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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개역) 내가
원수들의 목덜미를 잡고...(공역)
구약 본문에 "타타"( )라는 낱말이 나온다. 이것은 아무 뜻이 없다.
그 앞에 "눈"( )을 붙여야 "당신이 준다"는 뜻 있는 낱말이 된다.
그것이 사실임에도 불 구하고 누구하나 본문에 "눈"을 붙여 넣지 않고
있다. 본문을 틀린 그대로 두고 비평을 할 따름이다. 우리의 개역과
공역은 본문의 "타타"( )에 "눈"( )을 붙여, 개역은 "주께서 ...향하게
하시고"로, 공역은 "잡고"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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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황(침신대교수)
제 목 :구약의 본문에 대한 일고
I. 서 론
1977년은 구약성경의 출판사(사)에서 큰의의를 지니고 있다.
구약본문(M)의 새 로운 표준판(BHS)이 그해 세상에 나왔다.
한국에서는 공동 번역 성경이 큰 관심 속에 그해 출판되었다.
세계에서는 BHS와 BHK를 비교 연구하고, 한국에서는 공 역과 개역이
비교 연구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구약성경의 새로운 번역판 이
계속 나올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글로
번역되는 구약 본문에 실수가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영감을 받 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베껴저 내려오는 가운데 잘못 베껴진 곳이
구약 본 문에서 발견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런 실수를 유형별로 대략
분류하여 해설하면 서 이런 실수가 한글 번역판들(개역과 공역)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알아본 다.
II. 본 론
1947년부터 사해 지방에서는 여러 가지의 두루마리 사본이 발견
되었다. 그 사 본들의 기록 연대에 대하여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 사본들의 연대 를 아무리 높게 잡아도 주전2세기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구약의 사본이다. 그러나 주전3세기 이전의 사본은 아 직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하다. 구약의 원본은 인쇄술이 발명된 15세기
이전까지는 사람의 손으로 계속 베껴져 내려왔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의 구약 본문에는 잘못된 곳이 더러 생기게 되 었다. 이런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이 본문 비평의 한 방법이다. 구약성경의 원문은 사라져
없다. 그러나 그 사본들은 다양하게 남아 있다. 그 중의 한
사본(M)이 우리 구약성경의 본문이 되어 있다. 이 본문을 비평하는 데
는 비평가들의 견해가 구구하다. 우리의 개역과 공역에도 이런 비평이
나타나 있다. 성경 번역자는 본문을 비평하여 자기가 번역할 대본을
먼저 결정해야 한 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개역과 공역의 같은 점을
예로 들고, 그 다음에 그들의 다른 점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1. 자음의 모양이 비슷한 경우
우리의 글에 자음의 모양이 비슷한 것들이 있다. ㄹ과 ㅌ, ㅁ과 ㅂ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히브리어에도 자음의 모양이 비슷한
것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 사람의 눈은 그 둘을 혼동하기 쉽다.
예컨대 달렛( )과 레쉬( )의 경우이다. 이 두 자음의 혼동은 구약
본문에서 가장 흔한 실수 가운데 하나이다.
예문) 이사야 14:4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 하였는고(개역) ...웬일이냐, 폭군이 죽다니, 그
시퍼런 서슬이 사라지다니(공역) 앞 예문에서 밑줄 친 부분의 본문은
"마드헤바"( )이고 그 뜻은 "황금"이 다. 그런데 개역은 "강포한
성"으로, 공역은 "시퍼런 서슬"로 엉뚱하게 번역하 고 있다. 본문의
마르헤바가 다른 곳에는 "마르헤바"( )로 되어 있다. 둘째 자음 달렛(
)와 레쉬( )가 서로 비슷하다. 본문의 문맥에는 "마르헤바"가 더
적합하다. 그래서 우리의 개역과 공역은 구 약 본문의 실수를
인정하고, "마르헤바"를 따라 "강포한 성" 또는 "시퍼런 서슬 "로
변역한 것 같다.
예문) 창세기 10:4
역대상 1:7
(창세기 10: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개역)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다르싯, 기띰,
로다님이었다(공역) (역대상 1:7)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다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더라(개역)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아, 다르싯, 깃띰,
로다님(공역)
위의 밑줄친 부분이 창세기 10:4에는 본문에 도다님( )으로 되어
있고, 역 대상 1:7에는 로다님( )으로 나온다. 말을 바꾸면 야완의
아들의 이름이 똑 같아야 하는데 한 곳에는 도다님으로, 다른 곳에는
로다님으로 나온다. 어느것 이 옳은 이름인가? 본문 창세기 10:4에
나오는 도다님이 다른 곳에서는 로다님으로 되어 있다. 본 문 역대상
1:7에 있는 로다님은 다른 곳에 도다님으로 나온다. 개역은 도다님(창
10:4)을 옳은 이름으로 보고 역대상 1:7의 이름은 잘못된 것 으로
보아, 두 곳을 다 도다님으로 번역했다. 반면에 공역은 로다님(대상
1:7) 을 바른 이름으로 보고 창세기 10:4을 고쳐, 두 곳에서 다
로다님으로 부른다.
2. 발음이 비슷한 경우
자음의 모양이 비슷하여 혼동하는 경우는 보고 베끼는 데서 실수가
있기 쉽다 면, 발음이 비슷하여 실수하는 경우는 듣고 베끼는 데서
생기기 쉽다. 우리말에 는 천리(천리)와 철이(철이)는 낱말의 모양과
뜻이 다르지만 그 발음이 비슷하 여 혼동할 수 있다. 히브리어에도
이런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예문) 시편 100:3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개역) ...우리는 그의
것, 그의 백성...(공역)
위의 예문에서 밑줄 친 부분이 본문에는 "로"( )로 되어 있다. 그
뜻은 아니 다라는 부정사이다. 이 본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리는
그의 백성이 아니다" 가 된다. 사본들 가운데는 의견이 크게 둘로
나누어져 있다. 본문처럼 "로"( )로 되어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로"( )되어 있기도 하다. 구약 본문에서 본문(케티브) 에 "로"( )로
써놓고ㅡ 주해난의 읽기(케레)는 "로"( )로 읽는다. 우리의 개역과
공역은 본문의 "로"( )로 실수를 보고 있다. 말을 바꾸면 "로" ( )를
옳다고 판단하여 그의 것으로 변역했다.
예문)열왕기상 11:2
바로가 저에게 이르되...(개역) 그러나 파라오는 선뜻 허락하지
않고...(공역)
밑줄 친 부분이 본문에는 "로"( )로 되어 있다. 개역은 그 본문을
옳다고 보고 "저에게"로 번역했다. 그러나 공역은 "로"( )가 옳은
것으로 보아, 본문을 고쳐 서 "않고' 로 번역했다. 공역이 이 절에서
"부족한 것은 없읍니다"로 번역한 본 문은 "로"( )이다. 따라서 앞의
"로"( )도 "로"( )의 실수로 보고 둘을 "로"( ) 로 일치시켜 번역했다.
3. 빠뜨린 경우
사람이 글을 베끼다 보면 점, 회, 낱말, 문장 등 그 글의 일부를
빠뜨리고 베 끼는 경우가 생긴다. 구약 본문에도 이런 실수가 더러
있다.
예문) 사무엘하 22:41
시편 18:40
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개역) 내가
원수들의 목덜미를 잡고...(공역)
구약 본문에 "타타"( )라는 낱말이 나온다. 이것은 아무 뜻이 없다.
그 앞에 "눈"( )을 붙여야 "당신이 준다"는 뜻 있는 낱말이 된다.
그것이 사실임에도 불 구하고 누구하나 본문에 "눈"을 붙여 넣지 않고
있다. 본문을 틀린 그대로 두고 비평을 할 따름이다. 우리의 개역과
공역은 본문의 "타타"( )에 "눈"( )을 붙여, 개역은 "주께서 ...향하게
하시고"로, 공역은 "잡고"로 번역했다.
예문) 사사기(판관기) 20:13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개역) ...베냐민 사람들은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공역)
구약 본문에는 "베냐민 자손(사람들)"으로 되어 있지 않고, 그냥
"베냐민"으로 만 나온다. 그러나 다른 곳에는 베냐민 앞에
자손(사람들)을 뜻하는 "브네" ( )가 들어 있다. 이 낱말이 빠지면
본문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개역과 공역은 이 낱말이
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 브네의 첫자음이 "벧"( )이고 베냐민의
첫다음도 "벧"( )으로 똑같다. 베낄때 앞글자 "브네"의 "벧"( )을 뒷
글자(베냐민)의 "벧"( )으로 잘 못 보고 앞글자를 다 빠뜨린 것 같다.
예문) 사무엘상 14:41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컨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 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개역)
사울이 1.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 아뢰었다."오늘 소인에게 응답하지
않으시 니, 웬일이십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만약 그 허물이
저나 제 자식 요 나단에게 있다면 우림이 나오게 하시고, 그 허물이
당신의 백성 2.이스라엘에게 있다면 3.둠밈이 나오게 하십시오" 그러자
요나단과 사울이 걸리고 백성이 풀려 났다(공역).
위의 예문은 개역과 공역 사이에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우선
공역을 가지고 설명해 보자. 앞줄의 끝자가 이스라엘이고 뒷줄의
끝자도 이스라엘이라고 가정 하자. 이때 앞줄의 끝자까지의 모든 글을
다 빠드릴 수 있다. 이 가정대로라면 공역에서 1.(이스라엘)을
2.(이스라엘)로 잘못 보고 2.까지의 모든 것을 다 빠 드린 셈이다.
그리고 곧 이어서 3.으로 베껴 내려갔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사
실이라면 공역은 이렇게 된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
아뢰었다. '둠밈이 나오게 하십시오.' 그러자 요나단과 사울이
걸리고 백성은 풀려났다." 이것을 개역이 이렇게 번역했다.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 뢰되 원컨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 라." 말을 바꾸면
개역은 구약 본문을 옳다고 본다. 그러나 공역은 구약 분문을 틀
렸다고 본다. 한 줄이 다 빠졌다고 본다. 그 빠진 한 줄을 되살려서
번역한 것 이다. 다른 곳에서도 그 빠진 한 줄을 되살려서 그대로
지니고 있다.
예문) 사무엘상 13: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년에(개역) ...(공역)
구약 본문의 첫 머리에 "벤-샤나"( )로 되어 있다. 그뜻은 한해의
아들이 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한 해의 아들이란 말이다. 무슨
뜻인가? 도무지 알 길 이 없어 공역욕은 다른 곳에서처럼 1절을 다
빼버렸다. 그러나 개역은 짐작하여 1절을 새로 만들었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나이 세였고 "에서 그 숫자가 빠진 것으로
추측했다.그래서"사십"을 써 넣었다. 사십의 출처는 성경에 분명하지
않 다. 굳이 찾는다면 사도행전 13:21을 들 수 있다.
4. 덧붙인 경우
남의 그를 베끼다 보면 한 번 베낄 것을 두번 베끼는 경우가 있다.
예문) 에스겔 48:16 ......남편도 사천 오백 척이여...(개혁)
......남쪽 측면 사천 오백 척....(공역)
구약의 본문에는 하메쉬 가 두번 나온다. 그 뜻은 오(5) 이다.
그대로 번역하 면 "오오백"이 된다. 개역과 공역은 다른 곳15)
에서처럼 그 하나를 빼고 "오백 "으로 번역했다. 문맥으로 봐서
그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오오백"은 "이천 오백"이 되고 그 앞의
"사천"과 합하면 "육천 오백" 이 된다. 북편, 서편,동편 이 모두
"사천오백척"인데 남편만 육천 오백 척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문) 사무엘하 6:3,4
(1)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신도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 느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야호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2) 저희가 산에 있 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행하고 (개역) 그들이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 고 나올 때,
아비나답의 아들 우짜와 아효가 그 수례를 몰았다. 우짜는 궤 옆에 서
따르고, 아효는 궤 앞에서 인도했다.(공역). 개역에서는 같은 내용이
이 두번 (밑줄 친 (1) 과 (2) 반복되는데. 공역은 그 렇지 않고 한
번만 (밑줄 친 부분) 나온다. 개역은 구약 본문을 따랐다. 그러나
공역은 본문에 실수가 있다고 본다. 한 번 베낄 것을 두 번 베꼈다고
본다. 공역은 다른 곳16) 에서 처럼 한 번으로 보고 번역했다.
5. 순서를 바꾼 경우
자모,낱말 등의 순서를 바꾸면 뜻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오십리 길 을 걸었습니다." "나는 십오리 길을 걸었습니다." 두
예문은 "오"와"십"의 자 리를 바꾼 경우이다. 구약 본문에도 이런
실수가 나타나 있다. 예문) 에스겔 42:16 .... 동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개혁) .... 동쪽을 측량 장대로 재니 오백 척이었다(공역) 이
예무에서 밑줄 친 백은 본문에 에모트이다. 그 뜻은 규빗이다.
본문을 그 대로 번역하면 "오 규빗 척"이 된다. 에스겔 42장
16절,17절,19절로 흘러가는 문맥을 볼 때. "오 규빗 척"이 아니고
"오백 척"이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메오트를 에모트로 잘못 베낀
것이다. 메오트는 백을 뜻한다. 곧 멤과 알렙의 자리를 바꿔 베낀
셈이다. 우리의 개역과 공역은 본문의 실수를 다 같이 인정하고 다른
곳17) 에서처럼 "오백 척"으로 번역했다. 구약 본문의 난외 주해18)도
그 실수를 인정하고 있다. 예문) 시편 49:11 (본문 12절)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개혁) ...그들의 영원한 집,언제나
머룰 곳은 무덤 뿐이다. (공역) 위 예문의 밑줄 친 부분은 본문의 첫
글자인 키르밤이다. 그 뜻은 "그들의 속 생각"이다. 그러나 둘째
자음 레쉬와 세째 자음 벧 의 자리를 바꾸면 키브람이 되고 그 뜻은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만다. 개역은 본문을 그대로 옳다고 보고
"저희의 속 생각"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공 역은 본문을 틀렸다고
보고 다른 것19) 을 따라 "무덤"으로 번역했다. 그뿐 아니라 낱말의
순서까지 바뀌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예문) 사무엘상 22:23 ...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개혁) ... 당신 목숨을
노리는 자는 내 목숨도 노리고 있소...(공역) 위 예문에서 개역과
공역은 다 같은데 인칭 소유격이 다르다. 1인칭과 2인칭 이 뒤바뀌져
있다. 먼저 공역을 생각해 보자. 본문의 문맥의
문맥(삼상22:20-23)을 보면, 사울 왕 이 아비아달의 목숨까지 노리고
있다. 당신 (아비아달)의 목숨을 노리는 자 (사 울 왕)는 내 (다윗)
목숨도 노리고 있을 것이라는 다윗의 말이다. 공역은 본문 자체의
낱말보다는 그 문맥 (흐름)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공역은
본 문을 틀렸다고 보고 다른 곳20)을 따라 인칭을 뒤바뀌서 번역했다.
개역은 본문을 옳다고 보고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사물엘상 책전체를
놓고 보 면, 사울 왕이 다윗의 새염을 차조 있었다. 이것을 눈치챈
다윗은 죽지 않기 위하여 도망을 치고 있었다. 아비아달이 다웃을
찾아왔기 때문에 사울 왕이 다 윗의 생명만 찾고 있을 뿐 아니라
아비아달의 생명까지 찾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볼 때, 내 (다윗)
생명을 찾는 자(사울 왕)가 네 (아비아달) 생명도 찾는다고 해서 꼭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개역은 본문을 수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번역했다.
6. 잘못 띄어 쓴 경우
"여보소밥먹소"를 여러 가지로 띄워 쓸 수 있다. 예컨대 "여보 소밥
먹소"또는 "여보소 밥 먹소"이렇게 띄어 쓰기를 다르게 하면 그 뜻이
달라진다. 구약 본분은 원리 모음도 없이 자음들만 나열해 놓았다.
마소라 학자들이 그 자음들을 띄워 쓰면서 모음 기호도 붙였다. 잘못
띄어 쓴 경우는 본문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학자들이 잘못 띄어 쓴
결과이다. 예문) 이사야 2:20 ....은우상과 금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개역) ....은우상과 금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져 주게 되리라(공역) 본문에 라흐포르 페로트라는 두
낱말이 나온다. 그 뜻은 쥐의 구멍에게이다. 그런데 다른곳(21)
에서는 이 두 낱말들이 한 낱말로 되어 있다. 공 라흐파르파로트이다.
그 뜻은 두더지에게이다. 우리 개역과 공역은 본문에 띄어 쓴 것을
잘못보고 번역했다. 위와 같이 한 낱말을 두 낱말로 잘못 띄어 쓴
경우가 있는 반면에 띄어 써야 할 두 낱말로 붙여 쓴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예문) 아모스 6:12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개혁) 말이 바위 위를 달리겠느냐? 소에
멍에를 씌워 바다를 갈겠느냐?...(공역) 본문의 상반절 끝에
바브카림이란 한 낱말이 나온다. 그 뜻은 소들로이다. 만일 이
낱말을 두 낱말로 나눈다면 바바카르 얌'이 되고, 그 뜻은 소로 바다
를이다. 만일 이것을 한 낱말로 보고 번역하면 "소들로 갈겠느냐?"가
되고 두 낱말로 보고 번역하면 "소가 바다를 갈겠느냐?"가 된다.
개역은 본문을 옳다고 보고 번역했고, 공역은 본문의 띄어 쓰기가 잘못
되었다고 보고 번역했다. 개역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본문의
문맥은 부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며 질문을 던지고 잇다. 그런데 "소가
어찌...밭갈느냐"는 부정적인 대답이 나올 수 없다. 소가 밭을 가는
까닭이다. 본문에 없는 거기를 개역은 덧붙여서 번역 했다.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개역에서 거기는 바다가 아니고 본문 앞
부분의 "바위" 암시해 준다. 소가 바위를 갈 수 없으니 자연 부정적인
대답을 기대할 수 있다.
7. 모음을 자음으로 오해한 경우
히브리어 알렙, 헤, 요드, 와우는 원래 자음이다. 자음으로만 된
구약 본문의 자음에 모음 기호를 만들어 넣었다. 그 때 위에 언급한
자음들이 모음 구실을 하고 있는데 그것들을 자음으로만 알고 모음
기호을 덧붙여 넣은 경우가 없지 않다. 예문) 민수기 21:1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개혁)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공역) 위의 밑줄 친 부분의
본문은 하아타림이다. 그런데 다른 곳22)에서는 하타림 으로 나온다.
본문은 알렙을 자음으로 보고 그 아래 모음 기호 아를 붙였다. 반면에
다른 곳에서는 알렙을 모음으로 보고 빼버렸다. 앞 자음 헤는
정관사이 므로 지명이 아타림이냐, 타림이나가 문제이다. 구약 본문
아다림으로 번역했다. 예문) 아모스 2:7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개역) 너희는 힘없는 자의 머리를 땅에다
짓이기고...(공역) 위 예문의 밑줄 친 부분의 본문은 하쇼아핌이다.
이 낱말의 동사의 원형은 (샤 아프)로 뜻은 탐내다이다. 그래서
하쇼아핌의 뜻은 탐내는 자들이다. 반면에 다 른 곳 23)에는
하샤핌으로 되어 있다. 이 낱말의 동사의 원형은 슈프이고 그 뜻 은
상처내다이다. 하샤핌의 뜻은 상처내는 자들이다. 본문과 다른
곳과는 차이 점은 전자에는 세째 자음으로 알렙이 들어있고, 후자에는
알렙이 빠져 있다. 말을 바꾸면 전자는 알렙을 자음으로 보았고,
후자는 알렙을 모음으로 보았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알렙이 있고
없고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개역은 구약의 본문을
옳다고 인정하고 그것을 탐내며로 번역했다. 그러나 공 역은 그
본문을 틀린 것으로 보고, 다른 사본을 따라 짓이기고로 번역했다.
8. 모음 기호를 잘못 붙인 경우
주전 6세기에 유다 나라는 망하고 그 백성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 그 들은 그곳에서 아람어를 썼다.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아람아어를 썼고 예수님 당시에도 아람어가 생활 언어였다.
따라서 그들은 히브리어의 발음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다. 자음으로만
씌어진 구약 본문도 제대로 발음할 수 없기 에 이렀다. 이 발음을
되살리기 위하여 마소라 학자들은 주후 5세기부터 발음 기호를 만들어
가장 전통 (표준)적인 발음을 구약 본문에 붙였다. 자음이 같더라도
모음이 다르면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더, 예컨대 한글과 ㄱ과 ㅁ에
모음을 다르게 붙여 보자. 감,검,곰,굼,갬 등이되고 그 뜻도 각각
다르다. 구약 본문에도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문) 아모스
9:12 ....에돔의 남은 자...(개역) 에돔에 남은 백성...(공역) 예문)
사도행전 15:17 ...그 남은 사람들...(개혁) ...살아 남은 백성들
...(공역) 예문1) 에서 밑줄친 낱말의 구약 본문은
알렙,달레ㄷ,멤)이다. 세 자음 ㅇ,ㄷ, ㅁ,에 모음 ㅔ,ㅗ,를 붙여
에돔이 되었다. 그러나 이 세 자음에 다른 모음을 붙여 보자, ㅏ,ㅏ를
붙이면 아담이 된다. 이 아담은 우리말로는 사람을 뜻한다. 예문2)는
예문1)의 인용문이다. 곧 사도행전 15:16-18은 아모스 9:11-12을 인
용해 놓은 것이다. 그 내용이 비슷하나 똑 같지 않는 것은
사도행전에는 구약 본문이 인용되어 있지 않고 다른 곳24)에서 인용해
온 까닭이다. 예문2)에서 밑줄 친 부분 곧 사람들 ,백성들은
예문1)에서의 에돔에 해당된다. 구약 본문에는 에돔으로 모음 기호를
붙였고, 다른 사본에는 아담으로 발음했기에 사람들, 백성들로
번역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본문의 신약의 그 인용문과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문10) 에서 개역과 공역은 다같이 구약
본문의 발음이 옳은 것으로 보고, 에 돔으로 번역했다. 예문)이사야
7: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개역) 너는 야훼 너의 하나님께 징조를 보여 달라고
청하여라,지하 깊은 데서나 저 위 높은 데서 오는 징조를 보여 달라고
하여라 (공역) 위 예문의 밑줄 친 부분이 구약 본분에는
쉰,알렙,라메ㄷ,헤로 되어 있다. 여 기에 : 에,아,아의 세 모음을
붙이면 쉐아라가 되고 그 뜻은 구하다이다. 그러나 여기에:에,오,아를
붙어면 쉐오라가 된다. 그 뜻은 전자와 전혀 다른 지 하에서가 된다.
구약 본문에서는 윗 낱말을 쉐아라로 발음한다. 그러나 다른
곳25)에서는 쉐오 라라로 발음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만일 이 낱말을
쉐오라로 발음하면 히브리 시 형태에 잘 맞고 그 문맥도 잘 통 한다.
이를 공욕에서 설명해 보자. "지하"(스올)는 "저위"(하늘)와 대귀가
되고 "깊은데서"는 "높은데서"와 대귀가 되어 그 깊고 높음이 잘
대조(비교)되고 있 다. 그러나 이 낱말을 쉐아라로 발음하면 조금
어색하다. 개역에서 공역의 '지 하에서"에서 해당하는 낱말을
"구하라"로 번역하니 자연 공역의 "저 위"에 해당 되는 낱말을 넣을
자리가 없어진다. 그래서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로 번역하여
대귀를 이룬 것 같다. 독자께서 이미 짐작했듯이, 개역은 구약 본문의
발음을 옳다고 인정하고 그대로 번역했고 공역은 그것을 틀렸다고 보고
다른 곳을 따라 번역했다.
III. 결 론
본 논문에서는 구약 본문에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유형별과 나누 어 나열하고, 그것들을 한글 성경 개역 및 공역과 비교
하면서 설명했다. 물론 그 유형이 다 여기에 소개된 것은 아니다.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연구하는 사람은 먼저 구약 본문에
대한 태도 가 옳아야 한다. 구약 본문에 나타난 실수를 과대 평가하여
그 모두를 불신해서 는 안 된다. 반대로 그 실수를 과소 평가하여
묵살하고 다 옳다고 우겨도 안된 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그는 진실과 진 리를 찾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가 구약 본문을 연구하여 그 결과 훌륭한
것을 발견하여 본문을 수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본문 비평의 한 자료로 남아 있어야 한 다. 그것이 구약
본문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약의 원 문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구약의 본문을
절대(우상)화 해서는 안된다. 거기에는 인간의 실수가 끼어 있다.
그러기에 연구가 필요하다. 반면에 그는 구 약 성경을 다른 책들과
같이 상대화해서는 안된다. 다른 책들에는 비록 실수나 오자가
없더라도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성경에는 비록
실수나 오자가 있더라도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고하 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진실과 진리를 찾는
구도자(구도자)의 겸헌한 자세로 성경 연구에 임해야 한다. 이러한
자세를 갖추게 하기 위하여 그약의 원문은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2008년 10월 22일 방언기도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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