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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28세 ; 신덕왕(神德王 ? ~ 917)
신라 제53대 왕이다. 휘(諱)는 경휘(景暉)이며, 시호(諡號)는 신덕(神德)이다. 신라 시조왕 28세손이고, 아달라왕(阿達羅王) 24세손이다. 부친은 신령대군(神靈大君) 대아찬(大阿飡) 휘(諱) 예겸(乂兼)으로 추존(追尊) 선성왕(宣聖王)이시고, 어머니는 정화부인(貞和夫人)으로 추존(追尊) 정화태후(貞和太后)이시다. 서기 912년(壬申) 4월에 효공왕(孝恭王)이 죽고 자손이 없어 아달라왕(阿達羅王)의 원손(遠孫)이며 헌강왕의 사위1>인 경휘(景暉)를 백성들이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니 바로 신덕왕(神德王)이다. “사람들이 왕위를 다시 박씨에게 전하였다고 백성은 노래하고 벼슬아치는 모여들어 우리 임금 박씨는 아달라왕의 후손이라 하니 이로써 시조왕(始祖王)의 음덕(蔭德)을 가히 조징(兆懲)할 수 있었다.<是謂復傳朴氏謳歌朝觀者皆歸曰吾君朴氏阿達羅王之後孫始祖王積累餘蔭斯可驗矣-密陽朴氏糾正公派大同譜에서 인용->라고 전해지고 있다. 견훤(甄萱)과 궁예(弓裔)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전력했다. 서기 917년 재위 6년 되던 해 훙서(薨逝)하니, 경주 죽성(竹城)에 장사 모시었다. 비(妃)는 헌강왕(憲康王)의 공주이며 의성왕후(義成王后) 김씨(金氏)이다. 슬하(膝下)에는 세 왕자와 한 분의 공주가 있다. 태자(太子)는 경명왕(景明王) 휘(諱) 승영(昇英)이고 둘째 왕자(王子)는 경애왕(景哀王) 휘(諱)는 위응(魏膺)이며 세 번째 왕자(王子)는 대보문하시중목사(大輔門下侍中穆士) 효겸(孝兼)이고, 공주(公主)는 석빈(昔彬)에게 시집갔다. 왕의 능원(陵園)은 배일산(拜日山) 묘좌(卯坐)이고, 비(妃)의 능원(陵園)은 영산(靈山) 자좌(子坐)이다. 사적이 역사와 족보에 실려 있으며 세자 경명왕이 왕위(王位)를 이었다. |
| 1> 헌강왕의 사위 ; 신라 왕조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책에서 신덕왕(神德王)을 설명하기를 “삼국사기에 따르면 아버지는 대아찬(大阿飡) 예겸(乂兼)이고, 어머니는 정화부인(貞和夫人)이며, 비(妃)는 헌강왕의 딸 의성왕후(義成王后) 김씨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2 신덕왕 편에는 “神德王立姓朴氏諱景暉阿達羅王遠孫父乂兼一云銳謙事定康大王爲大阿湌母貞和夫人妃金氏憲康大王之女(신덕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은 박씨, 휘는 경휘, 아달라왕의 먼 후손이다. 아버지는 예겸(乂兼)인데 '예겸(銳謙)'이라고도 한다. 정강대왕을 섬겨 대아찬이 되었었다. 어머니는 정화부인이다. 왕비는 김씨로 헌강대왕의 딸이다.)”라고 기록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밀양박씨규정공파대동보의 신덕왕 비(妃)의 방주(傍註)를 보면 “王妃金氏孝恭王女誕三男一女陵靈山子坐事載史譜”라 하였다.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2 효공왕(孝恭王) 편에는 “三年春三月納伊湌乂謙之女爲妃(재위 3년 춘 3월에 이찬 예겸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라고 적고 있어, 효공왕은 신덕왕의 아버지 박예겸의 사위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밀양박씨규정공파대동보만 본다면 신덕왕은 효공왕의 부마(駙馬)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 기록은 시차 상 앞뒤가 맞지 않은 착오가 있어 보인다. 신덕왕이 처남의 딸에게 장가를 갔다는 데에는 시간적,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따라서 여기서는 보편적인 기록과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헌강왕(憲康王)의 사위와 공주로 서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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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卷十二 新羅本紀 第十二 神德王 條
○神德王立姓朴氏諱景暉阿達羅王遠孫父乂兼[一云銳謙]事定康大王爲大阿飡母貞和夫人妃金氏憲康大王之女孝恭王薨大王之女無子爲國人推戴即位。○元年 五月追尊考爲宣聖大王母爲貞和太后妃爲義成王后立子昇英爲王太子 拜伊飡繼康爲上大等。○二年 夏四月隕霜地震。○三年 春三月隕霜 弓裔改水德萬歲爲政開元年。○四年 夏四月槧浦水與東海水相擊浪高二十丈許三日而止。○五年 秋八月甄萱攻大耶城不克 冬十月地震聲如雷。○六年 春正月太白犯月 秋七月王薨諡曰神德葬于竹城。 < 원본 인용 ;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奎貴 3614-v.1-10, 奎 4354-v.1-10) 판본 >
○신덕왕<神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박씨이며, 이름은 경휘이고 아달라왕의 원손(遠孫)이다. 아버지는 예겸(乂兼)[혹은 '예겸(銳謙)'이라고도 한다.]이다. 정강대왕 때에 대아찬이 되었었다. 어머니는 정화부인이다. 왕비는 김씨로 헌강대왕의 딸이다. 효공왕이 훙서(薨逝)하였는데, 자식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추대하여 왕위에 즉위하였다。○원년 5월 선친(先親)을 선성대왕(宣聖大王)으로 어머니를 정화태후(貞和太后) 추존하고, 왕비를 의성왕후(義成王后)로, 아들 승영(昇英)을 왕태자로 세웠고, 이찬 계강을 상대등으로 배명하였다。○2년 여름 4월에 서리가 내렸고 지진이 있었다。○3년 봄 3월 서리가 내렸다. 궁예가 수덕만세(水德萬歲) 연호를 정개(政開)로 고쳤다. 이 해가 정개 원년이다。○4년 여름 6월 참포(槧浦)의 물과 동해의 물이 맞부딪쳐서 물결 높이가 20장 가량 솟았다가 3일이 지나서야 멈추었다。○5년 가을 8월에 견훤이 대야성을 공격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겨울 10월 지진이 있었는데 우레 같은 소리가 났다。○6년 봄 정월 금성이 달을 범하였다. 가을 7월 왕이 훙서(薨逝)하였다. 시호(諡號)를 신덕(神德)이라 하고 죽성(竹城)에 장사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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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王曆 第一 第五十三神德王 條
第五十三 神德王[朴氏名景徽本名秀宗 母眞花夫人 夫人之父順弘角干追諡成庑<武>大王 祖元(隣)角干乃阿達(羅)王之遠孫 父文元伊干追封興廉大王 祖文官海干 義父銳謙角干追封宣成大王 妃資成王后一云懿成又孝資 壬申立理五年 火葬藏骨于箴峴南] < 원문인용 : 규장각 古貴951.03-119s-v, 1-2. 목판본(正德版 ) >
제53 신덕왕 [박씨이며 이름은 경휘로 본래 이름은 수종이다. 어머니는 진화부인이고, 부인의 아버지는 순홍 각간이니 시호를 성무대왕으로 추봉하였으며, 할아버지는 원린 각간으로 곧 아달라왕의 원손이다. 아버지는 문원 이간이고 흥렴대왕으로 추봉되었고, 할아버지는 문관 해 간이며, 의부는 예겸 각간이고 선성대왕으로 추봉되었다. 왕비는 자성왕후로 혹은 의성(懿成) 또는 효자(孝資)라고도 한다. 임신년에 즉위하여 5년간 다스렸다. 화장하여 뼈는 잠현 남쪽에 묻었다.] <譯註> 진화부인 부계의 이해 ; 진화부인 부친 순홍 각간은 신라 제53대 신덕왕의 외조부가 된다. 원린(元隣) 각간의 아들이며 신덕왕이 즉위한 후 성무대왕(成武大王)으로 추봉되었다. 따라서 원문의 ‘追諡成庑大王’은 ‘追諡成庑(武)大王’으로 ‘祖元角干’은 ‘祖元(隣)角干’으로 교정하였고 이에 맞춰 번역하였다. 왕비 자성왕후(資成王后) ; 삼국유사에는 '妃資成王后一云懿成又孝資'라 하였으니, 왕비는 자성왕후로 혹은 의성(懿成) 또는 효자(孝資)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 妃金氏憲康大王之女' 또 '妃爲義成王后'라 기록하여 왕비는 헌강왕의 따님으로 신덕왕이 즉위함에 의성왕후(義成王后)로 삼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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