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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사람은 바로 만덕향 민정조리 오만금이다. 오만금은 민자의 남편인데 만덕향에서 소문난 술주정뱅이다. 그래서 스물세 살 꽃나이에 오만금이한테 시집 온 민자는 옹근 20년이나 주정뱅이 남편 때문에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했고 속이란 속은 다 썩었다.
소학교에서 선생 노릇하는 민자는 친정아버지가 주정뱅이였기에 처녀 때부터 술 잘 마시는 총각이라 하면 왼눈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향 수리점에 출근하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뉘 집 돼지굴 옆에 있는 두엄무지에서 북데기를 덮어쓰고 쿨쿨 자는 걸 방금 제대하고 돌아와 향 민정조리로 된 오만금이 집에까지 업어왔던 것이다. 민자는 오만금이 그저 고마웠을 뿐 자기 짝으로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 총각은 술이 꽤나 찹찹하다는 소문이 민자의 귀에까지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그때부터 아버지는 퇴근하고 집에만 오면 민자가 들어라 하고 민정조리 자랑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마음 고운 사람 드물어, 법 없어도 살 사람이거든.”
결혼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오만금은 월급만 나오면 민자 아버지한테 술을 사먹였던 것이다.
백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고 민정조리 사람 좋다는 소릴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으로 너무 들어 언제부턴가 민자는 그런 말을 못 듣는 날엔 마치도 무엇을 잃어버린 것처럼 오히려 서운해났다. 그렇게 둘은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 잔칫날부터 일이 생기고 말았다. 신랑인 오만금이 친척, 친구, 동료, 전우하며 사람들이 권하는 술은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셔 사람들이 들어다 신혼방에 메쳐놓았을 때는 아예 축 늘어진 쌀 마대가 되어버렸다. 그런 쌀 마대를 옆에 두고 누워 잘려니 민자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뜬 눈으로 밤을 새다가 새벽녘에야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두 다리가 뜨끈뜨끈 해났다. 이게 웬일이냐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보니 아니 글쎄 술에 취한 오만금이 좔좔 오줌을 싸는 판이라 첫날이불이 둥둥 뜰 지경으로 구들은 한강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친구들은 잔치가 끝나자마자 민자를 붙잡고 “첫날밤이 어떻던? 심장이 떨렸지?!” 하고 물었다. 그 소리에 민자는 “야, 야, 심장이 떨릴라구, 난 머리가 떨리더라, 첫날밤에 난 말이야, 물에 빠져 죽는 줄 알았어!”라고 했다.
그때부터 오만금이는 주정뱅이 장기를 손색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번은 오만금이 밖에서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집으로 왔는데 담배를 피우자고 보니 라이터가 없었다. 그래서 주방에 들어가 담배를 붙이려고 가스불을 켜다가 그만 머리를 강굴강굴 파마머리 만들었고 한쪽 눈썹마저 반들반들 밀어버렸다. 그랬어도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지 못하자 이번엔 전기다리미에다 담뱃불을 붙이려고 서둘다가 민자가 이튿날 다려 입고 출근하려던 치마에 다리미가 생긴 대로 도장을 찍어놓았다.
“이그- 저거 그저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었으면……” 민자는 옆구리에 소리 안 나는 총이 없는 게 원이었다.
그런데 주정뱅이 오만금이한테 그런 일쯤은 새발에 피였다.
언젠가 오만금이는 범골마을에 하향을 가게 되었는데 저녁엔 촌 양돈장을 지키는 허영감하고 같이 자게 되었다. 허영감은 큰 대야에 더운물을 떠 놓고 발을 푹 불린 다음 발가락 사이의 때를 우벼내고 발바닥의 굳은살을 칼로 긁어냈다. 그래서 대야의 물은 쌀뜨물보다도 더 부옇게 되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머리맡에 놓았던 대야의 발 씻은 물이 온데간데없어졌다. 술을 많이 마셔 목이 말랐던 오만금이가 밤중에 일어나 그 물을 다 퍼마셨던 것이다.
또 언젠가 오만금이는 대낮에 맥주를 많이 마시고 오줌이 마려워 바지춤을 움켜쥐고 밖에 나와 화장실을 찾느라고 어성거렸다. 그러다가 마을 유치원으로 가는 길옆에 자동차 한대가 세워져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오만금이는 기신기신 자동차 곁으로 다가가 눈을 지그시 감고 자동차바퀴에 대고 오줌을 누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오줌을 다 눈 것 같아 눈을 뜨고 보니 자동차는 온데간데없고 숱한 조무래기들이 모여들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어느 겨울날 아침이었다. 민자가 학교 교연실에 들어서는데 남편과 같이 군대 갔던 전우의 아내가 교연실로 왔다.
“민정조리 어디에 있어요? 이 외투 민정조리 건데……” 전우의 아내는 들고 온 외투를 민자 앞에 훌 내던졌다.
“그 사람 어제 밤 향에서 당직을 섰는데요……”
“아니 글쎄, 어제 저녁 민정조리 우리 집에서 술 마시고는 자기 외투는 내던지고 내 옷을 입고 갔다니까, 덩치 큰 양반이 그 작은 옷을 어떻게 껴입고 갔는지…… 겨드랑이랑 다 따졌을 거야……”
숱한 교원들이 다 있는 교연실이라 민자는 그날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머리를 틀어박고 싶었다.
민자는 그런 남편과 갈라질 생각도 수없이 해보았다. 그런데 정작 마음먹고 갈라지자 하면 딸애가 덜커덩 생기고 또 그런 생각을 할라치면 또 딸애가 생겨 주렁주렁 딸만 셋이나 내리 낳다보니 갈라지자는 소리는 법원이 아니라 남편의 귀에다 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하긴 그런 오만금이다 보니 향에서 사업을 잘할 리도 만무했다. 향의 동료들은 민정조리는 글을 써도 글에서까지 술 냄새가 난다고들 했다. 언젠가 김향장은 오만금이더러 전향 빈곤호부축방안을 만들라고 했다. 그런데 오만금이 만든 방안은 연도수만 다르지 지난해 방안과 토 하나 빠뜨리지 않고 꼭 같아 하는 수 없어 향장이 직접 손을 댔다. 전향 향촌간부대회를 여는 날 오후, 향장은 자기 테이블 위에 그 방안이 있으니 오만금이 보고 가져다 대회에서 읽으라고 했다.
“존경하는 현위, 현정부령도 동지들……” 점심에 어디 가 술 한 잔 딸딸히 한 오만금이 빈곤호부축방안을 읽느라고 입을 여는데 사람들이 단통 눈부터 커졌다.
“요즘 우리 만덕향에는 도열병이 만연하고 있습…… 아니 이게 뭐야 잘못 가져왔네.”
오만금은 더수기를 긁으며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빈곤호부축방안을 들고 온단 게 그만 김향장이 현에 회보하는 도열병정황 보고서를 들고 왔던 것이다.
이런 오만금이다 보니 총각 때부터 향 민정조리이던 것이 나이 쉰 고개를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그냥 민정조리였다. 윷놀이에 “앉은 석동”이 있다더니 이거라구야 “누운 석동”인지 “기는 석동”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오만금이가 요즘은 어데 가서 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집에만 오면 고개를 푹 떨어트리고 애꿎은 담배만 벅벅 피워댔다.
“또 밖에서 무슨 재국을 친 거요?”
“아니어, 그런 일 없어.”
“그럼 무슨 일인데?”
“당신 몰라도 돼.”
“내가 뭘 몰라야 할 게 그리도 많은데?”
민자가 한마디도 질세라 바락바락 접어들었다.
결국 오만금이는 민자 앞에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에 범골마을로 하향을 갔다가 점심에 촌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잤는데 어제 그 식당집 여자가 찾아와 그날 오만금이 술 마시고 자기를 겁탈했다며 돈 2만원을 3일 내로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더라는 것이었다. 민자는 범골 식당 여자가 소문난 도박꾼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이름이 칠녀라는 그 여자는 남편이 한국 나가 벌어 보낸 돈을 도박에 다 처넣고도 모자라 돌아가며 돈을 꿨는데 그 빚이 키를 넘는다는 소문도 들은 바 있었다.
“그래 그 여자 말대로 정말 그런 짓을 한 건가요?” “난 술에 취해 그 자리에 고꾸라져 자기만 한 것 같은데……”
그날 저녁 민자는 남편을 끌고 범골 촌 식당으로 찾아갔다.
“우린 돈을 못 내놓겠는데요……”
“그러면 방법이 없지 뭐, 향에 찾아가 쫄딱 망신을 시킨 다음 법에다 기소하는 수밖에……”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모함죄로 법에 기소해야겠는 걸.”
민자가 칠녀를 쏘아보았다.
“우리집 영반은 남자구실 못한지 이젠 10년도 넘었는걸, 이제 병원에 가 검사하면 다 알게 되겠지만.”
그랬더니 칠녀는 얼음 강판에 자빠진 황소 눈이 되었다. 민자가 그 집에서 나오려고 하자 칠녀는 민자의 다리를 부둥켜안고 그런 일 없던 걸로 치자고 통사정을 했다.
친구들한테 민자가 이 이야기를 하자 친구들은 한입처럼 민자가 머리가 좋다고 야단이었다.
“집에 와서 너 또 남편한테 한바탕 야단을 쳤겠구나.”
“아니, 난 이젠 남편이 미우면 조용히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를 닦아.”
“생뚱맞게 변기는 왜 닦지?”
“남편이 매일 이 닦는 칫솔로 변기를 닦는단 말이야.”
민자의 말에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벌린 채 눈에 흰자위만 드러냈다.
그런데 이것만은 거짓말이었다. 기실 민자는 이젠 남편이 주정하지 않으면 벌렁벌렁 웃음이 나올 일이 없어 사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하여 민자는 “미운사람 칫솔로 변기를 닦는다”고 한국의 어느 드라마에서 들은 소리를 친구들에게 한번 옮겨보았을 뿐이었다.
골치 아픈 이름
그날은 재수 없는 날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전교 사생들이 학교식당을 들락날락 하고 있을 때 나는 혼자 너른 운동장에 나가 서성거렸다. 여자 친구가 누가한테 돈 만원을 사기 당했는데 그 돈을 어찌하면 도로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을 좀 하느라고 그랬다.
“정희야, 김정희!”
별안간 누가 나를 불렀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연이어 성까지 넣어가며 부르고 있었다. 누구일까? 분명 나와 허물없는 어느 친구 녀석일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돌려 사위를 살펴보았다. 소리는 북쪽에 있는 도서관 쪽에서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눈에 걸었던 근시안경을 벗어 닦으며 북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가까이 가 근시안경을 눈에 걸고 찬찬히 보니 교복을 입은 어떤 학생이었다.
“너 몇 학년 학생이냐?”
“초중 1학년 2반임다.”
“그런데 왜 버릇없이 선생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그래?”
“저는 선생님 부르지 않았슴다. 우리 반 정희를 불렀는데요. 저 봐요, 여기로 오고 있잖아요.” 내가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교복을 입은 학생 하나가 내 뒤를 묻어오고 있었다.
‘저 녀석도 이름이 정희야?’
나는 심술궂게 내 이름과 꼭 같은 그 학생을 한번 째지게 보고는 자리를 떴다.
한데 그 후에도 그 이름 같은 녀석 바람에 또 골탕을 먹은 적 있었다. 어느 날 하학종이 울리자 내가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정희야!” 하고 뒤에서 불렀다.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내 뒤에 바싹 따라오던 녀석도 동시에 머리를 뒤로 돌리는 게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내가 아니라 누군가 그 녀석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런데 “정희”란 이름은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많았다. 우리 학교에서 위생과 생리를 가르치는 여선생의 이름이 바로 박정희였다.
어느 하루는 내가 숙직실을 지나는데 숙직실 아바이가 나를 급히 불렀다.
“내 전화를 받고 지금 막 찾아가려던 참인데 면바로 만났네. 학교 교의실에서 선생더러 어서 오라고 찾는구만.”
“교의실에서?”
나는 내가 맡은 반급의 어느 학생이 무슨 사고를 친줄 알았다. 그래서 정신없이 교의실로 뛰어갔다.
그런데 헐떡거리며 달려가 교의실 문을 여니 안에 있던 여선생들이 손사래 치며 나를 막아 나섰다.
“안돼요. 남성들은 못 들어와요.”
“아니, 나를 급히 찾는다기에 달려왔는데……”
“호호호, 김정희 선생님이 아니라 우린 지금 박정희 여선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래요.”
여선생들은 입을 싸쥐고 깔깔 거렸다. 알고 보니 배가 만삭이 된 한 여교원이 갑자기 해산을 하게 되었는데 교의가 일손을 도와달라고 위생학교를 졸업한 박정희 선생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하긴 정희란 이름으로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 대통령까지 해먹는다지만 나의 몸에는 그 이름자가 별로 어울리지 않는지 이처럼 이름 때문에 울지도 웃지도 못할 때가 정말 많았다.
어느 날,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여자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빠, 한 가지 물어보자요. 오빠네 중학교에 오빠처럼 정희라고 꼭 같은 이름을 가진 선생님이 또 있어요?”
“박정희라고 여선생 한분 있어.”
“남자선생은 없고?……”
“남자선생으로는 나 혼자야, 그런데 왜?”
“아니래요, 그럼 됐어요……”
여자 친구는 뒷말을 얼버무리며 급히 전화를 놓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이튿날엔 엉뚱한 전화를 했다. 나하고 더는 사귀지 않겠다는 전화였다. 하긴 누구의 소개로 맞선을 보고 만났고 또 그렇게 사귄 시간도 몇 개 월 되지 않으니 정이 많이 붙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갈라지자고 하는지 똑똑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식사나 한번 같이 하자고 내가 제의를 했다. 그랬더니 그녀도 “좋아요!” 하며 쾌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소리가 나오지? 나보다 멋진 남자가 생긴 건가?”
음식점에 둘이 마주앉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니, 제가 할 소릴 그쪽에서 하네요. 오빠 지금 다른 여자하고 사귀고 있다던데요.”
“누가 그래?” “호, 이름까지 말할까요. 제순자, 맞죠?”
제순자? 난 어이가 없어 도리머리만 달달 떨었다. 난 제순자인지 남의 순자인지 그런 여자가 이 시내 어느 구석에 사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틀 전 여자 친구가 버스에서 할머니 몇 분이 우리말로 이야기하는 소릴 들었던 것이었다. 한 할머니가 “중학교 정희선생 요즘 제순자하고 사귄다며”라고 하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할머니가 “그럼 원래 사귀던 여자는?” 하고 물으니 그녀는“그건 나도 모르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우리 학교에 있는 한고향 선배한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우리 학교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간 사람들 중에 내 이름과 꼭 같이 정희란 이름을 가진 남성이 있는가 물었다. 그랬더니 고향 선배는 다른 데로 간 사람은 모르겠고 이미 퇴직한 교원 중에 곽정희란 교원이 있다고 했다. 그 소리에 나는 배 끌어안고 한바탕 웃었다. 얼굴이 빨개진 여자 친구도 “오빠 미안해!” 하며 내 어깨에 머리를 박았다.
그렇게 헤어질 번했던 여자와 헤어지지 않았더니 어느 사이 찰떡처럼 들어붙어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지난 “5.1절” 연휴일, 나는 그녀를 따라 목릉강변에 사는 그녀의 고향마을로 놀러가게 되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이었다. 내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목릉강변을 천천히 거닐고 있는데 별안간 “정희야, 빨리 와!” 하고 또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내가 고개를 돌려보니 이번엔 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가 그렇게 내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다. 그런데 한심한 것은 그 녀석은 지금 사람이 아니라 꼬랑지처럼 자기 뒤를 졸졸 묻어오는 강아지를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 잘못 듣지나 않았나 싶어 귀를 바싹 곤두세웠다. 그런데 듣고 또 들어도 틀림없는 “정희”였다.
“야, 너 방금 저 강아지 이름을 뭐라고 했지?” “정희!……” “왜 강아지한테 그런 이름을 달아준 거냐?”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미워하는 계집애 이름이 정희거든요. 그래서 그랬어요.”
“그 이름 좀 바꾸면 안 되겠냐. 왜냐하면 이 아저씨 이름이 정희거든.”
“네…… 그럴게요. 우리 반에 또 미운 계집애 하나 있는데…… 김숙자! 그럼 이제부터 우리 강아지를 김숙자라고 할게요.”
“인마, 그건 더 안 돼!”
나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김숙자는 나를 낳아준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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