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굴산 산행기 (897 미터)
엊그제 추분을 지났으나 아직도 낮에는 더운 느낌의 잔서가 남아있는 때에 의령의 자굴산 산행을 위하여 고령, 합천을 지나 의령으로 들어서서 자굴산의 턱밑인 610미터 높이의 쇠목재로 올라갔는데 굽이굽이의 관광순환도로 고갯길이 대관령이나 철령같이 험하여서 밑을 내려다보니 아득하여 마치 구름위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의령군 북서부의 가래면, 칠곡면, 대덕면에 걸쳐서 자리 잡고 있는 의령의 진산인 자굴산은 백두대간 남덕유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이 진양기맥으로서 이 진양기맥은 금원산, 기백산, 황매산을 지나 남서쪽으로 이어져 산성산(741미터)과 한우산(836미터)에 이르러 이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자굴산을 들어 올렸으며 자굴산을 지나면 진양기맥도 점차 고도를 낮추면서 남강줄기인 진양호에서 끝을 맺고 있다.
쇠목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자굴산 정상으로 향하였는데 의령군민들이 사랑하고 섬기며 아끼는 이 산은 과거에는 저글산, 지글산, 사굴산이란 이름으로도 불려왔다고 하며 의령초등학교 교가에 “자굴산 숨은 정기 가슴에 안고......” 그리고 칠곡초등학교 교가에도 “동북에 우뚝 솟은 자굴산 영봉......”등으로 이 지역 각 학교 교가 첫 구절을 장식할 정도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등산로도 사방으로 통해 있고 우람한 소나무를 비롯하여 수목이 울창하고 공기와 바람등 풍광이 좋으며 펑퍼짐한 정상에 올라서니 사면팔방으로 전망이 탁 트여서 지리산 능선의 장관과 함께 천왕봉까지 아련히 보였는데 시원한 경관으로 인하여 의령군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충분할듯 하였다.
북서쪽은 경사가 급해서 합천군에서 보면 마치 병풍을 두른것같이 보인다고 하는데 산중턱에는 신선이 놀고 갔다는 강선암과 조선조때에 남명 조식과 그의 제자인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수도했다고 하는 명경대와 깍아지른듯한 절벽밑에 약 3미터 깊이의 동굴과 천연수가 고여 있는 금지샘이 유명한데 금지샘에는 병자호란때에 청나라군사가 이곳에 침입하여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자 물이 갑자기 말라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며 금지샘 건너편에는 남자의 양물을 상징하는 송곳바위도 있어서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굴산 정상에서 다시 쇠목재로 내려와서 고개의 간이상점에서 동동주와 도토리묵, 어묵으로 목을 축인후 옆의 동생산격인 한우산으로 향하였는데 한우산은 우리 이름으로 찰비산으로 산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여 시원하기가 마치 겨울의 찰비와 같다 하여 찰비산이라고도 하는데 찰비는 “찬 비”가 변음된 것으로 이것을 한자화 한 것이 한우로 “차가운 비가 내리는 산”이란 뜻이며 산 동쪽의 찰비계곡은 이 산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찰비계곡에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격전을 벌였을때 신라 애장왕의 부마가 이곳에서 전사하자 이를 비통하게 여긴 애장왕이 직접 전투에 나와 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또 찰비계곡 일원에는 철쭉과 진달래가 폭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매년 5월초에는 철쭉제가 열리며 또 페러글라이딩과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유명한 곳인데 시멘트 포장도로가 뚫려서 산 정상까지 승용차가 올라 오는것이 옥의 티 같이 보였다.
정상밑의 정자에서 모두 둘러 앉아서 점심을 먹은 후 옆의 산성산으로 향하였는데 벽계산성이라고 하는 옛 산성이 남아 있는 연고로 이름한 산성산은 석축 흔적까지 남아 있으며 정상 남쪽의 산성에는 찰비계곡에서 전투를 했다는 애장왕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산성산 남쪽 찰비고개에서 한우산 방면으로 병풍을 친듯한 바위지대가 있는데 이 바위지대는 제법 큰 독립 암봉들인 동이덤, 상투덤, 쉬는덤, 장수덤, 붉은덤 등의 기암들이 있는 바 이 다섯 바위덤에는 옛날 장수덤에 사는 장수가 공기돌놀이를 하면서 들었다 놓았다 하는 바람에 바위밑이 패여 샘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6시간 가까이 3개의 산을 다닌 후 궁류면 벽계리 야영장 방면에서 모두 모여서 자연 수목을 살린 전망 좋은 정자에서 하산주를 나누고 내려왔는데 아름다운 풍광에다 맑고 순박한 평화로운 마을인 이 궁류면은 27년전인 1982년 4월에 경찰관인 우범곤이 내연녀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격분하여 총기와 수류탄을 난사하여 마을 주민 62명을 죽이고 수십명이 부상당하는 엄청난 사고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였다.
그 후 의령군 정곡면에 있는 호암 이병철 생가를 방문하였는데 정곡면 정교리에 있는 국도변의 안내판을 따라 생가 마을에 들어서니 대형주차장과 그 옆으로 이 마을 주민들의 등산로 안내판도 있는데 조그마한 마을에 간판이 부자수퍼, 부자한우등 부자라는 용어가 많아서 과연 우리나라 제일 부자가 태어난 곳 다왔으며 길 옆의 코스모스도 곱고 커다랗게 보였고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감까지 주먹만한 왕감인데 이곳에 로또 복권 판매소가 있다면 대박이리라 생각되었다.
호암 생가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이근 대표적인 기업가인 이병철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1851년 호암선생의 조부가 지은 일자형 평면 형태의 전통 한옥으로 호암선생이 결혼, 분가하기 전까지 기거한 곳인데 그 후 몇차례의 증, 개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에 둘러 쌓여 외부와 구분되고 주위에 조성된 대숲은 운치로도 그만이었으며 풍수지리에 의하면 곡식을 쌓아 놓은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어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이 되어 맺혀 지세가 융성하며 또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를 이루고 있어 명당중의 명당이라고 한다는데 둘러보니 과연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하는 삼성그룹의 창업자 탄생지지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로 의령에는 솥바위 전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의령의 관문격인 정암철교 옆 남강변에 세발을 뿌리박고 있는 솥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속칭 솥바위(정암)로 부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바 지금도 창업을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정성으로 섬기고 있다고 하며 이곳은 예부터 정암진으로 도선장이었고 임진왜란때는 망우당 곽재우장군의 승첩지이기도 한 곳으로 전설의 내용은 이 솥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8킬로미터 이내에 솥다리 방향 (남과 북, 동남)으로 나라를 움직이는 국부가 태어난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하는데 이 전설이 현실화하여 북쪽으로 8킬로미터 지점에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이병철회장이, 동남쪽으로는 이명박대통령의 사돈이 되는 효성그룹의 창업주인 조홍제회장이, 남쪽으로 엘지그룹의 회장인 구인회회장이 태어났으며 엘지그룹의 전신인 금성을 생각하면 세곳 다 성을 이름으로 달고 있는바 이는 전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우연의 일치인 것이다.
호암 생가터에서 모두 충만한 기를 받은 후 의령을 나서서 귀로에 정반수회장의 사업지인 고령 쌍림의 대원식당에서 인삼, 은행, 잣이 들어간 구수한 도토리 수제비로 저녁을 내서 든든하게 먹고 대구로 들어왔는데 내일부터 가을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온다고 예보를 하는데 이 비가 지나가면 산야는 붉게 단장하고 찬란한 단풍으로 우리 산악인들을 유혹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