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 나의 해방일지』 후유증
사랑세포가 늘었다.
그래서 이 영혼결혼식이 더 그려진다.
애인 박기순은 연탄가스로 숨진다.
전남대 역사교육과에 다니던 박기순은 1978년
유신을 반대하다 무기정학을 당하고 광천동에서
들불야학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서 주택은행에 다니던
윤상원은 은행을 그만두고 야학을 가꾸어간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노래 가사 같은 사랑이
이렇게 허무하게 한 날개를 잃게 되었다.
1978년12월27일 윤상원의 일기장이다.
영원한 노동자의 벗 기순이가 죽던 날
불꽃처럼 살다 간 누이야
왜 말없이 눈을 감았는가?
훨훨 타는 그 불꽃 속에
기순의 넋은 한 송이 꽃이 되어
우리의 가슴속에서 피어난다
김민기는 장례식장에서 ‘상록수’를 부른다.
80년 5월 광주 시민군 대변인을 하던 윤상원은
복부에 총상을 입고 사망하기 전 이 말을 남긴다.
"너희들은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너희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들이 지금까지 한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길 바란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후배들은 1982년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을 연다.
이 이야기를 들은 황석영은 백기완의 묏비나리의
글을 개사해서 가사를 만들고 윤상원의 후배로
대학가요제에도 나갔던 김종률이 작곡을 하여
같이 있던 농악과 노래패들과 불렀다.
노래에 힘이 있고 감동이 깊어 당시 저항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EYC(기독청년협의회)모임시
2000개의 카세트를 복사해 나눠주게 되었고
아름아름 알려졌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이 노래가 제창곡이 되지
못하게 하였고 우리는 그 노래를 찾았다.
백기완샘은 1980년 교도소 찬 시멘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시를 썼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구씨와 염씨가 서로 추앙한다.
이 달달한 세포로 광주항쟁을 더 추앙한다.
백기완샘이 주신 말씀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우울하지 않아야 한다.
무기력하지 않아야 한다. 아주 작게라도
평화가 있어야 하고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적들은 우리가 더 절망하고 우울하게 되도록
비열하게 웃으며 지금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
드라마는 구씨와 염씨지만
광주는 윤씨와 박씨의 추앙으로 초대한다.
“내일의 역사는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