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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참수행의 핵심, '37보리분법'에 대해서 -5편-
[일러두기]
1. 스크립트를 문장 단위로 정리한 것입니다.
2. 주제를 고려하여 목차를 붙였습니다.
실참수행의 핵심 '37보리분법' - 5편-, 7각지, 7각지의 뜻과 개요, 염각지ㆍ택법각지ㆍ정진각지
칠각지 부분입니다. 일곱 부분이죠.
그래서프린트 불량이 좀 많습니다.
한국의 칠각지 부분에 대한 걸 좀 상세하게 기순에는 온 게 잘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 스님이 조금 프린트 양이 조금씩 많다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겁니다.
대략 한번 보니까 한 120페이지 정도 칠각지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거는 좀 보다 쉽게 이해하고 수행하라는 의미에서 붙여 놓은 사족이니까 수행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칠각지의 뜻]
칠각지가 무슨 뜻이죠?
무슨 의미예요?
실은 알 거고 7가지라는 거는 그렇죠. 그렇게 해야 되는데 보통은 깨달음의 구성요소라고 이렇게 하면 근데 그거는 잘못된 겁니다.
깨달음하고 칠각지 하고는 다른 부분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이 강에서 저강을 강을 건너서 여기서 저쪽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징검다리가 7개 있다 생각하면 됩니다.
지금 다리 건너가고 나서는 저쪽 부분에 가서는이 징검다리가 필요 없죠.
그런데 건더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것을 짓고 넘어가야 되는 그래서 굳이 한국말로 표현을 하면 깨달음이나 지혜가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게 이제 빨려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나는 건데,
대표적인게 망갈라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망갈라는 보통 한국에서 행복경 그렇게 행복이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축복이나 행복이나 행복은 이미 이런 상태를 얘기하는 겁니다.
망갈라라는 이런 상태를 의미하지를 않습니다.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 마음을 가지는 것 어떻게 노력을 해야 되느냐는 그걸 망갈라라고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축복이나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 내가 얼마만큼 부단하게 노력해서 그것을 갖추어야 되느냐 하는 이걸 갖추는 걸 망갈라라고 얘기하지 그래서 그걸 보통 한글로 참 표현하기가 참 애매한 요소들입니다.
사띠가 그렇죠.
망갈라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외국에서는이 단어들은 번역을 안 합니다.
그냥 그대로 씁니다.
왜 그러면 요소들이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예를 들어서 뭐 차가 있어야 된다, 그럼 차를 얻기 위해서 부탄하게 노력해 가지고 차를 얻는 과정들까지가 망갈라에 해당이 되는 거고, 그래서 차를 타고 나니까 나는 행복한 거라, 그래서 이게 이제 망갈라의 의미가 되는 형태와 마찬가지로, 여기 칠각지 부분도 잘못 이해를 하면 깨달음을 이룬 사람들한테는 이게 이제 존재를 하는 것처럼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꼭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그 깨달음의 이르기 위해서 이런 이런 과정들을 밟아야 된다는 그런 의미로서 여러분들이 이해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뭐가 있을까?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7가지 나열되어 있죠.
[사찌, 염각지]
첫 번째가 뭡니까? 염각지, 사띠삼보장가라고.
정진,
그 다음에 모욕 희각지,
그 다음은요 경안각지, 정각지,
사각지, 이렇게 7가지입니다.
아까 강을 건널 때 7 징검다리가 되는데 뛰어넘어 가지고 갈 수 있을까요?
키 큰 사람들이나 아니면 전부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가능하겠지만 수행에서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첫 번째 각지가 오랜 동안에서 어느 정도 연골고 나서 두 번째 각지가 나타나게 되는 것은 첫 번째와 각자 두 번째 각지가 같이 작용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읽어져서 연결해지고 나야 세 번째 각지가 일어나게 그런 행태들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걸 보통 알기 쉽게 로켓이 많이 비유를 합니다.
이렇게 추진체 1단 2단 3단이죠.
가기 위해서는 일단이 떨어져 나가야 그 다음에 이단이 를 분리하기 위해서 준비가 되고 그 다음 미당이 떨어지고 그 다음에 3단 4단이라는 식으로 가십니다.
그렇게 되는 거지 한번에 1단에서 2단을 뛰어넘어서 3단으로 갈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제 잘 될 경우에는 단계적으로 착착 밟아가면 참 좋은데 대부분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돼?
그냥 나는 사각지에서 항상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만 있고 싶은데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일단부터 6장까지 다 하려니까 너무 힘들거든.
항상 외부적인 자극이든 마음에서 일어나는 자극이든 그런데 반응하지 않고 항상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싶은데 그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답이 있는 사람 있어요?
답 없어요.
그럼 그거는 답이 없다고 칩시다.
그러면은 1단계하고 2단계의 차이는 1단계는 열심히 대상을 사띠하는 것들입니다.
[택법각지]
그래서 그게 어느 정도 잘 무르익고 나면은 손을 드는 것들은 들어 올린다는 것은 신체적인 현상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정신적인 현상이구나, 그래서 손을 들 때 신체적인 현상과 정신 현상이 같은게 아니구나, 분리되어 있구나 하고 이제 아는 상태가 되면 그 2단계는 어느 정도 들어선 겁니다.
그러면 사띠가 무르익어 가지고 영글어야만 2단계가 탁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그게 안 될 때는 어떻게 할까?
2단계로 바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돼요?
막 생각을 분리해서 이거는 손을 드는 거는 신체적인 현상이지 그렇지 든다고 하는 거는 정신이 이해는 하죠.
이해는 하는데 실제 그게 수행에서 구분이 되지는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예를 보면은 다른 예보다는 이와 같이 잘 안 될 때 이걸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사띠를 함부로 해도 잘 안 된단 말이야.
자연스럽게 자동적으로 돼야 2단계로 넘어가지는데 그거는 안 되는데 간혹 수행하다가 2단계가 될 때가 있습니다.
사띠가 안 무르익었는데도 어 이게 구분이 되진다고 배를 보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데 불렀는데 어 정신적인 현상과 육체적인 현상을 구분이 되진다, 그리고 배가 불러오는
걸 관찰하고 있었는데 뭔 소리가 들리는데 전혀 마음이 거기에 안 가고 여기에만 있고, 그건 어렴풋이 그냥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있다 하고 있다 그것도 택법 각지에 해당에 들어갑니다.
가끔씩 이제 그렇게 될 때들이 있습니다.
[정진각지]
아직 사띠가 완전하지도 않는데 근데 그런 것이 과연 일곱 단계 중에서 어느 까지가 가능할까, 또는 수행이 잘 안 되는데 나는 반드시 깨달음의 이룰 거야, 하면서 정진각지를 강하게 낸단 말이야.
그래서 절대 내가 이 1시간 동안 다리를 풀지 않고 꼼짝 않고 움직이지 않고 노력하겠다 하는 마음을 강하게 근데 실제로는 몸은 있는데, 마음은 천방지축이고 사띠고 어디 갔는지 뭐 모르게 되고 이렇게 되는데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노력이 없다고는 말을 못 하거든 노력은 하고 있는 그런 그것도 노력의 일종에 들어갑니다.
과연 그 노력하는 마음이 처음에 했던 마음하고 그 다음에 지속되는 마음하고 마지막에 그것을 받쳐줄 마음이 계속적으로 남아 있어 가지고 처음 마음이 100이면 중간에도 배기온 끝날 때도 100이 되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될지 몰라도 어쨌든 노력은 하고 있단 말이야.
근데 노래까지는 어느 정도 된다고 칩시다.
그래서 택법하고 노력까지는 어느 정도는 사띠가 잘 되든 안 되든 간에 용을 써 가지고는 병행할 수는 있습니다.
꼭 그거는 뭐냐면 테라바다 불교에서는 수행을 가르칠 때 처음부터 수행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계율에 대한 걸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설명을 하고 나서 계율을 잘 지키는 걸 보고 잘 지키는 것이 좀 무르익어 갔을 때 그때 이제 수행이 돼서 설명을 해줍니다.
근데 현대같이 바쁜 세상에 그거 다 무르익기를 기다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냥 바로 수행을 바로 시킵니다.
하다보니까 어기기도 계율을 어기기도 하고 그러거든, 그런데도 수행이 무르익은 반드시 지켜야 되는 것이고 지켜 나가게 겁니다.
어찌 보면 두 가지를 같이 병행하게 되는 거죠.
개정을 병행해서 어느 정도는 하게끔 됩니다.
그런데 해까지 병행을 할 수 있을까 안 되죠.
[희각지, 경안각지, 정각지, 사각지]
해는 어떤가요?
자기가 경험한 것으로 해서 무르익었을 때 탁 튀어 올라오는게 헤이 부분에 마찬가지로 칠각지 부분에서도 증진 각지는 뭐 어쨌든 뭐 사띠 하던 택배 각지든 이걸 버무려서 할 수는 억지로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뒤에부터는 전부 경험으로 인해서 툭툭 튀어져 나오는 것들이 기쁨이라든지 아니면 뭐 평안함이라든지 아니면 산에 빠진다든지 이건 자기가 체험만 해보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거래 그래서 대부분은 보면 기쁨까지는 어느 정도는 가능해.
근데 그 뒤부터는 영 다른 차원이 돼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반드시 명심을 해야 되는 것은 수행할 때 어느 정도 수행을 해 나가면서 뭐 진짜 수행이 잘 됐나 간다 하고 기쁜 상태가 되기도 하고 하지만은 그것은 머물러버리면 수행은 다시 원상태로 퇴보돼 버립니다.
근데 그 상태를 딱 지나버리고 나면은 어디부터는 거의 대부분은 자동적으로 2단계가 끝나고 나면 그 다음 각지가 일어나지고 그 다음 각자 일어나고 나면 또 그 다음날 지고 하는 것들을 이해를 하게끔 근데 그게 이제 안 돼 나갈 때 이제 그러는 방법들인데 수행을 해보면 실제로는 첫 번째 각지에서 두 번째 각지 넘어갔을 때 억지로 두 번째 각질을 하고 문을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첫 번째가 사띠가 안 되면은 오래 못 갑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이해를 하긴 하는데 자기 것이 되지 못하는 그런 어린아이들이 숟가락질을 비웠다고 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떨어뜨리는 거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참 수행한다는게 참 쉬운 것은 아닙니다.
쉬운 것은 아닌데 그래서 부단히 닦고 뭐 죽을 만큼 해야만이 겨우 이제 한 단계 뛰어넘었구나 하는 것 같다가 이해를 하게끔 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어떡하나 이 칠각지라는 것 자체가 깨달음하고는 관계없다고 그랬잖아 해탈하고는 관계없어요 이걸 다 통과를 해도 아직 내가 아란에 이르렀다 확신을 못하는 이르는 건 둘째치고 수단해야 되는 것도 확신을 못해.
그런데 이거 찧은 이걸 한단계 한 단계씩 해서 다 뛰어넘지 않으면 해탈하고는 전혀 관계 없는데 뭘 어떻게 할 거라 이걸 다 뛰어넘을 자신이 있어요?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안 한다 법문을 이렇게 하다가 등이 너무 아픈 거라 그래서 뭐 연세가 많기도 하고 하겠지만 안 한다한테이 뒤에 법문은 안 한다 네가 좀 해라 너는 좀 쉬어야 되겠다 하면서 욕구를 대고 이렇게 눕습니다.
그 되도록이면 그 법문 하는 걸 부처님 자신이 못하는 한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을 지켜서 그 법문은 하게끔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안 한다에게 그런 얘기를 합니다. 깨달음은 7가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7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그 요소들을 좀 읊어 달라 하고 얘기합니다.
처음부터 사띠삼보장과부터 쭉 읊어줍니다.
근데 없는 중간에 부처님이 중지를 시킵니다.
어디서 중지를 시켰을까?
경전이 모임들 아닌가 삐띠 기쁨이 일어나는 데서 탁 부처님이 존재를 칠각지라고 하는 것은 이걸 깨달음에 이르신 분들은 이걸 뛰어넘었지만 이미 뛰어넘었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되돌려 가지고 요런 상태 요런 상태에 들어갔다가 끄집어낼 수가 있는 거야 그래서 사띠면 내가 사띠 대상에 원인 결과에 대해서 알아차림하고 이런 식으로 부처님이 안 한다고 얘기할 때 밟아 나갑니다.
그러다가 기쁜 부분에 오니까 마음이 너무 기쁜 거라 그래서 기쁜 부분에서 탁 멈추게 하고는 부처님이 일어나십니다.
그러면서 다시 법문을 하시 게 됩니다.
그래서 그 칠각질을 하면 얻어지는 이익들이 참 많은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보통 몸의 질병들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까지는 다스려 나가진다는 겁니다.
물론 뼈가 부러진 걸 붙여주고 뭐 이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근데 어쨌든 그런 역할들을 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칠각지를 좀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다 하는 것들을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칠각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입니다.
[사띠, 염각지]
첫 번째 사띠죠. 사띠 어떻게 될까
무조건 대상에 대해서 끊임없이 알아차려 나가야 됩니다.
어떤 대상이죠? 어떤 대상이죠?
4가지 대상 신수심법입니다.
맨 첫 시간에 배웠던 겁니다.
이네 가지 대상에 대해서는 놓치면 안 돼.
지금 여러분들한테 뭐가 일어났어요 몸이 안 움직이니까 몸에 대해서 관찰할 건 없죠.
근데 호흡이 있으면 호흡은 가능하겠지.
근데 여러분들한테 여러 가지 뭐 싫은 느낌이 일어났다, 그러면은 마음에서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럼 싫어하는 마음으로 강도가 세진다, 그러면 그 강도가 세지는 것들 그대로 따라가면서 관찰해야 돼.
신수심법 중에서 어떤 것이 여러분들 관찰 대상이 될 것이냐는 것은 뭐로 가지 표현해요.
지금 현재 뭐가 나타났냐 지금 현재 뭐가 탑 일어났느냐는 그 일어난 것들이 사띠의 앉아서 법문도 안 듣고 수행하고 있을 것 같으면 일어나기 쉬운게 몸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몸 중에서 움직이는 것들이 대상이기 때문에 움직이는게 뭐가 있어요?
호흡이니까 호흡을 관찰하는 근데 호불 관찰하다가 막 망상이 일어났다 그러면 어떻게 돼요 망상에 대해서 관찰해 그럼 법에 대한 관찰입니다.
뭔가를 움직이면서 뭘 잡고 뭐 한다, 아니면 지금 같이 주님 법문을 듣고 있다, 그러면 뭐가 대상이 라고 하는 느낌입니다.
느낌이 여러분들의 관찰 대상이 배가 아니고, 또는 망상이나 생각들이 아니고, 그걸 기획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그 소리 들리는 것에 마음을 집중해서 사띠를 해야 되는 그 사태하는 것은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이 딱이 4가지입니다.
근데 문제가 뭐냐면 그것을 사띠를 하는데 어떻게 샀지 아니냐는 소리 들리는 거는 뭘 통해서 들으니까 길을 통해 들어오죠.
눈이나 코를 통해서 들어오는 건 없습니다.
소리는 눈이랑 코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귀에다 둬야 됩니다.
마음을 말하고 있는 스님한테 줄 것 같으면 어떻게 돼요?
마음이 밖을 향해 버립니다.
수행은 어떠한 경우든지 자기의 몸과 마음입니다.
밖에 있는 스님이 아닙니다.
마음을 자꾸 밖에다 두려고 할 것 같으면 자꾸 망상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얼마만큼 떨어져서 하든 그거는 관심이 없어 이게 들리는 것만 관찰을 해야 됩니다.
그 마음을 기회도 어디 귀에 두면서 들린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런데 사찌가 조금 강한 사람들은 들린다고 분명히 알아차리면 그 소리가 이해가 됩니다.
근데 집중하는 힘이나 사퇴하는 힘이 약하면 어떻게 돼요.
그 소리 들리는게 완전하게 다 들리지 않습니다.
또는 그 들리는 것에 나라고 하는 것이 딱 기입이 되면서 내 나름대로 그걸 듣게 되는 거예요.
내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석을 하게 그래서 스님이 a라고 얘기했는데도 듣는 사람들은 비나시나 d로 이해를 하게끔 되는 거예요.
그럼 bcd는 사띠 안 한 겁니까?
사기나 했긴 했는데 사띠가 연속하지 않은 거죠.
연속하지 않았으니까 자꾸 끊어지고 자기가 그 중간에 자기 생각이나 여러 가지들을 들어가게 되니까 분명하게 이해하지도 못하게 되니까 그럼 사띠가 되기 위해서 뭘 해야 돼요.
경제는 항상 보면은 사띠삼보장과 쌍으로 일어나야만이 정확하게 사띠가 이어지게끔 되는 거예요.
마음을 그렇게 먹지 않으면 안 돼.
스님 만약에 여기서 30분 법문을 한다, 그 30분 동안은 완전히 다 늦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처음부터 해가서 중간에 마지막까지 완전히 다 들으려고 마음을 먹지 않으면 이 30분이 다 안 들린다니까, 강하게 딱 마음을 내서 연속해서 이걸 전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듣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사띠는 이어지게 됩니다.
그게 이어지는게 산 빠져나와 같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산파장을 완전한 이해라고 보통 번역을 하게 되는 완전한 이에 완전한 앎이다 하고 얘기해요.
그냥 사띠만 있을 것 같으면 자꾸 끊어져 버린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대상을 알아차릴 때는 그 대상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기울여 가지고 알아차리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야지 그걸 갖다가 붙잡으려고 이렇게 하지 말고 그게 이제 사띠가 무르익기 위한
첫 번째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마치고 나서 저녁 드시러 갑니까 술 드시러 가시는 분도 있죠.
만날 법회 마치고 나면 술 잡수러 가고이는 패턴만 계속 가지면 결국은 그 펜 쪽으로만 향하게 됩니다.
근데 마치고 나서 배고프니까 밥을 먹기는 해야 되겠고 다른 사람 술 먹으니까 그 자리에는 참석을 해야 되겠고 그리 하더라도 나는 사띠를 가지고 그 자리에 있겠다 하고 마음을 먹으면 가능합니다.
그 자리에 참석을 하면서도 나는 밥 먹을 때 밥을 먹으면서 그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거고 그들에 앉아서 내가 술을 먹으면 정신이 흐리멍텅해질 것 같으니까 안에 술을 안 먹고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걸 그대로 끝까지 듣고 있고 그룹 같으면 가능합니다.
그런 상태가 된 사람들은 저녁에 밥 먹고 술 먹고 하는 자리에 참석을 해도 됩니다.
근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
사띠가 되려고 할 것 같으면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자리들은 피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걸 경전에서는 사띠가 있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사띠가 없는 사람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말아라 하고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건 적을 만들고 담을 쌓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인간관계가 어떻게 되겠어?
그리 하더라도 나는 그 자리에서 삿질을 하면서 마음을 지켜 나가라 하는 사띠 대상은 뭐라고 그랬죠. 신수심법을 했습니다.
요거 하나라도 놓치려고 생각하면 안 돼 그래서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네 종류의 사띠가 있는 곳에 칠각지가 이루어진다. 칠각지가 순차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네 종류의 신수심법이라고 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삿질을 하면은 칠각지는 저절로 일어나진다는 사념처 어떤 것 하나도 놓치지 말아라.
쉽게 말하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것이든 놓치지 않고 사띠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쉬울 것 같진 않죠.
근데 어떻게 뭐 첫 번째 단계 어느 정도 돼야 두 번째로 넘어가죠.
자연스러워지는데 이거 놓쳐버리면 안 되는데 어떻게 어려워진다는 그래서 마음을이네 가지를 갖다가 놓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사띠할 때 좀 깊이 들어가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예를 들면 걸어간다 그러면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이렇게만 알아차리려고 그러면 돼요 근데 그건 누가 모르나 왼발음이 왼발인 줄 알고 오른발이 오른발인 줄 아니고 사띠가 그렇게 얕게 해가지고 뭐 되겠어요 물론 잡념 생기는 건 조금 덜해지기도 하고 실수하는 것들은 조금 줄어들고는 하겠지 그렇게 해가지고 왼발인 줄 알고 오른발인 줄 아는 것 가지고 깨달음에 이런다 그거는 업을 하는 그거는 수행 안 한 사람들도 아는 사실이라 쉽게 얘기하면 그럼 좀 더 깊게 들어가야 왼발이면 왼발인 줄 알 것 같으면은 왼발이 처음부터 들어 올려지는 거 하고 나아가는 거 하고 내려놓는 거는 분명하게 알아야 되는 거야
오른발이 들어 올려지고 나아가고 내려놓으면 그것을 알아야 되는 거고 그러면 왼발이 들어올려질 때 오른발은 알아야 돼 몰라야 돼요
전혀 몰라야 됩니다.
왜 현재의 몸무게 돼요?
그러면은 깊게 들어가면은 오롯이 지금 현재는 발이 들어올려지는 것만 있고 나아가는 것만 있고 내려놓는 것만 있는 거라, 오른발이 어떻게 포지션을 가지고 있고 힘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걸 왜 신경 쓰는데 뒤뚱뒤뚱 안 하려고 좀 뒤뚱거리면 어때?
근데 깊이 들어가면 뒤뚱거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은 대상을 알아차릴 때는 깊게 들어가야 됩니다.
시작하고 진행되고 끝나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다 알리고 깊게 들어가지게 되는 거지, 깊게 들어가지지 않으면 사띠는 안 커집니다.
맨날 그 자리에서 왔다 갔다 그럼 나중에는 수행하는 것이 재미없어지고 싫어지게 되고 나태와 자꾸 빠져 버리게 됩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왼발 나가려고 하는데 관리는 마음이 없으면 갈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절대 발 한 발짝도 못 움직입니다.
마음이 앞서 가지고 몸이 움직여지는 것이지 몸지 혼자서 되는 법이 없습니다.
어 그러면은 마음이 가고자 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나서 가는게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또 좀 더 깊게 들어가면 가고자 할 때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나서 가고 나서 발을 들어올릴 때도 들어올 일이고 자는 마음이 있고 나서 발이 들어올리지고 발을 들어 올리는데도 중간중간에 다 끊어지면서 그 중간중간에 다 의도들이 있구나 하는 걸로 합니다.
그러면서 그 중간중간에 다 멈추는 부분이 눈에 보이십니다.
그걸 답을 하니까 너무 힘든 거라 그래서 처음에 수행을 할 때는 수행이 참 힘들다는 것들을 알아야 됩니다.
그냥 심례하고 마음먹을 같은 그런 나태하고 기울여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띠를 할 때는 깊이 있게 자꾸 들어가는 적어도 그렇게만 할 것 같으면은 사띠삼보장가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끔 되고 그러고 나서는 더욱더 계속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게 무르익어지게 됩니다.
언제까지 무르익어질까?
지금은 억지로 하고 있잖아, 사띠를.
근데 사띠가 그렇게 용 안 써도 사띠가 되어 나갈 때 그래서 사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딱 될 때까지는 그렇게 해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사띠가 자연스럽게 무르익어지는 상태가 될 때까지는 계속적으로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데 사퇴 하나만 제대로 하라는 그것만 할 것 같으면 깨달음의 그래서 여러분들도 사띠 하는 것들을 자꾸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띠가 일어나지도록 자꾸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원인 결과를 알 수가 있게 됩니다.
택법 깍지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됩니다.
내가 택배 각질을 알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나갑니다.
택 이라고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기 쉬운 건 부분이 뭐냐면 법을 선택한다는 그런 뜻이죠.
뭘 선택의 법을 담마 윗자야 단마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뭘 얘기합니까?
가르침이 있든 없든간에 그냥 법칙입니다.
자연스런 법칙, 태어났으면 죽게 되어 있는 거고 숨을 들이쉬며 쉬었으면 내쉬게 되어 있는 거고 여름이 지나고 나면 가을이 오는 거 이게 단맛입니다.
자연스러운 법칙입니다.
구글 자연스러운 법칙이기 때문에 나는 분명히 여름이 지났으니까 가을이 왔네 그건 의심이 여지가 없어 이게 택법입니다.
뭘 선택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원인 결과로서 이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것, 아까도 얘기를 했죠, 마음이 움직이려는 마음이 일어나서 몸이 움직인다는 원인 길가입니다.
근데 원인 결과를 알긴 아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원인 결과를 알긴 하는데 내 옆에 가만히 그들이 있어 주길 바랍니다.
왜 무상한 걸 싫어하거든 변하는 거 싫어한다는 행복이 왔으면 행복이 가만히 내 옆에 있어 주기를 바랍니다.
돈이 생겼으면 돈이 그냥 가만히 있어 주길 바랍니다.
근데 그런 것들은 무상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편하게 됩니다.
그래서 택법 각지라고 하는 것은 원인 결과를 아는 것도 물론 포함이 되지만 그것이 변한다고 해가지고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도 택법같이 해당이 됩니다.
쉽게 말하면 수행에서 어느 정도 무상하다는 성품들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때 택법 가치는 무르익어가는 뜻입니다.
그게 무르익지 않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나라고 하는 것을 내세우게 되고 그리고 변하지 않고 좋은 것은 내 옆에 있고 나쁜 것은 없기를 바라게 됩니다.
탭북 각지가 무르익어 있으면 그래서 어떻게 될까?
남하고 다투는 것이 많이 없어지겠죠. 거의 사라집니다.
왜 그럴까?
남하고 다투는 건 뭐 때문에 다퉈요.
걔네가 차이가 네 싫어하는 날은 마음이 일어났다든지 근데 지라는 마음이 일어난 것도 무상한 성품인 거고 걔네도 무성한 성품입니다.
그것이 영원하고 진리가 아닙니다.
근데 사람들은 걔네가 틀리기 때문에 다툽니다.
그래서 견해를 가지지 않고 완전하게 가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지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래 내가 그거는 이해하겠다 하고 받아들이면서 그걸 다시 왜 그럴까 하고 생각을 해보게 되는 틀려서 너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택법 각지가 되면은 뭐 어디 그렇게 뭐 마음을 기울여 가지고 뭐 뭘 해야 될 것도 별로 없는 거 같고 그냥 편안하게 이렇게 대상들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변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때부터 이제 수행은 약한 재미가 있어지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게 재미가 있으시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더 하려고 하는 그래서 정진으로 넘버 자연스럽게 넘어가지게 돼요
대부분 사람들이 여기서 스톱을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정진각제까지 넘어가면 용을 쓰고 이렇게 하던 아니면 자연스럽게 노력하는 마음이 있던 잘 되거든 잘 되거든 수행이 대상이 원인 결과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몸과 마음에 대해서 구분이 가능하고 적극적극 알아차려지고 즉각적 변하는 것이 보이고 집착하는 만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잘 되어 나갑니다.
그래서 무성한 성품들을 분명하게 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무상이 깨달음입니까?
아닌데도 살았던 여기서 착각을 하는 거야.
노력이 돼 나가면서 어느 정도 사람들이 내가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 하는 자신감도 생기고 그리고 나를 내세우는 것들도 없어지고 무상한 성품들도 이해를 하게끔 되고 하니까 계속 수행을 행하기는 해나는데 진척이 없어요.
늪에 빠진다고 그렇게 보통 칠각지 첫 번째 늪에 빠지는 것이 여기서 딱 빠 그 뒤부터는 수행이 진척이 없어요.
근데 본인은 본인 생각에는 수행이 엄청 잘 되는 것처럼 이해를 합니다.
잘 되고는 있죠.
분명히 구분이 가능하고 잘 되나 하고 다 사띠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근데 아까 뭐라고 그랬어요?
칠각시가 깨달음이 아니라 아닙니다.
착각을 해보면 안 됩니다.
이거는 지나가는 징검다리는 것이지 이것들이 깨달음하고이 꼬로가 되는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럼 아직 정진각시 뒤에 남아 있는게 네 개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근데 왜 여기서 계속 후우적거리고 있어요.
정진각치는 수행을 통해서 그래서 여기에 허우적거리면 대부분 스승들은 스님도 그렇게 당했습니다. 아주 혹독하게 교육을 시킵니다.
조금만한 실수도 조금만 한 것도 용납을 안 합니다.
쉽게 말하면 탁발을 가는데 이리 쭉 끌어간다 말입니다.
사띠를 하면서 내가 저쪽도 보고 알아차리면서 가고 있는데 뒤에 앞에서 뭐라 합니다.
어디를 보느냐 걸어가면서 걸어가면서 분명히 사띠를 하기도 벅찬데 왜 딴데 보느냐는 거야 나는 딴데 볼 때 분명히 사띠를 했는데 근데 그게 필요한 거라 걸어갈 때 사실은 필요 없는 거대도 사띠나 없는 것들을 하고 있는 거야.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을 안 하려고 그럽니다.
스님 가사를 이렇게 입었죠.
이게 만약에 어느 순간에 요렇게 하다가 보면 내려오는 수가 있습니다.
왜 그걸 못 알아 차리냐?
이 별거 아닙니다.
다시 또 올리면 됩니다.
근데 이게 잘 그냥 천천히 내려와요 근데 되게 뭘 합니다.
사띠가 끊어지지 않고는 있는데 왜이 사소한 것 하나도 내려오는 것들을 빠르게 알아차려 가지고 바로 잡지를 못했네요.
내려오기 전에 잡지 못했네요.
그래서 정진각지에서 수행이 자꾸 멈추는 사람들은 대상을 자꾸 알아차려지긴 하는데 삼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또는 신통력이 일어나지도 못하고 또는 노화가에 이르지도 못하는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 그러면 그거는 스승한테 가야 됩니다.
아주 따끔하게 혼나 가지고 지속적으로 옆에서 관찰을 해야만이이 상태로부터 벗어나니 수월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안 가려고 그럽니다.
스승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어느 정도 기쁨도 일어나고 행복도 일어나지고 평안하고 고요한 상태도 경험되지고 이릅니다.
근데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걸려 버리면서도 그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이제 오늘 칠각지 중에 세 가지 각질을 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사띠하라, 대상 자체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변해가는 것들을 보려고 노력을 하라, 그렇게 해야만이 택법도 일어나지고 정진 가치도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도 지속적으로 자꾸 그렇게 대상을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띠를 하면 아까 병 같은 것도 어느 정도 고치신다고 했지만 가장 좋은 이건 탐진치가 없어집니다.
탐진치 없이 그래도 평온하게 뭔가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탐진치가 일어나면 얼마나 싫고 끈적거리는지 압니까?
그냥 좋죠.
맛있는 거 있으면 맛있게 먹고 배불러 좋아 그렇게만 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그 위험성을 진짜 이거 싫은 거구나 하는 거 갖다가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게끔 자꾸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