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호 계간평- 정재훈 평론가

[강현미]

시현실 계간평

시가 새긴 낯선 무늬,

그렇게 시가 품은 옅은 숨결

정재훈(문학평론가)

시는 그림처럼. 가까이 다가설 때 오히려

그댈 사로잡는 게 있고 어떤 건 멀리 떨어질 때.

어둠을 좋아하는 게 있고, 대낮을 찾는 것도 있어

비평가의 날카로운 안목이 두렵지 않습니다.

—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시’란, 시인의 감각에 의해 채굴되는 짤막한 언어들의 합이다. 흔히 ‘날것의 언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시인에 의해 채굴된 언어들은 세상으로부터 가공되기 이전 상태의 원석(原石)에 가깝다. 그것들은 나름의 시간과 과정을 거침으로써 마침내 한 편의 시로 다듬어진다. 그리고 이 의미적 날것의 여백에서 비롯된 ‘틈’은 독자인 우리의 감상과 비평의 과정을 거치면서 메워진다. 이 메움의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시를 마주하고 읽어나가는 매순간을 가리킨다. 그런데 시라는 것이 파편과도 같은 언어들의 합이기도 하지만, 감각의 부분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해석과 분석의 방식으로는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는 부분, 즉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쉽게 메워질 수 없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시의 ‘여백’ 앞에 마주한 우리의 감흥과 여운이 그러하듯이, ‘읽기’로도 여전히 메워지지 않은 ‘미완료된 지점’이 있어야만 시는 다시, 온전히 ‘시’로서 숨쉴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에 의해 자신이 읽힘으로써 무언가로 메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바로 시가 지닌 개방성과 보편성이라 하겠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읽기’를 통한 해석과 분석을 끊임없이 유예시키고, 작품 내부로부터 새로운 의미들이 샘솟는 미지의 영역 또한 ‘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지닌 이러한 미지의 가능성은 우리가 해석과 분석을 시도하더라도 끝내 정복할 수 없는 지점이며, 독자인 우리로부터 ‘여전히 알 수 없음’이라는 것으로서 계속해서 벗어나려는 시의 야생적 본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본다면 감상이든, 혹은 비평이든 간에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시’의 본성은 해석과 분석으로써 항구적으로 고정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테면 ‘시’를 완전히 이해했다든가, 아니면 분석했다는 식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본래 시가 관습으로 인해 견고하게 굳어진 인식에 균열을 가한다고 본다면, 시의 공동(空洞)은 우리가 메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앞에 도래한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된다. 함부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은 기존의 익숙한 풍경과는 전혀 다른 미지의 사건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이처럼 전혀 새로운 인식과 감각을 요구하는 시의 공동이 한없이 어둡고 낯설며,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시인’이라는 이름은 그 낯선 질문들, 미지의 사건 속으로 몸소 뛰어든 자들만이 획득할 수 있는 이름인 것이다. 하지만 이 공동의 깊은 어둠은 무엇도 보장하지 않는다. 뛰어든 자를 위해 마련된 답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렇기에 시인의 손이 건질 수 있는 것은 귀한 광물 같은 게 아니라, 이름 모를 낯선 모양의 원석뿐일 수도 있다.

  끝나지 않는 두통 때문에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울었다. 서로 알지 못했고 서로에게서 멀리 비껴나 있었는데. 그는 내게 태어난 이유를 물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런 질문은 너무나 신비롭다고 생각했지. 너무나 끔찍하다고 생각했지. 그는 가끔 길거리에 주저앉기도 한다. 나는 그와 나란히 길에 있지만 우리는 다른 곳을 보는 때가 많다. 너는 돌에 집착하고 있다고, 광부는 한때 생존했던 유기체들의 과거 유물을 지상으로 옮겨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내게 적어주었다. 요약하자면, 지적인 헌신이야. 이런 것은 음악으로 옮겨 적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두통을 옮겨 앓느라 음악이 흘러들 새가 없구나. 그는 내게 두통과 상관없는 처방전을 내려주고 음악이 없는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행성이 너무 빠르게 돌고 있어서 자꾸만 충돌한다고,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태어나 이동 중이라고, 귀가 너무 크게 열려 있어서 모든 소리가 폭발한다고, 그는 내게는 들리지 않는 음악을 흘려보내고 간판의 불을 끄고 집 안의 깊은 내부로 들어갔다. 버려진 숲처럼 사방에 푸른 돌이 깨져 있었다. 나는 근원이 깨져 있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 이영주, ｢시인의 점집｣, 󰡔문학선󰡕 2019 여름호

  위 시에서 “우리”들 앞에 놓인 원석은 마치 “버려진 숲처럼” 깨진 “푸른 돌”의 기이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들리지 않는 음악”의 가시적 잔여물이라 할 수 있는 원석으로의 ‘시’는 ‘우리’들 앞 “사방에” 펼쳐진 ‘깨진 돌’의 형태로 “근원이 깨져 있는” 존재를 투영하며, 시인은 마치 “광부”처럼 “한때 생존했던 유기체들의 과거 유물을 지상으로 옮겨”오듯이 우리가 아직 모르는 미지의 공간(“깊은 내부”)으로 홀로 들어간다. 하지만 시는 실제 유용한 다른 원석들과는 그 성분 자체가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효용성이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타 “돌”들과는 다르게 낯선 ‘푸른’ 빛을 띠고 있기 때문에 지금껏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라는 독특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른바 세계의 낯선 지형을 그리고자 하는 “지적인 헌신”에 가까운 시인의 글쓰기는 원석으로의 ‘시’로써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존재와, 새로운 의미를 지닌 무언가의 도래를 암시한다.

  그럼 시의 서두에서부터 제기된 “끝나지 않는 두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막연하게 또는 그저 흔하다는 이유로 단순히 치부할 수 있는 ‘통증’이겠지만, 그것을 앓고 있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방황하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게다가 그 원인조차 진단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단순한 “처방전”으로는 해결하기조차 쉽지 않다. 위 시의 제목을 통해 유추한다면, 이 기이한 발병(發病)은 ‘낯선 감각’과 ‘익숙한 세계’의 경계 어딘가(‘점집’)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병의 전염력은 상당히 강력한 것이어서 시인(“그”)만이 아니라, 독자(“나”)에게까지도 옮겨진 상황이다. 정확한 경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같은 증상으로 통증을 느끼는 ‘우리’ 사이에 놓였던 ‘낯섦’과 ‘익숙함’이라는 경계가 어느새 점차 흐려지고, 그렇게 ‘나’와 ‘너’ 사이에는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음악”으로 가득 채워진다.

  ‘우리’에게 통증으로 다가온,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런 질문”이었을 “태어난 이유”에는 수많은 여백과 틈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가운데 어느 한 여백을 골라서 조금 메워보려고 시도한다면, 그 질문을 좀 더 구체화시킨다면 ‘우리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것으로 바꿔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근원적 질문 앞에서 우리의 익숙한 것들 사이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매끄럽게 정답을 제시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러한 무경계성은 ‘시’가 우리를 새로운 지점으로 이끄는 출발점이 된다. 그렇게 ‘음악’을 통해 희미하게 가로지르는 ‘푸른 빛’을 목격하게 된다면(들리지는 않지만, 푸른빛으로 가시화된 음악의 현현이 ‘시’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시의 의미를 다시 새롭게 마주하는 순간일 것이며, 그때 비로소 시의 파장이 우리에게 당도하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로써 안온한 풍경의 일부는 그 파장에 의해 균열이 생긴다.

    모자가정이 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수급비가 끊기자

국밥 한 그릇 사먹을 돈이 없었다

아홉 살 아이는 식탐이 많았다

행복포차식당에서 두루치기로 일을 하고

눈만 붙였다가

등만 붙였다가

엉덩이만 붙였다가, 부업을 했다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을 땐

국밥 먹고 싶다는 말이 나올까봐

야단을 쳤다

반쪽짜리 해를 보며 침을 삼키던 아이는

일찍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찢어진 날들을 붙이면 어떤 계절이 될까

내가 있는 곳은

멀리서 보면 그림이 된다고 했지만

인형 눈알을 붙이며 가까이 보았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희부옇게 보이는 내일,

아이의 슬픔이 가려지고

밀린 눈알 너머

조각조각, 조각조각

깍두기 먹는 소리가 들렸다

― 박은영, ｢모자이크｣, 󰡔포지션󰡕 2019 여름호

  위 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아도 지나쳤을, 세계의 어두운 여백, 즉 이름 모를 모자(母子)의 고단한 삶이라는 작은 균열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모자이크 처리’(초점을 흐리게 하여 피사체를 가리는 방식)로 익명화된 채로 가려진 ‘모자’의 흐릿한 삶을 압축적으로 응축함으로써 오히려 또렷하게 그려낸다. ‘모자’의 일과는 “초점이 맞지 않아 희부옇게 보이는”, 불투명하고 불안한 과정들의 연속이다. “눈만 붙였다가 / 등만 붙였다가 / 엉덩이만 붙였다가” 다시 부랴부랴 정신을 차려 “인형 눈알을 붙이며” 살아가지만, 이들이 맞이할, 마치 촉박한 납품기일과도 같은 “내일”은 번뜩이는 ‘눈알’을 한 채로 무섭게 서 있다. ‘붙이는 행위’만 반복되는 지극히 단순한 삶의 방식은 그녀와 아들이 꼭 붙들고 있어야 하는 생존 법칙이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법칙을 준수한들, 수북하게 쌓인 “밀린 눈알 너머”에는 조금도 메워지지 않는 허기와 “침묵”의 시간이 고스란히 그들 앞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반면에, 가까이 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면 그림이 된다고” 누군가가 말했다면, 그건 아마도 ‘모자’보다 더 높은 곳에서 화려한 ‘야경’을 내려다보며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었을 테다. 원시(遠視)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누군가의 삶은, 가까이에서 인형의 눈알을 붙여야 하는 근시(近視)적인 삶과 결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그곳은 생존의 ‘눈알’이 바라보는 것보다 더 풍족한 화소로 채워져 있으며, 무거운 ‘침묵’보다는 가벼운 ‘탄성’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반면, 시에 등장한 이들 ‘모자’에게 ‘여유로운 조망’의 혜택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허락되지 않았다. 근시적 삶은 지극히 제한된 풍경, 찢긴 것들이 전부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모아 얼기설기 붙이면 생기게 되는 여백과 틈은 원시로는 절대 보지 못하는 어둠의 굴곡을 형성한다. 그 여백과 틈으로 그려진 풍경은 우리가 알고 있던 ‘계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어떤 계절”이다.

  여백과 틈의 또 다른 가시적 이미지는 바로 ‘입(口)’이다. 이것은 억압된 세계를 향한 감정의 분출구이며, 원초적인 숨구멍이다. ‘배고픔’이라는 욕망에 대해 가장 솔직한 기관이자, 생존에 얽힌 문제에 가장 취약하기도 한 입(口)은 익명의 존재가 내지르는 비명이 드나드는 유일한 관문이며, 안온한 세계의 화려한 야경에 감춰진 깊은 어둠을 머금은 ‘공동’이다. 모자이크 처리가 된 채로 가려진 이들 ‘모자’의 피폐한 삶을 가로지르는 또렷했던 소리(“깍두기 먹는 소리”), 문자로 도저히 형용할 수 없어서 “조각조각”이라고만 헐겁게 대체된 ‘문자 너머의’ 그 소리는 시라는 ‘입’이 있기에 외부로 드러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채굴된 원석으로의 ‘소리’는 피폐한 삶의 일상을 “침묵”으로만 견디다가 ‘문자가 아닌 말’, 즉 ‘문자를 지양하는 울음’으로써 모습을 드러낸 이들의 유일한 음악이자, 시이다. 이로써 시의 독자인 우리는 한때 익숙하게만 보였던 그들이 토해낸 낯선 소리들을 기어코 듣게 될 수밖에 없어진다.

픔

김은지

12월 마지막 주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12월 마지막 주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러나

A형 독감은 매우 아파다고 하고

큰 병원에 추적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고

고장 난 문을 고치는 일은 급하니까

아픔 슬픔 배고픔 서글픔

픔으로 끝나는 단어는 왜 다 아픈 것일까

이 계절 내내

픔으로 끝나는 안 아픈 단어를 찾는 중

그렇지만

나이 한 살 더 먹고

1월에 만나는 것도 괜찮다

새해 복 우선 받으세요

구정에 마저 드릴게요

그때까지 서로 감기 조심합시다

보고픔

12월 마지막 주에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겨우 찾은 단어를

보낸다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하면서

｢픔｣이라는 내 시를 읽은

손유미 시인이

늘픔이라는 단어를 찾아 주었다

(순우리말) 앞으로 좋게 발전할 가능성

많은 곳에서 상호로 사용하고 있었다

언론고시학원

약사회

휴대폰 가게

세무회계 컨설팅

아파트청소

배드민턴용품점

세탁소

정육점

한지공예

어린이집

테이크아웃 커피

미용실

건축 토목

유람선

복지시설

버섯농원

공연기획

폐수처리업

시를 고쳐 보려고 고민하다가

새 시를 쓰기로 했다

선물 받은 단어를

타일처럼 벽에 붙인다

그나저나 저분들은 이 단어를 어떻게 아시는 거야

내가 다가가는 어떤 세계에선

모두가 시를 좋아해

― 김은지, ｢늘픔｣, 󰡔시인동네󰡕 6월호

  위 시는 독특하게도 개별적인 ‘시’(｢픔｣)와 ‘시’(｢늘픔｣)가 서로 하나의 작품으로 합쳐진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런데 더 특이한 것은 작품을 기준으로 시인의 내면과 독자의 목소리가 함께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시인과 독자의 목소리가 작품 내에 직접적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시인’이라 호칭되었지만, 시의 독자였을 누군가가(“손유미 시인”) 시인이 발표했었던 작품(｢픔｣)을 읽었고, “늘픔”이라는 단어를 발화한다. 이는 시가 발설한 소리(“보냈다”)에 대한 독자로서의 응답이라 볼 수 있으며, 이로써 시에 또 다른 여백과 틈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앞으로 좋게 발전할 가능성”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늘픔’이라는 단어가 다음 시에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시인이 “시를 고쳐 보려고 고민하다가 / 새 시를 쓰기로 했다”는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수많은 “단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를 쓰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시인이 진입하는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이 시간은 시 바깥에 자리 잡은 “저분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시간대이다. 게다가 동일한 의미(“가능성”)라 하더라도 시에 쓰이는 방식과 일상에서 쓰는 것은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감각을 지닌 자로서 시인은 일상 속에서 통용되어 오던 단어들의 소리 사이사이에, 혹은 그 단어 자체에 깃든 여백과 틈을 바라본다. 하지만 일상에서 단어들은 단순한 “상호”로만 전시되기 때문에, ‘아픔’과도 같은 것을 느낄 틈이 자리할 수 없다. 먼저 썼던 ｢픔｣에서 시인은 흔한 단어들인 “아픔 슬픔 배고픔 서글픔”을 통해 누군가의 ‘아픈 삶’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써지지 않는 여백들이기에, 시인은 다시 새롭게 시를 써야만 하는 ‘낯섦’에 재차 진입할 수밖에 없다. 이 낯섦의 영역이 시인에게는 바로 “내가 다가가는 어떤 세계”의 일부분인 것이다.

  그런데 위 시를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라 볼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김은지 시인의 ｢늘픔｣이 우리가 생각하는 ‘완성도’라는 어떤 고정된 기준선과는 상당히 먼 거리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개별적인 각각의 시가 하나의 작품으로 합쳐져 있다는 구성으로만 보더라도, 이 각각의 시가 견고한 부속처럼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픔｣과 ｢늘픔｣의 두 결합 사이에는 여백과 틈이라는 일종의 불완전성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고민’이라는 미지의 시간대로 진입하여 “보고픔”이라는 원석의 시어를 “겨우” 찾았었지만, 시인은 뭔가가 완성되지 않았거나, 온전히 전달되지 못해서 “어색하다고”만 생각했었다. ‘이전의 시’와 ‘새로 써야 하는 시(아직 오지 않은 시)’ 사이에 세워진 시인만의 일시적인 “벽”은 외부로부터 “선물 받은 단어”들로 수도 없이 그려질 테지만, 시인을 비롯한 우리는 그 벽의 그림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되어갈 것인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시가 해석과 분석의 날카로운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 자체가 지닌 다양한 의미 분화성 때문일 것이다. 계간평을 통해 다룬 세 시인들의 각각의 작품은 시가 자리 잡고 있는 미지의 영역들을 가리키고 있다. 어떠한 확정된 의미로도 고정될 수 없는 시의 목소리는 우리의 해석과 분석을 유예하게 함으로써 언제든 다시 태어난다. 이곳의 일상과 세계에서 효용의 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들, 이른바 누군가는 귀기울이지 않았던 존재적 질문과 그 비명 앞에서 시인은 여전히 어둠과 고독의 시간을 홀로 감내하는 중일 것이다. 그렇게 시인에 의해 건져진 원석과도 같은 시는 우리 앞에서 희미하고도 낯선 빛을 발산한다. 그 거친 표면의 원석으로부터 나온 시적인 ‘힘’은 우리에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쉽게 해석할 수 없는 무늬이자, 차가운 분석을 허락지 않는 미지의 온기를 지닌 채, 그것은 우리의 견고한 일상 속 깊은 지층 어딘가에서 지금도 희미하게 숨쉬고 있을 것이다.

정재훈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 광운대학교, 연성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