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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11권[3]
[유경 선사] 惟勁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고, 남악南嶽 반주般舟도량에서 살았으며, 복주福州의 영태현永泰縣 사람이다. 설봉을 뵙자마자, 곧 현묘한 진리를 깨달은 뒤 5정頂을 돌면서 남북의 총림叢林을 두루 찾아다니며, 모든 종사들을 뵈어 장백匠伯이라는 추앙을 받았다.
후에 남악에 머물면서 평생 힘껏 절개를 지켜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쳤고, 『속보림전續寶林傳』ㆍ『경등록鏡燈錄』ㆍ『선복漩澓』ㆍ『방사론防邪論』과 아울러 『추석찬捶釋贊』을 잇달아 편찬하였는데, 세상에 널리 유통되었다.
초왕楚王이 흠앙하여 산에서 나와 도성에 머물면서 교계敎界의 기강이 되고 조종祖宗의 일월이 되기를 청하여 보자원報慈院의 동장東藏에 머무르니, 위에 주달하여 자의紫衣를 하사하게 하고, 호를 보문寶文 대사라 하였다.
선사가 『경등록鏡燈錄』을 찬탄하는 게송을 지으니, 다음과 같다.
장하여라. 참 지혜의 스승이시여,
방편의 나루터를 열어 주셨다.
한 등불이 한 몸을 밝히고
열 거울이 열 몸을 나타낸다.
몸과 몸이 서로 비쳐 넘나들고
등불과 등불이 서로 원인이 된다.
층층의 몸과 국토는 넓고
겹겹의 이理와 사事가 깊다.
미진微塵 수효의 부처님을 엄숙히 우러르고
다 같이 비목선毘目仙을 만난다.
해인海印이 여기에서 드러나고
제망帝網의 이치가 이로써 표현된다.
한 티끌이 법계를 설하니
모든 티끌도 그러하다.
5온과 18계의
본체와 현상계가 구족하다.
원명한 광채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머금으니
같은가 다른가를 말할 수 없다.
이러한 무애의 경계를 통달하면
노사나의 법신과 보신이 원만하다.
또 상골게象骨偈를 지었다.
상골산이 웅장하고 웅장하여 세상에서 가장 드높아
하늘과 땅 모두 한 문으로 총괄하네.
말소리가 귀에 닿기 전에 알아야 하나니
경전 구절 속에서 전해 알기를 기다리지 말라.
말을 하고자 하면 마침내 산과 바다에 가로막히고
얼굴을 맞대면 모든 기연이 당장에 완전하니
다시금 진흙 소의 포효를 알고자 한다면
나무 말[木馬]의 울음을 자세히 살펴 들어라.
여체如體 선사의 웅송雄頌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옛 곡조에서 웅장한 소리가 나는데
지금이나 예전이나 창법이 같다.
만일 그 첫 박자를 말하면
조사도 부처도 모두 길을 잃으리.
장경長慶이 이 일을 들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조사와 부처가 모두 길을 잃는다면 어느 쪽 일이 이루어지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이전의 일이나, 검은콩에 싹이 나기 이전의 일이 이루어지겠습니다.”
장경이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이전의 일과 검은콩에 싹이 나기 이전의 일이라면, 어느 쪽 일을 이루는 것인가?”
스님이 대답했다.
“저는 여기서 더 이상은 말을 못하겠습니다. 큰스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장경長慶이 말했다.”
“꿰맨 자국이 남느니라.”
선사가 또 다음과 같이 송했다.
도를 배우는 것은 마치 불을 피우는 것 같나니
연기를 보았더라도 쉬지는 말라.
바로 금성金星이 나타난 뒤에
집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도달한다.
이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중초경中招慶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금성金星이 나타난 뒤에 집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도달한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금빛 별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중초경이 말했다.
“나는 금성이 나타나도 여전히 도달한 것이 아니라 말하노라.”
“어째서 그렇습니까?”
“차 마실 때에는 차를 마시고, 밥 먹을 때에는 밥을 먹는다.”
[월산 감진 대사] 越山 鑒眞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전왕錢王이 흠모하고 공경하여 자의紫衣를 하사하였다. 선사가 사진寫眞을 보고서 다음과 같이 송했다.
진상眞相의 본원은
정수리가 둥글면서 모나다네.
가득히 차서 무너지지 않는
실상實相은 끝이 없다.
항하의 모래 같은 겁劫 동안의
옛날과 현재가 동시에 나타나고
거품처럼 일었다 꺼지고
맨손 맨주먹으로 오고 가니,
이러한 모습은
삼계가 똑같다.
선사가 세 종류 병자[病人]를 송하였다.
소경과 귀머거리와 벙어리여, 격조가 몹시도 높구나.
이 무슨 경계이기에 스스로 짊어지는가?
지난날 현사玄沙의 도를 흠모한 적이 있었고
장 서방, 이 서방의 노랫가락 비웃은 적이 있다네.
[수룡 화상] 睡龍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고, 천주泉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호는 도부道溥이고, 성은 정鄭씨이며, 복당현福唐縣 사람이다. 보림원寶林院에 출가하여 나이가 차서 구족계를 받았다. 설봉을 뵙고 곧 현현한 관문을 터득하고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내지 않았다.
나중에 청원淸源에서 살았는데, 왕王 태위太尉가 그의 높은 도덕을 흠모하여 오봉五峰에 머무르기를 청하고, 자의紫衣를 하사하도록 주품하고, 홍교弘敎 대사라는 호를 내리게 하였다.
언젠가 어떤 스님이 참문參問하러 왔는데, 그에게 말했다.
“공산(空山:청산과 같음)도 대답할 줄 모른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리고는 일어나서 바로 방장실로 돌아갔다.
어떤 관리가 황벽黃蘗의 공양주에게 물었다.
“황벽黃蘗 화상은 나귀나 말같이 생겼는데, 상좌上座는 무엇 하려고 공양주를 하시는 게요?”
스님이 대답을 못하고 바로 돌아가서 황벽에게 이야기했더니, 황벽이 말했다.
“도는 엷어지고 사람들은 자질구레해져서 업장을 녹이기가 매우 어렵구나.”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남전南泉에게 이야기하니, 남전이 말했다.
“지주池州의 마황麻黃과 촉지蜀地의 당귀當歸니라.”
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선사에게 이야기하니, 선사가 말했다.
“천주의 갈포葛布는 한삼汗衫을 짓기에 딱 좋으니라.”
어떤 사람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구슬을 머금기만 하고 토해 보이지 않으면 누가 보물이 있음을 알리오?’ 했는데, 구슬을 머금은 일은 묻지 않겠습니다. 바로 토해 보이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보는 이는 많아도 가려내는 이는 매우 적으니라.”
“어떤 것이 학인 자신의 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자신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태위인 상공께서 승상繩床을 보내 주셨는데, 화상께서는 무엇으로 보답하시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천진교天津橋 위에는 다른 길이 없고, 보답하려는 마음은 다르지 않으니라.”
“그러시다면 상공께서 정성을 다하심을 스님께서는 잘못 알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비로자나불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노라.’고 한다면,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학인이 그 경지에 이르러서 더 이상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설사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 하여도 노승보다는 한 수 아래이니라.”
“학인이 방금 총림叢林에 들어왔습니다. 들어갈 길을 화상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선사가 양구良久하자, 학인이 절을 하였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누구에게 절을 했는가?”
“화상께 절을 하였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알았다면 그대는 그대에게 절을 한 것이고, 그대가 몰랐다면 그대는 나에게 절을 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옛 부처님의 마음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그대가 옛 부처님의 마음을 묻지 않을 줄 알았느니라.”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마주 보면서 전해 주어도 알지 못하는데, 부처님을 묻는 이가 어찌 알리오?”
선사가 세 종류 병자에 대해 읊었다.
기이하구나, 소경ㆍ벙어리ㆍ귀머거리 큰스님이여.
참 종풍[宗]을 방편으로 잘도 연설하시네.
뜻 아는 이를 위해, 바로 알라고 두루 알리나니
뜻과 구절로 다투어 통하려 하지 말라.
어떤 이가 물었다.
“경전에서 말하기를,
‘라후라가 밀행密行을 했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밀행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덤벙거리는 사람인데, 어찌 알리오?”
“화상께서는 아십니까?”
“알지 못하느니라.”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모르십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만일 안다면 밀행이 아니니라.”
“경전에서 말하기를,
‘방편의 문을 열어서 진실의 모습을 나타낸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방편의 문입니까?”
선사가 주먹을 세웠다.
“어떤 것이 진실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선사가 양구를 했다.
“만일 여쭈어 보지 않았더라면 어찌 화상의 자비를 알 수 있었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래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겠다.”
태위가 물었다.
“어떤 것이 마니주摩尼珠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일 다시 북선北禪에게 바쳐 보십시오.”
태위가 다시 물었다.
“북선 말고도 견식 있는 이가 있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신승臣僧이 다행히도 밝은 군왕을 만났습니다.”
선사가 또 학자들을 가르치는 게송을 읊었다.
눈먼 소경이 잘 꿰뚫어 보고
귀머거리가 도리어 공을 빼앗네.
하나의 본체가 이 성품 없는 자리에 돌아가면
여섯 감관이 본래부터 같더라.
내 이제 한꺼번에 들어 외쳐서
방편으로 그대의 우둔함을 가르치니
불조佛祖의 법인을 서로 전하고
노호老胡의 종지宗旨를 잇달아 잇는다.
설봉이 현사玄沙에게 물었다.
“그대는 국사의 무봉탑無縫塔을 알고 있는가?”
이에 현사가 도리어 설봉에게 물었다.
“무봉탑의 넓이와 높이가 얼마입니까?”
설봉이 현사를 돌아다보니, 현사가 말했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스스로 범하십니까?”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선사에게 물었다.
“현사의 말이 설봉을 긍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러하니라.”
“그렇다면 스님께서 설봉을 대신하여 현사에게 대답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앞으로는 탑을 세울 필요가 없느니라.”
[불일 화상] 佛日
운거雲居의 법을 이었고, 월주越州에서 살았다.
선사가 경산俓山에 이르니, 경산이 물었다.
“듣자옵건대 장로長老께서는 한 지방을 독자적으로 맡고 계신다던데, 어쩐 일로 이 높은 봉우리까지 오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밝은 달은 하늘 중턱에 걸리게 마련이지만, 찬 서리는 저절로 차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화상의 가풍이십니까?”
“우뚝우뚝한 만 겹 산, 그 안에 보배 달을 머금습니다.”
“그것도 역시 글과 말씀이옵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오늘 다행히 불일佛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선사가 따로 경산에게 질문을 하나 하였다.
“은밀하게 삶을 온전히 하는 일은 요즘 사람들이 있는 줄 알고 말할 수도 있지만, 크게 반성하여 허물이 없는 일은 요즘 사람들은 있는 줄 알지만 말할 수는 없는데, 이 두 가닥 길도 역시 요즘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는 길목입니다. 장로께서 친히 자신의 도를 말씀하신다면 어떤 것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경산이 대답했다.
“제가 말하는 곳에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여래의 길에는 사사로운 곡조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청하오니, 현음玄音으로 화답해 주십시오.”
경산이 말했다.
“해와 달, 둘이서 마음대로 서로 엇바뀌지만 하늘 끝에서는 서로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평범한 수많은 대중들을 위해서이니, 여기에 젊은이 있거든 고향에는 돌아가지 말라.”
경산이 다시 말했다.
“노인과 젊은이가 같은 수레에 타고서 뒤를 향해 나아감이 없으니, 우리 집안 현현한 길은 들쭉날쭉하지 않습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
“한 말씀이 이미 천하를 평정하였는데, 4구는 누구를 위하여 남겨 두었습니까?”
경산이 말했다.
“그대는 셋, 넷을 말하나, 나는 그 가운데에는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경산이 이에 게송을 읊었다.
동쪽과 서쪽도 돌아보지 않는데
남쪽과 북쪽을 누구에게 남겨 두리오.
그대는 셋이나 넷을 말하지만
나는 그 속에 하나도 없다 하노라.
이에 선사가 송했다.
두루 배워 타사시拖死屍를 끝까지 다했으나
몸 솟구쳐낼 곳 얻지 못하면 병은 고치기 어려우니라.
그대 마음대로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주워 올리라마는
스스로 단련하여 검륜劍輪이 날리는 것만 같지 못하리.
[수서 남대 화상] 水西 南臺
운거雲居의 법을 이었고, 담주潭州에서 살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조사와 조사끼리 서로 전했다는데, 무엇을 전하였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노승조차도 알지 못했을 것이니라.”
[중조산 화상] 中曺山
조산曺山의 법을 이었고, 무주撫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호는 혜하慧遐요, 성은 황黃씨이며, 천주泉州의 보전현莆田縣 사람이다. 조원曹源의 법석에 나아가 현현한 도에 은밀히 계합하고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하옥荷玉에서 살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박옥璞玉을 안고 스님께 귀의할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 집의 진귀한 보물은 아니니라.”
“어떤 것이 내 집의 진귀한 보물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조산이 그보다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신 뒤에는 어떠합니까?”
“그가 조산보다 못하느니라.”
“네 개의 산이 죄어올 때에는 어찌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조산이 그 안에 있느니라.”
“벗어나기를 바라시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만일 그 속에 있다면 벗어나기를 구할 것이니라.”
[금봉 화상] 金峯
조산曺山의 법을 이었고, 항주杭州에 있었다. 선사의 휘는 종지從志이고, 복주福州의 고전현古田縣 사람이다. 민월閩越을 떠나 조원曹源으로 가서 현현한 이치를 활연히 깨닫고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금봉산金峰山에서 살았고, 나중에는 보은사報恩寺에서 살았으며, 선사의 호는 현명玄明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사해四海가 편안하고 맑을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여전히 댓돌 밑에 엎드린 놈이로다.”
“왕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왕에게 적잖은 신통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선禪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도입니까?”
“만물과 같지 않은 것이니라.”
“선과 도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머니라.”
“어떤 것이 가깝다면 가까운 것입니까?”
“얼굴을 마주 대하여도 가리지 못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멀다면 먼 것입니까?”
“도솔천을 지나는 것이니라.”
“옛사람이 거문고 줄을 조절할 때에는 변별함을 삼갔는데, 조계曹溪와 웅이熊耳는 무엇으로 증험을 삼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문채紋綵가 없느니라.”
“그렇다면 여섯 잎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그것이 어찌 문채가 있는 것이라 하겠는가, 그래서 어찌하겠는가?”
“옛사람이 전하기는 하였습니까?”
“전하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에 이르렀겠는가?”
“아무런 문채도 없는데, 어떻게 전하였습니까?”
“전하는 것이 곧 문채가 없는 것이니라.”
“화상께서도 전하시겠습니까?”
“무슨 까닭으로 전하지 않겠는가?”
“옛사람의 뜻이 무엇이었습니까?”
“조계曹溪의 문 앞에서 힘껏 버티었던 일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잊지 않느니라.”
“뒷날의 일을 어찌하시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천 번 만 번 당부하노라.”
[녹문 화상] 鹿門
조산曺山의 법을 이었고, 양주襄州에서 살았다. 휘는 진선眞禪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이가 도를 얻은 사람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콧구멍 같은 입이 있는 자이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갑자기 손님이 오면 무엇으로 대접하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사립문과 거적문을 그대가 지나가 주니 고맙게 여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