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의 관자를 생각한다.
근래 중국에서 중국사 2천 년 동안 가장 큰 비극은 공자를 중시하고 관자를 경시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화제를 모았던 적이 있다. 실제 정치한 경험이 매우 짧고 현실 정치에서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도 못한 공자의 사상보다는 40여 년간 정치를 하며, 제나라를 부강시킨 관자의 사상이 오히려 현실적이며 더 설득력 있다는 분석이다.
요즘처럼 정치가 혼란하고 이합집산처럼 어지러울 때일수록 정치의 바른도리와 인재등용이 거듭 중요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좋은 정치인이 어떤 사람인가 파악할 수 있는 백성들의 지력이 많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이럴 때 추천해 볼 수 있는 인물과 저서가 바로 『관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관자? ‘공자’는 다들 아는데 ‘관자’는 누구인가? 보통의 사람들은 관자하면 언뜻 떠오르는 단어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에 관한 책인 『관자』를 읽어본 독자도 매우 소수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관자는 사자성어로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다. 흔히 우정을 상징하는 사자성어인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이 관중과 포숙아란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관중이 바로 관자임을 알면 반응은 여간 싱거운 게 아니다.
『관자』라는 저서는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사상가 ·정치가인 관중(管仲:?~BC 645)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내용으로 보아 제나라의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되던 관중의 업적을 중심으로 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썼고, 전국시대에서 한대(漢代)에 걸쳐서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전한(前漢)의 학자 유향(劉向)의 머리말에는 86편이라고 되어 있는데,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에는 10편과 1도(圖)가 빠져 있다. 내용은 법가적 색채가 농후하고, 때로는 도가적인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에 『한서(漢書)』에서는 도가에, 『수서(隋書)』에서는 법가에 넣고 있다.
관중이 말하길 정치의 핵심은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가르치며, 신명(神明)을 공경하도록 하는 세 가지 일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일이 으뜸’이라고 하였다.
가난했던 소년시절부터 평생토록 변함이 없었던 포숙아와의 깊은 우정은 앞에서 말했듯이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여 유명하다. 정치적 반대편에서 섰던 관중이 죽지 않고 오히려 재상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친구 포숙아의 믿음과 천거가 절대적이었다. 즉, 관중은 환공(桓公)이 즉위할 무렵 환공의 형인 규(糾)의 편에 섰다가 패전하여 노(魯)나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포숙아의 진언(進言)으로 환공에게 기용되어, 국정(國政)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제환공’)을 도와 군사력의 강화, 상업·수공업의 육성을 통하여 부국강병을 꾀하였고, 대외적으로는 동방이나 중원(中原)의 제후(諸侯)와 9번 회맹(會盟)하여 환공에 대한 제후의 신뢰를 얻게 하였으며, 남쪽에서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초(楚)나라를 누르려고 하였다.
삼국지의 전략가 제갈공명도 흠모한 중국 최고의 정치사상가가 바로 관자다. 그만큼 관자는 어느 정도 입증이 된 탁월한 재상인 셈이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재상이 되어 제환공을 보필하여 제나라를 제후국 가운데 최강대국으로 만들고, 중국천하를 자기 뜻대로 움직인 전설적 인물로, 삼국지의 주인공 제갈공명처럼 자부심이 강한 인물조차 관자를 흠모하여 자신을 관자에 비교하기를 좋아하였다 한다. 또 다산 정약용과 같은 실용주의적 사고를 가진 실학자는 관자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관자』를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약용의 저서 가운데 유명한 『목민심서(牧民心書)』의 '목민'이란 말도 사실은 『관자』의 첫 번째 편명(1권 1편)에 나오는 제목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관자』가 왜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일까? 이는 유교가 중국이나 한국의 정치사상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유교적 관점이 주류가 된 측면이 있다. 유교적 입장에서만 본다면 관중이라는 인물과 『관자』에 나타난 실용주의적 태도는 도덕적 원칙도 약하고 다분히 경박하고 세속적인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관자』라는 저서는 관자의 평소 언행과 사상을 그의 제자와 문인들이 기술한 것으로, 춘추시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서한(西漢)시대까지 근 700년의 장구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경세의 백과전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도덕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사회질서와 번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인간의 이익 추구의 본성에 기초하여 정치와 경제와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갈지를 제시한다는 점이 새롭다. 권력의 본질과 사회생활에 대한 날카로운 사실적 통찰을 바탕에 두고, 춘추전국의 오랜 전쟁과 혼란 속에서 터득한 '질서'와 '부강'의 노하우를 전해주고 있다. 내용이 방대하고 오자와 탈자가 많아 난해한 관계로 아직 국내에 완역본이 나오지 못하다가 몇해 전에 최초로 완역본을 출간했다고 한다. (세밀한 독서를 원하는시는 분은 김필수, 고대혁 번역의 『경세의 바이블, 관자』 소나무出. 완역본(1062p. 분량)을 추천한다.)
그 많은 내용 중에 한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처세에 있어서 금기사항으로 『관자』는 ‘목민’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불가능한 일은 하지 않고, 얻을 수 없는 이익은 추구하지 않으며, 오래 유지할수 없는 지위는 차지하지 않고, 재차 실행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인생을 살다보면 처세에 금기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금기사항을 위반하면 대체도 인심도 잃고 일도 망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금기사항이 충실하게 지켜지면 사람들에게 덕망을 높이 인정받아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
첫째, 불가능한 일은 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을 책임진다는 것은 다시말해, 무능력한데도 중대한 임무나 사명을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매우 위태롭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능력보다 큰 일을 책임지려하는 자세는 헛고생일 수 밖에 없다. 용맹이나 지략이 부족한 자가 전시에서 사령관의 중책을 자신의 욕심만 생각하여 맡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많은 병사들과 국민들의 안전이, 국가의 운명이 그의 손에 위태롭게 놓인 형국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불가능한 일은 하지 않는 편이 신용과 목숨을 지키는 바람직한 선택일 것이다.
둘째, 얻을 수 없는 이익은 추구하지 않는다.
얻을 수 없는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은 사실 탐욕이다. 탐욕은 죄와 곧바로 연결되는 문제이다. 과도한 욕심은 일도 그르치지만 사람의 심성을 버려 놓고만다. 그런 심성이 교정되지 않으면 어떠한 순간에 재앙으로 돌변될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욕망일수록 통제되고 조절되야 하는 것이다.
셋째, 오래 유지할 수 없는 지위는 차지하지 않는다.
“오래유지할 수 없는 지위란 무엇인가?” 관중은 이를 일시적인 ‘요행’이라고 보았다. 변변치 않은 능력임에도 높은 지위에 올랐다면 한 동안은 감출 수 있겠지만 언젠가 그 실력이 들통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때가서 망신살 뻗치고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즉, 자신의 능력에 합당한 지위가 아니면 욕심을 내지 말라고 관중은 충고하고 있다.
올해 한국을 포함한 미국에서도 각종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많은 이무기, 잠룡들이 용을 꿈꾸며 선거판에 나설 것이다. 5년의 대통령을 꿈꾸고자 그들은 치열하게 갈등하며 살아왔다. 5년 기간 중에 실권은 몇 해 정도일까? 레임덕을 생각해보면 실권은 고작 3년 정도일 것이다. 4년차부터 권력은 누수현상이 일어나고 대개의 대통령들은 칭찬보다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특히 이런 현상은 실력없고 무능한 자가 정치공학적 효과로 어부지리로 청와대에 입성한 경우 그 폐해가 심각하다. 국익을 사익으로 생각하고 이미지 효과만 노려서 포장만 번지르하게 정치를 ‘프로파간다’로 생각하며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관중에 충고를 이미 무시한 셈이다. 올해 대선엔 어떤 자들이 관중의 충고에 정면으로 NO!를 외치며 탐욕을 부릴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넷째, 재차 실행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일을 재차 실행할 수 없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국민들을 속이거니 기만했기 때문이다. 타인을 속여서 얻은 이득으로 재산을 불릴 순 있겠지만 대신 신임이라는 재산을 잃게 된다. 더 이상 국민들은 그런 사기꾼을 위정자(爲政者)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말대로 ‘위僞’政者다. 그의 거짓말에 국민들은 다시는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고 준비한다. 그래서 사기꾼들은 임기 중에 재차 사기치기를 할 수 없게 된다. “성실은 인격의 표현이다.”라는 말도 있다. ‘국민을 생각하며 국민을 위한다’고 출마한 사람들이 당선된 후 곧바로 사기꾼으로 변신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정치적 사기(詐欺)가 자꾸 먹히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그들에겐 자신의 양심도 속일 수 있는 선천적 사기(詐欺)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와 관련된 고사성어로 “남우충수(濫우充數)”란 말이 있다. “남아도는 악사(樂士)로 머릿수를 채우다. 마구 불어 대고 연주하다.”는 뜻이다. 부연하면 ‘무능한 자’가 재능있는 척 하거나, ‘실력없는 자’가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요즘 정치를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고사성어가 아닌가 한다.
제 아무리 포장지가 화려해도 진품은 아닌 셈이다. 실력이 없는 사람이 실력있는 척하기 위해선 사기와 자기기만이 이용될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학력위조 사건들은 그들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 포장지로 자신을 둘러 싸맸는지가 입증된 사건이다. 수 많은 학력위조 연예인들 속에 동국대 사회교육원 조교수 신정아와 능인선원 승려 지광이 압도적인 관심을 끈 것은 세속적 성공에 무임승차하려는 심보를 넘어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 외 정치인들 역시 청문회에서 자기방어적 기제인,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그들에겐 많은 포장들이 성의없이 둘러처져 있는지 새삼 놀랄 일도 이젠 아니다. 실력있는 무리들 속에서 숨어 있다고 안정을 취하는 ‘거짓된 자’들은 결국 자신이 거짓으로 갖춘 성(成)이 자신이 갖힌 성(城)인 망상임을 알지 못하는 신세다.
그래서 관중은 말하길 “오래지키지 못할 자리는 애당초 (거짓으로) 차지하지 않아야 마음에 안정이 온다”고 말하고 있다. 부디 변화가 많은 새해, 임진년에는 500년 묵은 이무기도 못되는 뱀과 지렁이들까지 자신들이 용(龍)이라고 설쳐대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았으면 싶다.
이젠 ‘준비된 잠룡’이 나타나 (국민들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수레’를 직접 끄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존에 ‘여의도’에서 ‘여의주’를 꿈꾸던 자들은 헛물켜시고, 국민들 가슴 속에 있는 ‘뜨거운 심장’이 ‘여의주’라고 믿는 참신한사람들만이 당선되어 승천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관자』를 잘 읽으면 ‘관통하는 자’가 될 것이고 잘못 읽으면‘관장약을 먹는 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