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下
5. 조주스님의 가풍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佛]이란 한 글자를 나는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묻기를 “스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십니까?” 하니 스님께서는 “부처님, 부처님!”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금시(今時)를 다했을 때 무엇이 아주 분명한 곳입니까?”
“금시(今時)를 다했을 때는 그것을 묻지 말아라.”
“무엇이 분명한 것입니까?”
“너더러 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어떻게 해야 볼 수 있습니까?”
“너무 커서 바깥이 없고, 작은 것으로 치자면 안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4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나는 죽음을 모른다.”
“그것은 스님의 입장입니다.”
“그렇지.”
“스님께서는 가르쳐 주십시오.”
“4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었으니 무얼 가지고 가르친단 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안으로는 한 물건도 없고 밖으로는 구할 것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근본으로 돌아가서 종지를 얻는다’는 것입니까?”
“너에게 대답하면 어긋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의심하는 것입니까?”
“너에게 대답하면 어긋난다.”
“출가한 사람도 속될 수가 있습니까?”
“출가는 좌주(座主:강사) 그대의 문제이니 출가하고 출가하지 않고를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상관하지 않으십니까?”
“그것이 곧 출가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승도 제자도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번뇌 없는 지혜의 성품은 본래 그 자체가 완전하다.”
또 말씀하셨다.
“이것이 스승과 제자가 없는 것이다.”
“끝을 볼 수 없는 때는 어떻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깨끗하나 맑지 않고 뒤섞였으나 흐리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맑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다.”
“그게 무엇입니까?”
“가엾은 놈!”
“무엇이 시방에 통달함입니까?”
“금강선(金剛禪)을 버려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주머니 속의 보배입니까?”
“무엇을 꺼려하느냐?”
“써도 다함이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자기 것도 무거우냐?”
또 말씀하셨다.
“쓰면 무겁고 쓰지 않으면 가볍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의 분명한 뜻입니까?”
스님께서는 침을 뱉었다.
“그 가운데 일은 어떻습니까?”
스님께서는 또 땅에다 침을 뱉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행입니까?”
“행을 떠나라.”
한 스님이 물었다.
“참으로 쉬는 곳을 스님께서는 가르쳐 주십시오.”
“가르치면 쉬지 못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물음이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평상시의 말과 어긋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사방에서 산이 조여올 때는 어찌합니까?”
“빠져나온 자취가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여기에 와서 말하지 못할 때는 어떻습니까?”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말합니까?”
“말할 수 없는 곳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이 있기만 하면 모두가 정수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데 무엇이 정수리 밖의 일입니까?”
스님께서 문원(文願)사미를 부르니 문원이 대답하자 “오늘이 며칠이냐?”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누가 비로자나불의 스승이십니까?”
“험담하지 말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니 오직 따져서 가림을 꺼릴 뿐이다’ 하였는데, 어떻게 해야 따져서 가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그래도 그것은 가리는 것입니다.”
“이 촌놈아! 어디가 가려내는 것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누가 3계(三界) 밖의 사람입니까?”
“내가 3계 안에 있는 걸 어찌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있음과 있지 않음을 아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네가 만약 다시 묻는다면 내게 일부러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