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삼국시대 걸작 '반가사유상'
신비한 미소는 같지만 7세기 불상이 더 우아하죠
입력 : 2021.11.18 03:30 조선일보
삼국시대 걸작 '반가사유상'
지난 12일부터 삼국시대 유물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공간에 나란히 전시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두 불상이 함께 전시된 경우는 단 두 번뿐이고, 워낙 귀중한 보물이라 하나씩 번갈아 전시됐었는데,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거예요.
'반가사유상'은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걸치고[반가·半跏], 깊은 생각[사유·思惟]에 잠긴 모습을 한 불상을 말해요.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은 70점 정도가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번에 나란히 전시된 국보 78호와 83호는 최고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두 불상의 신비롭고 오묘한 미소는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안을 받는 기분이 들어요. 둘은 얼핏 보면 닮았지만 다른 점도 많답니다.
화려함과 단순한 아름다움
국보 78호는 높이 83.2㎝, 무게 37.6㎏으로 6세기 후반에 제작됐어요. 머리 위에 있는 화려한 보관(寶冠)이 큰 특징이에요. '보관'은 보석으로 꾸민 관이에요. 태양과 초승달이 결합한 이런 모양을 '일월식(日月飾)'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3~7세기 페르시아를 지배한 사산조시대 왕관에서 유래했어요.
약간 각진 얼굴의 부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어요. 눈은 가늘게 뜨고 코는 오뚝하게 솟았으며 살며시 다문 입에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지요. 양쪽 팔에 흘러내린 천의(天衣) 자락, 허리띠의 율동적인 흐름 등은 세련된 조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천의'는 선녀나 천인(天人)이 입는 옷을 말해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높이 93.5㎝, 무게 112.2㎏으로 7세기 전반에 제작됐어요. 무게가 78호의 약 3배에 이를 정도로 무겁죠. 머리엔 반원 세 개를 이어 붙인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는데, 화려한 78호의 보관과 달리 매우 단순합니다.
83호 부처는 78호와 달리 상반신에는 옷을 전혀 걸치지 않고 목걸이만 하고 있어요. 통통한 볼살에 어린아이의 천진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요. 단순하지만 균형 잡힌 신체,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표현된 옷 주름 등이 78호보다 간결하고 우아한 인상을 줘 한 차원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답니다.
어디서 제작됐을까
두 불상은 안타깝게도 모두 '출토지 불명'이에요. 78호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인에게 4000원을 주고 사서 총독부박물관에 기증했어요. 당시 국보급 고려청자 한 점이 100원 하던 시절이니 엄청난 거금을 들인 거죠. 처음엔 신라에서 불교가 가장 먼저 전래된 경북 영주나 안동 일대 사찰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돼 신라에서 만든 것으로 여겨졌어요. 하지만 이후 78호의 옷자락 표현 양식이 6세기 고구려 불상에서 유행한 양식이라며 고구려 제작설이 제기됐고, 최근엔 머리 보관 형식이나 장신구가 백제 불상에서 보인다며 백제 제작설도 나옵니다.
83호는 1912년 순종이 서울의 고미술상에게 2600원을 주고 구입했는데, 역시 출토지는 확인이 안 됐어요. 하지만 삼산관을 쓴 불상이 경주 지역에서 종종 발견됐기 때문에 신라 제작설이 우세해요.
과학기술로 1400년 만에 밝혀낸 비밀
지난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은 비파괴 성분 분석, 감마선 필름 등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두 불상을 자세히 들여다봤어요. 그랬더니, 78호의 뒷면 양 어깨 사이 중앙에 20cm 넓이 구멍이 있고, 이를 얇은 동판으로 덧댄 흔적을 발견했어요.
왜 동판을 덧댔을까요? 두 반가사유상은 '밀랍주조법'으로 만들었어요. 먼저 쇠틀을 만들어 점토로 부처 형상을 빚은 다음 그 위에 밀랍을 발라 조각해요. 그 위에 또 점토를 바른 다음 열을 가해 안쪽 밀랍을 녹이죠. 그리고 밀랍이 녹은 공간에 청동 쇳물을 부어 조각상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78호는 밀랍 두께가 4㎜ 정도로 얇아서 녹인 다음 빈 공간이 좁아 청동 쇳물을 부었을 때 제대로 흘러들어 가지 않은 부분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그 부분에 추가로 쇳물을 부어 수리한 거죠. 그런데 얼마나 감쪽같이 수리했는지 그동안 맨눈으로는 알 수 없었어요.
83호 불상은 이런 78호 제작 당시 어려움을 잘 알고 제작된 듯해요. 몸체 두께가 평균 10㎜ 정도로, 78호보다 훨씬 두꺼워요. 밀랍을 그만큼 두껍게 발라서 나중에 밀랍을 녹인 다음 빈 공간에 많은 양의 청동 쇳물을 주입한 것이지요. 그 결과 83호는 78호보다 훨씬 무거워졌어요.
두 불상은 무슨 생각 할까
대체 두 불상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불상 모델이 누군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보통 중국에선 반가사유상 모델을 불교를 창시한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렇다면 이 불상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고민하며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걸 거예요. 우리나라에선 반가사유상을 미륵(彌勒)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아요. 미륵은 석가모니에 이어 미래에 부처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보살이에요. 반가사유상이 미륵이라면 나중에 부처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 중생들을 구제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요.
하지만 불상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거예요. 싯다르타든 미륵이든, 사물의 본질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요? 바쁘게 쫓기는 일상에서 벗어나 두 반가사유상을 감상하면서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일본 '목조반가사유상']
일본에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은 불상이 있어요. 바로 교토 고류지(廣隆寺)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이에요. 지금은 일본이 국보에 번호를 매기지 않지만 한때 국보 1호였어요. 일본 목조상은 보통 녹나무로 만들지만, 이 반가상은 한반도에만 나는 적송(赤松)으로 만들어졌고, 623년 신라에서 가져온 불상을 고류지에 모셨다는 기록과 이 절을 지은 사람이 신라에서 건너간 진하승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83호와 함께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받아들여져요.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기획·구성=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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