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초까지만해도 눈과 함께 몰아닥친 한파로 몸을 웅크렸는데 불과 며칠만에 거짓말처럼 날이 풀렸다. 참가인원이 남녀 각각 6명씩 총12명으로 지난 2년이래 최다? 참석이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다. 날이 풀린데다 코스까지 신선해서 만들어낸 효과라는 합리적 추측을 해본다.
사실은 지난 달로 2년간 한양도성길과 서울둘레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길을 계획해야했다. 서울을 벗어나면 걸어볼만한데가 많았지만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몇몇분들게 자문을 구하니 양평물소리길과 수원둘레길이 거론되었다. 카카오맵으로 이동소요시간을 알아보니 대략1시간 30분대정도다. 이정도면 베리 굿이다.
오늘은 양평물소리길 1코스다.
양평하면 두물머리,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연상된다. 출발부터 가슴이 뛰며 설레인다.
그러다 예상밖의 변수를 만났다. 구리역에서 경의중앙선 환승하는데 30여분을 지체하게 된거다. 집에서 각자 출발하신 분들과 신원역에서 10시4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을 못지키게 생겼다. 서울을 벗어나면 배차간격이 길어져 최소 30분이상이라는 사실을 놓친거다. 서울과 같으려니 생각하고 이론상으로만 평일에 세운 계획의 결과다. 이른 바 탁상공론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가보다. 그래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니 감사하다.
물소리길 리본은 세로방향으로 파랑+노랑(정방향 파란색 꺽쇠, 역방향 노란색 꺽쇠)이다. 출발전 간단한 설명을 하고(양수역~신원역, 10.5km, 3시간소요) 역방향으로 걸었다. 우리말고도 등산객들이 꽤 보인다. 날이 좋아서인가보다. 우리는 그들과 간격을 두고자 인증샷을 하고 출발이다. 길 초입이 넓어 삼삼오오 무리지어 걸어도 문제없다.
곧바로 완만한 오르막 초입에서 '몽양 여운형 기념관과 생가터'를 만난다.
1986년생인 여운형은 외조부의 태몽('태양이 떠오르는 꿈을 꾸고 낳았다.')따라 ‘몽양’이라하였다. 그는 부친상 이후 노비문서를 불살라 집안의 노비들을 풀어주었다. 안창호 연설에 감화되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1917년 중국국민당 쑨원과도 교제하였다. 잠시 공산운동에 참여했지만 평소 ‘나에게 독립운동은 평생의 사업이요. 통일된 조국은 나의 마지막 소원이다,’ 말한 민족주의자였다. 1947.7월 극우파에 의해 암살되었다.(1948.8 이승만 정권수립) 재일교포, 와세다대 강덕상교수는 해방후 외세의 간여가 없었다면 여운형이 민족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라 말했다. 1945.8 해방후 당시 한반도는 혼란스러웠고 미국과 주변 강대국들은 그들의 말을 잘 듣는 꼭뚝각시가 필요 했을거다. 그 결과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겨울풍경은 쪽진 여인의 머리처럼 단아하다. 나목들 사이로 산길을 따라 줄줄이 오른다. 계곡처럼 움푹 파인 사잇길로 하늘이 보인다. 왼쪽은 부용산 정상, 오른쪽은 청계산 정상 이정표다. 웬일인지 먼저 오른 이들이 멈춰 선 채로 수군대고 있다. 올라가 살펴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내리막 눈길이 펼쳐져 있다. 내리막길은 볕이 안든 음지로 얼마전 내렸던 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에 몇몇분은 준비한 아이젠을 꺼내지만 대부분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움직이지 못한다. 유심히 살펴보니 내리막이 길지 않고 다행스럽게 빙판은 아니다. 무릎에 힘을 주고 길옆 눈을 밟으며 걸으면 된다 설명하고 앞장서서 걸었다. 다행히도 미끄러지는 사람없이 내려왔다.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침 못드신 분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마침 평상이 눈에 띈다. 그런데 우리 인원이 다 앉기에는 다소 비좁다. 그러나 눈길에서 더 좋은 장소를 찾으리란 보장이 없다. 산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는 일이다. 눈을 털고 대충 닦은 뒤 돗자리를 펼쳐 저마다 가져온 음식을 내놓으니 산중 뷔페가 따로 없다, 눈밭위에서 준비한 인삼주를 꺼내 한잔씩 돌렸다. 입안에 인삼 향기가 진하게 퍼지며 살짝 독한 목넘김이 최고다. 이어서 복분자와 막걸리도 나온다. 처음엔 모자랄 것 같던 나눔은 끊임없이 이어져 가나의 혼인잔치를 연상시킨다.
배를 채우고 후식까지 먹어 든든하다. 이제 서서히 출발이다.
아이젠과 스틱을 꺼내들고 일부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 지팡이를 만들어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온이 영상이라 빙판은 아니다. 밟으면 발바닥끝으로 쿠션감이 느껴진다. 빽빽하게 곧게 자란 잣나무숲이 장관이다. 숲을 통과하니 눈앞에 설원이 펼쳐진다. 마치 겨울영화에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다들 웃음가득 행복한 표정들이다. 서서히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별장같이 지어진 하얀색 전원주택이 나타난다. 물소리도 들린다. 거의 다 내려온 모양이다. 목왕2리 마을 이정표와 함께 아스팔트 도로를 만난다.
다시 도로를 벗어나 마을길로 접어드니 단청을 곱게 입혀놓은 사당이 나타난다. '한음 이덕형 묘 및 신도비'다. ‘한음?’이라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귀에 익은 단어이다. 혹시 ‘오성과 한음’? 바로 그렇다. 이덕형 선생은 조선 선조, 20세에 문과 별시에 급제한 뛰어난 문장가였다,이들은 소꼽친구로 장난이 심하고 기지가 뛰어나 수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인간의 약점과 본성을 조명한 해학 문학으로서 가치를 가진다.
길은 가정천 개울을 따라 이어진다. 물소리가 제법 커서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부용2리 마을회관을 지날무렵 리본이 각기 다른 두방향으로 표시되어있다. *개울 건너방향과 직진방향에 각각 리본이 있다. 망설이는 사이 선두는 이미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저 멀리 양수리 성당과 그 너머로 양수역이 보인다. 가는 길에 있는 성당이 있으니 다들 그리로 향한다. 12명, 서로 보폭이 다르다보니 대열이 꽤 길어졌다. 아직 후미 2명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다.
후미를 기다리며 좀전의 두방향 표시가 개운치 않아 카카오맵으로 ‘물소리길 1코스’경로를 확인해보니 과연 다르다. 부용2리 마을회관에서 개울을 건너 ㄷ자 모양으로 (양수1리마을회관-용늪삼거리-양수역)걸어야 했었던거다. 살짝 아쉽지만 대신 성당에 들를수 있음을 위안 삼기로 했다.
바쁜 일상속에 찾은 양평! 산과 물이 어우러져 시종 편안함으로 힐링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느닷없이 만났던 겨울 눈길은 덤으로 받은 선물이었다. 끝으로 성당에서 각자 기도로 마무리 할 수 있어 좋았다. 오늘 참여하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주님 평화가 늘 함께 하시고,행복한 인생길 건강하게 걸어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