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 9-10월호(시집속의 시 읽기) 게재
전위적인 시의 의미와 한계/ 이령
-정익진의 시(스캣)/ 서평
1930년대에 이상이 「오감도」 연작을 발표했을 때 당시의 독자들은 이상을 가리켜 미쳤다고 했었다.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형태의 시,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 앞에서 스스로의 무식함을 반성한 것이 아니라 시인을 미쳤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가장 전위적이고 실험적이었던 이상의 시는 한 시기 동안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서서 우리 시의 발전에 기여하다가 이제 그러한 성격을 상실하고 고전적인 작품의 대열 속에 들어가 있다. 이처럼 시의 발전은 전위적 모험을 감행하는 여러 시인들 중 사라지는 다수가 아니라 의미있게 살아남는 소수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익진의 시집 『스캣』 속에 수록된 시들은 하나의 주제를 드릴로 파는 식으로 써나가는 수렴시와 주제를 이면에 두고 사유의 확장을 이끌어내는 확산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은 이같은 수법으로 무엇을 쟁취하려는 것일까? 고정되지 않는 즉흥성, 그 속에 내재된 자유로움, 그 자유로움이 품고 있는 무한한 창의성―이런 것들이 목표일까? 아니면 시인이 만들어낸 기억과 이미지, 언어와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독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분석적 생각에 잠기면서 나는 시집을 지배하는 침묵의 창법을 눈으로 듣기 위해『스캣』에서 자주 마주치는 말줄임표의 의미에 주목해 본다. 그러면서 언어가 의미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흩어지며 유영하는 모습을 최대한 을 만끽하려고 노력해 본다.
정익진의 시집 『스캣』에서 말줄임표는 암호인 동시에 열쇠가 되는 부호이다. 그리고 하나의 음률로써 시집 전체에 생명을 부여하는 암묵적 언어이다. 말줄임표는 마침표처럼 문장을 매듭짓는 것이 아니라 이어질 말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잠시의 침묵이며 곧 리듬이다. 또한 낯선 이미지로 이루어진 문장들 사이에 놓인 비밀의 끈이다. 다시 말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연결하며 해독을 가능케 하는 단서이다. 동시에 할 말을 잠시 멈추고 독에게 이어질 행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겸손함이자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들키지 않으려는 음흉함이다.
발생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시는 태초에 음악과 쌍둥이였다. 발생 초기에 노래의 측면, 유희적 측면이 시의 주요한 본질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20세기의 현대시가, 특히 한국의 현대시가 리듬을 무시하고 이미지를 중시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시는 노래의 측면과 유희적 측면을 대부분 상실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정익진이 자신의 시를 두고 “정체불명의 소리이면 더욱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현재의 우리시에 대한 반성적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기이하고 유머러스한 그의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과 유쾌함 역시 우리시에 대한 반성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말해 나는 정익진의 시가 휼륭한 시라는 논리적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상의 전위적 시들은 시대의 핵심을 포착하는 뛰어남과 함께 부정적 측면으로 장난기 어린 유희성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정익진의 시는 음악성 유희성의 측면에서는 뛰어나지만 시대의 핵심을 포착하는 측면에서는 무엇이 있는지 불확실하다. 조재룡은 정익진의 시가 확정된 사실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자유롭게 작위적인 표현을 만들어냄으로써 이면에 감춰진 무의식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읽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시적 마력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 인간의 본질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어떤 사유를 보여준다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모든 뛰어난 전위적 실험의 이면에는 이 세상의 복잡함에 대응하는 집요하고 고통스런 성찰이 숨어 있었다. 세상의 표면적 현상을 스케치하듯 모사한 전위적 시들은 늘 일시적 주목으로 끝나는 길을 걸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정익진의 시를 흥미있게 읽으면서 그의 시에서 유희적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시적 형식 속에서 쉽게 발견하지만 세상의 복잡함에 대한 힘든 성찰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시를 읽는 내 능력이 아직 부족해서일 것이다. 그려면서도 그것이 나의 부족함인지 시인의 부족함이지를 확신하자면 더 많은 기까지는 불면의 밤이 더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시집속의 시 읽기
-스캣/ 정익진
비비딥 디들라, 비비딥디들라
히비히비 지비즈, 비비딥디들라비비딥디들라…
응,……… 잘 지냈어? 그러니까 어떠한 바탕색도 어떤 맨드라미도
어떠한 사다리도 없이 그저 푸르랑푸르랑 날아보겠다는 말이야
그래, 맞아,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관능적이고
여유롭다는 거지, 좀 더 들어봐……
(편안하게) 메를르로퐁 티티새야 티티카카호수야 퐁즈는 주스마시고
피아노, 피아노시모 그래서 말랐다아르메르치, 벨리사리오는 불사르지오
방금 아파트 관리기사가 초인종을 고치고 갔어
수리비 이만 오천 원이래 삼 만원 줬어
… 벽에 기대선 기타가 있고
왼쪽 창의 커튼 사이로 길 건너편 종합병원이 보여
빌라 사보아였을까, 성가족 성당의 일부일까
침묵으로 세워진 오백층짜리 건물이었을까, 그 속을 상상하게 돼
티브이에서 나는 말소리, 타이어의 마찰음이 들려오고
화분을 덮고 있던 머리카락이, 비비딥
안개속의 밤들이 목구멍 속으로, 디들라
귓구멍 속으로 막 사라지려는 뱀의 꼬리가, 와르와르 루파빠
뭐, 이런 식이야
알레그로 마 논 탄토 (1분 동안 숨 쉬지 않고)
어쩌다 제 머리에 자라던 뱀의 길이를 줄자로 재다 졸도해 버린 그 남자 귀가 간지러워 다시 깨어나 보니 제 머리의 뱀들이 취리리취리리 그 남자를 주시하다 방향을 틀어 동네 놀이터로 내려가니 나도 뒤를 따라 놀이터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는데 왜 내가 뱀의 꼬리를 잡고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려있는지요
지쳐 쓰러져 있는 너를 일으켜 세워
꼭 끌어안고 춤 추려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자꾸만 흘러내리지
골반과 골반이 함께 튀는군, 튄다, 튀어, 튀튜튀튜 튀밥밥……
날 더 튀겨 줘, 날 먹어 줘, 날, 날로 먹어,
한 번만 더 오우 오우달링 슈슈룹디들라
또 누군가의…
미쳐 가는…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비명,
늙은 아랍여인들의 혓바닥 굴리는 소리, 와할랴하르르랴랴랴랼
태양 밖으로 시커먼 것이 툭, 떨어졌을 때
까닭 없이 찾아온 슬픔, 북받쳐 오르는 울음……
이젠 각자 다른 이름을 부르며 잠에서 깨어나고
앞서 간 친구들의 햇살도 기억나지 않아요
달빛이 벽속으로 스며들자
벽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들
부엉이보다 반딧불이를…
쌀 한 톨이…튀튜튀튜 디를라
비누 대신에 아이스크림으로…슈바뚜뚜 슈바튜
그런 것들,
지도에 그려진 불안, 광기, 공포, 그리고
지도에서 들려오는 폭발음……
(불편하게) 마다가스카르완다다앙골골라케냐냐짐바브브웨
개들의 입이 피로 젖고
검은 새들이 떠돈다, 집과 나무가 타는
소리가 폐허에 가득하다
한바탕 정적이 지나가고
정신분열과 핵분열동시다발로터터터져버려
체체르노빌라헤르체체코비나비나세르비비
날개 속에 뿔이 자라고
계단 밖에서도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솨솨분데스리가프리메라가레이디가가
(마음 편히) 꼬리파란뱀발을헛디디고파파파롤쉬쉬르쉬르소쉬르
랑그파파파랑파파랑빠빠롤링끊임없이미끄러지고,
바람 부는 쪽으로 해바라기 씨를 담아
수천 통의 편지를 부쳤지만 되돌아오지 않는 목소리,
겨드랑이와 등 뒤로 돋아난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적요의 바다 위를 유영할지니
해변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태양과 달
바람의 시체들이여
쉬쉬쉬괜찮아쉬쉬 브와브와브와예 오키프 깊이
더 깊이 안아줘, 사랑해……사랑해 푸르스름한 푸르디시린
그리하여 피의 그림자란 것이
저 산정 위에 펼쳐진 불그스레붉디 푸른노을이었음을…
아프라 바툴라 에밍폿
프리푸르샤 르파랑 부블라푸부와 에클라뷔아……
* 스캣(Scat): 뜻이 없는 음절에 붙인 선율을 열정적으로 부르는 재즈의 즉흥 가창법, 의성어적인 주법을 자주 사용하고 즉흥적 성격이 강하다. 목소리를 활용하여 악기와 맞먹는 소리를 낼 수 있다.
첫댓글 시인들의 머릿 속은 복잡도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