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 하루의 반란
무작정 떠나기로 어젯밤 갑자기 통고받고, 아침 9시에 독립문역에서 만나 춘천 김유정역으로 가기로 한다.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셋은 은근히 통하는 무엇이 있다.
3년 가까이 한 책상에 앉아 수업을 받다 보니 서로가 흉허물도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수업을 마치면 그날 오후는 무조건 카페로 가서 한자리 차지하고 늘어지게 문학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아무 의미 없는 잡담까지 허물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듬뿍 든 사이가 되어 있었다.
각기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꾀 다르고, 환경도, 지나온 삶의 역사도, 완전 다르지만 한 가지 문학이란 매개체를 통하여 어느새 감성적인 교류가 서로 잘 어울려 졌나 싶기도 하다.
오늘은 주중이라 춘천 김유정 문학촌 가을날의 정취가 잔잔히 깔려 있는 이 시골길 역시 한가롭다.
간편한 복장에 배낭을 메고 70대 여자 셋이 김유정 문학촌을 내집 앞마당 거닐듯이 한가로이 걷는다.
노래까지 흥얼거려 가며 그야말로 자기들 세상인양 마음 놓고 걷는다.
그리운 금강산을 찢어지는 목소로리로 셋이서 부르고 가는데 교양있게 보이는 우리또래 여인이 쳐다보고 웃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우리 너무 웃기지요? 너무 못 불러서......“미안해 요 ”
‘아니에요 듣기 좋아요.“ 하고 같이 웃어준다.
아마도 들떠 있는 세 여자들의 지금 기분 상태를 알듯 하나 보다.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와서 꼭 해야 할 일은 먼저 해두고. 남은 시간에 마음 놓고 반란의 자유 시간을 갖던지 말든지 하자고 약속을 한다.
우선 김유정 기념 전시관에 둘러 그의 생애, 사랑, 죽음, 작품들을 꼼꼼히 메모하고 사진으로 찍어 둔다.
김유정생가도 둘러보고 봄,봄,봄의 주인공 점순이의 동상도 만져 보고.....
암울했던 그 시대의 문학과 문인들을 이해하기에는 지금의 이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세여자의 감각으로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고전이고 불투명한 슬픈 역사의 기록일 뿐이였다.
이제부터 우리들의 자유로운 반란의 시간을 만들기 위하여 밖으로 나온다.
첫 번째 반란은 파전에 막걸리를 꼭 먹고 취하고 싶은 것이라는데....
지금은 점심시간이니 일단 점심식사부터 하기로 하고 (김유정 우체국) 길 건너 닭갈비집으로 간다.
춘천에 와서 닭갈비나 막국수를 먹지 않으면 춘천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오늘 점심은 이걸로 정한다.
따로 술집에 안가도 여기도 마침 막걸 리가 있단다.
막걸리 한 병을 같이 시킨다.
한잔씩 가득 따라놓고 식사와 함께 꼴딱꼴딱 마시더니 둘째가 눈을 반 감고 뜨지 못한다.
한잔에 취하여 해롱해롱하더니 반란이고 뭐고 서로 마주보고 웃다가 다음 반란지를 찾아
분위기 있는 찻집에 가기로 한다.
카페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후 늦게 온다던 비가 벌써 내리기 시작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반란 하고픈 세여자의 들뜬 마음을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혀 놓고 있다.
자신들도 모르게 다시 문학과 시의 언저리를 두드리며, 습관처럼 그 속에서 실없이 허우적거리다 결론도 없는 언어들의 퍼즐을 완성하지도 못한 채....
서울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시 들어 갈 시간이 되어 버렸다.
오늘 하루 단단히 우리들의 일상 탈출과 반란의 계획은 이렇게 힘없이 무너져 무산되어버리고...
해 질 녁
퇴근 시간과 겹친 2시간의 복잡한 전철을 타고, 현란한 서울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돌아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