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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쁨 1 (16P)
🔥 <기쁨을 주는 알파벳>
▲A. 용납과 긍정(accepting & affirming 어퍼밍)
▲B. 사기를 돋움(boosting)
▲C. 용기(courage)
▲D. 낙담의 원인을 밝힘(debunking discouragement)
▲E. 용기를 나누어 줌(encouraging)
▲F. 피드백(feedback)
▲G. 목표를 향한 열성적 추구(going for it)
▲H. 유머(humor)
▲I. 대등한 입장에서 참여(involvement as equals 에퀄즈)
▲J. 기쁨(joy)
▲K. 친근감(kinship)
▲L. 웃음(laughter)
▲M. 사색(meditation)
▲N. 현재 중시의 삶(living in the now)
▲O. 개방성(openness)
▲P. 긍정적 감정(postive emotions)
▲Q. 논쟁을 금함(qit quarreling 콰럴링)
▲R. 민감한 반응(responsiveness)
▲S. 자긍심과 사회적 관심(self-esteem & interest social)
▲T. 신뢰(trust)
▲U. 이해(understanding)
▲V. 가치관(value)
▲W. 건강(wellness)
▲X. 탁월성(excellence)
▲Y. 양보(yielding)
▲Z. 열정(zest)
🔥 부활절의 기쁨으로
이해인
당신이 안 계신 빈 무덤 앞에서
죽음 같은 절망과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지던 저에게
다시 살아오신 주님
이제 저도
당신과 함께 다시 살게 된
기쁨을 감사드립니다
시들지 않는 이 기쁨을
날마다 새롭게 가꾸겠습니다
혼자서만 지니지 않고
더 많은 이들과 나누겠습니다
빈 무덤에 갇혀 있던
오래된 그리움을 꺼내
꽃다발로 엮어 들고
당신을 뵈오러 뛰어 가겠습니다
이토록 설레는 반가움으로
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저에게서
지난 날의 불안과 두려움의 돌덩이는
멀리 치워주십시오
죽음의 어둠을 넘어서
빛으로 살아오신 주님
산도 언덕도 나무도 풀포기도
당신을 반기며
알렐루야를 외치는 이 날
다시 살아오신 당신께
살아 있는 저를 다시 바치오니
사랑으로 받아주소서
기쁨의 향유를 온 세상에 부으며
저도 큰소리로
알렐루야 알렐루야를 외치오리니......
🔥 생명의 봄
모든 삶의 과정은 영원하지 않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고통, 기쁨, 영광과
오욕의 순간도 어차피 지나가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회생하는 봄에 새삼 생명을 생각해 본다.
생명이 있는 한,
이 고달픈 질곡의 삶 속에도
희망은 있다.
- 장영희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중에서 -
🔥 내 영혼에 들려오는 숨은 소리
잠시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보세요.
마른 나무에 수액이 오르는 소리,
여기저기 꽃망울 터지는 소리에
대기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슬픔, 고통, 외로움도 잠시 내려 놓으세요.
멀지 않은 곳에서 생명의 희망이 당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봄이니까요.
🔥 실수도 하고, 그래야 인간적이다
인간이 어떻게 실수도 하지 않고 살아 갈 것인가?
실수도 하고, 후회할 짓도 하고, 그래야 인간적이다.
그러나,
똑같은 실수, 똑같은 후회는 하지 않아야 한다.
넘어질 때 어리석은 사람은 뒤를 돌아다 보지만,
현명한 사람은 앞을 본다고 한다.
자꾸만 그럴 껄, 껄, 껄......
지나 간 시간을 아쉬워하지 말고
다가오는 시간을 제대로 살자.
- 최윤희의 <고정관념 와장창 깨기> 중에서 -
🔥 전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똑같은 실수, 똑같은 후회를 또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어서 그런지,
똑같은 실수나 후회를 할 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한 사람도 긴 호흡으로
스스로를 그렇게 받아 들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인간적이니까요.
삶을 살찌우는 밑거름
어쩌면 신도 실수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 내가 실수했구나' 하고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스스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실수를 실수로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 정호승의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한 마디》 중에서 -
실수도 삶을 살찌우는 밑거름입니다.
적절한 거름은 인생을 옥토로 바꿔 놓지만
잦은 거름은 오히려 인생을 황무지로 만듭니다.
한번의 실수는 너그럽게,
그러나 반복되는 실수에는 혹독하게 대하십시오.
하나의 실수에서 하나의 교훈이면 충분합니다.
신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신이지요
실수는 사람이니까 하고, 누구나가 하지요.
어떤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있고,
어떤 것은 회복이 가능한 실수가 있지요.
어찌됐든 실수는 별로인 것 같아요.
칭찬할 만한 것도, 권장할 만한 것도 못되지요.
마음을 살랑이게 하는 봄입니다.
봄을 타는 이도 있겠고,
봄이 와서 살랑이는 봄바람을 즐기는 분도 있겠고,
새싹이 움트려고 하는 이 때부터
여린 새싹이 나는 봄이 참 좋아요.
반면에 가을은 우울증을 조심할 정도로 많이 타지요.
하나의 실수는 병가지상사란 말도 있잖아요.
실패를 거울 삼아,
꼭 필요할 때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교훈을 얻는다면 좋겠지요.
실수가 인생의 걸림돌일 수도 있고,
하나의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기에
선택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한 점 오차없이 봄은 이렇게 오지만
사람은 떠나고 난 자리가 허전한 실수로 묻어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날씨입니다.
진달래, 개나리 피어있는 담벼락에 앉아 있으니
봄이 완연합니다.
날씨의 실수가 잦아도
계절의 책임감은 여전하네요.
우리네 인생도 자연에게 배울 점이 넘 많은 거 같군요.
어떤 실수도 용납하고 인정하며
때를 기다려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냉철함
그래서 따스한 봄날 마구 떠나고 싶은 건지도 모르죠.
실수를 받아 줄 자연이 있기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럼 하루 하루를 맞는 인생도 많이 홀가분하고, 웃으며 반길 텐데요.
잠시의 황홀함을 전하면서...
실수를 받아 줄 아량이
마음에 대롱 대롱 달려 있지요.
살다 보면 한 치의 실수도 없는 완벽한 사람보다,
때론 실수를 해서 당황하는 사람이
훨씬 인간적입니다.
그런 불완전 속에서 하나씩 완전을 지향할 때
작은 성취감도 느끼고
비슷한 유형의 타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당한 실수는 인생의 양념입니다.
🔥 절화행 – 하얀 거짓말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신부가 꺾어 들고 창 앞을 지나다가
빙긋이 웃으며 신랑에게 묻기를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신랑은 짐짓 장난을 치느라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신부는 꽃이 더 예쁘다는 말에 토라져
꽃가지를 밟아 뭉개고는 말하길
"꽃이 저보다 예쁘거든 오늘 밤은 꽃하고 주무세요."
이규보, <절화행>
살아가다 보면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거짓말 중에는 남을 기분좋게 하는 것과,
같이 좋은 의도로 하는 거짓말이 있는데,
이를 하얀 거짓말이라고 한다.
"꽃보다 당신이 아름답소."
이 한 마디만 있었어도 꽃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을...
모든 가정의 남편, 아내는 오늘 모두 하얀 거짓말을 해 봅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여보, 오늘 찌개가 유난히 맛이 좋은데."
"여보, 요즘 당신 다시 젊어지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쩌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데, 익숙해 있는지 모릅니다.
안으로 삼키고 참는 것이 그저 미덕임을 알았기에,
'하얀 거짓말'도 쑥스럽게 여기고 살아 왔습니다.
한 마디면 되겠지만, 그게 어렵습니다.
사랑의 바탕이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한다면
이제부터 '하얀 거짓말'을 기꺼이 배우렵니다.
그리고 이낌없이 하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 어진 마음 자체가 따스한 체온
자기에게 이로울 때만 남에게 친절하고, 어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이해관계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어진 마음으로 대합니다.
왜냐하면 어진 마음 자체가
나에게 따스한 체온이 되기 때문입니다.
🔥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음으로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파스칼의 <명언록>중에서
사람은 자연 속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와 같지만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에
지혜와 절제를 갖출 줄 압니다.
너무 이기적이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타원과 타원이 만나
온전한 원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만 양보를 하면
다른 사람의 것이
내 가슴에 더 많이 들어온다는 가르침이
참으로 귀하게 들립니다.
🔥 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기쁨잃어버린 것을 찾아 낸 기쁨잔치에 사람을 초청하는 기쁨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마시는 기쁨30배 60배 100배를 남기는 기쁨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는 기쁨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받는 기쁨남 모르게 구제하고 봉사하는 기쁨텅 빈 충만함을 누리는 기쁨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기쁨
🔥 슬픔과 기쁨
슬픔과 고통은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과 즐거움은 나누면 나눌수록 많아지고 커지는 것,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여!
고난당하는 이웃과 형제의 고난을 함께 나누어 가지고,
그대가 가지고 있는 주안에서의 기쁨과 즐거움은
그대의 이웃과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으련가?
주님의 가르침이 슬픔과 고통은 나누어 가지고,
기쁨과 즐거움은 이웃과 함께 하라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대여!
그대가 지금 당하고 있는 슬픔과 고통은
먼저 주님께 아뢰어 주님과 함께 하고,
그럼으로써 주님께로부터 얻은 위로와 기쁨은
그대의 이웃들과 함께 나누지 않으련가?
고난 당하는 이들의 고난을 함께 나누어 가지고,
그대가 주님께 얻은 위로와 기쁨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누르고 흔들어 후이 되어,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큰 어려움을 당하고 보니
마음의 고통과 불안은 예수님께 기도함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신체적인 장애는 다른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을 통하여 극복될 수 있었다.
육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게 되었지만,
적어도 마음으로 만은 늘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였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 산다는 자체가 내 삶에 의미를 주었고,
행복감을 가져다 주었다.
이를 통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마6:38)
🔥 나를 자유케 하는 기쁨 - 용서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17:9)
용서!
첫째줄 - 제목
둘째줄 - 두 마디로 제목 설명.
셋째줄 - 세 마디로 제목 내용.
넷째줄 - 네 마디로 제목에 대한 당신의 느낌.
다섯째줄 - 제목과 관계있는 한마디 말.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용서,
하나님의 선물,
나를 자유케 하는 것,
그러므로 그것은 가능하다.
🔥 해방(解放)과 자유(自由)와 기쁨의 부활
🔥 고린도전서 15:12∼26절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
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우리는 어릴 때 어머니나 형, 누나를 통해서 소박한 우화들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흥분하여 손에 땀을 쥐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 어떤 순박한 산촌 마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웃을 형제같이 여기며 오순도순 잘 살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을 앞 산 중턱 굴에 사나운 짐승이 와서 살았습니다.
그 짐승은 밤이면 굴에서 나와 어슬렁거리며 마을을 돌아 다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짐승은 해마다 그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 한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했습니다. 응하지 않으면 짐승이고 사람이고 닥치는 대로 해를 입혔습니다. 마을 처녀 수는 점점 줄고, 사람 들은 수심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 해에는 흘아버지가 기른 무남독녀 외동딸이 제비에 뽑혀 바쳐지게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 동안 온 나라의 유명한 장사나 포수들이 그 짐승을 잡겠다고 다짐하며 그 굴 속에 들어갔지만, 살아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잘 생긴 장정 하나가 나타나서 자기가 그 처녀를 대신해 그 굴에 들어 가 기필코 그 짐승을 잡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누구도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처녀를 바쳐야 할 날이 되자, 이 장정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신발을 단단히 묶은 후 짐승의 굴로 들어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걱정했습니다. 과연 이 장정이 짐승을 죽이고 나을 수 있을까? 하고 깊이 염려했습니다.
굴 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이 사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역시 이 사람도 예전의 사람들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말았구나! 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갑자기 산천을 뒤흔드는 고함소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뛰어와 보니 그 장정이 죽은 짐승을 손에 든 채 서 있었습니다.
그는 옷과 몸이 다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채 굴 밖으로 끌고 나온 짐승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그 마을에는 자유와 해방, 기쁨이 넘치게 되고, 이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해서 잘 살았다는 우화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무척이나 감동하고 감격해 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찌 보면 우리가 어릴 때에 듣던 이 우화와 너무나 흡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라는 흉악한 영체(사탄 마귀 귀신)에게 속아 넘어 가 하나님을 배반하여 버림을 받고, 죽음이라는 깊은 구렁 속에 떨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 1. 아담 이후 죽음의 동굴로 인류를 끌어가고 있는 마귀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꾀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한 다음,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을 자기의 손아귀에 넣고는 계속해서 인생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죄악의 굴레에 묶여서 노예 생활을 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또한 병들고, 고통당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저주 받고, 급기야는 죽음이라는 아득한 동굴로 끌려 들어가서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는 비운에 처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인간의 운명을 해결하겠다고 수많은 종교인들이 나와서 마귀와 싸우려고 죽음의 동굴 속에 들어갔지만,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역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인 원수 마귀에게 희생되고 만 것입니다.
수많은 도덕 군자가 나와서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의 동굴 속에 들어가서 마귀와 싸웠지만, 죽음을 당할 뿐 나오지 못했습니다.
많은 철인들이 나와서 자기들이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했지만, 마귀의 손아귀에 잡힌 이후 나오지 못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그 마귀와 싸웠지만, 죽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마다 가슴 속에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문호 톨스토이는 문인답게 인간의 운명을 다음과 같이 멋있게 표현했습니다.
🔥 러시아의 넓은 광야를 한 사람이 걷고 있는데, 갑자기 들소 떼들이 몰려 왔습니다. 들소 떼에 쫓긴 사람은 '걸음아, 나 살려라.' 고 도망을 치다가 숨이 턱에 차고, 이제는 들소 뿔에 산산이 찢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눈 앞에 큰 우물이 보였고, 그는 급히 그 속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의 느낌에 한참 떨어지더니 '털컥! '하고 그 의 몸이 무엇엔가 걸리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우물의 중간쯤 되는 부분에 나 있던 나무에 걸렸는데, 우물 밑에 물은 없고 독사들이 새끼를 쳐서 수많은 독사가 뒤엉켜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혼비 백산하여 위를 쳐다 보니, 들소떼들이 김을 내품고, 발로 흙을 파며, 올라오면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그는 그저 나무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앉은 나무 주위를 찬찬히 보니까, 잎사귀에 벌들이 꿀을 쳐놓았습니다. 배 고픈 김에 그는 손을 내밀어 꿀이 붙은 나무 잎사귀를 따서 먹으며 "아하, 맛있다. 참 좋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도 위에서는 들소떼가 죽이겠다고 뿔을 세우고 있습니다. 밑에 서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자기가 걸터앉은 나뭇가지를 보니까 흰 쥐 세 마리가 나와 나뭇가지를 싹뚝 싹뚝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의 운명은 바람 앞에 촛불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들소도 쳐다 보지 않고, 독사도 보지 않고, 흰 쥐가 자기가 걸터앉은 나뭇가지를 갉아 먹고 있는 것도 보지 않고, 계속해서 꿀이 붙은 잎사귀를 따서 먹으면서 "아하, 맛있다. 참 맛있다." 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와 같은 상황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인생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위를 쳐다보아도 절망이요, 아래를 내려다 보아도 절망이요, 옆을 둘러보아도 절망인데, 그 가운데서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짧은 순간의 꿀을 취하고 있다가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 2. 구원의 길은 없다. 인간에게는 오직 절망 밖에 없다.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병든 존재들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누가 소망을 주며, 누가 구원을 줄 수 있습니까?
그 누가 사나운 짐승에게서 인간을 구출할 용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 3.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2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그 영광과 권세를 벗어 버리시고, 육신의 몸을 쓰시기 위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 속에 자기를 내어 던져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태어 나셔서 온갖 간난신고를 다 겪고, 30세에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 40주 40야를 금식하셨고, 이에 마귀를 이기시고 나와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분께서는 가는 곳마다 죄를 용서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가난하고 배 고픈 사람을 먹여 주시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께서는 이제는 대접전을 하기 위해서 갈보리 산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산 십자가의 대접전을 통하여 사망의 동굴로 들어 가셨습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들어간 동굴, 많은 도덕 군자들이 들어 간 동굴, 많은 철인들이 들어갔다 나오지 못한 그 동굴로, 우리 주 예수님 역시 인간을 대신해서 싸우기 위해 죽음을 안고 들어가신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인 마귀를 없애기 위해서 동굴로 들어 가셨는데, 살아서 나오실까요?
이것이 우리의 질문인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을까요?
과연 이 마귀의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지낸 뒤에도 로마 군인들은 사흘 동안 철통같이 그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원수들인 마귀와 지옥의 세력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공적으로 죽였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임할 수 없다고 고함을 치고, 춤을 추며 발광을 했습니다.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에 관한 소문은 사라졌고, 사람들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예수님의 흔적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여자들이 예수의 몸에 향유를 바르러 갔을 때, 하늘에 빛난 광채가 비치고, 산이 진동했습니다. 그들이 가 보니 바위 문은 열렸고, 파수하던 군인들이 얼굴이 창백해져서 창검을 버리고 기어서 뿔뿔이 도망을 치고, 그 바위 위에는 천사가 앉아 있었습니다.
"어찌하며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너희가 찾는 예수는 이미 살아 나셨느니라."
천사의 말을 듣고 그들이 본즉,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옷만 그 머리맡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후 40일 동안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다음날인 주일날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셨고, 여기 저기서 또 나타나시고 또 나타나셨습니다.
갈릴리 해변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고 격려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오백여 명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서는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들 중 태반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린도전서 15 : 8)고 했습니다.
🔥 4.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복
예수님께서는 장사지낸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부활하신 증거로써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에게 우리가 보고 들은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여서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불이 떨어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께 부어 주시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사망을 정복하고 사망의 문을 깨뜨리고 나오심으로 말미암아 해방과 자유와 기쁨을 영원히 우리에게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불안과 공포와 초조와 절망은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에서 우리를 해방해 주셨습니다. 죄의 사슬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끊어지고, 죄를 잡고 있는 원수 마귀는 패배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영원히 죄에서 해방이 되고, 용서받은 의인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죄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셨습니다.
이제 원수된 담은 무너졌습니다. 미움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햇빛같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부은 바 되었습니다. 오늘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임하여 우리 마음을 감동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 품 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우리속에 들어왔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나라에 소속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질병의 공포에서 해방을 얻었습니다. 병은 이제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마귀의 도구인 병을 예수님께서 다 멸해 버리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고 동굴에 들어가서 병의 모든 사슬을 끊어 버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이제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물러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치료자가 되시고, 우리는 질병의 공포에서 해방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실 때 무덤 속에 저주를 영원히 장사 지내 버리셨습니다. 이전에는 마귀가 사람들을 끌고 가서 저주받게 만들고, 따라서 사람들이 영도, 마음도, 몸도 생활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행복하게 살려는데, 행복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부부간에 인정 있게 살려는데, 부부간에 갈등이 다가옵니다.
가정을 평안하게 만들려는데, 가정에 평안함이 사라집니다.
삶을 평안하게 살려고 하는데, 역경의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납니다.
누가 이 저주에서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지만, 나사렛 예수님께서 저주를 이기고 만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님께서 가난을 이기시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는 맥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저주의 고난 속에서 예수님께 나와 부르짖어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
사람의 힘과 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해답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50 : 1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저주와 공포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죽음의 공포는 완전히 물러갔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은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문을 깨뜨려 버리시고, 음부를 박차고, 마귀를 없이 하시고, 위대한 능력으로 승리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영광과 영생만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은 다 믿음으로 이미 영광을 얻었습니다. 우리 약한 몸은 강하게 됩니다.
우리 추한 몸은 영화롭게 됩니다. 우리 죽을 몸은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의 육의 몸은 신령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인과 나그네의 길이 끝나면,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고향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 천국에는 슬픔과 눈물과 탄식이 없습니다.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가득한 곳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그 영광스런 미래가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마귀를 완전히 정복하시고,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고,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와 기쁨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우리는 옛날의 억압과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삶에서 해방되어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얻게 되고, 그 결과 사랑과 기쁨을 만끽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내일도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행복도, 우리의 성공도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가슴을 열어 마음껏 모셔들이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영광과 찬양을 드리며, 그리스도의 자유와 해방과 기쁨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