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TTA-NIPÂTA 3-9(43)(一分出家攝益잠깐의 출가도 이익됨이....)
43.
잠깐의 출가도 얻는 바가 있어 집에 머물기 힘든데 재가자 또한 그러하니 남의 자식에 근심하지 말고 무소처럼 홀로 가라.
43
Discontented are some pabbagitas (ascetics), also some gahatthas (householders) dwelling in houses; let one, caring little about other people's children,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9)
*pabbagitas: ascetics 수행자. 고행자
gahatthas: householders, layman 재가자
四三
一分出家攝益難住家在家者亦然
對他子女無擾心應如犀牛任獨行(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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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영역과 우리말 번역을 몇 차례 읽어도 대체 맥락이 닿질 않네요. 제 판단으로는 출가자가 출가를 통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듯 재가자 또한 ‘남의 자식’으로 은유되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를 당부하는 걸로 읽힙니다. 따라서 그런 방향으로 옮겨보았는데 여러분은 어떤지요.
앞에서 대체 이 혼미한 진여의 세계가 왜 그토록 의미가 있고 실타래처럼 얽힌 이 험난한 길을 왜 땀 흘려 헤치고 나아가야하는가 하고 질문을 던져놓았더랬지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만 도달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천국일까요? 소위 ‘열반涅槃’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훈련받아 익숙한 논리를 해체해버립니다. ‘그 무엇’이어야 하고 ‘어떠해야 하는’ 존재자성을 철저히 삭제해버린 백지를 우리 생각의 문 앞에 툭 던져놓습니다. 누대로 집적되어온 모든 정보들, 이념과 사상, 가치와 판단, 사랑과 미움, 나와 너의 분별 등속의 습習이 되어버린 고착된 ‘생각의 틀’의 완전한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이를 업業이라고 하지요.
‘생각이 끊어진 자리’라 하지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텅 비어있다지 않습니까. ‘없음’에 대놓고 무슨 생각을 갖다 붙인다는 것이 가당키다 한 일인가요? 이를 청정하다고도, 적정寂靜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우리 감각을 경유한(前五識) 직접적 대상 뿐 아니라 생각만으로 일으키는 심상이라는 것도 있다지만 이 또한 가상의 대상을 상정하여 구성되는 마음의 작용이지요.
비우랍니다. 떠나랍니다. 여의랍니다. 놓으랍니다.
무엇을?
‘집착’입니다.
집착의 대상은?
내가 붙들고 있는 ‘생각의 틀’말입니다. 아내와 자식과 친구와 집이 아니라 바로 완고하게 쥐고 있는 내 생각의 경향성 말입니다. 내가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고 최상의 가치로 신앙하는 그 내용믈에 대한 절대 무화, 또는 공화空化를 통해 도달하는 그 궁극의 자리. 그것이 바로 ‘진여’의 자리이고 바로 ‘무위’의 경계라는 겁니다.
제가 이를 놓고 바로 ‘희망’과 ‘무한 가능성’ 앞에 내던져지는 것이라 소리를 내질렀지요? 어처구니없는 소리라고요? 그렇지가 않아요. ‘버린다’는 것이 일방의 포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붓다는 천재입니다.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지요. 밑지는 장사하겠어요? 내 빈약한 자아를 희생해서 무한한 타방을 맞이하기 위한 선행조건으로 한 발 물러서려는 속셈이지요.
생각이라는 것도 관성이 있습니다. 신호등과 과태료가 없으면 무한 질주를 감행할겁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죽음이 목전인데도 페달을 밟아댑니다. 시내에서는 시속 80km만 해도 엄청 빠르지요? 그런데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보세요. 나도 모르게 어느덧 140, 150km입니다. 관성입니다. 그것이 불행이든 우울이든 고통이든!
붉은 신호등입니다. 멈춰야지요. 급해도 차분히 푸른 신호등을 기다려야 합니다. 급할수록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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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서넛 SNS 상에 글들을 올려왔습니다. 의도는 제 자신에게 일종의 의무감을 부여하여 고단한 글쓰기를 억지로라도 끌고 갈려는 심산으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제 개인적 관심사들을 무례하게 던져놓고 읽기를 강요나 하지 않았는지 항상 마음이 쓰였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글쓰기의 관성도 얻은 것 같고 또 스멀스멀 내장된 현시욕이나 교만 같은 독성이 마음속에 준동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고,... 그동안 댓글로 혹은 전화로 소감과 격려를 보내 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누추하지만 생각나면 들리셔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십시오. 제 친구 중에 바리스타가 한 명 있거든요!
여기서는 ‘무소처럼 홀로 가라’고 등 떼밀지만,
홀로라도 좋고, 둘이면 더 좋고, 셋이면 더더욱 좋겠지만
뭉쳐서 권력이 되는 것은 안되겠습니다.
도란도란 둘, 또는 셋이서 샛길을 따라
길을 이어 갑니다…
2021. 5. 25 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