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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4년 10월 6일(제40주) 오전 11:00
장소 : 인천은혜교회당
본문 : 출애굽기 6:2-9
제목 : 가나안 땅을 내 기업으로 삼는 길
사람들은 대부분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목표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삶의 부여하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때는 힘차게 앞을 향해 전진해 나가지만 목표가 사라지고 절망에 사로잡히고 나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게 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힘든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2:23-25에 보면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당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수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으로 넘어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 ”
8절에 보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고 말씀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아직 애굽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애굽에서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울부짖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왜요? 9절에 보면 “... 그들의 마음이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어려워서 죽겠는데 약속의 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응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애굽에서 가혹한 노역으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이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출애굽이 먼저 진행되지만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기까지는 험난한 광야생활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40년 동안 메마른 광야에서 물을 구하기 위해 방황하고 굶주림과 고통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고난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애굽의 종살이가 끝나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언약입니다. 그 핵심 내용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8절입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으로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조금 앞서 가보면,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점령하여 지파별로 분배하는 일로 일생을 보내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점령한 그 가나안 땅,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는 가나안 땅은 과연 어떤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땅’의 신학적 이해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성경의 전제는 ‘땅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상입니다. 그러한 성경적 주장에 대한 근거는 무엇보다도 창조신앙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그 땅의 소유권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살렘 왕 멜기세덱의 축복에 화답하는 아브라함의 고백 속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곧 ‘천지의 주재시요, 즉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으로 표현되었습니다(창 14:19).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상대자로 선택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출애굽기 19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출 19:5). 여기서 말하는 ‘세계’(에레츠)는 추상적 개념의 세계가 아니고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실제적 땅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땅의 실제적 주인이 되신다는 신학 사상을 보다 명백하게 밝힌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이기 때문에 그 땅을 영영히 팔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희년의 규례입니다(레 25:23).
성경에서 땅이 하나님에게 속했다는 주장은 단순히 하나님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거주하여 살아갈 법적인 근거를 제시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땅의 실제적 주인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땅에 살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땅의 실제 주인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앞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어질 맹세의 땅, 가나안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았을 뿐이지 땅의 실제 주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라고 주장하시면서 이스라엘은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는 신분으로 그 땅을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기업으로 삼을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축복의 선물로 주셨다는 것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신학적 강조점이 들어 있습니다. 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된 것은 그들의 선조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관점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②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③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계속적으로 차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잘 해야만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될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설정해 놓으신 특별한 삶이 요구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한 요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특히 신명기에 제시된 규례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사항들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2:1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그러면서 그런 규례와 계명을 지켜야 그 땅을 차지하며 살게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신 4:1, 5, 8:1, 11:8, 10, 31). 그러므로 가나안 땅은 약속의 선물일 뿐만이 아니라 책임을 요구하는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힘들어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말씀에 초점을 맞춰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가나 자기의 목표가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도 소원하던 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축복의 땅인데 비해서 저들은 오랫동안 애굽에서 고된 노동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가나안 땅을 밟아볼까, 어떻게 하면 이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볼 수 있을까 하며 꿈에도 그리던 그 땅을 이제 저들이 향하여 나가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 가나안은 영적으로 보자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실 천국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천국백성입니다. 하늘나라 시민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에 보면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②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출 2:23). ③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의 멍에를 벗겨주기 위해서입니다. 주의 백성이 절대로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진리로 자유하게 되기를 기뻐하십니다. ④ 이스라엘 자손들을 거룩하게 성별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들과 함께 혼합되어서 고난과 슬픔과 저주와 고통과 멸망을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함께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다 성별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⑤ 하나님만 섬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출 8:1) 하나님이 인간에게 종교성을 주었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찾지 못 했기 때문에 쓸데없는 우상 사신들, 더러운 귀신들, 악령들 속에서 사로 잡혀서 영도, 육도 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성도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입니다. ⑥ 하나님 기업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비해 둔 것을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기 위해서 예비해 두신 줄 믿습니다. ⑦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을 섬기는 일을 집례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인도해주는 자입니다. 가정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예배를 인도해주고, 예배를 가르쳐 주고,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자녀가 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지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이렇게 중요한 것이 가나안 땅이라면 성도는 반드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자기의 소유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거기에 대한 답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질서가 있는 삶
세상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수순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질서가 바뀌면 끝이 달라집니다. 진리를 떠난 이단들이 세상을 흔들어 댄다고 해도 이단의 끝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질서 안에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교회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악과를 제외한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인간의 자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방주를 지을 때도 그냥 지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막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씀의 지침이 있었습니다.
성도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법도를 말씀하시고 성도가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율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7장에서부터 시작되어 10장까지 계속되는 애굽 땅에 내리는 10가지 재앙으로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 나가게 허락해 줍니니다. 그것이 출애굽기 12장의 내용입니다. 이제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출발하기전 민수기 1장에 보면 인구조사가 시행됩니다.
민수기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그들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했습니다. 왜 인구조사를 하게 했을까요? 그때 당시는 요즘과 같이 전가계산기가 없을 때입니다. 그리고 마이크나 메가폰을 통해서 일제히 전달할 수 있는 그러한 연락망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가운데 왜 힘든 인구조사를 하게 하셨을까요?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조직과 질서가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린도전서 14:33에 보면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질서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십니다. 심지어 출애굽기 12:51에 보면 저들이 행군할 때에 군대와 같이 항오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는 아스팔트도 없었습니다. 대로도 없었습니다. 저들이 어떻게 가나안을 가야될지도 모르는 그런 때이지만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 단 지파, 요 셉 지파, 갓 지파, 레위 지파 … 등을 조직을 해서 그 조직을 따라서 그리고 1,000명 단위로 천부장, 100 명 단위로 백부장, 50명 단위로 오십부장, 10명 단위로 십부장 이렇게 조직을 만들어 가지고 저들로 하여 금 가나안을 향하여 행군하게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성도들은 먼저 마음의 질서를 세워야 됩니다. 가정의 질서를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어떤 단체든지 단체의 질서를 세울 줄 알고, 국가에도 질서가 세워져야 됩니다. 가정에도, 교회에도 질서가 세워져야 됩니다. 마음의 질서가 안 잡힐 때에는 우리는 그 상태가 1초라도 지체하지 않게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안 나오면 하나님이라도 자꾸 부르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이 절대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해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의 어지러운 질서를 바로잡아 주시고 이끌어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하나가 질서입니다. 하나님은 혼돈(카오스)을 ‘질서’(코스모스)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대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면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1:2), 하나님의 창조는 무질서를 질서로 만드심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질서 있게 하시고 사람을 그 질서 안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누가 파괴하려고 할까요? 바로 사탄 마귀입니다. 마귀는 질서보다는 혼돈과 다툼을 좋아합니다. 그러AM로 마귀는 조그마한 무질서도 확장해서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질서 있는 삶’을 권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임박한 종말론에 빠진 성도들의 일상이 파괴되어 무질서해졌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세상에 살지만 세상 것 때문에 믿음의 질서를 무너뜨리면 안 됩니다. 믿음생활은 모든 삶의 첫 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세상 것과 바꾸거나 뒤로 미루면 그런 사람에게는 가나안 땅이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순종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려고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제 출애굽하여 내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그 땅,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맹세한 땅에 들어가려면 이제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았습니다. 그것은 모세를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큰 나라의 씨앗입니다. 이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왜 다시 바치라고 하실까요?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두 가지 중요한 신앙의 핵심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첫째는 순종이요, 둘째는 헌신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는 반드시 택하신 종들의 순종과 헌신, 두 요소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순종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피조물은 순종합니다. 그 외 다른 어떠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지존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와 상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시는 분이시므로, 우리의 의견을 들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높고 깊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할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순종이란 무엇일까요? 순종이란 이해가 되지 않고 생각이 달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맞으면 순종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내 뜻이 없고 순종만 한다면 나는 로봇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로봇이 아닌 자기 뜻을 가진 인간이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중요한 것은 그것은 바로 믿음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신뢰하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아도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렸을 때부터 아무도 믿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입니다. “하나님을 믿느냐? 그렇다면, 내 말대로 순종하라.” 만약 신뢰 관계가 없다면 절대 그 말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아도 순종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순종이라는 것은 맹종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순종을 위해서는 자기를 내어주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으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순종은 순순히 따름의 뜻이며 자기 의사를 가지고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복종은 남의 명령이나 의사를 그대로 따라서 좇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순종은 자발적인 의사 결정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순종은 성경이 강조합니다. 성경은 순종을 빼고 믿음을 말할 수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빌 2:8). 자기의 선택권마저 아버지께 드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따르셨다는 표현을 복종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성도의 순종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길이고 방법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서 범지하는 것이지 순종해서 범죄하는 일은 없습니다. 요한복음 3:36 “ ” 히브리서 4:11 “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을 행해 갈 때에 그 길은 전혀 낯선 초행길이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았던 초행길을 매일 매일 살아갑니다. 아무도 살아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또 정말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예비해주실 줄을 믿습니다.
이 지구촌 어느 곳에 살든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은 황인 종, 흑인종, 백인종,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차별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오늘날 이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은 안간힘을 다하고 몸부림을 치면서 생존경쟁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지만 이 지구촌의 어느 한 곳도 평안한 곳은 없습니다.
전쟁, 테러, 죽음, 기근, 이런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어두움들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중요한 것은 저들에게 하나님께서 높이 구름기둥을 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가면 가나안 땅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구름기둥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같은 시험도 구름이 햇빛을 가리듯이 우리에게서 막아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에 보면 “이 말씀을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 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성경 말씀을 생활 속에 법률로 삼아 서 사는 개인, 가정, 국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십니다.
이 세상에 어떤 철인의 명언도, 어떤 문인들의 아름다운 명언도 어떤 깨달음과 교훈과 감동을 주지만 영적인 생명의 양식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구름기둥을 따라서 갈 때에 가나안 땅을 갈 수 있었습니다. 또 저들에게는 캄캄한 밤에 전후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저들 앞에는 큰 불기둥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 불기둥이 움직이는 대로 이동했습니다. 이 불기둥은 바로 오늘의 성령의 역사를 교훈해주기도 합니다.
성령님께서 감동하시는 대로 인도는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성령님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함께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말씀만 따르고 성령만 따르면 흔들리지 않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멸시하고 저주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고 높여주신다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는 승리하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잠시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지 않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절대 순종하는 성도가 가나안의 입국자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긍정적인 믿음
믿음의 힘은 성도의 삶을 변화시키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성도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를 이루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성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란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이나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되면, 어려운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도전할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시켜 줍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신을 믿어주는 말을 자주 하며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과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삶을 더욱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믿음을 잃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는 힘은 우리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믿음을 갖고 노력하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힘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여 우리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힘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성도의 삶을 변화시키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성도는 믿음을 갖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삶을 즐기는 습관을 기르면, 성도의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모세로부터 출애굽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무엇보다 말씀에 때한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자기 기업으로 삼으려면 긍정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 9절에 보면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고 하였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에 부정적이었다는 말입니다.
민수기에 가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게 된 가장 중요했던 것 중에 하나가 긍정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민수기 13:25-14:10에 보면 각 지파를 대표해서 뽑은 열두 정탐꾼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처럼 어리석고 미련하고 간사한 것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을 40일 동안이나 정탐을 하고 나서 열 명의 정탐꾼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 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고 하면서 벌벌 떨었습니다.
심지어 민수기 13:32,33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 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온 이스라엘 백성이 이 말을 듣고 밤새도록 통곡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장관을 하나 세워가지고 모세를 거역해버리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저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며 운 울음은 정 말 얼마나 값이 없는 울음이었을까요? 성도는 울어도 값있는 울음을 울어야 됩니다. 이 부정된 말을 듣고 두려워 떠는 저 울음, 저들은 좌절과 절망 속에 정말 아무 가치 없는 이런 울음을 울며 아우성쳤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민수기 13:30에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이르되 우리가 곧 올 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얼마나 긍정 적인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절대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쓰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 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물리쳐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민수기 14:7-9 에도 보면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똑같은 땅을 보았는데도 부정된 눈으로 보니까 부정된 보고를 하게 되고, 긍정적인 눈으로 보니까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와 갈 렙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말라”(민 14:8-9)고 백성들을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말한 그대로 가나안땅을 주셨습니다. 농담도 진담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담이라도 부정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말속에 얼마나 부정된 말이 많은지 압니까?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꾸어야 됩니다. ‘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말로, ‘정말 어렵다’는 말을 ‘쉽다’, ‘안 된다’는 말을 ‘된다’는 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속에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십니다.
4. 중단 없는 전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게 된 것은 중단 없는 전진을 통해서 가나안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 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출 13:21) 여기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주야로 진행하게 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서 10:38 에 보면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 했습니다. 힘찬 전진 속에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가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승리자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자가 아니라 실패 할 때마다 일어난 자이고, 낙심하거 나 좌절하지 않고 전진하는 자입니다. 성도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전진해야 합니다(히 12:1-2).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가나안 땅, 천국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그 천국 기업이 저절로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을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성도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질서가 있는 삶,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생활, 긍정적인 믿음, 중단 없는 전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님을 믿는 자에 게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