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독교 변증학>
W. L. 크레그 박사 (Dr. William Lane Craig)는 오늘날 잘 알려진 대로 국제적으로 명망있는 철학자요 기독교 변증학자이다. 그분은 영국의 버밍햄대학교(Birmingham)와 독일의 뮨헨대학교(Munchen)에서 수학하여 각기 그들 대학으로부터 Ph.D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분은 오랫동안 미국의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종교철학 교수로 봉직해 왔으며, 현재는 루베인대학교(Louvain)의 철학연구소에서 객원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주요 저술로는, <아들의 부활>, <하나님의 존재>, <우주의 시작> 등을 포함하여 다작의 변증학 저술과 수 많은 논문들이 있다. 미국의 어느 신학대학의 도서관에서도 "William Lane Craig"를 검색란에서 쳐보면 눈이 부실 정도로 그의 저술과 논문들이 와르르 쏟아진다(예, 미국 테네씨 주 Memphis의 Harding University Graduate School/ 하딩대학원 도서관. 혹은 www.amazon.com/books).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출판사나 신학대학의 도서관에서 과연 이 같은 Craig박사의 원서나 번역서를 우리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을까? 없다! 그래서 본인은 한국 기독교(교회)의 반지성적인 풍토에서 이 책이 나름대로 기독교 진리의 변증을 기대하여 번역하게 된 것이다. Craig 박사는 사실 본인(정남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보수적인 복음적인 신학자이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전통적인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신(하나님)의 존재 논증"에서 현대의 다양한 과학이론(예, 양자 물리학)과 현대 천체물리학(우주학)이론을 차용하고 있다. 하여 매력적이다!
이뿐 만 아니라 그분은 흔히 "문화 변증학"(인간의 고통과 처절한 곤궁성의 문제, human predicament에서 신의 존재를 탐구하려는 것)의 방법을 사용하여 신의 존재 증명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그의 논지의 핵심은 오늘날 기독교(교회)가 너무나 반지성적으로 경도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분은 이런 기독교의 풍토를 질타하고 기독교 진리에 대한 지성적 접근을 통한 하나님 존재와 살아 계심을 정직하게 변증하려는 것이다. 즉 오늘날 거대한 무신성의 세계(특히 오늘날 서구유럽(미국 포함)의 대학 사회와 저널리즘의 영역)에 맞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무장뿐 아니라 지성적 무장을 통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하고 확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본인은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여 그분은 자신의 기독교 변증학에서 철학, 논리학, 문학, 심리학, 현대과학, 천체우주학, 수학, 기독교영성, 기독교역사를 넘나들면서 성서적 하나님의 존재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그 역사(활동/ 창조와 구원/ 예수의 부활)와 그 활동을 변증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그분의 저술의 내용들을 그렇게 썩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논리학, 현대 과학, 문학에 대한 인식이 좁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여 우리가 그분의 논문이나 글들을 이해하려면 집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무신성의 세계 속에서 하루의 시간을 90% 이상 살아가고 활동하는 젊은 대학생들과 일반 평신도들을 바르게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믿어라!" 만 할 것인가? 이래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을 오늘날 목회자들은 알고나 있는가? 따라서 적어도 목회자 후보생(신학생), 목회자들, 혹은 교회지도자들은 Craig 박사의 책 혹은 논문 두어 편이라도 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오늘날 기독교의 신앙이 함의하고 있는 이성(logos)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기독교 진리와 신앙의 보편성을 현대 사회에 적용할 수 있다. 곧 기독교의 하나님 인식은 신앙으로뿐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인 이성으로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신 존재에 대한 인식을 성령의 개입에서뿐 아니라 정직한 이성(과학)적 탐구를 통하여 바르게 가질 필요가 있다(이렇게 되면 어찌 보면, anti-Barthian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과연 우리만 강의실에서 혹은 교회 안에서 주님을 열심히 찬양한다고 하여 이 세상의 무신성이 변할까? 교회 성문 밖에 있는 수 많은 젊은 대학생들 지성인들을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가? 곧 신앙의 폐쇄회로에로 그들을 방치해 둔단 말인가? 그래 놓고서 우리만 "할렐루야!" 하면서 지낼 수 있는가? 때론 우리에게는 차가운 지성이 필요하다.
몇해 전에 대학원 강의실에서 나는 윌리 위젤의 <밤>(Night)이라는 자서전적인 소설을 학생들에게 읽힌 적이 있다. 한 참을 토론하는데 어느 학생이 손을 조용히 들면서 질문했다. "저는 이 책이 이해가 안되요. 이 책의 저자는 유대인이잖아요. 그는 유대인의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신약 시대의 복음의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런 고통의 문제가 따라서 나는 . . . . " 나는 그런 인식에 경악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인식이 팽배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어찌보면 두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나는 성서의 초자연적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 과학적 물질적 세계가 그것이다. 혹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철처히 구분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사이에서 그 골/ 깊은 간격에 결코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집 하나(우리 스스로 구축한 종교세계)가 있는데, 거기에 들어 가는 문이 둘이 있다. 우리는 하나의 문을 열면 우리만의 신앙의 세계가 존재하고, 다른 문을 열면 이제 거기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물론 후자는 물질적 세계이다. 하여 P. Tillich는 그곳을 타락한 종교의 영역(거룩한 곳/ 속된 곳)이라고 했다. 여기에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자유롭게 그 문 사이를 왕래한다. 이것이 현대 기독교인의 비극이다. 그 두 세계는 원래 하나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세계는 그 자체로 우리가 사는 사회적 세계와 이 물질적 세계에 대하여 책임성을 동반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는 이 세계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고 세울 수 있다.
이렇게 이분화된 신앙의 구조를 가지게 되면 우리는 쉽게 자기 영성화에로 빠지며, 나아가 우리의 신앙이 한 낱 이데올로기로 전략하거나 혹은 어느 체제의 위안자로 전략된다. 혹은 자기 도취에 빠진다. 저자 크레그는 이를 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결코 반 지성적이지 않다. 신앙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신앙하는 그 하나님은 자연의 하나님이오, 우주의 하나님이시며, 과학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오늘날 미국의 화학자요 최첨단 게놈(Genome)연구과학자 Francis Collins("The Language of God"/ 그는 예를 들면 DNA 혹은 RNA도 오늘날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신의 암호"(정보, 계시)일 수 있음을 암시)의 정직한 태도, 영국의 존 폴킹혼의 주장들을 왜 복음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이 아예 경청하려고 하지 않은가? 신학교 강의실에 그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은 것이 오늘의 기독교 신학의 현실이다. 그래 놓고도 큰 목소리로 "우리는 누가 뭐라하든 우주 역사를 6천년으로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분들이 현실에서는 최 첨단의 Cell-phone, 신용 카드, Internet bank를 사용한다. 과연 그런분들에게 신앙은 저 다른 세계의 분활 지역인가? 그러니 오늘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은 교우들의 땅 투기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주장하지 않은가? 여기에 과연 한국의 기독교의 미래가 있는가? 골고다 십자가 상에서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까지나 나 자신 하나의 힘을 세워주시는 "Powerful God"인가 그런 하나님만을 믿으니 오늘날 한국 교회는 타락의 온상이 되었다. 땅 투기를 버젓이 주일 예배시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오늘날 "Simony"(행 8장)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기회만 다면 정권의 힘에 빌붙어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려 든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샬롬/ 평화를 실천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하여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은 누구의 말 대로 "Powerful God"이라기보다는 저 가난하고 힘없고 억눌린 사람들, 처절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은가? 하여 그분은 "Vulnerable God"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Craig 박사의 주장을 다 받아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분이 오늘날 반 지성적 기독교에 강하게 반발하고 기독교의 책임성과 합리성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와 교회가 역사 속에서 건전하고 튼튼히 서가게 하는 것에 동의 한다. 특히 그는 궁극적인 변증학을 말하면서 진정한 기독교 진리의 변증은 우리의 말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책임있는 삶 그 자체를 들고 있음에 감사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솔직히 이렇게 증언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아니다. 저 오지의 선교사들이며 그리고 대 도시의 연구실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이다. 한편에서는 오지의 비문명화된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선교사들은 그들의 진정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으며 동시에 대도시의 과학자들은 연구실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탐구하고 있다.
이 책에서 Craig 박사는 그 사이(신앙과 이성)를 정직하게 오고 간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가지고 그 사이를 오고 간다. 아래는 크레그 박사의 <오늘의 기독교 변증학>의 목차이다.
목차
서론
신앙 1. 신앙과 이성: 우리는 기독교가 진리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인간 2.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
하나님 3. 하나님의 존재
창조 4, 기적의 문제 5. 역사적 지식의 문제
성서 6. 신약성서의 역사적 신빙성
그리스도 7. 예수의 자아 이햬(기독론) 8. 예수의 부활
결론/ 궁극적인 변증학
미주/ 색인 전체가 447 페이지
이 책을 가지고 본인은 여러 번 학부(영어 원서)에서 그리고 대학원에서 강의를 해 왔지만 막상 번역하여 출간하려 하니 손이 가지 않은 부분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번역에 시간이 없어서 두어장을 다른 분에게 부탁하여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번역문장을 다시 원문과 대조하고 각주를 달고 틀린 용어나 어휘를 바로 잡고 하는데 또한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여튼 이 책을 번역하여 출간하면서, 나의 기독교 기본 교리를 다시 바로 잡는데 스스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5-6회 정도의 교정과 원문대조는 상당한 시간을 요했다. 불어, 독일어는 물론 때로는 영어 원문을 아들 Maru Chung에게 딸 Dabi Chung에게 다시 확인하고, 때로는 미국 교수에게 멜을 보내, easy-sentence로 바꾸어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은 번역상 오류가 있지 않나 솔직히 염려된다. 허나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영어문장을 들고 가서 여러 번 보이고 뜻을 다시 확인하였으니 크게 오역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선 출간에 따른 재정문제도 만만치 않다. 약 출판비로 520만원이 들었다. 돈이 없어서 출판사에 분할로 상환하기로 하였다. 번역 허가를 받는데 약 90만원이 들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 610-630만원 정도의 경비가 들었다. 이중에 1/10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그러나 진리에 대한 작은 물질적 투자(?)라고 생각했다.
William Lane Craig, <Reasonable Faith: Christian Truth and Apologetics> (Good News Publishers, 1994); 정남수 역, <오늘의 기독교 변증학: 기독교 진리에 대한 변증> (서울: 그리스도대학교 출판국, 2006), 1-447. |
첫댓글 아 저도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가 쓴 책을 찾고 있었는데.. 어디서 구매할 수 있을까요 .. 고생이 많으시네요 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가장 좋은 책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서를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