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들꽃이야기 18>
아름다운 꽃 강한 향기의 피부약초 - 백선(白鮮皮)
학명: Dictamnus dasycarpus Turcz.
쌍떡잎식물 쥐손이풀목 운향과 백선속의 다년초
『백선』의 속명의 틱탐누스(Dictamnus)는 그리스 크레타 섬 사람들이 부르는 식물 이름 딕테니(dictany)에서 왔으며, 종소명 다시카르푸스(dasycarpus)는 씨방에 거센 털이 있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영어 이름은 ‘East Asiatic dittany’이고 디테니(dittany)는 서양백선을 뜻한다. 산허리에서 등성이 쪽으로 물 빠짐이 좋고 햇빛이 드는 성근 잡목 숲이나 완만한 경사지에서 자주 발견된다. 음지와 양지의 중간지대를 좋아하며 부드러운 부엽질의 토양에서 잘 자란다. 학명에서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백선은 꽃자루와 포에 선점(蜜腺)이 있는데 여기서 가연성의 강한 방향물질을 방출한다. 운향과(산초과) 식물은 모두 강한 방향성을 가졌다. 한자 이름 백선(白鮮)의 선(鮮)도 곱고 깨끗하다는 뜻 외에 생선냄새와 유사한 독특한 향이 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백선의 다른 이름 야화초(野花椒)의 초는 산초나무를 말하며 금작아초(金雀兒椒) 역시 ‘금빛 아기참새 같은 산초’의 뜻이다. 《본초강목》에서는 ‘선(鮮)은 양의 냄새이다. 이 약초의 뿌리가 희고 양의 누린내를 풍기며 그 알알이 달리는 씨앗이 산초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라 하였다. 백선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에 자라며 세계적으로는 중국 북부, 몽골, 러시아 동부 등지에 분포한다.
백선에 대응하는 ‘검화’라는 한글 명칭은 1517년 《사성통해》에 나오는데, 훗날 한자를 차자해 檢花라 하였다. 아쉽게도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검(檢)의 뜻 가운데 ‘바르다 아우르다’를 빌려 혹 90cm에 이르는 훤칠한 키로 바르게 곧추서서 군락을 이루는 백선의 생태를 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저 상상이 즐거울 따름이다. 백선을 두고 《동의보감》에서는 ‘검홧불휘’라 하였고, 《방약합편》에서는 ‘검화뿌리’라 하였으며 《향약집성방》에서는 ‘검화’라 기록하고 있다. 《본초강목》에서 ‘그 삼의 뿌리는 검선과 같은 목근의 심이 박혀 있다’고 했다. 확인해보니 역시 철사처럼 단단한 갈색의 목심(木心)이 들어 있었다. ‘검선과 같은 목심’이 뿌리 구조에 이어진 내력으로 유추해보면 검화라는 이름을 인정하지 못할 것도 없다.
꽃줄기에 차례로 붙는 꽃은 나비 같고 줄기는 나무처럼 단단하다. 중심축과 잎자루에 날개가 발달하여 단아하게 펼치는 깃꼴겹잎도 퍽 아름답지만 특히 뿌리의 생김은 산꾼들 사이에서 백선을 왜 봉삼(鳳蔘)이라 부르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노두머리와 뿌리가 전설의 새 봉황을 닮았다고 하는데 길게 늘어뜨린 굵은 뿌리는 줄기와 달리 채찍처럼 부드럽고 미끈하며 희다. 원뿌리에서 나누인 여러 갈래의 곁뿌리는 내려갈수록 보푸라기처럼 수염뿌리가 가득하여 마치 도인의 수염 같고 저 봉황새의 늘어뜨린 깃털처럼 상서롭다. 상처 없이 들어 올린 이것을 맑은 술에 담그면 금빛으로 은은하게 우러나오는데 뿌리를 완상하며 맛보는 쌉싸래한 향미 역시 인상적이다. 약재로는 이 뿌리의 목심을 버리고 연질의 껍질을 모아쓰므로 약명을 백선피(白鮮皮)라 하였는데 성미는 쓰고 차며 기향(氣香)하여 주로 과민성 또는 풍열습독(風熱濕毒)으로 인한 피부병에 사용하는바 심, 폐, 비경으로 들어가서 열을 내리고 독을 푼다. 만성습진에 생건한 백선피를 지부자(댑싸리 씨), 사상자(뱀도랏) 등과 배합하여 목욕제로 하고 감초 대초를 곁들여 탕재로 만들거나 달인 물을 환부에 바른다. 특히 풍비(風痹)의 요약으로 저림증이나 류머티즘을 치료하며 수족의 근골이 굴신하기 어려운 것과 황달 치료에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운향과식물은 귤나무, 상산, 산초나무, 초피나무, 쉬나무, 황벽나무처럼 모두 목본인데 백선만 유일하게 초본이다. 호랑나빗과의 나비류들은 운향과식물을 애벌레의 식초(食草)로 삼는다. 전에 필자가 살던 시골집 안마당에는 작은 백선 꽃밭과 어린 상산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백선이 잎사귀와 잎줄기까지 모두 앙상하게 변해 있었다. 살펴보니 범인은 긴꼬리산제비나비 애벌레들. 옆에 빈 집을 둘러친 탱자나무 생울타리에 해마다 나비들이 분분했는데 그것을 베어버렸던 것. 물론 내 정원의 꽃 갈증은 화려한 무늬의 귀여운 애벌레를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산란 장소를 잃은 어미들이 이 동네를 얼마나 헤매었을까 생각하며 안쓰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