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나라 프랑스(France)
<9> 에펠(Eiffel)탑과 사이요(Chaillot) 궁
파리의 상징이자 프랑스의 상징이기도 한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세계 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구조물이라고 한다.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에 의하여 세워진 이 타워는 높이가 320m(안테나 포함)나 되는데 3층까지의 계단만도 1,652개라고 한다.
처음에는 파리 시민들은 예술의 도시 파리의 미관을 해치는 ‘추악한 고철 덩어리’라는 비판이 거세어 철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는데 특히 예술계와 문학계 인사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송신 안테나를 세우기에 적합하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철거 위기를 넘겼다고 하는데 이 에펠탑은 순수한 철 구조물로 총 무게가 10.000톤이나 된다고 한다. 파리는 대부분 석조물로 된 건축물만 있는 역사의 도시에 쇳덩어리로 된 건축물이 들어선다는 것이 반발을 샀던 것 같은데 이해가 된다.
에펠탑은 워낙 높이 솟아있어서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파리 시내 곳곳이 한눈에 조망된다. 에펠탑은 총 3층 구조로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는데 1~2층까지는 걸어서 오를 수 있지만 3층 전망대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오를 수 있다. 여기도 입장권 사려는 줄이 항상 길다.
‘여자의 일생’을 쓴 프랑스의 소설가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은 에펠탑이 꼴 보기 싫어 매일 점심을 이 에펠탑 아래 식당에서 먹었다고 한다. 식대가 비싸기는 하지만 꼴 보기 싫은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므로... ㅎㅎ
사이요(Challiot) 궁 / 이에나(d'Lena) 다리 / 에펠탑
에펠탑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이에나 다리(Pont d'Lena) 건너편에 있는 샤이요(Challiot)궁과 트로카데로(Trocadéro)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반대로 샤이요궁에서 바라보는 에펠탑 조망이 가장 좋다.
<10> 노트르담(Notre Dame) 대성당
센강 유람선을 타고 노트르담(Notre Dame) 성당을 보러 가는데 강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섬이 나타나고 물줄기가 갈라지며 강 가운데의 적은 섬이 나타나는데 이 ‘시테(Cite)섬’ 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강 건너에서 배를 내려 건너다보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금년 초(2019. 4. 15)에 발생한 대화재로 첨탑과 지붕이 붕괴되는 큰 피해를 입어 참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가슴이 아픈데, 성당은 한창 복원 중이었다.
강 건너 둔치의 농산물 바자회 / 강 건너에서 본 노트르담 / 보수 중인 성당(성당 뒤쪽)
◐ 노트르담 성당의 역사
노트르담 대성당은 BC 1세기 로마의 장군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파리를 정복하고 이 자리에 주피터(Jupiter/Zeus) 신전을 지었는데 로마가 물러간 후 폐허(유적)로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1163년, 신전 유적을 허물고 대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1345년 완공한 후 노트르담(성모마리아) 성당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시 세월이 흘러 건물이 노후화되어 철거될 위기에 처하였는데 성당을 살리자는 운동이 일어났고, 그 운동의 선봉에 선 사람이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였다.
그는 노트르담을 소재로 한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를 발표하였고, 결국 이 소설이 성당 복원의 발판이 되어 철거보다는 복원하자는 의견이 우세하여 대대적인 보수와 증축공사가 이어졌다고 한다.
이 노트르담 대성당은 독일의 쾰른 대성당,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과 함께 중세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3대 성당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종교행사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의 대관식(1804) 및 프랑스 최고 지도자의 장례식 등 지금도 국가적인 행사가 열리는 중요한 장소라고 한다.
노트르담(Notre Dame)은 프랑스어로 『우리들의 부인』이라는 말로 『성모마리아』를 의미하며, 파리 대 주교좌(主敎座) 성당인데 1991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 농산물 바자르
우리가 갔던 날 마침 노트르담 맞은편 강의 둔치에서 농산물 바자르가 열리고 있었다. 경쾌한 브라스밴드의 연주도 있고, 농산물을 무료로 나누어주는 행사도 겸하고 있어 우리도 줄을 섰는데 사과, 무, 배추, 마늘 등을 선물로 주기에 우리는 사과와 마늘만 받았다.
그런데 이 마늘로 인하여...... 여행 동료인 임교장이 마늘 광(狂)일 줄이야.... 여행 내내 끼니때마다 생마늘을 먹어대는 통에 나마저 코가 아픈데... ‘임교장, 서양 사람들은 마늘 냄새를 싫어하니 좀 자제할 수 없겠나?’ ‘마늘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 데요~~ ?’ 막무가내로 먹어대는 통에 한 20일 동안... 으휴~~
<11> 판테옹(Pantheon)과 소르본(Sorbonne) 대학
◐ 위풍당당한 판테옹(Pantheon)
센강 남쪽에 있는 판테옹(Pantheon)은 노트르담 성당에서 멀지 않지만, 지하철(Metro)로 가려면 다소 까다롭다. 판테옹(Pantheon)은 원래 로마에 있는 건물 이름인데 ‘모든 신을 모시는 신전건물’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프랑스 왕 루이 15세는 병이 걸렸는데 위독해지자 파리의 수호성녀였던 쥬느비에브(St. Genevieve)에게 병이 나으면 성당을 지어 헌납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병이 낫자 폐허로 남아있던 쥬느비에브 수도원 자리에 로마의 판테옹을 본 따 엄청나게 큰 돔 형태의 건물을 지어 약속을 지켰다.
판테옹의 위용
그 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유해를 지하에 안치하기 시작하여 결국 묘지처럼 되었는데 이름도 판테옹이라 고쳤다. 이 성당의 지하의 묘지에는 볼테르(Voltaire), 루소(Rousseau), 에밀 졸라(Émile Zola),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장 물랭(Jean Moulin) 등 프랑스를 빛낸 사람들의 유해가 많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외부에서 보면 흡사 로마의 대 신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너무나 휑뎅그레 비어 있다는 느낌이다. 벽면마다 하얀 석고(석재는 아닌 듯)로 조성된 현대식 조형물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이 특색이고, 건물 가운데에는 천정에서 줄이 드리워져 황금색 진자(振子)가 달려 있는데 계속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 프랑스의 자랑 소르본 대학
판테옹에서 한 블록 거리에 프랑스가 자랑하는 소르본(Sorbonne) 대학이 있다. 그런데 대학의 정문을 찾다가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유럽 3대 대학 중 하나라는 소르본 대학이 웅장한 정문도, 널찍하고 푸른 정원도 없고 그냥 도시의 한 블록에 들어선 호텔처럼 커다란 건물이 있는데 그것이 대학 강의실이라고 한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이에게 물으니 파리 제4 대학이라는 답변이다.
그러면 소르본 제1 대학은 어디냐?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 흡사 성당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닫혀있고 옆으로 학생들이 드나들기에 물었더니 그것도 소르본 대학 건물이란다. 대학이 모두 14개라는 이야기도....
소르본(Sorbonne) 대학 건물들
<12> 센(Seine) 강의 다리들
센(Seine)강 풍경<크루즈 배에서>
파리에서 3일째 우리는 파리 크루즈를 타고 맘껏 여유를 즐겼다. 1일짜리 티켓을 끊으면 종일토록 마음대로 아무 곳에서나 타고 내릴 수 있어서 편리했다. 내려서 구경을 하고는 강변에 앉아 쉬다가 다시 크루즈를 타고...
호화 카페가 있는 배, 식당이 있는 배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우리는 멋도 모르고 끊은 것이 요행으로 정기노선 크루즈라 맘껏 여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어서 좋았다.
노선은 에펠탑 조금 아래쪽에서 회항하여 노트르담이 있는 시테(Cite)섬을 지나 생 루이(St. Louis)섬을 돌아오는데 생 루이섬은 시테섬과 다리로 연결된, 센강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이다.
우리들에게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영화로 알려진 퐁네프(Pont Neuf) 다리는 센강의 수많은 다리 중에서 석조로 지은 센강 최초의 다리라고 하는데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Cite)섬 모서리에 걸쳐서 놓은 다리로 1607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당시로는 새로운 다리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퐁네프(Pont Neuf)’라는 이름이 붙었고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명성과는 달리 높이도 낮고 그다지 볼품이 없다.<Neuf=New)
뽈리네르의 시로 유명해진 미라보 다리(Pont Mirabeau)는 1897년에 완공된, 제법 긴 오래된 다리인데 에펠탑을 지나 한참 하류로 내려간 지점에 있다.
파리는 워낙 볼거리들이 많아서 4박을 하며 하루 2~3만 보(步)씩 걸어 다니며 열심히 둘러보았지만 본 것보다 보지 못한 것이 훨씬 더 많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디서 무엇을 보았는지 뒤죽박죽이 되어 이 글을 쓰면서도 무지 헷갈린다.
<13> 호화의 극치 베르사유(Versailles) 궁전
왕실전용 성당 / 호화의 극치 베르사유 궁전 내부/ 태양왕 루이 14세
유사 이래,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궁전으로 회자(膾炙)되는 베르사유 궁전은 파리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있다. 유럽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루이 14세(Louis XIV)는 태양왕(太陽王)으로도 불리는 절대 권력을 자랑했는데 재무장관(財務長官)이었던 푸케(Foucquet)의 성 비콩트(Vicomte)를 둘러보고 난 후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함에 크게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그는 돌아온 즉시 푸케의 비콩트(Vicomte) 건축에 참여했던 건축예술가들을 불러 훨씬 더 화려한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한다.
건축예술가들은 50년에 걸쳐 태양왕이 제공한 막대한 비용으로 어마어마한 궁전은 물론 엄청난 면적의 정원도 조성하여 1682년에 완공하는데 태양왕이 둘러본 후 매우 흡족했다고 하니 얼마나 화려하게 건축했는지 짐작이 간다.
루이 14세는 1682년 즉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매일 귀족들을 불러 연회를 열었는데 이것은 호화궁전 건축에 반감을 품은 귀족들을 무마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엄청난 국고의 손실 등으로 프랑스 혁명(시민혁명/1789)을 일으키는 불씨가 될 줄이야....
베르사유는 방의 수가 200개가 넘는 엄청난 규모에서 우선 놀라게 되고 또,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동원하여 설치한 조각과 미술품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로움의 극치라고 할 만하다. 그뿐만 아니라 원래 습지였다는 궁전 뒤편의 광대한 정원은 기막힌 설계로 ‘프랑스 정원’의 결정체라 불린다고 한다.
정원 곳곳에는 조각품들도 눈길을 끌고 또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도 꼬불꼬불 끝이 없다.
이 숲길을 돌아보는 꼬마열차도 있다.
가는 방법은 파리에서 메트로 9호선을 타고 종점에서 내려 171번 버스탑승, 종점에서 하차!!
입장료는 18유로이다.
베르사유 궁전 뒤 정원 / 베르사유 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