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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제2권 기하학Géométrie 43
제3권 무한소 분석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제6권 수리[논리]계산의 운동 L’mouvement de logistique 369
제7권 수학적 지성과 진리 L’intelligence mathématique et la vérité 427
제20장 직관의 근대적 용어 La notion modern d’intuition 427
단원 A. 용어의 형성 Formation de la notion 430
단원 B. 근대 수학들의 방향정립 L’orientation des mathématiques modernes 437 §265
단원 C. 수학들에서 직관주의 운동의 해석L’interprétation du mouvement intuitioniste dans les mathématiques 447 §273
제21장 산술학적 진리의 뿌리들 Les racines de la vérité arithmétique 460 §281 §282 §283
단원 A. 셈법에 앞서 수학 La mathématique avant la numération 463 §284
[1절] 일대 일 교환의 실행 La pratique de l’échange un contre un 464 §285 §286
[2절] 일대 일 교환의 진리 La vérité de l’échange un contre un 467 §287 §288 §289 §290
단원 B. 수라는 용어 la notion de nombre 472
[1절] 수의 구성적 조작작업 L’opération constitutive du nombre 472 §291 §292 §293
일을 다루었고, 그리고 둘(2)에 대해 논의한다.
[2절] 류적 개념과 수 Le concept générique et le nombre 475 §294 §295 §296 §297
[수 1. 2 등이 종개념이라면 류개념은 무엇일까? 수는 원래 류개념이고 종개념은 사과 한 개, 배 한 개에서 하나일 것이다. 류개념의 보편적 상위 류개념은 무엇일까? 대수로서 x일 것이다. 부정수가 상위 류개념이 아닐까? (58WLD)]
[3절] 완전 귀납이라는 원리 Le principe dit d’induction compete 481 §298
단원 C. 분할 La division 484 §299
[1절] 수들 이론의 요소들 Les éléments de la théorie des nombres 485 §300 §301 §302
[2절] 분수들의 이론 La théorie des fractions 490 §303 §304 §305 §306
[3절] 산술학적 진리의 확장(외연) L’extension de la vérité arithmétique 494 §307 §308
제22장 기하학적 진리의 뿌리들 Les racines de la vérité géométrique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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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산술학적 진리의 뿌리들 Les racines de la vérité arithmétique 460
[수학적 진리의 뿌리는 철학과 과학의 뿌리와 다를까?] - [뿌리가 다르다. 수, 점에서 비례조항, 항목(인간 사유의 추리과정), 하늘 운행, 소리결의 조화중항에 다르다. (59TLI)]
§281. [직관은 철학사와 과학사의 이중 경험을 이용하여 수학 철학에서 새로운 단계를 열었다. ]
이리하여 우리가 기획했던 연구들은 인식과 반성의 현실적 상태 안에서, 진술하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결론의 재료[물질]를 우리에게 가져오면서, 연구 자체에 관하여 어느 정도로는 가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60)
직관주의 운동의 진보는 수학적 철학의 진화에서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단계를, 산술주의 또는 논리계산으로부터 나왔던 순수하게 형식적인 개념작업들의 폐허에서 유래하는 단계를,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단계에 상응하는 철학은 정합적으로 실증적인 형식을 다루는 데는, 그 자체로서는 모호하고 실망스런 직관의 용어를 넘어서는 조건에서만 성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직관 저 넘어로 가기 위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다면 직관의 용어하에서 재통합되었던 잡다한 관념들에서 그것들의 정당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역사의 이중 경험을, 즉 철학의 역사와 과학의 역사를 이용해야 했다는 것이다. (460)
§282. [철학과 수학이 뗄 수 없는 관계는 수학이 논리학과 과학의 연관보다 꿈과 망상과 같은 의식자체에 연관 때문일 것이다. 철학의 임무는 용어의 조직화에 있듯이, 수학을 토대에서부터 다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철학 역사는 수학 철학이 현실적 시간에서 해결해야할 문제의 항들을 정확하게 하도록 한다. 칸트의 비판과 더불어, 꽁트의 실중주의와 더불어, 수학철학의 관념은 근본적 변모작업을 겪었다. 어떤 퓌타고라스 같은 이 또는 플라톤 같은 이에게서처럼, 어떤 데카르트 같은 이 또는 라이프니츠 같은 이에게서, 정신의 심오한 자연[본연]을 표현하면서 존재의 보편성으로 넓혀지는 지성성의 전형을 규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지성은 인 중요하지 않다. 과학적 방법들의 특수성은, 마치 한정적 결과로서도, 적어도 근대과학들이 증거해야 했던 진화의 신속성을 이유 자체로 삼는 것도 확실히 아니고, 마치 반성이 실행해야 하는 데로 불려왔던 하나의 자료처럼 필수 불가결이 된다. (460)
따라서 수학 철학의 문제는, 다른 어떠한 학문과도 참조 없이 수학들의 고유한 영역의 내부에 자리 잡는다. 수학 과학은 일반적으로 파악된 논리학에게로도 자연의 과학에게로도 끌리지 않는다. 그 수학 과학은 자신에 앞서서 자신에게 알맞은 진리의 전형을 만나지 못한다. 이리하여 우리들에 따르면 파라독사의 당혹감이 설명될 것이다. 이 당혹감에 동시대의 수학자들의 당혹감에 부딪히게 된다. 이 동시대의 수학자들은 수학이 실증적 진리의 수평을 효과적으로 넓힐 수 있었던 자신들의 작업들에 의해 보증받아서, 이런 진리가 기초될 수 있었던 토대들을 고려하고자 원했다. 그들은 철학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동시대의 철학은 수학자들에게 그들의 사유가 되돌아갈 수 있는 틀을 더 이상 제공하지 못했다. 반대로 그 철학은 고전적 해결들이 근거했던 정의들을 깨뜨렸다. 합리적 명증성은, 사람들이 그 형식을 체계적인 망상(le délire)의 정합적 담론에서 재발견하듯이, 논리적 연결의 형식만이 있을 뿐이라는 데까지 환원되었다. 경험이란 용어는 꿈(le rêve, 몽상)과 재결합하는 데까지 확장되었는데, 꿈이 부정합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꿈이 영혼에게 강하게 작용한다면, [그리고] 꿈이 암시와 시각의 능력을 영혼에서 표출한다면 말이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소위 말하는 진리는, 객관적 내용을 갖는 것이든 보편적 검증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든, 거의 사라지게 될 것 같다. 이로부터 과학의 현존 자체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특이한 불능성(무능)이 나온다. 현재 시점에서 철학의 임무는 실증과학의 주위에서 진리의 실증적 용어를 조직화하는데 있다. 그리고 임무는 기초에 의해, 기초 과학이 고려한 문제들의 연구에 의해, 말하자면 수학을 다시 다루는 데 있다. (461)
§283. [수학의 단위와 명제들의 원리에 대한 기원을 과학의 역사에서 문제를 찾아보자. 인종학과 사회심리에서 길어올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의 개관적 해결책을 과학의 역사에게 물어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 때에 우리는 심각한 난점을 극복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역사는, 이미 과학이 분명하게 한계를 지운 대상을 소유하고서, 엄격하게 한정된[정의된] 방법으로, 제시한 기념물들과 더불어 시작한다. 그런데 산술학의 또는 기하학의 초기 명제들이 이제부터는 그 토대들 위에서만 구축하는 것과 같은 이런 형식 하에서 획득되었다고 하는 그 찰나로부터, 수학자들은 수학적 결과들의 자연에 관한 그리고 범위에 관한 이론적 문제들에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서, 또 그의 길 위에서 진리의 문제를 만나지 않고서, 앞으로 나갈 것이다. 만일 나중에 인간적 사유가 그의 적용점을 변경할 수 있다면, 만일 그 사유가 수학의 내용에게 그것의 실증적 진리의 가치를 보증하는 조건들을 찾는다면, 그의 정신의 표현법(la tournure)에 의해, 또한 그의 고유한 작업들 덕분에, 그리고 아직도 선두에 서서 쳐다보는 성향의 덕분에 획득된 충동에 의해, 수학자들은 그래도 그런 사유에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가 과학의 요소[기본]들에 빛을 투영하고자 희망하는 것은 기술적 진보에 의해서 그리고 소위 말하는 발명에 의해서이다. 이런 고려에서, 우리는 분석학들의 어떤 분석학을 상기시켰다. 이 분석학들은 메레류의 분석학들(les Méray), 헬름홀쯔류의 분석학들(les Helmholtz), 칸토어류의 분석학들(les Cantor)과 더불어, 그리고 로바체프스키류의 분석학들(les Lobatchevski), 리만류의 분석학들(les Riemann), 힐베르트류의 분석학들(les Hilbert)과 더불어, 산술적 또는 기하학적 원리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이유로 이것들이 철학적 문제들의 해결에 만족하지 못하는지를 제시할 기회를 가졌다. 원리들의 매우 사변적인 규정작업은 원리 그 자체로 파악된 원리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도록 해준다. 규정작업은 원리들이 무엇으로 하나의 연역법을 지지하는지를 알게 해주지 못한다. 그 연역법은 정신의 자유로운 환상과 아주 다른 것이고, 또한 자연에 대한 점유취득(la prisede possession)의 입문이다. (462)
수학 철학의 역할은, 우리들에 따르면, 마치 사람들이 논리적 인공물의 틀 안에 진리를 가두어야 하는 것처럼, 실증과학이 멈추어진 한계 저넘어로 추론의 연역적 형식을 늘이는[연장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이렇게 실재성과 모든 연결로부터 과학을 분리해야 하는 대신에, 반대로 지성과 사물들의 기원적 접촉이 드러날[표출될] 근원(la source)에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하여 사람들이 산술학적 또는 기하학적 진리의 뿌리들을 날 것 그대로 다룰 수 있는 데까지, 역사의 경과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철학자는 진리 문제의 해결책을 발명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철학자는 사실상 어떻게 인류가 그것을 해결했는지를 단지 발견해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부터, 쓰여진 전승의 빈칸들을 인종학적 관찰에 의해 보층하면서, 또 이로부터 철학적 관점들과 기술적 탐구들의 상호영향을 통하여 관념들의 계통(la filiation)를 따르기를 노력하면서, 과학의 과거에 관하여 가능한 한 충만한 탐문(une enquête) 보다 더 좋은 도구는 없다. 과학의 원리들에 관한 과학자들의 이론들은 마치 이런 탐문의 본질적 요소들처럼 자연적으로 재발견될 것이다. 이론들은 자발적인 생산작업의 무의식(l’inconscience) 속에 감추어진 채 남아서 위험에 처해 있었을 정신의 근본적 진행방식들을 밝힐 것이다. 그러나 수학이 이로부터 나왔던 사회심리학적 기능들의 분석 덕분에, 우리는 그것들[이론들]에게 발판(l’assise)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발판 없이 이론들은 단지 빈 것 속에서 또는 적어도 추상 속에서 사색들일 것이다. (462)
간단히, 우리가 그것의 성격들을 규정하기를 막 시도했던 새로운 단계의 독창성은 수학철학이 역사에서 이미 위치를 차지했던 체계들에게 한 체계를 덧보태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을 것이다. 수학 철학은 역사 자체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수학철학은 여러 다른 시기들에 얻어졌던 결과물들의 수렴과 배열을 탐구한다. 그리고 수학철학은 결과물들을 마치 객관성의 실증적 표시들처럼 등록한다. (463)
단원 A. 셈법에 앞서는 수학 La mathématique avant la numération 463
§284. [수의 용어 또는 셈의 기호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레비브륄의 인종학적 연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학적 진리의 고찰은 앞선 주목들의 무매개적 적용을 제고하러 간다. 게오르그 칸토어의 작업까지, 사람들은 유한한 수들에 관한 초기 계산작업들을 가지고 수학적 사유를 시작하는데 일치했다. 이런 수학적 사유는 계산작업의 놀이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제공했던 수나열[셈법]의 체계를 토대로서 삼았다. 헬름홀쯔(1821-1894)는 그러한 요소들을 가능한 논리의 최소 비용으로 얻게 될 수 있는 협약들(les conventions)을 정의 했다. 칸토어는 수평을 헬름홀쯔가 이미 사용했지만 그러나 특히 보조 자격으로 사용했던 상응의 절차에 근거하면서, 그리고 서수의 관념으로부터 기수들이 재현하는 대상들의 집단들에게로 이행하기 위하여, 수학적 수평을 넓혔다. 그런데 상응의 절차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과학의 근본적인 추상작업들에 지나치게 신경쓰면서 또 실증 수학을 “자유로운 수학”으로 계속하여 이어가면서도, 오로지 사색이 거기에 이르는 가장 일반적 형식이 있는가? 또는 반대로 그것이 경험에 관해 재작동하는 이유의 첫 표출이 아닌가? [그 표출은] 개인들 모두에게 실행에서 부과되는 규칙들을 확립하면서인데, 왜냐하면 규칙들은 동등하게 모두에 의해 검증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응은 하나의 함수[기능]를 설명하지 않는가? 그 기능은 과학의 구성적 진행방식들에 앞서 있었고, 진행방식들에게 진리를 보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술적 탐구의 가장 높은 형식들은 이 함수로부터 유산과 혜택을 수집했다. (463)
우리가 이렇게 제기된 질문에게 행할 응답은 수학 철학의 모든 방향정립을 주문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에 따르면, 이런 응답의 의미[방향]은 의심스럽지 않다. (463)
이미 칸토어는 그의 작업들에 의해 조장되었던 토론들 속에서, 제네바의 베르트랑(Bertrand 1731-1812)의 한 작업에서 끌어냈던왼편 쪽에다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쪽들 인용해 놓았다: 그의 모든 연구 속에서 파악된, 수학들의 기본적 부분의 새로운 발전. 베르트랑은 꽁디약(1714-1780)의 이데아론적(idéologique) 방법을 뒤따른다. 베르트랑은 “「서문」의 표현들에 따라서, 세는 기술을 전혀 모르는 무지한 목동을 도입하고, 그리고 우리가 그에게 아랍인들로부터 빌려왔던 기수법과 표기법을 발명하게 했다.” 여기에 첫 장의 초기 문장들이 있다. “시작에 있어서, 인간은 사냥꾼들이거나 또는 목동들이었다. 이 후자들은 우선 셀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의 가축들을 잃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하여 저녁에는 모든 가축들이 목장 안에 되돌아왔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가축들 중에 네 마리 또는 다섯 마리만을 가졌던 자는 모두가 되돌아왔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스무 마리를 가졌던 자에게는 한눈에 파악하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따라서 가축들이 차례로 되돌아왔는지를 고려하면서, 그는 이러한 수로 된 일련의 단어들을 상상했을 것인데, 자신의 기억 속에 이 단어들을 간직하면서 상상했을 것이다. 가축들이 되돌아올 즈음에, 그는 그 다음 날도 이 단어들을 반복했을 것이다. 확신하기 위하여, 그가 이 단어들을 완수하기 앞서서 가축들이 들어오는 것을 끝냈다면, 발언해야 할 단어들이 그에게 남아있는 만큼, 그 만큼의 가축들이 부족했다는 것이 된다.” (464)
이데올로기적인 가설은 오늘날 사회학적 주제의 형식하에서 유보될 수 있다. 우리는 인종학적 관찰들을 상기해야만 한다. 이 관찰들은 하등[열등] 사회들에서 계산의 절차들에서 이루어졌고, 특히 레비-브륄(1857-1939)의 작품에서 우리가 빌려온 것이다. 수체계[기수법]의 발명 이전에 이용되었던 실행방식들에 관한 연구의 제1장은 백과전서 제1장과 동일한 대상을 갖는다. 그 백과전서에서 사람들은 수학들의 여러 다른 분과학들이 지배하는 가장 단순한 형식을 규정하고자 제안했다. 그러한 만남은, 분석학이 수학적 진리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시작할 수 있을 지평을 규정한다. (464)
1절, 일대 일 교환의 실행 La pratique de l’échange un contre un 464
§285. [교환에서는 수를 세는 것이라기보다 상품과 푼돈이 대응이 있다. 대응이 기수법을 발명하게 한다. 사물들과 단어들의 대응, 그 다음에 대상들과 기호(표시)들의 대응, 그리고 의식과 목소리의 대응으로 전개될 것이다. ]
이런 분석학을 할 수 있는 만큼이나 정확하게 다루기 위하여, 형식들 가운데서 특별한 한 형식을 선택하는 것이 편리하다. 일대일(univoque)이면서 상호적이 대응은 하등사회들의 자발적인 조작작업들 안에서 형식들을 입히는 것을 허용한다. 우리는 딴느리(Jules Tannery, 1848-1910)가 그의 저술의 시작 페이지들에서 이미 주의를 끌어냈던 일 대 일(un contre un)교환에 묶여있을 것이다. 그 저술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산술학 강의(Leçons d'Arithmétique théorique et pratique 1894)이다. “사과들 각각에 한 푼으로 파는 상인에게 사과들을 사고자 원하는 한 어린이를 가정하자. 그는 상인이 그에게 사과하나를 주는데 대해 그는 상인에게 한 푼을 줄 수 있다. 즉 한 푼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과 한 개를 받는 것 등등 … 몇 차례의 교환의 끝에 그가 받았던 사과들의 수는 그가 주었던 푼돈들의 수와 동일하다. 받은 사과의 각각에게 주어는 푼돈이 상응한다. 이리하여 셀 줄 모르는 백성들에게서 동일한 가치의 대상들 사이의 교환들이 실행되었다.” (465)
분석학은 보다 단순한 출발점을 얻을 수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개별적 사물들의 인식과도, 사물들의 특수한 성질들의 인식과도, 다른 어떠한 것을 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업무에 한 어린이를 고용하는데, 그는 셀 줄 모른다. 나는 그에게 편지 한 장을 부치러 보낸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기다려서, 그리고 나에게 답신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그는 임무를 행할 줄 안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에게 사과 한 개를 한 푼에 파는 상인에게 가서, 사과 하나를 사서 나에게 가져오라고 말한다. 그는 나의 지시를 실행한다. 그는 아직 수학을 하지 못한다. 그의 생각에서는, 마치 한(une)과 사과(pomme)처럼 한(un)과 푼(sou)은 단일한 표현을 형성한다. 그는 단어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관계만을 사용한다. (465)
그러나 여기서 나는 어린애에게 사과들을 푼돈으로 파는 상인에게 다시 갈 것을 요구하고, 그리고 내가 그에게 다시 준 네 푼에 대하여 네 개의 사과를 나에게 가져오게 한다.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효과적인 계산 조작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의 증거는 내가 그것의 결롸를 수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나에게 세 개 사과 또는 다섯 개 사과를 가져왔다면, 내가 계산조작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절한 이런 계산조작을 꼬마는 계산하지 않고서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꼬마는 수세기(기수법)도 수의 이름도 모른다. 그는 상인의 탁자 위에 한 푼을 제시할 것이고, 그러고 나서 그는 하나의 사화를 잡을 것이다. 새로이 한 푼을 제시하고 그리고 사과 한 개를 잡을 것이다. 그는 자기 주머니에 푼돈이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을 때까지 계속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는 손에 가지고 온 사과들을 나에게 내려 놓을 것이다. 따라서 나의 심부름꾼의 정신 속에서, 수학적 사유는 한정된 형식 하에서 현존하며, 형식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교환절차와 더불어 만족되는 문명이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쪽에서는 사람들이 금속의 조각들에 대한 셈을 모르고 있고, 저쪽에서 사람들이 동등하게 짐승의 머릿수들의 셈을 모르고 있으면서, 시장에서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석 중인 두 더미 중에서 한 쪽이 다 소모될 때까지, 이것들을 일 대 일(un contre un)로 교환한다. 그리고 교환이 경제적 관점에서 더 많은 단점을 확실히 제공하는 토대 위에서,수학적 관점에서 엄격한 토대 위에서 소비되었다. (466)
이리하여, 한 푼과 하나의 사과를 교환한다는 사실은 수학적 계산작업을 구성하지 못하는데 반하여, 네 푼과 네 개 사과의 교환은 이미 마치 수학적 계산작업처럼 나타난다. 그 효과로 일방적 교환이 전체이고 사람들은 이 전체를 해체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푼돈과 사과는 이 전체의 총체적 부분을 이룬다. 그러나 작동(l’acte)의 반복은 어린애에게서 변함없을 것인 한 요소를 필연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왜냐하면 그는 새롭게 하는 일련의 계산작업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기 주머니 속에 갖고 있어야 하는 푼돈은 다른 푼돈이고, 그가 상인의 탁자 위에서 가져야만 하는 사과는 다른 사과이다. 반복되는 것, 그것은은 푼돈과 사과 사이에 실행되는 교환이며, 그것은 그의 팔이 그의 정신의 사용[봉사]에서 완수하는 작동(l’acte)이다. (466)
§286. [일대일에서 대상의 일반성은, 벩송이 말하듯이, 기억의 재인식에서 오는 것이다. 심성의 대상화가 사물의 대상화를 끌어낼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여기서 수학적 추상작업의 탄생에 참석한다. 그리고 이런 추상화는, 이 추상화가 무엇보다 활동성의 양태이라는 의미에서, 실천적 질서의 추상작업과 비교할 수 있다. 벩송이 이것을 주목했던 것처럼, 일반 관념은 생물학적 발전에서 가장 유용한 작동들의 반복에 의해, 이런 작동들에 가장 우호적인 상황들의 반복에 의해, 시작한다. 이처럼, 일반관념은 특히 동물적 삶에서 있었을 것이다. “초식 동물을 끄는 것은 먹는 풀 일반(l’herbe en général)이다. 마치 힘들처럼(우리는, 마치 성질들 또는 류들처럼 사유된 것들을 말하는 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느껴지고 겪게 되는 풀의 색깔과 냄새는 풀의 외부 지각작용의 무매개적인 자료들일 뿐이다.”의식적이 된 유사성, 조절할 수 있고 검증할 수 있는 재인식은 둘째 찰나[즈음]일 뿐일 것이다. 첫째 재인식은 행동 중인 유사성, 즉 살아왔던 재인식일 것이다. (466)
벩송에 앞서서 어떤 심리학자도 그렇게 빛을 밝히지 않았던 이런 구별은, 추상작업인 구체적 계산작용 대 그것의 차후 귀결이 될 추상물인 일반화 표상[재현] 사이에서, 애매함이 없이, 우리가 그것을 분석한 초기 단계에서 수학적 사유의 의미(방향)를 고정하도록 허락해준다. (466)
한편으로 생성적 표상[재현]작용들은, 예를 들어 우리가 좀 전에 말했던 실천적 질서의 추상작업들로부터 나온 푼돈과 사과의 재현작용들은, 교환의 실증적 계산작업 안에서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다. 교환은, 따라서 경제적으로 매우 근본적이며, 교환 대상들의 자연과는 독립적이다. 수학적 추상화는, 푼돈 또는 사과, 유리 장신구들 또는 장식 조각들, 탄알 창 또는 옛 장총 등에서 작동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수학적 추상작용은 실천적 추상작용과 반대 방향[의미]으로 갈 것이다. 이 실천적 추상작용은 질적으로 동일한 대상들을 위하여 단 하나의 이미지만을 보존하기에 이른다. 획일적 표상작용에서 잡다한 이미지들의 심성적 혼융(la fusion mentale)은 대상들의 혼합(une confusion)을 끌어낼 것이다. 수학적 추상작업은, 대상들이 여럿이 되게 하는 것에 관하여 주의를 끌면서, 혼합을 막는 것을 정확하게 목표로 삼는다. (467)
다른 한편, 만일 생성적 재현들이 교환의 작동에 무차별로 남아있다면, 그런데 그 재현들이 교환 작동의 물질적 조건들일 경우에, 그 교환 작동은 어떠한 추상물을, 즉 수열거 체계 또는 수들의 구별된 개념을 가정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 교환 작동은 단위(l’unité)의 양적인 개념을 가정하지 않는다. 단위의 용어는 완전수들을 열거하게 허락하는 체계에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용어는 체계로부터 마지막에 태어난 용어이다. 난다.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는 단위에서 질적인 성격을 유지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1740년에 뷔퐁의 붓 아래서, ‘단위는 수가 아니다’라는 이런 주장을 또 다시 발견한다. (467)
우리가 여기서 지성을 고려한 초기의 형식 하에서 수학적 지성은 활동성의 지대를 채울 것인데, 그 지대의 하부 한계는 종적인[개별적인] 추상물이고, 상위 한계는 수적인 추상물일 것이다. (467)
2절. 일 대 일 교환의 진리 La vérité de l’échange un contre un 467
§287. [교환에서 ‘일대일’이란 각 편에서 사물들의 수세기(기수법)이 먼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 양들에게 상응하는 동등성이 먼저이다. 상응성에서 2가 나온다. 그리고 이런 양편의 동등성에서 방정식도 나올 수 있고, 동일성의 단위는 그 다음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제시되었던 둘째 문제를 이제 갖는다. 비판을 위하여 그것의 기호화를 다 써버리기 위하여, 우리가 막 묘사했던 활동성은 어떤 귀결들을 허용하는가? 어린애가 사과를 받아오기 위해, 자기의 푼돈을 주기를 계속함에 따라서, 그는 자기 손에 가졌던 푼돈의 더미가 줄어드는 것을, 그리고 자기 앞에 사과의 더미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본다. 이런 계산작업이 끝났을 때, 그것의 지속이 어떻게 이어졌던지간에, 어린애는 사람들이 그에게 주었던 푼돈으로 교환해야 했던 것을 소유한다. 그는 이해한다. 계산작업들이 충실하고 정확했다면, 상인에게서 가져와야 했던 것을 그는 잘 가져왔을 것이고, 사람들이 상인에게 주라고 했던 것을 그는 상인에게 잘 주었다는 것을 이해한다. 우리는 교환의 탄생[시작]에서 수학적 종합을 파악한다. 요소적 추상작업도 가정하지 않듯이, 종합적 추상작용도 추상 용어를 가정하지 않는다. 후자는 생산물(le produit)이고 후자는 생산작업(productrice)이다. (468)
어린애는 집단을 아직 집단인 한에서는 알지 못하고, 게다가 전체와 부분의 관계도 알지 못한다. 그는 단지 푼돈의 더미와 사과의 더미를 볼 뿐이다. 그는 일련의 교환들 앞서 그리고 그 이후에 동일한 이미지들을 본다. 그러나 이 교환들의 사실로부터 그는 이미지들에게, 이미지들에 의해 무매개적 재현을 허용할 수 없다는 어떤 것을 첨가하게 되었다. 그 어떤 것이란 두 더미가 대상이 되어서 계산작업에 의해 서로서로 연결되었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계산작업을 함께 행했던 자들의 정신에 소개된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마치 이 생각은 두 사람 모두에게서 그들의 상호연관들의 규칙인 것처럼, 이들 각각에게 자신의 내적 활동성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들의 명백한 정식을 부여하기 위하여 그들 대신에 우리 자신으로 대체한다면, 우리는, 그 정식이 동등성의 생각이라고, 더 정확하게는 ‘동등하게 하는 것(le rendre équivalent)’, 즉 작동 중인 동등성(l‘égalité)이라고, 또는 그것의 독창적 의미의 힘에서 방정식(l‘équation)이라고,말할 것이다. 동등성은, 마치 집합들의 학설은 동등성을 잘 보게 하는 것처럼, 따로 각각을 측정되게 했을 항들 사이에, 그러고 나서 사람들인 그것들의 내속적 가치들을 접근시켰을 항들 사이에 비교로부터 결과되지 않는다. 동등성은 기수법(la numération)에 앞서 확립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수적인 가치를 모르는, 측정 개념과 독립적이면서 획일적이고 상호호환적인 상응의 절차를 모르는, 대상들의 다수성들을 둘(2)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468)
이리하여 동등성은 마치 탁월하게도 요소적 관계로부터 파생하는 것처럼 소개된다. 동등성은 과학적 질서 첫째 관계이다. 왜냐하면 동등성은 진리[진실]이기 때문이고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왜냐하면 동등성은 검증작업(vérification)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검증작업은 무매개적 조정의 가장 단순한 형식 하에서 소개된다. 의심하는 경우에, 말하자면 실천적으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불일치의 경우에, 사람들은 양편에서 계산작업에 대해 두 배의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리고 교환의 계속적인 작동들 각각이 실재적으로 또 단순하게 말하자면 반복하지 않고 또 빠뜨리지 않고서 실행했던 방식으로, 계산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이런 계산작업은 새로운 조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다음에도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끝 없는 이런 검증작업은 영속적으로 그 자체로 굽혀지면서, 그것이 인간에게 도달하게 해주는 가장 높은 정도의 확실성을, 즉 추론상으로 거기서 무오류성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유일한 형식을, 제공한다. (468)
§289. [대응 관계의 동일성에서 대상의 단위에서 없음(0)이 성립하고 무한(매우 많다)도 확립할 것이다. 그런데 기수법의 항목(대상)과 용어(논리기호)는 다른 것이다. 수를 다룬다는 것은 내적 심성의 합의(진리)가 먼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만일 사람들이 일대일 교환의 고려에 맞는 모든 암시들을 전개했다면, 사람들은 거기서 무한의 관념과 영(zéro)의 관념을 싹트는 것을 볼 것이다. 축적된 상품들을 마주하여 두 편을, 조약돌의 두 큰 더미 앞에 두 어린이들을 가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들에게 끝날 수 없을 것 같은 계산작업 가운데에서, 계산작업이 수학자들의 의식 안에 나타나는 가장 단순한 형식 하에서 무한의 용어를 솟아나게 하기 위하여, 이들이 용기를 잃고 멈추어 선 두 어린이들을 상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정신이 앞서가는 정도에서 그리고 정신이 앞서가는 사실 자체에 의해서 정신 앞에서 달아나는 계산의 항목, 그것은 용어이다. 이 용어에게로 수나열[기수법]의 무제한적인 진보가 끌고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용어가 수나열[기수법]의 규정된 체계의 구성작업과는 독립적이라는 것을 안다. (469)
다른 한편 만일 사람들이 교환의 두 상대편들에게, 이들 각각의 역할들을 고려하기 위하여 또 그리고 생각으로도 각각이 다른 편의 위치[자리]에 놓이게 하기 위하여, 충분한 지성을 부여한다면, 사람들은 영(zéro)의 생성을 생각하기에 도달할 것이다. 사과들을 푼돈들로 교환하는 어린이는 상인이 푼돈들과 사과들을 교화하는 것을 이해한다. 이때에 일방적 계산작업은 서로 반대되는 방향에서 두 과정들로 이중화된다. 두 편이 마주하고 있는 경우에 실천적 적용을 할 수 있는 구별은 결과에 불만일 수 있을 것이고, 일단 교환이 이루어지면 그들의 계산작업을 취소[무화]하는데 일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에 양편은 반대 방향으로 계산작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어린이는, 마치 상인이 했던 것처럼, 푼돈들에 대하여 사과들을 교환할 것이다. 상인은, 마치 어린애가 했던 것처럼, 사과들에 대하여 푼돈들을 교환할 것이다. 이 둘째 교환의 끝에, 그들은 둘 모두 이런 감정을 가질 것이다. 그 감정이란 그들의 각각의 입장들은 그들의 초기 입장과 동일하다는 감정이고, 둘은 자신들 사이에 마치 과거에 아무일 도 없었던 것 같은 감정을 가질 것이다. 이 감정을 수학이 나중에 부여할 언어로 반역해보시라. 그리고 당신은 영(zéro)으로부터 가장 추상적인 관념을, 그러나 또한 가장 정확한 또 가장 지성성인 관념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동일한 요소들로 형성된 두 계열들의 조합에 의해 제공된 결과이며, 그러나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방향잡힌 결과이다. (469)
모든 기술적 예상작업에 앞선, 또 상징적 표기작용에 앞선 심성적 활동과정이 얼마나 풍부성을 허용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은 쓸모없다. 그러나 지성을 위하여 수학 과학의 관념으로부터 유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이런 활동성이 동등성의 근본적 관계에서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활동성이, 지성에게 처음부터 내적 진리를 소통하면서, 관계를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규정된 푼돈들, 사과들의 더미, 즉 어떤 대상들은 이런저런 개체적[개인적] 의식에서 지각자용의 조건들에 상대적이다. 동등성의 관계는 반대로 각각에서 고려된 두 더미 사이에 확립되어 있다. 그리고 이 관계는 지각작용의 상황들과 독립적으로 그들에게 내속하는 가치를 획득한다. (470)
따라서 우리는 [덴마크 철학자] 회프딩(Höffding, 1843-1931)의 표현에 따르면 진리(la vérité)와 활동성(l’activité)[생명성]의 본질적 가치(les valeurs)들 보존할 수 있는 철학적 개념작업으로 이끌려 간다. 개념의 철학과 직관의 철학은, 양립불가능성에게 모순적인 두 가지 해석을 부여하기를 벗어나서, 그리고 그것들의 공통적 불충분성을 부셔버리게 하는데 쓰일 뿐인 목적 없는 논쟁들에서 중성화되기를 벗어나서, 이것들에 대해 양립불가능성을 가정하는 면에서 일치하였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과학의 초기 계산작업이 진실한 관계의 규정작업이라고 증거하기에 성공했다면, 원(le cercle)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470)
§290. [수학은 논리(추론)에서 나왔지만 그보다 더 멀리가고자 할 것이다: “스토아학자들에 따르면 덕목은 자연으로부터 나왔으며, 자연보다 저 잘하고자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리는 경험으로부터 나왔으며 경험보다 더 낫기를 원한다.”]
아마도, 계산작업의 용어를 출발점처럼 취급하면서 사람들이 “실천적 활동성의 영역에서 은유에 의해 빌려온 것으로서 명백하게 인간형태적 용어”에 근거한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의식을 위한 인간(人間)형태주의의 위험에, 그리고 종교적 의식이 어린애같는 과거의 미신을 뛰어넘었다고 하는 필연에 이의 제기 없이, 사람들은 수학이 신학에 동화할 수 없다고, 그리고 절대적이고 거의 신적인 진리에 대해 착각의상상작용에게 인간 과학의 지성을 희생시킨 일종의 “신(神)형태적”인 실재론을 거기서 두려워하는 것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470)
철학적 반성의 초기 물질[재료]는 작동하는[활동하는, 살아있는] 인간들이다. 우리는 실용주의와 더불어, 보다 정확하게 국가들의 지혜(la Sagesse des Nations)와 더불어, 물질적 관심은 태어나는 사유의 노력들을 주문하였다고, 그리고 필연은 기발함(l’ingéniosité, 천재성)의 어머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식들은 어떤 정해진 문제에 정확한 해결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곧바로 첨가할 것이다. 사실상으로 실재적 행동으로 보다 연설적인 일반성들에 더 열중한 동시대의 실용주의는, 소위 말하는 분석론이 시작하는 거기에서 멈춘 것이 잘못이었다. 인간 활동성의 다른 형식들이 소개하는 특별한 구별을 재인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인류로 하여금 동물 종들 가운데 예외적인 종을 만든 것에게 예외적인 장소[자리]를 예약할 수도 없었다. 우리들로서는 우리 스스로 임무로서 찰나를 노리는 것을 얻었다. 그 찰나에 다른 인간들과 마주하여 자리를 차지했던 인간들이 그들의 특별한 관점으로부터 작동하는 개체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찰나에 그들은 그들을 서로의 눈으로 정당화하는 행동의 공동 규칙을 위하여 서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 찰나에 모든 이들에 의해 무한정하게 조정될 수 있는 모든 이들에 의해 동등하게 가득 채워질 수 있는 조건들의 규정이 유용한[공리적] 실천으로부터 구별될 수 있으며, 그 찰나에서 결국에는 진리의 용어가 솟아난다. (471)
간단히 말하자면, 물질적이고 유용한 질서의 목적들을 향하여 인도된 의지가 앞서서[미리] 있었다면, 진리는 태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원한다면, 진리는 수단이다. 그러나 수단은 목적과는 모든 다른 특성들을 갖는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의 무매개적 활동성을 번역하였던 “실천적 삼단논법”에서, 목적(la fin)과 수단(le moyen)의 논리적 두 찰나들은 다음처럼 해체되었다(욕망이 말하기를 내가 마셔야 한다고 한다. 즉 여기서 마실 것이 있으며, 감각작용, 상상작용, 지성작용이 말한다. 그러면 곧바로 욕망은 마신다.).대전제(la majeure)는 욕망의 정언법이다. 소전제(le mineure)는 감각작용 또는 상상작용 또는 지성[추리]작용의 직설법이다. 조직화작업의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대전제들이 동물의, 특히 인간의, 활동성을 다곱의 목표들로 향하여 돌리려는 활동성이 나타날 것이고, 그러나 활동성이 여전히 욕망의 개체적(개인적) 질서로 남을 것이다. 이 대전제들의 어느 하나에게, 지성의 발달이 모든 기대를 넘어서는 복잡화의 관계들의 연쇄들을 변형하는, 수단들이 매여있게 된다. 사람들은 [심리학의] 병리학과 [생물학의] 미생물학의 연구를 생각하고,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삼단논법의 소전제를 정식화하기 위하여 필연적인 연구를 생각한다. 여기 운반할 수 있는 것이 있다(voici qui est potable). 사람들은 수단이 목적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수단은 아주 다른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스토아학자들에 따르면 덕목은 자연으로부터 나왔으며, 자연보다 저 잘하고자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리는 경험으로부터 나왔으며 경험보다 더 낫기를 원한다. 진리는 사물 속에 주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진리는 사물 위에서 특수하게 실행하는 인간적 행동 덕분에 솟아난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충실하고 균형잡힌 교환의 실행이 가장 단순한 조건들을 재인식하는 기회를 우리에게 준다. (471)
(13:15, 59S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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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428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전428-348) 고대 그리스 철학자. 폴리테이아(La République, Περὶ πολιτείας)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O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714 꽁디약(Étienne Bonnot de Condillac, abbé de Mureau, 1714-1780) 프랑스 철학자, 작가, 아카데미 회원, 경제학자.
감각론(Traité des sensations, 1754)[작가는 서문에서, 여성철학자이며 사롱주인이었던 페랑(Élisabeth Ferrand, 1700-1752)에게 존경의 뜻을 표했다. 본문에서 대리석 조각상의 예가 나온다. AI는 목동의 예가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1731 베르트랑(Bertrand de Genève, Louis Bertrand 1731-1812), 스위스 수학자. Developpement nouveau de la partie élémentaire des mathématiques prise dans toute son etendue, 1778.
1792 로바체브스키(Nikolaï Ivanovitch Lobatchevski, 1792-1856), 러시아 수학자. 비유클리드 기하학, Géométrie imaginaire, 괴팅겐 아카데미 회원. 부인 (Varvara Alexeyevna Moiseyeva, 1812–1885).
1798 꽁트(Auguste Comte, 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 1798-1857),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실증주의 창시자. Cours de philosophie positive (1830-1842) Catéchisme positiviste (1852) Système de Politique positive (1851-1854) Synthèse subjective (1856)
1821 헬름홀쯔(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 프러시아 생리학자, 물리학자. 유체 동역학, 소리와 열의 지각이론과 열역학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1826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1866)[마흔] 독일 수학자, 위상학 미분기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
1835 메레(Hugues Charles Robert Méray, 1835-1911) 프랑스 수학자. Sur les propriétés générales des racines d'équations synectiques (thèse de doctorat), 1858.
1839 조이텐(Hieronymus Georg Zeuthen, 1839-1920), 덴마크 수학자.
1843 회프딩(Harald Høffding, ou Harald Höffding, 1843-1931), 덴마크 철학자. 칸트 비판주의 연속성, 환원적 물질주와 단절하고 실증적이고 비판적 입장이라 한다.
1845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독일 수학자. 집합론의 창안자.
1848 딴느리(Jules Tannery, 1848-1910), 프랑스 수학자. 박사학위논문: <Propriétés des intégrales des équations différentielles linéaires à coefficients variables, 1874>.
-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산술학 강의(Leçons d'Arithmétique théorique et pratique 1894)
1857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 알사스 유대계 출신 프랑스 사회학자, 인종학자. 인류학자.
1859 벩송(Henri Bergson, 1859-1941), 프랑스 철학자. Matière et mémoire, 1896 p. 173.
1862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943) 독일 수학자. 수학의 형식주의자 Grundlagen der Geometrie (Les fondements de la géométrie) en 1899.
1872 마스카르(Jean Mascart, 1872-1935) 프랑스 수학자, 천문학자.
(14:30, 59SMG) (12:10, 59TL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