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일 신부의 - 외줄위를 걷는 人生
3. 골상(骨相)보다 중요한건 심상(心相)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친구와 약속한대로 종로의 영어학원에 나란히 등록을 했다.
친구는 두 달 과정으로 끝내는 강의를 며칠 다니는 시늉만 하더니 금새 싫증이 났는지 수강증을 나에게 건네주고는 발길을 끊어버렸다.
나는 친구 것까지 해서 연거푸 두 번 반복해 들을 수 있도록 시간표를 조정했다.
문제는 어느 학과를 선택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것.
결론을 말하자면 신문방송학과로 낙착되었다.
법 공부보다는 창의성을 요하는데다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후배의 꼬드김에 넘어 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결정요인은 신문방송학과 교수 중에 연극반 지도교수를 역임한 분도 있고 연극반 선후배들도 여럿이 다니고 있으므로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더 매력이 있었다.
나는 후배의 도움을 받아 미리 교수님들을 만나러 다녔다.
후배는 신문방송보다 미개척분야인 광고 쪽이 훨씬 전망이 밝다고 그 방면의 대가들을 소개해 주었다.
몇 분 교수님들을 만나고 나니 나는 마치 이미 광고인이 다 된 듯한 기분으로 열심히 광고 카피를 모으고 잡지의 광고를 오려 스크랩하며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내친 김에 졸업예비생들을 위한 취업 영어특강을 한 과목 더 신청했다.
4년 동안 멀리하던 공부를 갑자기 붙들고 있으려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이 나와는 무관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나의 모든 것을 바칠 대상이 이제야 나타났다는 느낌이 왔다.
바로 이거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내 인생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바야흐로 대학가에 축제의 계절이 왔다.
학교는 온통 짝을 이룬 학생들로 넘쳐나고 각 동아리 멤버들은 각종 기발한 장사판을 벌여 운영기금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났다.
나는 때가 때이니 만큼 가방을 조신하게 들고 교문을 막 들어서는데 연극반 후배들이 에워쌌다.
“너희들 또 무슨 사고 쳤냐?”
“사고는 형이 쳤잖아!”
“왜 내가 사고를 쳐?”
“손금은 누가 보고 관상은 누가 보냐구?”
“아차! 그래 맞다! 이번에는 너희들이 좀 보면 안 되냐?”
“사기를 아무나 치냐구요?”
“야! 나는 처음부터 사기꾼이었냐? 하다보면 다 선수가 되게 되어 있어.”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손님을 어떻게 받냐구요? 우리는 형만 믿고 있었단 말야.”
“야! 나 입학시험 얼마 남지 않았어.”
“가게는 열었는데 손님들은 형만 찾고. 우리는 어떻게?”
“사정 좀 봐 줘라. 대학원 떨어지면 나 포함해서 여러 명 죽는다.”
“가게 한번 가 봐. 그런 말이 나오게 됐나?”
도살장에 소 끌려가듯 가보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
쪽 쪽 족집게’ 입간판은 좀 크다 싶을 정도로 세워놓고 넉살 좋은 후배 하나를 머리에 갓을 씌워 깔아놓은 멍석에 앉혔는데 당사주도 제대로 펼쳐 보여주지 못하는 얼치기고 보니 고민할 만도 하였다.
할 수없이 갓을 넘겨받아 삐딱하게 쓰고 또아리 틀고 앉았다.
오늘 수업은 이래서 또 물 건너 간 셈이다.
공부하기 참 쉽지 않다.
작년 이맘 때 연극반은 존폐를 거론할 정도로 심각한 재정위기에 몰렸었다.
창단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아마추어 연극반의 연속 흥행실패는 학생들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
자기 책임이라고 느끼는 몇몇 후배가 등록금을 연극반에 들이밀고 군대로 도망가겠다는 것을 간신히 만류하고 구체적인 대책마련에 나섰다.
당시 초창기 선배들의 연출 타입은 취향이 그랬는지 경험을 쌓느라 그랬는지 한사코 사실주의 연극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무대장치도 셋트도 거의 집을 한 채 짓다시피 해야 했다. 그
러니 목재 값 만해도 입이 딱 벌어지는 수준인데 연출이 몇 년 선배다 보니 불만을 표시할 수도 없고 무조건 돈을 구해 오는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기획이랍시고 책임은 맡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옹색하기는 피차 매일반인지라 수업 다 빼먹고 큰 회사 홍보실을 제집 드나들 듯 해야 간신히 두어 건 그것도 미모의 선배를 앞세워야 가능한 정도니 역대 기획의 피눈물 나는 뒷얘기는 가히 상식을 넘어서는 탈법과 사기의 현장이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역대 기획 중에 최악의 기획이란 말도 들었으므로 재정파탄문제는 나 개인적으로 다가왔다.
기획을 용감하게 맡긴 했는데 알량한 스폰서 하나 제대로 물어오지 못해 마지막 공연 마치고 쫑파티 열며 레스토랑도 아닌 선술집에서 막걸리에 라면으로 파티를 진행해 연극반원 모두가 대폿잔에 얼굴을 박고 서러운 눈물을 쏟게 하였으니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도록 자존심에 타격을 받았다.
학생들이 하는 연극반에 돈이 무어 그리 많이 들게 있도 심각한 문제로 다느냐 하겠지만 무대장치 포스터 팜플렛 제작 외에 긴 연습기간과 공연 중에 진행비로 드는 밥값 술값이 몽땅 빚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기획이 마음 독하게 먹고 짠돌이로 매몰차게 나가지 않으면 쉽게 천문학적 숫자가 돼버린다.
역대 기획 중에는 펑펑 써도 남을 정도의 자금동원력을 과시하며 홍보감각까지 뛰어나 흥행까지 성공시키는 귀신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이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므로 이럴 때는 입 다물고 나의 무능력을 탓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반복되는 흥행실패와 재정적자의 획기적 해결책으로 축제기간에 이색적으로 수상 관상 사주를 봐주는 역술가 아이템을 제안했고 실제로 그 방면의 공부도 했다.
동네목욕탕에서 어설프게 반 개업을 하다시피 경험을 쌓았고 미아리에 가서 꾼들이 영업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공을 꽤 들인 탓인지 작년 축제 때는 모 황색 주간지에 소개될 정도로 히트를 쳤다.
그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하며 벌고 또 벌어도 빚이 해결이 안 될 경우 여대 연극반 무대장치를 대신 제작해 주는 것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진짜 골칫거리는 역시 엄청나게 비싼 목재 값이 드는 무대 셋트 제작비용이다.
모두들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찾다가 내가 군대에서 배운 문제해결 방법 중 모자라는 보급품을 이웃 중대에서 조달하는 비상시 특수작전 능력을 발휘해 거의 야적 상태로 방치되어있는 목공실용 목재를 한밤중에 몰래 위치변경을 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경비들이 교대하는 시간을 주의 깊게 살피고 꼭 필요한 양만 가져다 쓴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처음 목재를 훔칠 때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웠지만 단체로 하는 떼도둑인데다 도둑질도 자주 하다 보니 죄책감도 사라져 버렸다.
또 연극반 전 인원을 총동원하다시피 해서 오십미터가 넘는 긴 줄을 만들어 목재를 옮기므로 계단을 따라 꾸불꾸불 도는 줄의 끝이 목공실이라는 것만 들키지 않으면 현행범으로 체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작년에는 그런대로 한고비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느새 얼굴을 알아보고 밀려드는 고객을 맞이하느라 대학원 입학시험준비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작년에 왔던 여학생이 새로 사귄 다른 남자를 데리고 나타나 땀이 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슬그머니 장난기가 동해 손 씻고 다시 오라고 호통을 친다.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몰려드는지.
그런데 막상 배우고 익힌대로 상을 풀이해 주려고 들면 고객이 먼저 고백하듯 말해 버리므로 나에게 실력을 보여줄 기회도 주지 않는다.
수상이든 관상이든 그저 눈에 들어오는 상의 한가지 특징을 거론하면 이미 오금이 저린 고객은 염라대왕 앞에 선 망자의 모습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지나 온 과거를 이실직고 해버린다.
닥칠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 소위 역술가들은 천기누설의 죄 운운하며 감히 드러내서는 안 될 대단한 것을 알아내 가르쳐 주는 척하지만 기실 아는 게 별로 없으므로 죄라고 할 것도 없다.
한치 앞도 모르기는 피차 매 일반이다.
미래에 대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생래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 이런 직업을 낳게 했는 모양이다.
인간은 미래를 알아 맞춘다고 장담하는 사람 앞에서 약해진다. 아니 매달리기까지 한다.
꼼짝없이 돈을 뺐기고도 눈 한번 흘기지 못하고 어설프게 가르쳐주는 닥칠 운명의 내용에 짓눌려 버린다.
게다가 세월이 지나 당신의 예측이 틀렸다고 찾아와서 따지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이렇게 쉬운 돈벌이가 어디 있겠는가.
줄지어 선 고객들에게 점심시간이 지났으니 한 시간 뒤에 다시 오라고 일방적으로 통고하고 줄을 끊었다.
돗자리를 부지런히 말고 있는데 낯익은 두 얼굴이 나타났다.
총장님과 이사장님이다.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물주가 나타난 것이다.
몇 마디 덕담을 건넸더니 수표 두 장을 흔쾌히 내민다.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땅거미가 어스름히 교정을 덮을 때쯤 눈매가 고운 여학생이 어머니와 오빠를 대동하고 와서 사주를 봐 달라고 청했다.
그녀가 얌전하게 내미는 생년월일을 보고 당사주책을 펼치니 선뜻 말해 주기가 면구스러울 정도로 사주가 좋지 않았다.
책에 나온 대로 말하니 뜻밖에 어머니가 생년월일을 달리 제시하며 내 눈을 바라보는데 그 표정이 너무 슬퍼 가슴이 섬뜻할 지경이다.
다시 사주책을 펼치자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흉한 사주다.
어머니는 또 다시 다른 시를 써냈다.
“어머니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당사주는 원래 재미로 보는 겁니다. 학생인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혹시 저 때문에 마음이 어두워졌다면 저야말로 천벌을 받을 놈이 됩니다.”
“학생! 그러면 관상을 봐주게.”
“어머니! 말씀 잘 하셨어요. 따님 상이 참 좋습니다.
얼굴선이 어디 한군데 모난 데 없이 둥글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그늘이 한군데도 없으니 앞으로 뜻한바 만사형통할 것입니다.
아무 걱정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복채로 두둑해진 돈주머니는 하루 종일 옆에 서서 바람잡이 노릇을 하던 후배들마저 콧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때 방해꾼들이 나타났다.
캠퍼스 내 대학교회 학생들이 바로 우리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는 공격적으로 군가처럼 들리는 찬송가를 부르며 간단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예수 믿고 천국가자는 얘기인데, 천국 가는게 좋기는 하지만 지금가기는 싫고 이럴 때는 도망가는 게 정답이다. 우리는 쫓기듯이 그 자리를 떴다.
계속 영업을 하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정을 빠져나오는데 여학생회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여학생회 회지에 ‘역술과 점에 빠지는 현대여성’이란 제목으로 특집을 실을 예정이라 한다.
“기독학생회가 연극반에서 사주 관상 봐 주는 줄 알면서 바로 옆자리에 자리 잡고 시위성 퍼레이드를 펼치는 것 같던데...”
“저는 비록 냉담자이긴 하지만 유아영세를 받은 천주교 신자입니다.
관상이니 사주니 하는 것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오랜 관찰과 경험이 축적되어 나타난 일종의 통계적 계산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이렇게 생긴 사람은 이런 성격의 이런 삶을 살더라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죠.
점쟁이의 예언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사항에 불과한 거죠.”
“최근에 한 여대생이 역술가의 상담을 받고 낙담해서 자살해 죽은 사건이 신문지상에 대서특필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연극반에서 연극공연 기금마련을 위해 관상 수상을 봐주는 얘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웃기는 얘기정도로 생각했어요. 그
런데 막상 관련책자를 구해 읽어보고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쪽 세계의 가치관과 인생풀이가 너무 소박해서 재미 있었어요.
부귀영화 무병장수 입신양명의 지독한 가부장적 사고가 과연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줄지 의문이지만 적어도 서민의 간절한 꿈이 그 세속적인 욕망 가운데 녹아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 역술가는 절망적인 언어로 그 여학생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송두리째 뺏아 갔습니다.
원래 상법과 역술은 신산한 삶의 고통 가운데서도 민중에게 희망과 위로와 격려를 주고 미래에 닥쳐올 불행과 고통을 덜어주려 했던 선대의 지혜와 철학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파렴치한 역술가는 오직 부당한 재물을 취하는 데 정신이 팔려 멀쩡한 사람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런 어두운 면 때문에 옛 어른들께서는 남의 사주 봐주고 관상 봐주는 것을 가장 천한 일로 여겼어요.
김구선생 자서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선생의 부친께서 관상을 공부하면 선한 사람과 군자를 만날 수 있으니 마의상서를 공부해 보라고 권합니다.
귀인을 알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는 뜻이겠지요.
당시 사회구조적 모순이 극에 달해 절망에 빠진 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궁여지책 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이 자신의 상을 깊이 들여다보니 부귀영화를 누릴 귀격 부격은 없고 천하고 가난하고 흉액을 당할 천격 빈격 흉격만 있어 더 큰 절망에 빠집니다.
그런데 마의상서의 내용 중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목이 한 구절 있었습니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이 글귀를 보고 김구선생은 그 때부터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큰 선생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선생님의 그 다음 생애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긴 감옥생활과 가난 온갖 고초에도 굴하지 않고 망명정부의 수반으로서 죽기까지 민족의 정신적 지주요 지도자로서 살았습니다.
상 좋은 사람이 거지노릇 한다는 말이 있고 진짜 비범한 사람은 관상책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수상 관상을 공부하다보면 상에 사로잡혀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근거 없는 편견에 빠지는 경향이 있고 차라리 얼굴의 각 부위 색깔로 운세를 관찰하는 찰색이 더 정확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찰색은 마음의 상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결국은 마음을 닦는 내적수양이 인생여정의 관건이라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관상이니 사주니 하는 것은 다 마음을 닦기 위한 전초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 나쁘고 사주 안 좋은 사람이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마음 닦는 내적 수양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관상공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관상책을 펴고 내 얼굴의 각 부위와 명칭을 외우고 그 의미를 익힌 다음 다른 사람의 상으로 확대 적용해 나가듯이 먼저 내 마음을 시시각각 면밀히 살피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 속속들이 안 다음에 큰 인물의 마음 씀씀이와 언행을 공부하는 게 순서일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독학생회의 전도 퍼레이드가 찜찜하게 내 머리를 점령하고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협박이라는 것은 알면서도 효과는 있었다.
다음날 나는 고심 끝에 평소에는 상대도 않던 목회자 지망생으로 알려진 과 동기에게 자문을 구해 학교 인근에 있는 유비에프(UBF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를 찾아갔다.
허름한 3층 건물의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니 유인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문짝이 나를 반기는 듯 빼꼼히 열려있었고 나는 어정쩡하게 문고리를 잡았다. 그
런데 문 안쪽에서 여학생의 따지는 듯한 앙칼진 목소리와 궁지에 몰린 남자의 웅얼거리는 음성이 들렸다.
잠깐 망설이다 방안에 들어서니 빨갛게 상기된 얼굴의 여학생이 결별선언을 최후통첩으로 날리며 가방을 집어 들었다.
상대방 남자는 머리가 거의 벗겨진 뚱뚱한 중년남자였고 그는 목자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여학생이 코트자락으로 쌩하는 소리가 나게 바람을 일으키고 나간 뒤의 그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중년남자는 성경공부의 중요성과 유비에프만의 독특한 성격을 역설하였다.
나는 건성으로 듣고 있다가 무안하지 않게 적당한 기회를 잡아 다음에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기운이 쭉 빠진다.
나는 그 길로 옆 골목의 술집으로 직행했다.
커다란 대포잔에 담긴 막걸리에 내 얼굴을 비춰 보았다. 왜 이렇게 안풀리지?
누군가 내 등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린다. 그는 팜플렛 한 장을 내밀었다.
사영리설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 써클룸 사무실에서 본듯한 그 친구는 내 얼굴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씨씨씨(CCC 대학생선교회)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두말없이 그의 뒤를 쫓아서 광화문에 있는 CCC본부 건물로 찾아갔다.
큰 홀에 지역별로 나뉘어 테이블마다 학생들이 칠팔명씩 한 조가 되어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집중이 안 되어 내내 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우선 웬만한 강당 크기의 공간에 빼꼭히 들어찬 학생들의 뜨거운 토론 열기가 너무 낯설었다. 더욱이 황당한 것은 그날 주어진 성경본문의 토씨문제로 시작된 논쟁이 학교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되면서 재미도 없고 억지를 부린다는 느낌이 들어 나는 모임을 끝낼 것을 제안했고 곧 이어 기도로 마치게 되었다.
얼굴이 유난히 길고 창백한 백면서생 티가 물씬 나는 신학생이 기도 중에 갑자기 나를 지목하며 “불쌍하고 가련한 방황하는 영혼” 운운하는 통에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흐느끼며 긴 탄식과 함께 기도를 마감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어이! 나 좀 봅시다.
당신! 나에 대해서 불쌍하고 가련한 영혼 어쩌고 하는데 나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
“아니! 기도해 주는 것도 잘못입니까? 형제님! 자기 모습이 어떤가. 자신이 보면 알 것 아닙니까?”
“이 양반 보게! 날 위해 기도한다고 금방 울고 짜고 하던 사람이 불과 몇 초 지났다고 성질 부리고 화내고 하냐 말이야?
꼴값 떨지마. 자네가 기도해 주지 않아도 해 줄 사람 많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
“자네같은 친구와는 성경공부하기도 쉽지 않군!”
사람되어 보려고 마음 좀 잡으려면 꼭 이런 방해꾼이 나타나 핑계꺼리를 만든다.
취직시험기간의 도서관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빈자리 하나 없이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도서관에서 영어공부에 매달리다 머리를 식힐겸 잠깐 찬 공기를 쐬러 밖에 나왔다가 공연을 앞 둔 후배들을 만나러 극장 쪽으로 향하는데 어둠 속에서 고함소리와 함께 온 몸이 얼어 붙는 듯한 긴장과 침묵이 한숨소리와 함께 전해져왔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대학극장입구에서부터 학생들이 줄지어 길게 늘어서 있고, 신입생으로 보이는 연극반 학생이 얼굴의 핏기가 싹 가신 채 눈만 말똥말똥하게 뜨고 쪼개놓은 참나무 가지처럼 굳어 있었다.
“너희들 학생 맞아? 한 밤중에 어디서 이 많은 나무를 가져오냐 말이야?”
“아 대답 좀 해봐.”
“아저씨! 아저씨! 왜 그러시는데요?”
“자네는 또 뭐야?”
“보면 몰라요?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입니까?”
“나는 경비보는 사람이다.”
“경비아저씨가 분명하다면 학생도 못 알아봐요?”
“내가 하도 이상해서 그러는 거야. 나무는 계속 날라오 고. 물어봐도 대답은 시원찮고!”
“아 내 얼굴도 몰라요? 대학극장에서 살다시피 하는데…”
“자네는 낯이 익어.”
“이제 막 들어 온 신입생이 뭘 알아요? 선배들이 하는 일을.
공연날짜는 다가오고 대학극장은 스케줄이 꽉 잡혀있고, 밤에 하지 않으면 언제 작업할 시간이 있나요?”
“그건 그래!”
“학생들이 해야 할 공부도 못하고 학교이름 낼려고 잠도 안자고 고생하는데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죠.
이번에 전국대학연극 경연대회 여기서 열리는 것 알고 있죠?”
“아 알지! 내가 왜 몰라?”
“그러면 됐잖아요? 이제 아저씨 볼일 보세요. 우리도 바쁘니까.”
“어허 참. 미안해. 내가 몰라서 그랬으니까. 괜히 날 나쁜 사람으로 오해 하지마.”
“아 글쎄 안다니까요. 그만 가보세요.”
그는 멋적게 웃으며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얼른 자리를 떴다.
“형! 오늘 형이 때마침 나타나지 않았으면 우리 모두 줄줄이 다 퇴학당할 뻔했어.”
“야 임마 너 등록금 안냈어? 나무 좀 갖다 썼다고 퇴학시키겠냐?”
“그렇지만 허락도 안 받고 가져오는 거잖아?”
“짜식이! 연극반 지원 제대로 안 해주는 학교가 나쁘지 우리가 잘못이냐?”
“그렇긴 하지만 걸리면 끝장이잖아.”
“끝장은 무슨 끝장! 다 빠져 나갈 길이 있겠지. 너희들 오늘 많이 놀랐냐? 겁나지?
야 너 부랄 한번 만져봐라. 땅콩만 해져 있을 테니까.”
“재미있습니다.”
“다음부터 연출 맡는 놈보고 무대장치 없는 실험극이나 하라고 해라.
앞날이 창창한 후배들 도둑놈 만들지 말고.”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는지 온몸이 으실으실 춥다.
사다리의 윗 계단을 오르려면 아랫 계단에서 발을 떼야 하는 법인데.
내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과거의 끈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려 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