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신문 5월 16일자 8면(민족NGO섹션)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교수님들 밑에서 배구고 있을 나의 모교 서울대학 학생들이 안타깝네요.
공감하면 널리 퍼뜨려주세요.우리 역사 우리가 바로잡아야 합니다!
<보낸 원고>
강단사학이 오히려 사이비 사학?
고대사 시민강좌 청취 역사의병들
3월부터 2개월간 백제한성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 주관의 한국고대사 시민강좌’라는 강의도 벌써 9강이 끝났다. 지난 5월 4일 김병준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의 ‘군현의 측면에서 본 한사군’ 강의에 참석한 박정학 역사의병대 총참모장, 이종진 치과원장, 박태수 역사의병 등이 티타임을 가지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는데, 9강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들어본 결과, 오히려 강단사학자들이 사이비사학자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수강 중인 필자와 박태수 의병(왼쪽)
논리가 없이 억지를 쓰는 고대사학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그날 역사의병들의 이야기들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이 강좌를 시작하던 날 조인성은 ‘내가 작년 11월 젊은 사학도들에게 재야학자들의 논리에 대해 토의하는 자리를 만들어주었는데 그들의 이런 토의가 3월호 역사비평에 실렸다’고 했다. 아직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젊은이 셋이 신채호, 윤내현, 이덕일 등의 민족사학자들을 사이비사학이라고 몰아세운 내용이었다. 그때는 그냥 ‘저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것이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어서 시민강좌내용을 들어보니 근거가 빈약한 논리를 내세우는 건 오히려 강단사학자들이었다.”
“김병준이 우리나라 역사를 설명하면서 보여준 지도는 중국 역사부도의 유주 지도였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한나라의 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지도로서, 1990년대 대만유학생에게 ‘자신들이 연구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학술원장이신 이병도 박사가 연구한 것을 참조해서 그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이는 우리가 중국 동북공정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었는데, 김병준은 아무 변명도 없이 이 지도로 우리 역사를 설명하고 있으니 무언중에 동북공정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
“상명대학 석사과정의 학생을 내세워 ‘유사사학과 환단고기’를 강의할 때는 노태돈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던데, 뭔가 매우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논리적으로 매국사학을 비판한 윤내현, 김종서, 이덕일, 심백강 등은 환단고기류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사료적 근거도 없이 대중의 힘으로 밀어붙이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이들을 환빠, 사이비 사학자로 몰아놓고 나니 뭔가 뒤가 켕겼을 것이다.”
식민사학 아니라는 변명에 총력
5월 4일 김병준은 한사군이 고조선 전체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은연중 표시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했다.
“한나라의 군현은 분봉해준 제후국과 달리 황제가 직접 파견한 사람을 통해 지배한 행정조직인데, 그러기 위해 호구조사를 강력히 해왔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평양시 정백동 364호분에서 발견한 낙랑군 호구 장부인데, 그 속현 중에는 몇 백호밖에 되지 않는 현도 다수 있었다. 호구조사를 통한 강압적 지배와 수취가 토착민들의 저학과 이탈을 가져와 한나라 군현에 귀속한 사람들은 성으로 둘러싸인 몇몇 취락에 거주하는 반면 바깥 공간에는 한나라에 저항하며 편입을 거부했던 다수의 토착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 입장에서는 군현이 설치된 지역을 모두 자기 영역으로 인식했겠지만 토착민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자신들이 땅인 곳이 한나라 사람이 들어와 거점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었다.”

갬병준이 보여준 중국판 고대 우리나라 지도
그는 그러면서도 “한사군이 설치된 이후 산만적이고 후진적인 동방민족사회는 한사군의 끊임없는 자극과 영향을 입어 정치와 문화에 있어 새로운 반성과 향상에의 한 모멘트를 가지게 되었다.”(한국고대사연구, 99쪽)라고 한 이병도의 제자답게 다음과 같은 주장도 했다.
“귀속했던 토착민들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자를 습득하엿고, 이를 지초로 여러 지식과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낙랑군 호구 장부와 함께 발견된 논어가 이를 증명한다.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표현한 이두 역시 오랜 기간 동안 한자문화에 접촉하면서 생성될 수 있었다.”
한편, 그는 이런 논리에 대한 항의를 받고 자신은 동양사학자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자신은 식민사학자로 비판 받는 한국사전공의 고대사학자들과 다르다는 것과 한국사에 대해 명확한 지식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변명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그가 왜 이런 강의를 하는 자리에 섰을까?
역사의병 아카데미를 활성화하자!
첫날 노태돈은 근대사학을 분류하면서 교과서에 있는 민족사학, 경제사회사관, 실증사학외에 ‘식민주의 사학’이라는 것을 포함시켜놓고 자기들은 실증사학자지 식민주의 사학자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1차 사료 없이 호구조사 유물을 가지고 낙랑-평양설을 옹호했었는데, 그 이후 여러 명의 학자들도 자기 주제와 관계없이 이런 논리로 낙랑-평양설의 타당성을 옹호하였다.
이런 행태에 대해서는 박정학 역사의병대 총참모장의 “낙랑-평양설은 조선사대주의자들이 먼저 내놓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사용하려던 일제가 보니 그들의 주장에 증거가 될만한 사료가 없으므로 실증사학이란 말을 만들고, 가짜로 만든 당시 유물이 발견된 것처럼 조작하면서 ‘유물로 증명’하려 했다. 지금 강단사학자들의 주장이 그와 똑같으므로 방법 면에서 식민사학 추종자인 것이다.”라는 말이 매우 설득력이 있으므로 역사의병 아카데미를 활성화하여 매국사학자들이 꼼짝 못하게 만들게 되기를 기대한다.
역사의병 오병관 제공
<보도 지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