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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29)지평선을 넘어(09) - 캐나다.hwp
지평선을 넘어 (이케다 SGI 회장과 마음의 유대) 09
캐나다
국제창가학회(SGI)는 세계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이케다(地田) SGI 회장이 멤버 한 사람 한사람과 맺은 ‘마음의 우대’에 있다. 새롭게 연재하는 ‘지평선을 넘어’에서는 이케다 SGI 회장이 해외를 방문한 역사를 소개하며, 스승과 원점을 새긴 세계의 벗이 인간주의의 파동을 일으키는 ‘지금’을 이야기한다.
풍부한 지혜로 행복한 인생을
1993년 가을 이케다 SGI 회장은 캐나다로 갔다. 몬트리올과 밴쿠버 두 도시를 방문해 아름다운 대지의 벗과 잊을 수 없는 만남을 새겼다.
지난 2013년 10월에는 SGI 회장 방문 20주연을 기념하는 총회가 캐나다 열일곱 개 도시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캐나다SGI 미어스 이사장은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1993년 이케다 선생님께서 방문하신 뒤 새로운 청년의 인재가 계속 나타났습니다. 청년들은 지금 캐나다 각 분야에서 인간주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회원도 이 20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선생님이 21세기 캐나다 광포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방문하셨다고 깊이 느낍니다!”
◇
1993년 9월 27일 저녁, 이케다 SGI 회장이 몬트리올 공항에 내렸다. 사흘 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두 번째 강연(‘21세기문명과 대승불교’)을 막 끝낸 뒤였다.
그러나 이날 공교롭게도 몬트리올에 비가 내렸다. 당시 의장인 이즈미 최고고문이 회상한다.
“숙소에 도착하신 선생님은 날씨가 좋지 않아 죄송해하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은 자우(慈雨)입니다. 비가 필요했던 거에요’하고 자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격려를 받자 정말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다음날 28일에는 몬트리올총회가 열렸다. 장소는 1년 전에 세운 몬트리올문화회관이었다. 회관 앞에서 음악대와 고적대가 활기찬 연주로 SGI 회장을 환영했다. SGI 회장은 양손을 들며 “진심 어린 연주 감사합니다!” 하고 젊은 벗에게 깊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로비에 들어서자 지구를 본뜬 ‘박’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SGI 회장의 몬트리올 첫 방문을 축하해 멤버들이 손수 만들었다.
SGI 회장이 박을 터뜨릴 예정이었는데 회장은 여자부장 헬렌 이즈미 초이(부인부본부장)에게 줄을 당기도록 제안했다.
박이 터지자 홍백의 풍선과 빨강 노랑 파랑색 단풍잎 모양 종이가 흩날렸다. SGI 회장은 풍선을 쫓아가 발로 밟는 시늉을 했다.
유머러스한 행동에 온화한 웃음이 일었다.
그뒤 총회 장소인 2층 대강당에 입장 할 예정이었는데, SGI 회장은 1층에 있는 작은 창제실로 갔다.
에바든 앤더슨 부부인부장(당시 부인부본부장)이 말한다.
“총회에 토론토나 오타와 그리고 퀘벡 등 캐나다 동부에서도 멤버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실은 수용인원 관계로 2층 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1층 창제실에 모여 있었습니다. 모두 모니터를 보며 총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2층 강당에 들어가지 못해 조금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SGI 회장이 창제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케다 SGI 회장은 “여러분 꼭 행복하세요! 함께 멋진 인생을 삽시다!” 하고 외치며 격려를 보냈다.
모두가 놀랐다. 그리고 기쁨의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커다란 박수가 일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싶다. 동지의 노고에 격려를 보내며 상찬하고 싶다. 그 마음이 하나하나의 행동에 넘쳐흘렀다.
◇
총회에서는 각부 대표가 인사했다. 혼성합창단이 온화한 노래를 선보였다.
SGI 회장이 말했다.
“훌륭한 합창 감사합니다! 감동했습니다.”
커다란 박수가 강당을 감쌌다.
“아름다운 몬트리올에 와서 나는 사진도 찍었습니다. 시상(詩想)도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공기도 공짜로 가득 마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기를 마시고 있으니, 여러분의 두뇌가 상쾌하고 총명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뜻한 웃음의 물결이 퍼졌다.
“마치 선생님은 집에서 우인이나 가족과 서로 이야기 하듯 저희에게 말을 걸어주셨습니다.”(앤더슨 부부인부장)
이날 SGI 회장은 ‘지혜’의 소중함을 말했다.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런 사람과 결혼하고 말았을까. 왜 이런 부모 밑에 태어나게 되었을까.(중략) 왜 이런 회사에 들어와 버렸을까.
그런 모든 괴로움을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의 법리(法理)로 전부 행복으로 바꾸고 기쁨으로 바꾼다. 그것이 ‘신심’의 힘입니다.
‘신심’은 ‘이신대혜(以信代慧 ; 신(信)으로써 혜(慧)를 대신한다)라고 설하셨듯이 최고 ‘지혜의 작용’입니다. 신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지혜롭게 행동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신앙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즐길 수 있는 경애, 가치적으로 사물을 보는 방법과 지혜 그리고 모든 고뇌를 타개할 수 있는 힘은 ‘자기자신을 단련’하는 속에 열립니다.
그것이 ‘인간혁명’입니다. 그것이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실천입니다. 내 일념과 경애를 바꾸면 모든 것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여러분은 아무쪼록 누구보다도 ‘총명한 인생’ 즉 ‘행복한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부동(不動)의 자신을 구축하라! 왕자(王者)의 산처럼
현재 몬트리올에서 부인부본부장을 맡은 앤드리아 보드먼은 이때 여자부장으로 총회에 참석해 스피치를 가슴에 깊이 새겼다.
당시 유명한 발레단 ‘그랜드 발레 캐나디언’에서 톱 댄서로 활약했다. 날마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를 돌았다. 이날 모임에도 발레단 감독에게 간절히 부탁해 올 수 있었다.
“이케다 선생님은 총회에서 고뇌를 기쁨으로 바꾸는 힘이 바로 신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떠한 고뇌에도 지지 않는 ‘행복의 여왕’이 되기 위해 선생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겼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저에게 용기의 원천입니다.”
보드먼은 그때의 원점을 가슴에 새겨 인생의 고난을 이겨냈다.
함께 춤췄던 남편이 약물과 도박에 의존해 밑바닥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지지 않았다. 신심 근본으로 꿋꿋이 싸웠다. 이윽고 남편도 불법을 실천하며 병을 이겨내고 무대매니저 등으로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었다.
현재 보드먼은 발레댄서를 양성하는 대학프로그램 책임자를 맡고 있다. 보드먼이 감독하는 발레 수업은 스무 곳을 넘는다고 한다.
지금 보드먼의 목표이자 기쁨은 차대를 짊어질 젊은 벗을 육성하는 일이다.
“저는 몬트리올 땅에서 SGI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는 일을 정말 긍지로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하여 모든 청년이 위대한 가능성을 열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격려하고 지원하겠습니다.”
◇
1993년 이케다 SGI 회장은 몬트리올을 방문하여 캐나다 광포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SGI 회장은 9월 28일에 열린 몬트리올 총회에서 사랑하는 벗에게 말했다.
“인생을 살고 또 살고 끝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대성인의 불법(佛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지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도, 가정도, 조직도 그 어떤 것에도 지지 않고, 모두 물리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이 승리입니다.”
그리고 16세기에 프랑스 항해가 자크 카르티에가 이 땅의 산에 올랐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며 ‘몬트리올’ 이름의 유래를 이렇게 말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전망. 카르티에는 감동한 나머지 이 산을 ‘왕의 산(몽ㆍ루이얄)’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것이 몬트리올이라는 이름의 유래라고 전해집니다. ‘왕의 산’ ‘왕자(王者)의 산’ 아름다운 로망의 울림이 있습니다.
어서에는 “수미산과 같이 ‘천(天)’과 ‘지(地)’와 ‘인(人)’을 관철하여 조금이라도 기울지 않는 존재를 ‘왕’이라고 한다.”고 씌어 있습니다.(어서 1422쪽, 취지)
어떤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왕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행복의 왕자’가 되길 바랍니다. ‘확신에 찬 왕자’가 되길 바랍니다.”
이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오후에는 비가 조금씩 내렸다.
그러나 오후 2시 30분부터 총회가 시작되자 창에서 황금빛이 쏟아졌다. 그곳에 있는 벗의 웃는 얼굴이 한층 더 밝게 빛났다.
회합을 마치고 참석자들이 밖으로 나오자 대자연이 보낸 선물이 있었다. 캐나다 벗의 앞날을 축복하듯 하늘에 거대한 무지개가 떴다.
SGI 회장은 시를 읊었다.
하늘에
동화 나라의
그림처럼
뜬 커다란 무지개
훈장의 빛이로다
당시 몬트리올에서 남자부 본부장을 맡은 제프 딥로즈(현재 퀘벡 권장)는 술회한다.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커다란 무지개였습니다. ‘몽ㆍ루이얄’ 근처에 대각선으로 위를 향해 튀어 오르듯이 빛의 다리가 뻗어 있었습니다. 정말로 아름답고 힘이 넘치는 무지개였습니다.”
◇
모니카 바크먼은 온타리오주 동부 뉴브런즈윅주 등, 넓은 지역을 무대로 하는 이스트권에서 부인부장을 맡고 있다. 1993년 총회 당시에는 여자부 ‘단풍잎 그룹’(우리나라 무궁화반)의 한 사람으로서 SGI 회장을 맞았다.
모니카는 회상한다.
“저는 몬트리올문화회관의 로비에서 총회에 오신 분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회관에 도착했을 때, 제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저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으시며 감사의 인사를 표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행사 요원으로 회합의 운영에 힘쓰는 사람을 깊이 상찬하며 감사의 뜻을 전해준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한 순간의 만남이 모니카에게는 신심의 원점이 되었다.
가족에게 또는 직장과 SGI 활동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자신을 도와주고 음지에서 힘쓰는 사람을 상찬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되려고 계속 노력한다.
201년 5월, 캐나다의 명문 라발대학교가 SGI 회장에게 ‘명예교육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수여식을 도쿄에서 열어, 모니카도 SGI의 대표로 참석했다.
수여식을 마친 뒤, 퇴장하는 SGI 회장이 모니카 일행 쪽으로 다가와서 “정말로 기쁩니다” 하며 모니카 일행과 악수했다.
캐나다 벗에게 잊을 수 없는 수여식이었다.
모니카는 현재 오타와에서 보건행정의 재정계획ㆍ책정 등에 관련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방침으로 직장에서 많은 동료가 해고당했다. 모니카는 일자리를 잃은 동료들이 재취직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았다.
그러한 헌신과 훌륭한 일솜씨를 평가받아 직장에서 상을 세 개나 받았다. 또 지난 11월에는 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를 절복하는 등, 이웃에게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다.
지난 10월, 모니카가 부인부장을 맡은 이스트권에서는 SGI 회장의 캐나다 방문 20주년을 기념하여 아홉 개 도시에서 총회를 열었다.
“모두 우인과 가족을 초대한 대승리의 모임이었습니다. 총회에서는 청년부가 인도식 힙합댄스, 합창, 캄보디아 무용, 멋진 체험담 발표를 선보이는 등, 온 힘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모두 캐나다SGI의 다양성을 사회에 나타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멤버가 세배로
몬트리올총회에는 입신한 지 얼마 안 된 멤버도 참석했다. 현재 퀘벡에서 지부장을 맡은 뱅상 포크도 그중 한 사람이다.
포크는 1990년에 입회했다. 사고로 입원해 침울해 있을 때 우인이 불법(佛法)을 소개했다. 그뒤 착실하게 신심을 실천했다.
포크는 말한다.
“당시, 저는 퀘벡대학교 몬트리올캠퍼스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강사였습니다. 총회 뒤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정말로 좋은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 생명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이겠죠. 왠지 하늘을 나는 듯 상쾌했습니다!”
포크는 많은 고투 끝에 현재의 직책을 얻었다. 신심 근본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연구자 그리고 교육자로서 마음껏 활약할 수 있게 되었다.
유연하게 앞으로! 함께 승리의 브이 사인을
포크는 라발대학교에서 200명이 넘는 학생 앞에서 강의하며 SGI 회장의 지침을 소개했다고 한다.
“바로 ‘노력과 분투가 그대들의 꿈을 실현합니다. 꾸준히 거듭 노력하는 사람은 희망에 넘칩니다. 꿈을 향해 어디까지나 전진을!’ 이 말씀은 청년들에게 딱 맞는 격려이지요!”
몬트리올에서는 지난 10월 5일에 총회를 열었는데 800명이 참석했다. 그 절반이 SGI 멤버의 가족과 우인이었다.
몬트리올은 눈부시게 발전하여 1993년 총회 때보다 멤버가 세배나 늘었다.
신시대를 짊어질 젊은 인재가 이곳에서도 약진한다.
◇
캐나다 동부 몬트리올에서 4일 동안 머물고 그 다음은 미국 서해안으로 격려행을 떠났다.
1993년 9월 30일 오후 8시. 이케다 SGI 회장은 비행기를 타고 로키 산맥을 넘어 밴쿠버국제공항에 내렸다.
1983년 SGI 회장은 미국 알래스카에서 밴쿠버의 벗과 만났을 때 말했다.
“반드시 밴쿠버에 가겠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그때의 약속을 지켰다. SGI 회장을 맞는 동지들의 기쁨은 특별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항만 도시 밴쿠버. 그 하늘에는 월천자(月天子)가 교교하게 빛을 발한다.
SGI 회장은 읊었다.
불칙(佛勅)을
이어받은
만월 같은
밴쿠버
벗의 활기
어디에 있든
사명대로
살아온
밴쿠버
동지의 강함이여
당시 밴쿠버 본부장이던 미야자키 주임부이사장이 말한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 시를 보름달처럼 둥근 두꺼운 종이에 써서 저와 스키란 부인부 본부장(현 캐나다SGI 총합부인부장)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밴쿠버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이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지역성을 깊이 이해하고 이렇게 읊어 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선생님의 방문을 진지하게 기원했습니다. 가을로 바뀌면서 추워지는 때였지만 선생님이 머무시는 동안에는 날씨가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고 굉장히 맑았습니다.”
◇
밴쿠버총회가 10월 1일에 열렸다. 소년소녀부가 밴쿠버문화회관을 방문한 SGI 회장을 환영했다.
SGI 회장은 선명한 빨강ㆍ파랑ㆍ노랑색 티셔츠를 입고 온 멤버에게 말을 걸며 격려를 보냈다. 당시 고등학생으로 캐나다SGI 관악대 멤버이던 리처드 추도 그중 한 사람이다.
“우리는 회관에서 이케다 선생님을 맞는 첫 그룹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께 ‘서해안 정신’을 보여야 한다는 커다란 책임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우리 앞에 오셨을 때 느낀 선생님의 따뜻함과 성실함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추는 어린 시절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괴롭고 힘든 나날이었다.
그런 속에서 관악대에 들어가 연습에 참가했다. 멤버가 서로 이야기하고 SGI 회장의 지침을 배우는 속에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총회 준비에 힘쓴 일이 틀을 깨부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총회에서 선생님이 발표하신 ‘밴쿠버 선언’에서 ‘쾌활하게 유쾌하게 산다’ ‘긍지를 품고 산다’는 지도가 나에게 커다란 지침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선언’을 불단 앞에 소중히 간직하며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추는 총회를 원점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SGI 활동에 힘썼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를 졸업하고 저널리즘 학위를 취득하며 남자부본부장도 맡았다.
지금은 밴쿠버를 대표하는 비즈니스 신문기자로 크게 활약하고 있다. 2013년 10월에는 추의 취재팀이 ‘잭웹스터상’을 수상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저널리스트에게 시상하는 매우 권위 있는 상이다.
“내성적이던 제가 기자로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위대한 신심의 공덕이고 실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신심 근본으로 사회를 위해 평화를 위해 공헌하겠습니다.”
◇
함께 총회에 참석한 구미 하딘. 당시 여자부 본부장이었다.
하딘이 잊지 못하는 추억. 그것은 밴쿠버를 방문한 SGI 회장에게 ‘행복을 기원하고 기원해 사제구나’ 하는 시구(詩句)를 받은 일이다.
그때 하딘의 아버지는 악성림프종을 앓는 중이었다.
그러나 하딘은 아버지를 위해 좀처럼 진지하게 제목을 부르지 못했다. 그런 자신에게 자책감이 들었다.
“아버지는 성격이 과격해서 제가 어렸을 때 경제적으로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때 생긴 응어리로 아버지를 진심으로 기원할 수 없었습니다.”
SGI 회장은 이렇게 전언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제목을 부르겠습니다. 어머니를 소중히 여기세요.”
‘이케다 선생님이 아버지를 위해 제목을 불러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도 아버지를 위해 제목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뒤 아버지를 위해 진심으로 기원하고 SGI회장이 방문한 일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총회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하딘과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뒀다. 그 보고를 들은 SGI 회장은 또 추선과 격려의 말을 보냈다.
‘우리를 위해 이토록 마음을 써주시는구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총회는 하딘에게 가족의 숙명을 크게 전환하고 자신의 벽을 뛰어넘는 원점이 되었다. 하딘은 지금 의료통역사로 활약하며 부인부 본부장으로 청년부와 미래부의 인재육성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우정을 넓혀라
10월 3일, 일주일 동안 캐나다 방문을 마치고, SGI 회장이 돌아가는 날이 다가왔다. 미야자키 주임부이사장은 말한다.
“출발하시는 선생님을 배웅했는데 선생님은 그때 손으로 브이(V) 사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밴쿠버의 승리를 뜻하는 브이 사인입니다. 꿋꿋이 사세요’ 하셨습니다.”
밴쿠버 총회에서 SGI 회장은 말했다.
“한 사람 한사람, 모두 개성이 있습니다. 사고방식도 다릅니다. 문화도 배경도 다릅니다. 관습도 다릅니다. 그러한 차이를 극복하려면 먼저 인간으로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합니다.”
“법도 사람의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먼저 인간으로서 마음을 열고 우정을 맺어야 합니다. 거기서 ‘법’을 이해하게 되고 공감이 넓혀지고 신뢰가 깊어집니다. 절대 조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캐나다는 캐나다답게 밴쿠버는 밴쿠버답게 넓은 마음으로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1993년 당시 1본부 3지부 체제인 밴쿠버 조직은 지금 8본부 체제로 커졌다. 2013년 10월에는 우인과 가족을 포함해 약 3000명이 모여 성대하게 총회를 열었다.
밴쿠버 그리고 캐나다 벗은 SGI 회장의 지침을 가슴에 품고 이체(異體)를 동심(同心)으로 하는 단결로 명랑하게 승리의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 화광신문 제1083호 (201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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