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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2권
8. 열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2)
8.1.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死念)
1. 신을 계속해서 생각함 다음에 이제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의 수행을 해설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죽음(maraṇa)이란한 생에 포함된 생명기능(jīvitindriya, 命根)이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라한들이 윤회의 괴로움을 끊었다고 일컫는 끊음의 죽음(samuccheda-maraṇa 正斷死)과,
상카라(行)들의 순간적인 부서짐이라 일컫는 순간의 죽음(khaṇia-maraṇa 刹那死)과,
‘나무가 죽었다. 금속이 죽었다’는 등의 통속적인 죽음(sammuti-maraṇa)은 여기서 뜻하는 것이 아니다.
2. 여기서 뜻하는 것은 때가 된 죽음(kāla)과 불시의 죽음(akāla-maraṇa). 이 두 가지이다.
이 가운데서 때가 된 죽음이란 공덕(puñña)이 다하거나 수명(āyu)이 다하거나 둘 다가 다함으로 맞는 것이다.
불시의 죽음이란 생산업(janaka-kamma)을 끊어버리는 업으로 인해 맞는 것이다.
3. 이 가운데서 비록 생명의 상속을 연장할 [음식 등의] 조건이 존재해있지만 단지 재생연결을 생기게 한 업의 과보가 익었기 때문에 맞는 죽음이 공덕이 다하여 맞는 죽음이다.
[신들이 갖는] 운명의 우수함과 [겁의 처음에 있던 것과 같은] 시간의 우수함과, [북쪽의 꾸루들이 갖는] 음식의 우수함 등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사람들처럼 백 년의 수명이 다하여 맞는 죽음이 수명이 다하여 맞는 죽음이다
마치 두시 마라(Dūsīmāra, M.i.337)와 깔라부 왕(Kalāburāja, Jā.iii.39)등의 경우처럼 그 순간에 그 자리에서 죽게 하는 힘을 가진 업에 의해 상속이 끊어진 자들의 죽음이나,
이전의 업에 의해서 칼등의 무기의 급습으로 상속이 끊어진 자들의 죽음이 불사의 죽음이다.
이 모든 것은 앞서 설한 생명기능이 끊어진 것에 포함된다.
이와 같이 생명기능이 끊어진 것이라 불리는 죽음을 억념(憶念)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4. 그것을 닦고자하는 자는 조용한 곳에 혼자 머물러
‘죽음이 올 것이고, 생명기능이 끊어질 것이다.’ 혹은
‘죽음,죽음’하면서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함을 일으켜야 한다.
5. 근원을 벗어나서 마음에 잡도리함을 일으키면 원하는 사람의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슬픔이 일어난다.
마치 생모가 사랑스런 아들의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처럼. 원하지 않는 사람의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기쁨이 일어난다.
마치 적들이 그들 적의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처럼. 무관심한 자의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절박감이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시체를 태우는 자가 시체를 보는 것처럼. 자기의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두려움이 일어난다.
마치 겁쟁이가 칼을 빼든 살인자를 보는 것처럼.
6. 이런 모든 것에는 마음챙김과 절박함과 지혜가 없다.
그러므로 여기저기서 [도적들에 의해] 피살되었거나 [자연적으로] 죽은 중생들을 쳐다보고 이전에 영화를 누렸던 이미 죽은 중생들의 죽음으로 전향하여 마음챙김과 절박함과 지혜를 확립하여,
‘죽음이 들이닥칠 것이다’라는 등의 근원적으로 일으킨 것이다.
바른 방법으로 일으킨다는 뜻이다.
7. 이와 같이 일으키자마자
[기능이 예리한] 어떤 자는 장애들을 억압하고,
죽음을 대상으로 한 마음챙김이 확립되고,
명상주제는 근접삼매에 이른다.
8. 그러나 이와 같이 얻을 수 없을 때 그는
① 살인자가 나타난 것으로
② 영화가 몰락하는 것으로
③ 비교함으로써
④ 몸을 여러 중생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⑤ 수명이 힘이 없는 것으로
⑥ 표상이 없는 것으로
⑦ 시간이 한정된 것으로
⑧ [수명의] 순간이 짧은 것으로
이 여덟 가지 형태로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1) 살인자가 나타난 것으로
9. (1) 살인자가 나타난 것으로:
마치 살인자가 나타난 것처럼
‘이 놈의 머리를 베리라’하면서,
칼을 빼들어 목에 갖다 대는 살인자가 나타난 것처럼,
‘죽음도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라고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왜 그런가?
이것은 태어날 대부터 함께 왔기 때문이고 수명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10. 버섯의 싹이 반드시 머리에 포자를 띠고 나는 것처럼, 중생도 반드시 늙음과 죽음을 갖고 태어난다.
그들의 재생연결의 마음이 일어나자마자 곧 바로 늙음에 이르고 그와 함께한 무더기(蘊)들과 함께 부서진다.
마치 산꼭대기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처럼.
이와 같이 순간의 죽음(khaṇika-maraṇa 刹那死)은 태어남과 함께 온다.
태어난 자에게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뜻하는 죽음은 태어남과 함께 온 것이다.
11. 그러므로 마치 태양이 떠오르면 반드시 서쪽으로 향할 뿐 간 곳으로부터 조금도 돌아오지 않듯이,
마치 산에서 내려오는 강이 급류와 함께 [그 물살에 떨어진 풀과 나뭇잎 등을] 쓸어내리면서 계속해서 떨어질 뿐 조금도 거슬러 올라가지 않듯이,
중생도 태어난 시간부터 시작하여 조금도 되돌아가지 않고 죽음을 향할 뿐이다.
그래서 설하셨다.
12. 이와 같이 갈 때 여름의 열기에 증발하여 [산에서부터 떨어지는] 작은 개울이 말라가듯이,
밤새] 나무의 수액이 줄기로 되돌아갔을 때 아침에 그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듯이,
흙으로 만든 옹기가 방망이에 부딪치면 깨지듯이,
이슬방울이 햇살을 받으면 사라지듯이,
오직 죽음이 가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낮과밤은지나가고, 생명은사라진다.
사람의수명은줄어드나니
마치산에서흐르는물처럼.(S.i.109)”
“익은 과일들이 아침에 떨어질 두려움이 있듯이
이와 같이 태어난 중생도 항상 죽음을 두려워한다.
도공이 만든 흙으로 된 옹기가
작든 크든 구운 것이든 굽지 않은 것이든
모든 것은 끝내 파손되듯이
중생의 생명도 그와 같다.(Sn.476-77)”
“풀잎 끝의 이슬이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듯이
인간의 수명도 그와 같습니다.
어머니, 저의 [출가를] 방해하지마십시오(Jā.iv. 122)”
13. 이와 같이 칼을 빼든 살인자처럼 죽음은 태어남과 함께 왔고,
이 죽음은 목에다 칼을 갖다 대는 살인자처럼 생명을 앗아간다.
다시는 [뺏은 생명을] 가지고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태어남과 함께 왔기 때문에, 생명을 앗아가기 때문에, 칼을 빼든 살인자처럼 죽음도 다가온다고 이와 같이 살인자가 나타난 것으로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2) 영화가 몰락하는 것으로
14. (2) 영화가 몰락하는 것으로:
몰락이 영화를 덮쳐버리기 전까지 영화는 빛난다. 몰락에 빠지고서도 유지될 그런 영화관 없다.
그래서 참으로,
전 대지를 정복하여 10억을 보시했던
행복한 왕도 마지막에는 그 왕국이
아말라까 열매의 반 정도에도 미치지 못했다.
비록 [슬픔 없는] 아소까 였지만 공덕이 다 하여
죽음을 당했을 때 바로 그 몸으로 슬픔을 느꼈다.
15. 게다가 모든 건강은 병으로 끝나고, 모든 젊음은 늙음으로 끝나며, 모든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고, 모든 세상은 태어남에 묶여 있고, 늙음이 다가오고, 병에 시달리고, 죽음에 습격당한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거대한 석산이 하늘을 꿰찌르고
사방을 갈아내리면서 주위를 배회하듯
그와 같이 늙음과 죽음도 중생들을 정복한다.
왕족이든 바라문이든 와이샤든 수드라든
불가촉 천민이든 야만인이든
그 누구도 이를 피할 수 없나니
[죽음은] 이 모두를 갈아버린다.
그곳은 코끼리와 전차와 보병의 영역도 아니고
주술의 전쟁이나 재물로도 이길 수 없다.(S.i.102)”
이와 같이 생명의 영화는 죽음의 몰락으로 끝이 난다고 구분하여 영화가 몰락하는 것으로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3) 비교함으로써
16, (3) 비교함으로써:
타인과 더불어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일곱 가지로 비교하여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① 크게 명성을 떨치던 자와
② 큰 공덕을 쌓았던 자와
③ 힘이 장사인 자와
④ 큰 신통을 가진 자와
⑤ 큰 통찰지를 가진 자와
⑥ 벽지불과
⑦ 정등각자와 [비교한다].
17. 어떻게?
① 크게 명성을 떨치던 자와 비교함:
크게 명성을 드날렸고, 많은 부하를 거느렸고, 막대한 재산과 병력을 가졌던 마하삼마따(Mahā-Sammata)와 만다뚜(Mandhātu)와 마하수닷사나(Mahā-Sudassana)와 달하네미(Daḷhanemi)와 니밉빠부띠(Nimippabhuti)등도 나중에는 불가피하게 이 죽음에 붙잡혔거늘 어찌 난들 붙잡히지 않겠는가?
큰 명성을 날렸던 마하삼마다대왕 등도
죽음의 지배하에 들어 갔거늘
나 같은 사람에 대해서야 말해 뭣하리!
이와 같이 크게 명성을 떨치던 자와 비교하여 계속해서 생각 해야 한다.
18.
② 큰 공덕을 쌓았던 자와 비교함:
조띠까, 짜띨라, 욱가, 멘다까, 뿐나까,
이들 뿐 아니라 다른 자들도
세간에서 큰 공덕을 가진자라고 명성이 자자했다.
이 모두 죽음에 이르렀거늘
나 같은 사람에 대해서야 말해 뭣하리!
이와 같이 큰 공덕을 쌓았던 자와 비교하여 계속해서 생각 해야 한다.
19.
③ 힘이 장사인 자와 비교함:
와수데와, 발라데와, 비마세나, 유딧틸라
씨름꾼이던 짜나라도 죽음의 지배하에 갔다.
이와 같이 대단한 힘을 가진 자들이라고
세간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이들도
죽음에 이르렀거늘
나 같은 사람에 대해서야 말해 뭣하리!
이와 같이 힘이 장사인 자와 비교하여 계속해서 생각 해야 한다.
20.
④ 큰 신통을 가진 자와 비교함:
신통 제일이고 두 번째 상수제자이고
엄지발가락으로 웨자얀따의 궁전을 진동케 했던
그분 [목갈라나도] 마치 사슴이 사자의 입에 들어가듯
무시무시한 죽음의 입으로
[그의] 신통과 함께 들어갔거늘
나 같은 사람에 대해서야 말해 뭣하리!
이와 같이 큰 신통을 가진 자와 비교하여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21.
⑤ 큰 통찰지를 가진 자와 비교함
세상의 주인을 제외한 다른 중생들은
사리뿟따의 통찰지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와 같이 큰 통찰지를 가졌고 상수제자였던 그도
죽음의 지배 하에 들어갔거늘
나 같은 사람에 대해서야 말해 뭐사리!
이와 같이 큰 통찰지를 가진 자와 비교하여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22.
⑥ 벽지불과 비교함:
자기의 지혜와 정진의 힘으로 모든 오염원의 적을 쳐부수고 독각(獨覺)을 얻으셨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서고], 스스로 깨달으신 그분들도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거늘 어찌 내가 죽음을 벗어나겠는가?
각각의 다른 표상을 얻어 궁구하면서 대선인들은
스스로 깨닫고 지혜의 빛으로 번뇌의 소멸에 이르셨다.
무소의 뿔처럼 그들은 혼자 다니고 머무셨지만
그들도 죽음을 초월하지 못했거늘
나 같은 사람에 대해서야 말해 뭣하리!
이와 같이 벽지불과 비교하여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23.
⑦ 정등각자와 비교함:
세존은 80가지의 부속상(anubyañ-jana)을 두루 갖추시고, 32가지의 대인상(大人相, mahāpurisa-lakkhaṇa)으로 장엄된 색신을 가지셨고, 모든 면에서 두루 청정한 계의 무더기(戒蘊) 등의 덕의 보배를 성취한 법신(法身,dhamma-kāya)을 가지셨다.
큰 명성과 큰 덕과 큰 힘과 큰 신통과 큰 통찰지의 정점에 이르셨고, 필적할만한 자가 없고, 필적할만한 자가 없는 자들과 동등하시고, 비교할만한 자가 없고, 아라한이시고, 정등각자이신 그 분도 죽음의 빗물에 의해 그 순간에 적멸하셨다.
마치 큰 불 더미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물에 의해 꺼지듯이.
죽음이 이런 큰 위력을 가지신 대선인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면서
그의 지배 하에 둔 것이 아니다
죽음은 양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이
모든 중생을 부숴버리거늘
어찌 나 같은 중생을 압도하지 않으리!
이와 같이 정등각자와 비교하여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24. 이와 같이 큰 명성 등을 가진 타인들에게도 죽음은 보편적이라는 것으로 자기와 비교한 뒤,
그 저명한 자들에게 죽음이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죽음이 올 것이라고 계속해서 생각할 때 명상주제는 근접삼매에 이른다.
(4) 몸을 여러 중생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25.
(4) 몸을 여러 중생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이 몸은 여러 중생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우선 80가지 벌레들의 무리와 함께한다.
그 중에서도 표피에 의지하여 사는 중생들은 표피를 먹고,
속 살갗에 의지해서 사는 중생들은 속 살갗을 먹고,
살집을 의지해서 사는 중생들은 살집을 먹고,
힘줄을 의지해서 사는 중생들은 힘줄을 의지해서 사는 중생들은 힘줄을 먹고,
뼈를 의지해서 사는 중생들은 뼈를 먹고,
골수를 의지해서 사는 중생들은 골수를 먹는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늙고, 죽고, 용변을 본다.
그들이 태어난 집이고, 병원이고, 공동묘지이고, 화장실이고, 소변소이다.
이 몸은 그 벌레들이 전복할 때 죽음으로 간다.
이 몸이 80가지 벌레들의 무리와 함께하듯이 이 몸은 역시 수백 가지의 병이라는 죽음의 안의 조건과 뱀이나 전갈 등에 물리는 등 죽음의 바깥 조건들과 공유한다.
26. 마치 네거리에 과녁을 세워놓으면 사방에서 나아오는 화살과 작살과 창과 돌 등이 그 위에 떨어지듯이 이 몸에도 모든 재앙이 떨어진다.
이 몸은 이 재앙들이 자신에게 떨어져 죽음으로 간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날이 지고 밤이 돌아왔을 때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내게 죽음을 가져올 여러 조건이 있다.
뱀이 나를 물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혹은 발부리가 걸려 넘어질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먹은 음식이 탈이 날지도 모른다.
혹은 담즙이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고, 가래가 성가시게 할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A.iii.306)”
이와 같이 몸을 여러 중생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5) 수명이 힘이 없는 것으로
27. (5) 수명이 힘이 없는 것으로:
이 수명은 허약하고 힘이 없다. 왜냐하면 중생의 목숨은
① 들숨날숨과 관련되어있고
② 위의와 관련되어있으며
③ 추위와 더위에 관련되어있고
④ 근본물질과 관련되어있고
⑤ 음식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
28.
① 그 수명은 들숨과 날숨이 고르게 일어날 때 유지된다. 코 속에 있는 바람이 밖으로 나가서 다시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때, 혹은 들어왔다가 나가지 않을 때 죽었다고 한다.
② [행 ㆍ주 ㆍ좌 ㆍ와의] 네 가지 자세를 고르게 지을 때 수명은 존속한다. 그 중에서 어느 하나가 우세하면 수명은 끊어진다.
③ 추위와 더위의 평형을 얻을 때 수명이 존속한다. 극심한 추위와 더위로 인해 압도되면 유지되지 못한다.
④ 근본물질들의 평형을 얻을 때 수명이 존속한다. 건강한 사람도 땅의 요소의 부조화로 인해 그의 몸이 뻣뻣해지면서 수명이 다한다.
물의 요소 등 가운데서 어떤 것의 부조화로 인해 몸이 축 늘어지거나, 설사를 많이 하여 몸에 악취가 나거나, 심한 열로 인해 초췌해지거나, 관절이 끊어져서 그의 목숨은 다한다.
⑤ 먹는 음식을 적절한 시기에 얻을 때에 그의 목숨은 존속한다. 음식을 얻지 못할 때 그의 목숨은 다한다.
이와 같이 수명이 힘이 없는 것으로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6) 표상이 없는 것으로
29.
(6) 표상이 없는 것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으로, 즉 한정 지을 수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중생들의 ① 수명 ② 병 ③ 시간
④ 몸을 내려놓는 곳 ⑤ 태어날 곳 –
이 다섯은 살아있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나니
표상이 없기 때문이다.
30. 이 가운데서
① 수명은 이만큼만 살아야 하고 이 이상 살아서는 안된다고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표상이 없다.
중생들이 깔랄라(kalala)의 시기에 죽기도 하고, 압부다(abbuda)의 시기에, 빼시(pesi)의 시기에, 가나(ghana)의 시기에, 한 달 뒤, 두 달 뒤, 석 달 뒤, ,넉 달 뒤, 다섯 달 뒤, 열 달 뒤에 죽기도 하고, 자궁에서 나올 때 죽기도 하고, 백년의 이쪽저쪽에서 죽기도 한다.
31.
② 병도 역시 ‘중생들은 오직 이 병으로 죽고, 다른 병으로 죽는 것이 아니다’라고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표상이 없다.
중생들은 눈병으로 죽기도 하고 귓병 등 어느 것으로 죽기도 하기 때문이다
32.
③ 시간도 역시 ‘오직 이 시간에 죽어야 하고 다른 시간에 죽어서는 안된다’라고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표상이 없다.
중생들은 오전에 죽기도 하고 정오 등 다른 때에 죽기도 하기 때문이다.
33.
④ 몸을 내려놓을 곳도 역시 ‘중생이 죽을 때 오직 이곳에 몸을 내려놓아야 하고, 다른 곳에는 안된다’라고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표상이 없다.
마을 안에서 태어난 자들의 몸이 마을 밖에 내려질 수도 있고,
마을 밖에서 태어난 자들의 몸이 마을 안에 내려질 수고 있고,
뭍에서 태어난 자들의 몸이 물에, 물에서 태어난 자들의 몸이 뭍에 내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
34.
⑤ 태어날 곳도 역시 ‘이곳으로부터 죽어 여기 태어나야 한다’고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표상이 없다.
천상에서 죽어 인간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인간계에서 죽어 천상 등 어느 곳에 태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마치 기계에 묶인 소처럼 다섯 가지 태어날 곳에 따라 세상은 돌고 돈다.
이와 같이 표상이 없는 것으로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7) 시간이 한정된 것으로
35. (7) 시간이 한정된 것으로:
현재 인간들의 목숨이 붙어있는 시간은 짧다. 장수하는 자도 백년이 안되거나 혹은 조금 더 살뿐이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인간들의 수명은 짧다. 간답바가 되어 내생으로 갈 것이다.
유익함을 실천해야 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죽음은 반드시 있다.
비구들이여, 장수하는 자도 백년의 이쪽저쪽일 뿐이다 …
짧구나, 인간들의 목숨은!
선한 사람들은 이것을 무시하면서
그의 머리가 불타듯이 수행해야 할지라.
죽음은 반드시 오고야 말리니!(S.i.108)”
다시 “비구들이여, 옛적에 아라까(ARraka)라는 스승이 있었다.(A.iv.136-38)”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곱 가지 비유로 장엄된 경을 모두 상세히 인용해야 한다.
36. 또 설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하루 밤과 낮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하루 낮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밥 먹을 동안 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네 다섯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동안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을 일러 방일하게 살고,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둔하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고 한다.”
37.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한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동안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 쉬는 동안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을 일러 부지런히 살고,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예리하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고 한다.(A.iii.305-6)”
38. 이와 같이 목숨의 기간은 짧아서 네 다섯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동안만큼도 확신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시간이 한정된 것으로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8) 순간이 짧은 것으로
39. (8) 순간이 짧은 것으로:
궁극적인 뜻에서 인간의 수명의 순간은 매우 짧다. 그것은 오직 한 마음이 일어나는 동안 만큼이다.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갈 때에 바퀴의 테두리의 한 부분이 [땅에 닿아] 굴러가고 설 때에도 바퀴의 테두리의 한 부분이 서듯이,
중생들의 수명은 한 마음순간 만큼이다(eka-citta-kkhaṇika).
그 마음이 소멸 할 때 중생이 멸했다고 한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과거의 마음순간(心刹那)에 살았고, [지금은] 살지 않고, [미래에도] 살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마음순간에 살지 않았고, 살지 않고, 살 것이다.
현재의 마음순간에 살지 않았고, 살고 있고, 살지 않을 것이다.
오직 수명과 자신과 행복과 고통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하나의 마음과 연결되어있다. …
멸한 무더기(蘊)는 이미 죽은 자의 것이거나
살아있는 자의 것이거나 모두 같나니
가버린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태어남이 없고
마음이 현존할 때 살아있는 것
마음이 무너지면 세상은 죽은 것이니
이것은 궁극적인 뜻의 개념이다.(Nd1. 42)”
이와 같이 순간의 짧은 것으로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40. 이와 같이 여덟 가지 가운데 어느 방법으로든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거듭거듭 마음에 잡도리함을 통해 마음을 반복해서 닦게 된다. 죽음을 대상으로 마음챙김이 확립되고, 장애들을 억압하고, 禪의 구성요소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대상은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고 또 절박감을 일깨우기 때문에 본삼매에는 이르지 못하고 오직 근접삼매에만 이른다.
출세간 禪과 두 번째와 네 번째의 무색계禪도 고유성질을 가진 법인 [열반과 마음]을 대상으로 삼지만 [아래에서 설명하는] 수행의 특별함을 통해 본삼매에 이른다.
[계와 삼매 등] 점진적인 청정을 닦음으로 인해 출세간 禪은 본삼매에 이른다.
대상을 극복하는 수행을 통해 무색계禪은 본삼매에 이른다.
왜냐하면 그 [두 번째와 네 번째의 무색계禪에는] 이미 본삼매에 이른 禪의 대상을 극복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에서는] 둘 모두가 없다.
그러므로 이 禪은 오직 근접삼매에만 있을 뿐이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의 힘을 통해 일어났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이라 한다.
41. 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수행하는 비구는 항상 방일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에 대해 즐거워하지 않는 인식을 얻는다.
목숨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악을 비난한다.
많이 축적하지 않는다.
필수품에 대한 때(mala0와 인색함을 버린다.
그에게 무상의 인식이 깊어진다.
따라서 괴로움의 인식과 무아의 인식이 나타난다.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지 않는 상태에 빠지지 않고 두려움도 없고 몽매함도 없이 죽는다.
만약 이 생에서 불사를 얻지 못하면 몸이 무너지더라도 적어도 선처로 인도된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항상 게을리 하지 말지니
이와 같이 큰 위력을 가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이것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의 상세한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