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양희 시인에 대하여
한 시인에게 있어 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천양희 시인은 시는 언어로 짓는 사원이라고 했다. 천양희 시인이 언어로 사원을 짓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이화여대 3학년 때, 박두진 선생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서였다.
이후에 시인 천양희는 정현종 시인과 결혼했었으나 이혼하고, 이혼 후 의상실을 경영했으며 결핵과 심장병을 앓기도 했다. 그때 그녀의 지친 삶은 지옥 그 자체였을 것이다. 오로지 죽고만 싶다는 생각으로 누구하고도 만나지 않았다.
이때 자살을 결심한 그녀는 전북 고창 선운사에 있다는 직소폭포로 행했다. 신문지상에 소개되는 여행 안내를 눈여겨보았다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배낭을 꾸리는 시인은, 직소폭포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가서 직소폭포가 마음에 들면 떨어져 죽어야지’라고 결심하고 선운사로 향했다. 그러나 직소폭포 가는 길은 없었다. 숲과 덤불을 헤치며 길을 내어 가는데, 죽으러 가는 길을 열어 가는데, 갑자기 물소리가 들려와 발을 멈추었다. 발을 멈춘 곳 바로 아래가 곧 폭포였다. 직소폭포의 물줄기에서 삶을 다시 배운 시인은 생에 대한 용기를 새삼 추스르고 돌아와 시를 썼다. 폭포소리에 일깨워진 산이 다름아닌 시인 자신이었다.
‘직소포에 들다’는 시인이 죽음의 면전에서 쓴 시이며 완성하는 데 13년이 걸렸다고 한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정토(淨土)! 나는 늘 꿈꾸어 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수궁(水宮)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뢰 같은 기립박수소리 같은-바위들이 흔들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 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絶唱)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직소포에 들다」전문
바깥 사물에 의한 마음의 미묘한 깨달음과 신명을 명쾌하고 절묘하게 드러낸 시이다.
생동감 있는 경물의 묘사를 통해 시인은 오래 훈습되어 오다가 마침내 다다른 마음의 한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는 구절에서 시의 개화는 그 절정에 도달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온갖 번뇌와 상념으로 가득한 예토의 세계로부터 떠나와 찾아낸 ‘백색 정토(淨土)’ 즉 구원의 길은 자연의 순수무구한 생명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연과 생명 속에서의 오묘한 깨달음의 미학은 ‘한 아이’나 ‘청사포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시냇물에 빠진 구름 하나 꺼내려다
한 아이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송사리떼 보았지요
화르르 흩어지는 구름떼들 재잘대며
물장구치며 노는 어린것들
샛강에서 놀러온 물총새 같았지요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 새기들
풀빛인지 새소린지 무슨 초롱꽃인지
뭐라고 뭐라고 쟁쟁거렸지요
무엇이 세상에서 이렇게 오래 눈부실까요?
-「한 아이」전문
이 시는 화사한 동심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시냇물과 구름과 송사리떼와 한 아이와 초롱꽃이 온통 하나가 되어 쟁쟁거리며 노는 모습이 눈부시게 펼쳐지는 순간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의 극치 앞에서 우리는 그냥 온 몸과 맘을 열려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청사포 앞 바다엘 간다. 부산 아지매
사투리가 생선처럼 튀는 아침
바다의 자리는 생생하게 빛난다
투명한 물 속
저 환한 화엄계!
수평선이 세상을 수평으로 세운다
허공에 넘실대는 갈매기소리 공허하다
높은 것만이 이상은 아니라고
흐르는 물이 말하네
수족관에서도 꼬리치는 물고기들
바다로부터 잊혀지고
나는 내 희미한 정신의
시퍼런 파도소리를 듣는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한다.
나를 덮치는 저 소리. 미친 듯이
나를 살게 하느니….
-「청사포에서」전문
우리는 시인이 삶의 현장에서 새로이 발견한 일상의 모습을 보게 된다. 숱한 절망과 방황을 넘어 도달한 ‘투명한 물 속’의 ‘저 환한 화엄계’의 깨달음에서 보면, 늘상 듣던 부산 아지매의 사투리도, 매일같이 보던 바다도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정신의 시퍼런 파도소리’를 들을 때, 온 세상은 새로이 보이는 것이다.
천양희는 주로 체험을 기반한 직관에 의해 단문을 중심으로 시를 썼는데 독특한 산문율에 의해 시상을 잡아 나가고 있어 사상성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포도밭을 지나다 아이가 묻는다.
포도알은 포도의 눈망울이야? 포도잎은 포도의 손바닥이야?
아이는 손뼉을 치며 좋아라 하고
나는 자꾸 눈 속이 아픈 것 같다.
까만 포도알이 어미의 젖꼭지 같아
가슴이 자꾸 찌르르, 찌르레기 한마리
들어온 것 같아…. 내 가슴에 소리쳐 우는
아이 하나 있는 것 같아….
포도씨 하나에 포도나무 한 그루 들어 있어
한 가슴에 아이 하나 들어 있어.
-「아이 생각」전문
홀로 사는 시인 천양희는 지금까지 왜 혼자 살았냐는 물음에 가장 큰 이유는 아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오로지 생피붙이 아들의 앞날을 빌기 위함이었다.
이 시를 읽으면 얼마나 아들을 그리워하고 아들에 대한 미안한 심정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찌르르, 찌르레기 한마리’ 찌르레기의 울음소리를 빌어 자신의 슬픈 모정이 시속에 승화되어 있음이 느끼지는 부분이다.
천양희의 시는 상처입은 영혼들에겐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인간 존재 자체가 이미 비극적이긴 하지만, 그 아픔과 상처를 딛고 끝내 이겨낸 노래들은 절망의 나락 속을 헤매는 이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다.
한 인간의 아름다움은 현실에서 획득한 권력과 재화의 무게가 아닌 소박하고 진실한 삶의 질량으로 판가름되는 것처럼 시의 아름다움도 희로애락이 남긴 상처의 흔적들이 울긋불긋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천양희 시인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곱고 화려한 빛깔에 있지 않고 질곡의 발자취가 그 가치를 발휘한다.
그러므로 천양희 시인의 시 쓰기는 자기 안에 묻혀 있던 각각의 보석들을 끄집어내는 데서 출발하고 뼈를 깎는 시쓰기의 수련은 오랫동안 묻혀 있어서 온갖 잡티에 가려 있는 심상을 명경처럼 말갛게 닦아내는 작업이다.
천양희 시인은 작품의 수에 비해 경향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감성적이고 진솔한 시로 독자들과 좀 더 친숙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인정 받고 있다.
천양희 시인의 시는 절망과 희망 사이를 왕래하고 모순과 화해 사이를 오가며 창작된다. 그러기에 그 시는 진실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 시가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공자께선 시를 배우지 아니한 자와는 말할 게 없다 했던가. 우리 사회도 시를 알고 좋아하고 나아가 즐기는 국민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참 고 문 헌 ==
고명수(1999), [詩란 무엇인가?], 학문사
이숭원(2000), [초록의 시학을 위하여], 청동거울
이지엽(2002), [21세기 한국의 시학], 책만드는집
천양희(1997), [독신녀에게], 문학사상사
천양희(1998),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작가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