 사용되는 것은 금과 은과 놋이었다. 철은 성막에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즉 진리, 말씀이 아닌 것으로 무장을 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구원과 사랑을 나타낸다는 의미이다.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10절). 2절에서 “연기 같은 연기”란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출 19:18)라는 모습과 같이 하나님께서 강림하심을 나타내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와 같이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3절), “그 머리에 금 같은 비슷한 것을 썼으며”(7절),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7절),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8절), “사자의 이빨 같으며”(8절),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9절)은 전부 ‘~과 같은’이라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가장한 것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다섯 달 동안”이라고 하였는데 노아 홍수에서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창 7:24, 8:3)라고 하였을 때 150일이 다섯 달이다. ‘5’는 율법의 수로 율법 아래 매여 율법을 좇아 행하도록 버려두신 기간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의 여자에게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 4:17-18)라고 하신 말씀은 여자가 야곱의 물을 먹었던 것이 다섯 남편, 즉 율법에 매여 있는 상태라는 것을 드러내신 것이었다.
이제 황충들의 실제 배후 세력이 어떤 존재인가를 밝혀준다.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11절). “아바돈”, “아볼루온”이란 ‘파괴자’라는 뜻이다. 무저갱의 사자(헬, ‘앙겔로스’)는 파괴자이다. 진리, 복음을 파괴하는 자가 무저갱의 천사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제거하려고 하였고(마 2:13-18), 십자가를 지시기로 선언하셨을 때 광야에서 십자가 없는 영광을 제시하였었다(마 4:1-11).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언약)을 온전히 이루심으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마 28:18). 그러므로 진리, 복음에 합류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말씀이 된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죽음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 없는 구원은 없고 십자가 없는 생명은 생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곱 인과 일곱 나팔로 심판을 나타내신 것은 이 땅에 다른 예수, 다른 진리, 다른 복음으로 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배후 세력인 다른 영의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메뚜기 떼와 같이 무수한 거짓 선생, 거짓 선지자들이 다른 복음을 퍼뜨리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다른 영의 실체를 드러내심과 동시에 자기 백성들을 그 속에서 불러내시기 위함인 것이다(참고 마 25:31-46). 그 기준은 언제나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십자가이다.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19-20)
“권능”이란 십자가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4-5절)라고 말씀하였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은 십자가 안에 있다. 십자가로 인해 날마다 죽기에 이 땅에서의 환난이나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6절)라는 말씀을 보면 죽음의 권한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8:13에서 말씀한 “세 화” 가운데 첫 번째 것은 다섯째 나팔이 울려 퍼짐과 아울러 발생한 사건으로 공개되었다. 하지만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이 울려 퍼질 때 나타날 화 둘이 공개되어야 한다(9:13-11:14, 11:15-12:12). 그래서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12절)라고 말씀한다. 계속해서 화가 이어진다는 뜻이다.
“화”란 헬라어로 ‘우아이’라는 말인데 ‘슬픔, 분노, 절망, 근심, 고통’을 표현하는 감탄사이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음행으로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가난한 자들과 과부, 고아, 나그네들을 학대하여 피를 흘리게 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화 있을진저”라는 말로 심판을 선포한 것(사 5:8-23, 렘 13:27, 겔 13:18)과 예수님께서 율법을 행위로 옮기려고 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해 심판을 선언하신 말씀과 같은 것이다(마 23:13-36). 즉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 땅의 형편이고 종말의 상태이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주어지는 화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영이 메뚜기 떼와 같은 무수한 거짓 선생,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계속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왜 가짜 교회들이 이렇게 많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짜 교회들을 통해 진짜 복음, 진리,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를 드러내고자 하신다. 하늘의 복을 입은 자는 진리에 화답하게 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십자가 은혜로만 진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알았다는 예수 그리스도, 진리, 복음, 십자가를 죽음으로 단절하고 날마다 말씀에 의해 다시 확인되는 예수 그리스도, 진리, 복음, 십자가여야 한다(2023052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