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탑
5일 장터 한복판
과일장수가 공들여 탑을 쌓는다
귤탑 사과탑 딸기탑 토마토 참외탑
감까지 좌판 위에 싱싱한 탑을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저 탑들이 무너지는 게 그의 희망
공든 탑이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그의 삶은 윤택해지는 길
어린 아이 손잡고 지나가던 새댁이
귤탑 하나 허물자 재빨리
귤탑을 다시 쌓고
저 탑을 허물까 말까
망설이며 들여다보던 노인이 아쉬운 발길을 돌리자 조금은 실망하다가
머리 질끈 묶은 여인이 두 무더기의
사과탑을 허물자 신이 나서
밑돌처럼 괴였던 사과 한 알 덥석
덤으로 빼주며 새로 탑을 쌓는다
허물면 허물수록 노련한 솜씨로 빠르게 탑을 쌓는 아저씨의 밝은 얼굴
오늘 저 향기로운 탑들이 와르르
와르르 무너져 완판이 되고
싹쓸이가 되어 주머니는 두둑한
빈 손을 탁탁털며 신나게
집으로 돌아가길
가을의 실루엣
어디선가 문득
네가 나를 그리워 할 것같아
오래 소식 없던
네가 더 나를 그리며 낙타처럼
지친 몸으로 돌아와
억새꽃 눈부시게 흔들리는 언덕에서
기적처럼 내 이름 소리쳐 부를 것같아
고향의 노래 가만가만
허밍으로 부르며 쓸쓸함만 키우는
아! 가을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침묵을 안고 도도하게 흘러간 세월을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그 곳에 우두커니 세워 둔
하염없는 추억들만 아득하게 멀고
멀어서 텅 빈
아!
서럽고 눈물나는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