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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영화 관계자들은 ‘3부작’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을 언급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영화 전문기자는 “몇몇 유명 감독과의 대화에서 ‘이왕이면 3부작이 낫지 않겠나’는 식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감독들 사이에 3부작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작가주의 성향이 강한 감독들이 자기만의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완성하는 도구로 3부작 작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할리우드에서 3부작 영화가 늘어나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원인은 3부작 영화의 상업적 효용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김영진 교수는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대한 이야기와 주제를 생명력을 잃지 않고 대중에게 전달하기에는 3부작 형식이 딱 알맞다”고 설명했다. 문재철 교수(중앙대·연극영화과)도 “2부작은 너무 짧고 4·5부작으로 넘어가면 관객들이 피곤해지기 마련”이라며 “관객과의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부작이 가장 무난한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3부작 영화는 할리우드의 전유물?=앞에서 열거한 작품들의 면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국내 관객의 귀에 익숙한 3부작 영화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편중 현상에 대해 김성수 기자는 “다른 지역에서 3부작 영화 제작이 미비했다기보다는, 할리우드에 가려져 잘 소개되지 않았다고 봐야한다”며 “3부작 영화가 할리우드의 전유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할리우드산(産) 블록버스터 3부작 영화 외에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본 연재에서는 우리에게 충분히 소개되지 않은 미지의 3부작 영화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자, 개봉박두.
[연재] 미지의 걸작 3부작을 찾아서 ② 네오리얼리즘 3부작 - 담담한 시선으로 현실을 담아내다
출처 : 대학신문 (2007-09-08)
글 : 김동현 기자
「스타워즈」,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3부작 영화들은 관객이 체험하지 못했던 가상세계를 선사했다. 반면 오로지 현실세계의 본질적인 모습만을 파고든 3부작 영화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네오리얼리즘 3부작 영화들이 그 대표적 사례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란?=네오리얼리즘은 무솔리니 정권이 숨겨왔던 사회현실을 폭로한 영화 사조다.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전쟁선전영화나 가벼운 연애영화만이 허용돼 사회 실상을 담아낸 작품이 없었다. 영화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던 몇몇 감독은 무솔리니 정권이 붕괴되자마자 삶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평단에서는 이들을 ‘네오리얼리즘 운동가’라고 불렀다.
네오리얼리즘 감독들은 극도의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극적인 구성이나 카메라 기교는 되도록 피했다. 이로 인해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필름 편집 최소화 ▲카메라 기교 배제 ▲기승전결식 전개 지양 ▲열려있는 결말이라는 특징을 띠게 된다. 평론가 강유정씨는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있다”며 “마치 실제 상황을 보는 듯한 사실적인 영상과 구성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비토리오 데 시카=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루키노 비스콘티(Ruchino Visconti),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를 꼽을 수 있다. 특히 로셀리니와 데 시카는 각각 「무방비 도시」(1945), 「전화의 저편」(1946), 「독일영년」(1947)으로 이어지는 ‘전쟁 3부작’과 「구두닦이」(1946), 「자전거 도둑」(1948), 「움베르토D」(1952)로 구성되는 ‘네오리얼리즘 3부작’을 제작해 네오리얼리즘의 전성기를 열었다.
로셀리니와 데 시카는 각기 다른 사회현실에 주목했다. 로셀리니가 ‘전쟁 3부작’에서 로마, 시칠리아, 베를린으로 옮겨다니며 전쟁이 빚은 비극을 담아냈다면, 데 시카는 ‘네오리얼리즘 3부작’에서 구두닦이 소년, 가난한 중년 가장, 돈 없는 퇴직 노인을 차례로 다루면서 이탈리아 소시민들의 피폐한 삶을 고발했다.
두 감독은 영화를 찍는 기법도 달랐다. 다큐멘터리 색채가 짙은 로셀리니의 작품에 비해 데 시카의 작품은 극영화에 가까웠다. 신강호 교수(대진대․영화학과)는 “로셀리니는 전쟁기록 영화감독 출신이었고 데 시카는 전직 영화배우였기 때문”이라며 “두 감독의 네오리얼리즘 3부작을 비교하며 감상해 보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제3세계로 퍼져나간 네오리얼리즘=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은 전세계 영화인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급속히 퍼져나갔다. 사회 현실이 암담할수록 수용 속도도 빨랐다.
인도 영화감독 사티야지트 레이(Satyajit Ray)는 데 시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길의 노래」(1955),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1956), 「아푸의 세계」(1959)로 이어지는 ‘아푸 3부작’을 제작했다. 이 3부작은 네오리얼리즘 정신과 인도 특유의 정서가 결합된 걸작으로 꼽힌다. 레이는 빈민가 소년의 고달픈 성장 과정을 통해 전근대적인 인도 사회를 고발했다. 김영진 교수(명지대․문화예술학부)는 “아푸 3부작의 곳곳에는 「자전거 도둑」의 잔영이 묻어난다”며 “인도 특유의 잔잔하고 완만한 카메라 영상을 통해 독특한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이란에서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 감독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1), 「올리브 나무사이로」(1994)로 이어지는 ‘지그재그 3부작’을 제작해 네오리얼리즘의 정신을 이었다.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란 사회의 아픔을 담담하게 담아낸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은 현대에도 네오리얼리즘 정신이 유효함을 보여준다.
◆네오리얼리즘 영화, 낯설지만은 않다=네오리얼리즘은 영화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문재철 교수(중앙대․영화학과)는 “현대 영화의 시작은 네오리얼리즘”이라며 “누벨바그 등 거의 모든 영화 사조에 네오리얼리즘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다. 주진숙 교수(중앙대․영화학과)는 “사회 현실과 역사를 충실히 기록함으로써 관객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영화의 시작은 아마도 네오리얼리즘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네오리얼리즘의 담담한 영상과 밋밋한 서사구조는 요즘 관객들에게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네오리얼리즘 영화 속에는 요즘 영화에서 맛보기 힘든 담백함이 묻어있다. 현란한 영상과 복잡한 이야기에 실증이 났거나 현실과 영화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면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을 감상해보자. 역사상 가장 담담하고 사실적인 3부작 영화들이 영화팬을 기다리고 있다.
[연재] 미지의 걸작 3부작을 찾아서 ③ 다큐멘터리 3부작 - '진실의 힘'으로 카메라는 돌아간다
출처 : 대학신문 (2007-09-15)
글 : 김민지 기자
생생한 현장에서 날것으로서의 진실 포착해 내
다큐멘터리 영화, 사회변혁 가능성 품고 있어
지난호 연재에서 소개된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해 전후의 피폐한 사회현실을 폭로했다.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탄생 배경에는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으며 현재까지도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란?=가상의 세계를 배우의 연기를 통해 그려내는 극영화와는 달리, 다큐멘터리 영화는 허구성이 배제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아낸 영화다. 1930년대에 이르러 영국에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존 그리어슨이 다큐멘터리 영화 이론을 확립한다. 이를 계기로 ‘다큐멘터리 운동’이 일어나 다큐멘터리 영화는 현실을 더욱 적극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많이 만들어졌고, 그 후 인종차별, 여성인권, 핵문제 등 다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현재까지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기록해 낸 영화이기 때문에 극영화에 비해 사실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기록한 것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발견해낸다. 영화평론가협회 장석용 회장은 “특히 3부작 다큐멘터리는 많은 분량의 내용을 3부작으로 나눠 제작함으로써 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관객들에게 숨 돌릴 틈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 3부작=다큐멘터리 영화는 사실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아내 역사적 기록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이러한 다큐멘터리 3부작 영화로는 칠레의 파트리시오 구스만(Patricio Guzman) 감독이 제작한 ‘칠레전투: 비무장 민중의 투쟁’을 수작으로 꼽을 수 있다. ‘칠레전투 3부작’은 「부르주아지의 봉기」(1975), 「쿠데타」(1976), 「민중의 힘」(1979)으로 구성된다. 이 3부작은 1973년에 있었던 칠레의 사회주의 민중연합 정권인 아옌데 정권의 개혁과 좌절을 담아냈다. 칠레전투 3부작은 현장에서 사건을 직접 맞닥뜨렸던 사람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직접 사건을 진술하게 함으로써 감독의 가치판단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서울영상집단의 이현경씨는 “칠레전투 3부작은 현장을 찍고 있던 카메라맨이 촬영 중 총격을 당해 영화에 나오지 못한 역사적 장면도 있을 만큼 생생한 현장성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사회 모순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3부작=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전문 TV 프로그램 「지금 그것을 보라」는 당시 미국을 휩쓴 반공산주의 매카시즘(McCathyism)을 비판한 3부작 영화를 1953년에 방영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에드워드 머로(Edward Roscoe Murrow) 감독이 제작한 「밀로 라둘로비치 소송사건」(1953), 「인디아나 폴리스의 쟁론」(1953), 「매카시 상원의원에 대한 보고서」(1953)로 이어지는 이 세 편의 영화는 매카시즘의 모순과 억압을 폭로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매카시 의원 탄핵을 결의하는 데 영향을 끼쳐 매카시즘 타도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또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는 미국의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달아 제작했다. 2001년 발생한 9.11테러를 다룬 「화씨 9.11」(2002),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사건을 다룬 「볼링 포 콜럼바인」(2004), 미국의 의료보험체제의 모순을 폭로한 「식코」(2007)는 날카로운 비판의식에 극영화 못지않은 재미가 가미돼 기존 다큐멘터리 영화와는 달리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영화평론가 남인영씨는 “감독은 관객들과 다를 바 없는 시민의 입장에서 미국사회의 권력구조를 파헤친다”며 “다큐멘터리는 사회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갖고 있기에 계속 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다큐멘터리, 비주류적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최근에는 대형 영화사의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다큐멘터리가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장석용 회장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극영화에 비해 제작비용이 저렴하고 제작도 특별히 어렵지 않아 독립영화감독들이 많이 제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낮은 목소리1」(1995), 「낮은 목소리2」(1997), 「숨결」(2000)로 구성된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3부작’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변영주 감독은 “할머니들이 50여년간 숨겨왔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낼 때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밝히고자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며 “특히 세 번째 영화 「숨결」은 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그들이 아픈 과거를 이끌어 낼 때 느껴야 하는 고통을 적게나마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천리마 축구단」(2002), 「어떤 나라」(2004), 「푸른 눈의 평양시민」(2006)으로 구성된 미국 대니얼 고든(Daniel Gordon) 감독의 ‘북한 3부작’, 「작별」(2001), 「침묵의 숲」(2004), 「어느 날 그 길에서」(2006)로 이어지는 황윤 감독의 ‘야생동물 3부작’ 등 참신하고 다양한 시각의 독립다큐멘터리 영화들이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들은 날것으로서의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 역사의 현장에, 진실이 왜곡된 사회에, 소외된 이들의 터전에 카메라를 비춘다.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다큐멘터리 3부작 영화에 주목해보자.
[연재] 미지의 걸작 3부작을 찾아서 ④ 주제별 옴니버스 3부작 - 세 가지 빛깔로 빚어낸 이야기의 모자이크
출처 : 대학신문 (2007-09-22)
글 : 김민지 기자
옴니버스 3부작 영화, 세 가지 이야기를 한 흐름으로 묶어내
긴 호흡으로 한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어
‘옴니버스(Omnibus)’는 라틴어로 “만인을 위한”이라는 의미로 옴니버스 영화는 주제를 공유하는 몇 편의 독립된 단편을 하나의 장편으로 엮은 영화를 뜻한다. 그렇다면 주제를 공유하는 독립된 세 편의 장편을 묶어 ‘옴니버스 3부작’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옴니버스 3부작 영화는 공통된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관객이 한 주제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옴니버스 3부작 영화의 다양한 세계=옴니버스 3부작 영화들은 저마다 독특한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1961), 「침묵」(1963), 「겨울빛」(1963)으로 이어지는 스웨덴 잉그마르 베르히만(Ernst Ingmar Bergman) 감독의 ‘침묵 3부작’은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그 고통를 다뤘다. 또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시계태엽 오렌지」(1971)로 이어지는 미국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문명비판 3부작’은 현대 문명의 기저에 있는 인간의 기계화를 비판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옴니버스 3부작 영화 중 특히 ‘세 가지 색 3부작’, ‘로드무비 3부작’, ‘두려움 3부작’은 작품성이 뛰어나 각각의 작품을 꿰뚫는 주제의식을 잘 드러내는 3부작”라고 말했다.
◆일상에 담아낸 자유·평등·박애, ‘세 가지 색 3부작’=폴란드의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Krzysztof Kieslowski) 감독이 제작한 ‘세 가지 색 3부작’은 옴니버스 3부작 영화의 대표격으로 꼽힌다. 프랑스 국기의 세 가지 색깔이 상징하는 자유, 평등, 박애를 주제로 한 ‘세 가지 색 3부작’은 남편을 잃은 여성이 상처를 딛고 정신적 자유를 얻는 내용을 다룬 「블루」(1993), 편견없는 평등한 사랑을 지향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화이트」(1994), 젊은 여성과 노신사의 우정을 그려낸 「레드」(1994)로 구성된다.
‘세 가지 색 3부작’은 동·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의 세계사적 변화를 조망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 교수(명지대·문화예술학부)는 “특히 「화이트」에서는 연인을 버린 여주인공이 연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에게 다시 돌아가는 내용을 통해 힘의 불균등 때문에 분열돼 있는 동·서유럽이 평등을 기초로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염원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또 영화평론가 이상용씨는 “세 가지 색 3부작’은 서유럽의 기본적 가치관인 자유, 평등, 박애를 거대한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일상적 삶을 통해 드러냈기 때문에 고도의 상징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길 위에서 싹트는 사랑과 우정, ‘로드무비 3부작’=여행을 통해 맺는 인연과 예측불허의 사건을 통해 얻는 깨달음을 담은 영화인 ‘로드무비’. 이러한 로드무비 3부작의 수작으로 ‘길의 왕’이라 불리는 독일의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이 제작한 ‘로드무비 3부작’이 꼽힌다. ‘로드무비 3부작’은 길 위에서 생각이 형성되고 의미가 파생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도시의 앨리스」(1973)에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앨리스는 조부모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잘못된 움직임」(1974)에서 빌헬름은 생의 방향을 잃은 채 거리로 나선다. 또 「시간의 흐름 속으로」(1976)에서는 삶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길 위를 떠도는 두 남자의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을 담았다. 이 세 편의 영화는 저마다 고통스러운 삶을 지고 길을 떠난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영화평론가 김시무씨는 “길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궁극의 목표를 찾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상징한다”며 “빔 벤더스 감독의 로드무비들은 열려있는 인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두려움을 넘어서 희망으로, ‘두려움 3부작’=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독립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해외영화제 프로듀서들에게도 러브콜을 받은 옴니버스 3부작이 있다. 민병훈 감독의 ‘두려움 3부작’이 바로 그것.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극복해내는 인간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두려움 3부작’은 권력자의 횡포에 맞서는 주인공을 그린 「벌이 날다」(1998), 실패자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괜찮아 울지마」(2001), 사랑과 종교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학생을 그린 「포도나무를 베어라」(2006)로 이어진다. 유기적 연결성을 갖는 이 세 편의 영화는 「벌이 날다」에서 날아오른 두려움이 「괜찮아 울지마」에 이르러 절정으로 치닫고 「포도나무를 베어라」에서 해소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민 감독은 “특히 「포도나무를 베어라」에서 ‘포도나무’는 두려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 이겨내야만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여러 개의 단편적인 추억들이 모여 한 편의 인생을 완성해내는 우리네 삶을 닮은 옴니버스 3부작.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 흐름으로 담아낸 옴니버스 3부작 영화들을 통해 색다른 감동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연재] 미지의 걸작 3부작을 찾아서 ⑤ 근ㆍ현대사 시대극 3부작 - 역사의 힘만큼 강한 ‘시대극 영화’의 감동
출처 : 대학신문 (2007-10-06)
글 : 김민지 기자
얼마 전 스크린을 뜨겁게 달군 영화 「화려한 휴가」는 많은 관객에게 ‘5․18 광주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환기시키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시대극영화는 허구성이 가미된 사실을 통해 관객들이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번 호에서는 작품성이 뛰어난 근․현대사 시대극 3부작 영화들을 다루고자 한다.
◆시대극영화란?=시대극영화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다룬 영화를 통칭한다. 엄밀히 말해 역사적 배경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영화는 없으므로 시대극영화를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은 모호하다. 영화평론가 김시무씨는 “단순히 역사적 배경만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시대만의 특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영화를 시대극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시대극영화는 ▲개인의 삶을 통한 역사적 상황 전달 ▲비판의식 고양 ▲정치적 민감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역사 속 개인의 삶을 조명하는 시대극 3부작=역사 속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 시대극영화는 역사를 보는 거시적인 시각을 탈피해 역사적 상황에 처한 개인이 겪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해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김권정 교수(숭실대․사학과)는 “잘 만들어진 시대극영화 한 편이 수십 편의 역사 서적이나 논문보다도 대중에게 더 큰 감동과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플래툰」(1986), 「7월 4일생」(1989), 「하늘과 땅」(1993)으로 구성된 미국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의 베트남전 3부작은 베트남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과정을 그려내며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병사 크리스는 전쟁터에서 맞닥뜨린 잔인성과 폭력성이라는 ‘내부의 적’을 평생 지우지 못하며(「플래툰」), 베트남 여성 리리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구걸하며 삶을 이어간다(「하늘과 땅」). 영화평론가 연동원씨는 “감독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이 3부작 시리즈 제작에 착수했다”며 “감독은 역사적 상황이 개인에게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영화에 더욱 절실하게 반전의식을 담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판의식을 고양시키는 시대극 3부작=뒤틀린 근․현대사를 지닌 나라의 영화감독들에게 조국의 억압된 현실은 평생에 걸쳐 다뤄야 할 과제였다. 폴란드의 안제이 바이다(Andrzej Wajda) 감독은 ‘조국은 운명적 고뇌, 영화는 내 삶의 고뇌’라고 말한 바 있다. 바이다 감독의 초기 3부작인 「세대」(1954), 「지하수로」(1957), 「재와 다이아몬드」(1958)는 독일 점령기에 독립운동을 벌이는 젊은이들, 스탈린에 저항하는 민중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데올로기 전쟁 등을 소재로 폴란드 격동의 현대사를 그려냈다.
또 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로스(Theo Angelopoulos) 감독이 제작한 「1936년의 나날」(1972), 「유랑극단」(1975), 「사냥꾼들」(1977)로 구성되는 ‘그리스 현대사 3부작’은 점령과 압제, 독재와 저항으로 이어지는 그리스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세 편의 영화는 메타삭스 장군의 군부독재기를 전후로 193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의 그리스 현대사를 그린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이 지하단체에서 경험한 저항운동은 ‘그리스 현대사 3부작’의 정치적 방향성에 영향을 미쳤다. 영화평론가 문학산씨는 “‘그리스 현대사 3부작’은 은유와 암시를 통해 정치적 상황을 다룸으로써비판의식과 함께 예술성도 살려낸다”며 “「사냥꾼들」에서 눈 속에 파묻힌 시체가 발견되는 장면은 그리스 지배층이 내전 이후 저질렀던 만행이 폭로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탄압 받기도=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감독의 역사의식이 반영되는 시대극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당하거나 탄압받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1939년 영화법을 발효시켜 모든 영화를 검열했다. 이 시대에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군사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3부작으로 구성된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의 「하와이 말레이 해전」(1942)이 대표적이다.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해 미국 함대를 전멸시키는 모습을 재현해낸 이 영화는 일본군의 군국주의적 정서를 고양시켜 전의를 드높이는 선전물 구실을 했다.
한편 러시아의 세르게이 아이젠슈타인(Sergei Mikhailovich Eizen stein) 감독이 만든 ‘폭군 이반’ 시리즈는 원래 3부작으로 기획됐으나, 소련 정부의 검열과 탄압 때문에 2부인 「폭군이반 2」(1944)는 상영이 금지됐고 3부는 필름이 모두 불태워졌다. 사실상 스탈린을 비유한 극단적 공포정치체제를 실행한 이반 4세를 무력하고 우유부단한 독재자로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연동원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에게 고소당해 일부가 삭제된 채로 상영됐던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2004)처럼, 시대극 영화는 과거 사실을 다루지만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상영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권정 교수는 “시대극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해 관객의 의식수준을 높인다”고 말했다. 감독의 역사의식과 사실보다 더 사실같은 픽션이 어우러진 시대극 3부작을 통해 생생히 살아 숨쉬는 역사를 만나보자.
[연재] 미지의 걸작 3부작을 찾아서 ⑥ 컬트무비 - 컬트, 역겹거나 혹은 통렬하거나
출처 : 대학신문 (2007-10-13)
글 : 김동현 기자
관객의 반응과 분리될 수 있는 영화가 있을까? 기발한 아이디어와 화려한 영상으로 무장한 영화라도 흥행에서 참패하면 제작에 들인 노력은 무색해지고 만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상업영화는 비교적 다양한 관객층을 염두에 두고 소재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반면 영화사를 살펴보면 ‘얼마나 관객을 모으느냐’보다는 ‘어떤 부류의 관객과 호흡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도 있다. 흔히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영화의 대명사로 알려진 컬트영화가 바로 그 대표격이다.
컬트영화는 관객의 좋고 싫음이 확연히 드러나는 영화다. 소수 마니아층에게는 숭배의 대상이지만 다수 일반 대중에게는 반예술적인 저급 영화로 천대받기 십상이다. 이와 같이 관객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은 컬트영화 속에 담긴 관습 파괴적 성격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컬트영화 감독 중에는 기존 사회 질서를 극단적으로 해체하여 의도적으로 추종자와 비판세력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심야극장가에서 시작된 상식의 파괴=컬트영화의 기원은 1970년대 미국 심야극장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로 흥행에 실패한 영화들을 상영하던 당시 심야극장가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피난처였다. 1960년대를 휩쓸었던 반문화운동은 기성세대의 억압에 의해 점차 힘을 잃어갔고, 갈 곳을 잃은 10대, 20대들은 하나둘씩 심야극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저항의 열정을 빼앗긴 이들을 위로해주는 영화들이 있었다.
당시 심야극장에서 상영됐던 영화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외계인과의 성행위를 다루거나(「록키 호러 픽쳐 쇼」, 1975) 대로변에서의 자위행위를 버젓이 내보내는 등(「핑크 플라밍고」, 1973) 대부분 일반인의 상식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를 접한 기성세대들은 ‘역겨운’ 영화라며 등을 돌렸지만 젊은이들은 폭발적인 지지를 보냈다.
조지 로메로(George A. Romero)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은 당시 심야극장 컬트영화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인간 모독과 신체훼손을 불사한 이 저예산 공포영화는 1970년대 중반 심야극장에서 재상영되기 전까지는 흥행 참패 끝에 버려진 영화였다. ‘시체들이 무덤에서 나와 살아있는 사람을 뜯어 먹는다’거나 ‘시체가 된 어린 딸이 부모를 죽인다’는 설정은 기성세대의 수용범위를 넘어선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뒤늦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접한 10대, 20대 젊은이들의 반응은 숭배에 가까웠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상에서 ‘버려졌던’ 작품은 심야극장의 장기 상영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김영진 교수(명지대·문화예술학부)는 “심야극장가에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지속적인 인기를 모으자 비평가들도 점차 영화 속에 담긴 분열된 사회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현대 공포영화의 시초’라는 평가도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유명 컬트 감독 반열에 오른 로메로는 이후 「시체들의 새벽」(1978), 「죽음의 날」(1985)로 이어지는 ‘시체 3부작’을 완성해 공포영화를 통한 사회비판을 이어갔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역시 1970년대 미국 심야극장가에서 명성을 쌓은 감독이다. 칠레 출신의 조도로프스키는 「판도와 리스」(1968), 「엘 토포」(1970), 「홀리 마운틴」(1973)으로 이어지는 ‘초현실주의 3부작’을 통해 ‘신성 모독’이라는 금기를 과감하게 깨뜨렸다. 임신한 여성이 돼지를 낳고, 독실한 기독교인은 신을 자처하는 남자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하며, 식인종이 빵으로 만든 예수 성상을 뜯어먹는 등 그의 작품 곳곳에서는 서구 문명에 대한 조소가 엿보인다.
기성세대의 차가운 시선과는 달리 젊은 세대들은 조도로프스키의 작품에 호의적이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초현실주의 3부작’의 몽환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는 현실도피적이던 당시 젊은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며 “비단 미국뿐 아니라 유럽·남미·아시아 등지에서도 수많은 조도로프스키 추종자가 생길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미국 밖으로 퍼져나간 컬트영화, 그리고 그 후=컬트영화 특유의 자극적인 영상과 상식 파괴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과 유럽 등지에서는 상식을 깨뜨리는 과감한 에로티시즘 영화들이 제작돼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의 「감각의 제국」(1976),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 감독의 「살로, 소돔의 120일」(1975),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감독의 「정열의 미로」(1982)등의 작품들은 극단적인 성적 표현을 통해 완강하고 폐쇄적인 주류 가치관을 파괴하는 데 앞장섰다.
컬트영화의 물결은 오세아니아 지역까지 흘러갔다. 호주의 조지 밀러(George Miller) 감독은 「매드 맥스」(1979), 「매드 맥스2: 로드 워리어」(1981), 「매드 맥스3: 비욘드 썬더돔」(1985)으로 이어지는 ‘매드 맥스 3부작’을 제작해 핵전쟁 이후의 무질서한 사회상을 ‘컬트적으로’ 묘사했다. 김영진 교수는 “‘매드 맥스 3부작’에서는 묵시록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며 “극단적인 디스토피아 세계 속에서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는 모습은 컬트영화의 관습 파괴적인 성격과 맥이 닿아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적 최근에 컬트영화로 각광받고 있는 감독으로는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三池崇史)를 들 수 있다. 극단적인 폭력과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잘 알려진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 속에는 학원폭력, 인종차별, 가정붕괴 등 일본 사회의 다양한 병폐가 담겨있다. 특히 「신주쿠 흑사회」(1995), 「극도 흑사회」(1997), 「일본 흑사회」(1999)로 이어지는 ‘흑사회 3부작’은 일본 사회 뒷골목의 복잡한 인간군상을 기괴하게 묘사함으로써 자극적인 영상 미학으로 사회비판의식을 실어나르는 컬트영화의 취지를 잇고 있다.
컬트영화는 다양한 감상이 가능한 영화다.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영상을 통해 시각적인 쾌락을 얻을 수도 있고, 도저히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을 법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현실의 부조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처음의 불쾌함을 견딘다면 그 속에 담긴 통렬한 관습 파괴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