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만들고 극장운영·티켓 판매까지…合하라, 그러면 强해진다
디지털세상…오히려 아날로그 극장이 경쟁력 있다
전 세계 뮤지컬 산업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가 있다면 그건 '캣츠' '오페라의 유령'을 제작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일 것이다.
그러나 뮤지컬 산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는 (더 이상) 웨버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위키드' '라이언킹' '아가씨와 건달들' 등을 극장에 선보이고 있는
앰배서더시어터그룹(ATG) 하워드 팬터와 로즈마리 스콰이어 부부다.
영국 공연 전문지인 더스테이지(The Stage)는 매년 자국 내 뮤지컬 공연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를 뽑고 있는데,
웨버는 두 사람에게 밀려 6년째 2위 신세다.
사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웨버가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순위가 어느 순간 뒤집혔다.
ATG는 뮤지컬 산업에 통합모델(Integrated Model)을 구축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뮤지컬 생산·분배·판매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수직계열화하고 있는 회사는 여기가 거의 유일하다.
웨버가 세운 뮤지컬기업 리얼리유스풀그룹(Really Useful Group)도 극장을 보유하고 있어 생산·분배까지는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티켓 판매는 대행사(Agency)에 맡기고 있다.
ATG는 자신들이 만들지 않아도, 자신들 극장에서 상연되지 않아도 각종 뮤지컬 티켓을 판매하고 있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판매 방식을 곁들였다.
뮤지컬 관람 시 특별한 좌석에는 보다 높은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다.
예술가인 뮤지컬 기획자들은 이를 두고 '라이언에어(유럽 대표 저가항공사)식 티켓 판매'라고 비판하지만
ATG가 성공한 배경에는 철저한 수직계열화와 혁신적 판매 방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ATG가 갖고 있는 이런 장점들은 해외에 있는 극장들을 인수해 유통망을 넓히고 난 다음에 빛을 발했다.
오늘날 ATG는 영국에서 가장 거대한 뮤지컬 기업이다.
1992년 설립된 ATG는 지금 영국 웨스트엔드, 미국 브로드웨이, 호주 시드니 등에 39개 극장을 갖고 있고
전 세계 600만명 관객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다.
호주에서 인수하거나 설립한 극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2013년에는 브로드웨이 폭스우드 극장을 인수하면서 성장했다.
2013년에는 영국 내 수익성이 성장세를 타는 100대 기업 중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ATG는 해외에 나가서도 생산·분배·판매에 이르는 수직계열화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으며 이게 결국 성공을 가져왔다.
뮤지컬뿐만 아니라 음악, 춤, 영화 등 문화산업이 융성하고 있는 한국도 언젠가 전 세계 시장에서 먹히는 뮤지컬 산업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ATG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로즈마리 스콰이어 공동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다음은 그녀와의 일문일답.
―ATG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주효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뮤지컬을 만들어 대규모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극장과 티켓 판매 시스템을 한 회사가 한꺼번에 갖춘 것이 주효했다.
그런 전략이 없었다면 오늘날 ATG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뮤지컬을 만들고(producing), 극장을 운영하고(management), 티켓을 판매하는(ticketing) 일들을
모두 한 회사에서 한꺼번에 한다.
셋을 한꺼번에 한 결과는 공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ATG는 오늘날 다양한 뮤지컬 관련 수상 경력을 갖고 있는 프로듀싱팀을 갖고 있다.
전 세계에 운영하는 극장이 39개로 관련 업계에서 가장 많은 규모다.
ATG가 판매하는 공연 티켓은 영국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합쳤더니 각 분야가 모두 살아났다. ATG가 지금의 ATG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3자의 통합(Integration) 덕분이다.
물론 그 모든 기저에는 ATG에 대한 충성심 높은 고객층이 있다.
영국 내에서만 전체 가구의 25%에 해당하는 이들이 지난 2년간 ATG 극장에 다녀갔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ATG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다.
남편인 하워드 팬터(왼쪽)와 자리를 함께 한 로즈마리 스콰이어 ATG 대표. [사진 제공 = EY]
―3자를 통합한 것이 기업 매출 또는 이익 성장으로 어떻게 연결됐는가.
▷통합됐기 때문에 각종 리스크에도 강건해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뮤지컬을 제작한다는 것은 열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그 열정은 대부분 일종의 편향(bias)을 낳는다. 당장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항상 그 뮤지컬을 판단하는 것은 관객들이다.
극장 운영과 티켓 판매를 뮤지컬 제작에 접목시켰기 때문에 뮤지컬 제작자들은 고객들의 수요를 더 잘 읽을 수 있었다.
극장과 티켓 판매자들은 고객들이 선호할 만한 뮤지컬 작품들을 받아와서 상연하고 판매할 수 있었다.
3자가 함께했기 때문에 뮤지컬이 실패하는 리스크가 와도 쉽게 극복이 가능했다
(참고로 ATG와 비교되곤 하는 웨버는 '오페라의 유령'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실패를 거듭했는데,
영국 현지 언론들은 그의 음악이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평가를 내렸다.
만일 ATG와 같은 시스템일 경우 웨버의 뮤지컬은 자신이 직접 제작한 것이라 하더라도 판매 확률이 떨어진다면
상연하지 못했을 수 있다).
―통합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
▷남편(ATG 공동대표인 하워드 팬터)과 나는 각자 다른 영역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남편은 뮤지컬 제작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드라마스쿨, 뮤지컬 제작, 각본 디자인 등의 일을 했다.
나는 티켓 판매와 극장 운영, 재무 업무를 오랫동안 해왔고 숫자와 각종 계약서를 다루는 데 강점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보완이 아주 잘됐다. 1992년에 우리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런 점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각자 성공 포인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통합모델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티켓 판매 방식을 저가항공처럼 각종 옵션형으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혁신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제작자들은 싫어하는 것 같은데.
▷일부에서는 '라이언에어 같은 사고방식(Ryanair mentality)'이라고 비판하지만 우리는 이를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또 이런 티켓 판매 방식은 고객들에게 보다 투명하게 자신들이 받는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효과가 있다.
―ATG가 다음으로 바라보는 혁신은 무엇인가.
▷글로벌화다. 즉 전 세계 시장에 ATG 통합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큰 극장을 인수한 것이 좋은 사례다. ATG는 아시아도 큰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여러 가지 계획을 갖고 투자하려고 한다. ATG 한국 파트너인 설앤컴퍼니와 함께 동국대학교 인근에
극장을 짓는 계획도 그중 하나다. 한국은 성숙한 뮤지컬 시장이기 때문에 ATG가 영국에서 했던 것과 같이 뮤지컬 제작과
극장 운영, 티켓 판매 등을 모두 한꺼번에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실현될 수 있으리라 본다.
―아날로그 방식 뮤지컬이 디지털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ATG의 글로벌 확장은 너무 아날로그적인 것 아닌가.
▷사람들 마음 속에는 함께 모이고 싶은 본능이 있다고 믿는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서로 모이지 않고 분절되는 경향이 있다.
극장 비즈니스는 그래서 지속적인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디지털이 주지 못하는 것을 극장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영화가 주지 못하는 라이브 매력을 선사할 수 있다.
―아시아 시장 중 한국 뮤지컬 시장에 관심을 가진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2013년 영입한 팀 맥팔레인이라는 ATG 아시아·태평양 대표에게 한국 뮤지컬 시장 가능성에 대해 많이 전해들었다.
한국은 이미 좋은 극장이 많고 좋은 관객들이 포진돼 있다. 그래도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 막내딸도 한국 걸그룹 음악을 매우 좋아하고 '강남스타일' 노래를 늘 따라 부르기 때문에 음악적 재능이
한국에 많다는 것 또한 익히 알고 있다.
특히 한국에 오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예를 들면 뮤지컬 '위키드'를 상연한다고 생각해 보라.
영어 대사에 자막을 넣어서 말이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자막화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다.
ATG뿐만 아니라 한국 뮤지컬 시장, 그리고 중국 소비자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비즈니스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한국 로컬 창작가들이 만든 뮤지컬들도 극장에 올리고 싶은 생각이지만
이런 여러 사항들은 팀 맥팔레인 조언을 듣고 결정하려 한다.
―한국에서 특별히 마음에 두는 공연장이 있는지.
▷각종 호텔, 극장, 야외무대 등을 다수 검토했고 다양한 계획을 갖고 있다.
한국은 무엇보다 뮤지컬 극장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ATG의 투자는 유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협조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한국은 극장을 세우고 (ATG가) 소유하기엔 규제가 있어서 좀 까다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 ATG그룹은…전세계 39개 극장·600만명 관객 DB보유
―뮤지컬 비즈니스에는 어떻게 발을 들이게 됐나.
▶15세 때부터 나는 극장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영국에는 뮤지컬 극장에서 일해 볼 수 있는 체험 기회가 많다.
매년 6만5000명의 어린이들이 극장에서 워크숍을 한다. 나 역시 그 과정에서 극장이 너무 좋았다.
극장은 그야말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에 너무나 좋은 장소다. 사람들은 누구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듣기를 원한다.
극장에서 뮤지컬을 보면서 관객들은 2~3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라이브 공연이고 무대가 멋있으면 그 효과는 커진다. 나는 그 과정이 너무 좋았다.
―ATG는 1992년 시작해서 약 25년 만에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뮤지컬 시장의 강자가 됐다. 그 과정을 설명해달라.
▶우리는 영국 런던 외곽에 있는 조그만 도시 '오킹(Woking)'에서 시작했다.
남편(하워드 팬터)은 '턴스타일'이라는 조그만 뮤지컬 공연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오킹 쇼핑센터에 있는 극장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원래 이 극장 개발에는 투자하겠다는 부동산 개발업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이들이 빠져나가면서
우리는 한 3년 동안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게 전화위복이었다.
우리는 다양한 사업가들의 투자를 찾아다녔고 그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도 ATG 최대주주는 '프로비던스에쿼티그룹'이라는 사모펀드이고, 주요 주주로 그리스 선박왕, 부동산 개발업자 등이
포진돼 있다).
3년 뒤에 우리는 런던의 유서 깊은 듀크오브요크 극장, 앰배서더 극장까지 인수할 수 있는 재정적 후원자들이 생겼다.
극장 운영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받쳐줬기 때문에 이후 ATG는 자체적으로 만든 뮤지컬을 서서히 늘려나갈 수익 기반이 생겼고,
뮤지컬 제작과 극장 운영 그리고 티켓 판매라는 세 가지를 균형 있게 성장시킬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 She is…
영국 뮤지컬 극장가인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업 ATG 공동 창업자이자 공동 대표다.
영국 국영방송 BBC가 선정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소위 말해서 권력이 센) 여성 16위에 오르기도 했다.
사우샘프턴대학을 졸업했고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첫 번째 결혼에서 난 첫째 딸이 다운증후군이었고 이로 인해 가정적으로 힘들었던 때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까지
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현재 그의 첫째 딸인 '제니'는 영국 런던 남쪽 서레이(Surrey)주에서 비슷한 병으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돕는 교사로 일하고 있다
[모나코 = 신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