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전통적으로는 팔정도를 계戒ㆍ정定ㆍ혜慧 삼학三學[三蘊]에 배대配對시키면서 바른 사유를 혜慧에 포함시킵니다. 하지만 저는 바른 사유를 혜에 한정시키지 않고 계행戒行에도 배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사유가 출리, 악의 없음, 해코지하지 않음이라면 이는 선善의 실천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바른 사유는 혜와 계 양면에 걸치게 되겠지요. 뒤에 사오는 바른 노력이 계와 정에 걸치듯 말입니다. 그런데 계행은 바로 실천인 반면, 혜는 해탈ㆍ열반으로 가는 목표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따라서 바른 사유를 신ㆍ구ㆍ의 삼업 중의 의업意業에 해당한다고 보고 계율의 범위에 넣는 것이 공부 분상에서는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편 바른 사유는 바른 견해에 입각한 생각인 만큼 그 둘의 관계가 어떤 항목과의 관계보다 밀접하니 둘을 묶어 혜에 배대시키는 것도 타당하지요. 하지만 실천의 분상에서 보면 바른 사유를 당장 현실적 실천 과제로 생각하고, 계학戒學의 입장에서 실천 하도록 노력하는 측면을 좀 더 부각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현대사회처럼 각종 사유방식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바른 사유의 혜와 계, 양 측면이 모두 중요하고 특히 그 실천적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첫댓글 현대 사회에는 바른 사유의 혜와 계, 양 측면이 모두 중요하며 특히 그 실천적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보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바른사유의 혜와 계...실천적측면에 주목해야한다.()()()
법보시 감사합니다.()()()
바른 사유의 혜와 계, 양 측면이 모두
중요하고 특히 실천적 즉면에 주목할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