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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점초등학교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정하준(13)
천연 기념물 제417호인 구문소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상반기 까지 학교에 등,하교를 하며 그곳을 지 나다니던 길목이었다.
구문소 에서 양조장 쪽으로 약 10m 지점에 반듯한 기와집에 마루가 있는 남인이네 집이 있었다. 또 구문소 에서 학교 방향으로 약 15호여 가구가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그곳앤 먹거리 집들이 있었다. 또 여친 정자네 집도 아마도 그곳에 있었다고 기억이 된다.
인공굴 안쪽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옛날엔 고아원이 있었으나 일반 가구로 개조하여 그곳엔 백용운 이가 있었고 그 옆으로 천순자네 집과 아담한 묘봉이 하나 있었다. 왼편으로 용운이 집을지나 골짜기로 조금 올라가면 소나무가 여러그루 있고 넓은 잔디밭이 있는곳이 초등학교 소풍을 갔던 곳이다. 그 옆으로 논들이 많이 있다. 아마 먼 옛날엔 인공굴 왼편 산하나를 끼고 황지에서 흘러온 물이 그 산을 빙 돌아 학교옆으로 흘렀던 모양이다.
구문소 에는 간혹 투신 자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마다 비가 왔다고 한다. 부정한 것을 씻어 내기 위한거라나...뭐라나...? 언젠가 한번은 억수같은 비가 오는날 그 동네에 팔이 하나 없는 (아마 상이군인 이었다고 생각됨) 건장한 사람이 구문소의 자개문 안쪽 마당소 에서 한쪽팔로 헤엄을 치며 누군가를 구명하는것 같았다. 그 광경을 많은 사람들이 가슴 조아리며 구경한듯 싶다.
사실 자개문 안쪽은 들여다 보기만해도 오금이 저리다.그럼에도 한팔로 누군가를 구명하는 그분의 용 기에 찬사를 보낸다. 옛날 그시절에 그 구문소엔 나루배가 한척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이상향 (상상의 나라) 으로 가는 곳에는 꼭 석문 (石門) 이 있는데 지리산과,북두류산에도 유사한 이야 기가 전해지지만 우리나라에서 구문소의 석문이 대표적인 이상향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늘 함께했던 그 구문소의 유래를 지금부터 이야기해 볼까 한다.
ㆍ구문소 ― 황지에서 흘러오는 강물이 동점동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큰 석문(石門)을만들 고 깊은 소를 이루었는데 구무소라 한다. 강물이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穿川]라고 부르기도 하 는 구무소는 한자로 구문 소(求門沼)라고 쓰기도 한다. '구무'란 말은 구멍의 옛말이니 구무소는 구멍 소라는 뜻이다. 구무소 안쪽에 있는 마을 을 구무안이라 하고 한자로 '혈내촌(穴內村)'이라 쓰는 것을 봐도 구무소는 구멍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위의 낙 락장송(落落長松)과 어우러져 풍경이 좋은 구무소는 높이 30∼40여m, 넓이 40m 정도되는 커다란 무지개 다리 처럼 생긴 석회동굴로 가히 세계적이라 할 규모이다. 동양 최대라고 자랑하는 삼척 시 대이리 환선굴(幻仙窟)입구 보다 몇 배나 큰 구무소는 주위가 모두 석회암으로 되어있다. 지금으로 부터 약 3억년전부터 1억5천만년 사이에 형성 되었다고 하는 구무소는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간 도강 산맥(渡江山脈)이라는 특수한 지형을 갖춘 곳으로 수능천석 (水能穿石)이란 말이 실감나는 세계에서도 그 유형을 찾기 힘든 기이한 곳이다.
주위에는 기암절벽과 폭포가 어우러 져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어 옛부터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 는 곳이다. 구무소는 마당소[廣場沼], 자개문(子開門), 용소(龍沼), 삼형제폭포(三兄弟瀑布), 여울목 [灘項], 통소(桶沼), 닭 벼슬바위[鷄冠岩], 인공굴(人工窟) 혹은 용천(龍泉 또는 湧泉)등으로 불리는 구 문팔경을 안고 있는데 옛날 가뭄 때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엄종한(嚴宗漢)의 용궁(龍宮) 전설로 유명 하다. 또 신라때 효도왕자의 전설도 유명하다.
구문소의 몇가지 전설중 가장 현실적인 것은, - 원래 구문소로 흐르는 물이 구문소 안쪽 마을인 구무안 에이르러 오른쪽으로 휘돌아 사근다리 쪽으로 흘러 구문소 옆 산을 휘감아 돌아 초기 동점초등학교옆 마리거랑 (말거랑) 쪽으로 흘러 내려와 철암천과 만났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큰 홍수가 나서 물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이때 황지 화전동의 싸리밭골 에서 큰 싸리나무가 떠내려 오다가 구문소의 석벽 (石壁) 부근에서 사근 다리쪽으로 급히 방향을 틀지못하고 그대로 석벽을 강타하여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며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그 이후로 사근다리를 돌아 마리거랑으로 흐르던 물이 뚫어진 구멍으로 바로 흐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는 물이 낙동강 1300리를 지난다고 한다. 구멍을 뚫은 싸리나무는 안동 영호루 누각을 지을때 상량감 (집을 지을때 기둥에 보를 얹고 그위 마룻 대를 일컬음) 을 황지 싸리나무로 했다고 한다. 옛날엔 길이 좋지않아 그 나무를 물에띄워 안동까지 가져갔는데 그 싸리나무로 인하여 뚜루내 (구문 소) 가 되었다고 한다. 구문소는 유로 변천의 본보기 이며 사근다리 쪽의 모래밭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두번째 전설은 신빙성이 매우 낮으나 재미로 알아보면, 옛날 온세상이 물 바다로 되었을때 태백산 아래 황지,장성 일대도 물에 잠겨 있었다. 그때 하우씨 [(夏禹氏): 중국 삼성오재 (中國三星五宰) 의 한사람으로 단군께 치산치수(治山治水:산과 물을 다스리는법)의 법을 배움] 가 나타나 구문소의산을 칼로찔러 뚫어 물이 빠지게 하였다고 한다.
자동차와 사람이 다닐수 있도록 뚫은 인공굴 위쪽 석벽에 새겨놓은 우혈모기 (禹穴牟寄) 라는 글씨는 두번째 설화를 바탕을한 내용인데, "중국하우씨가 뚫은 구문소와 기이하게 닮았다" 는 뜻으로 1937년 일제 강점기에 석탄광산을 개발 하면서 일인(日人) 들이 만든 것이다. 산자락에 구멍하나 내고는 하우씨와 동격이 되고싶은 충동과 만용에 우왕의 걸작 운운 하는것이 참으 로 가소롭기 짝이없다.
새번째는 더 황당 하지만 재미로 알아보면, 구문소의 구멍이 뚫리기전에 석벽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철암천이 큰 소(沼) 를 이루어 그 소에 청룡 이 살고있었고, 서쪽에는 황지천이 큰 소(沼) 를 이루고 그 소에 백룡이 살았다고 한다. 두 용은 서로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항상 다투었다. 매일 석벽 꼭대기 에서 싸움을 하였는데 항상 뇌성이 일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천지를 분간치 못하고 좀체로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백룡이 꾀를내어 석벽 위에서 싸우다 내려와 석벽 밑을 뚫으며 공격을 하여 청료을 물리 치고 그 여세로 승천하였다고 한다. 백룡이 승천할때 지나간 산을 용우이산 이라하는데 구문소 앞에 솓은 산 이다.
구문 팔경의 내력은 이러하다.
*뚜루내 ―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 갔다고 뚜루내라 한다. 구무소를 이르는 말이다.
*삼형제폭포 ― 구무소에서 가장 윗쪽에 3개의 폭포가 나란히 쏟아지는 곳이다. 높이 약 6∼7m로 황지천의 물이 이곳에 와서 세갈래로 갈라지며 폭포를 이루어 떨어진다. 옛날 폭포 윗쪽에서 삼형제가 물놀이를 하다가 떨어져 익 사하며 삼형제가 다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 그때 삼형제 용이 승천하며 바위절벽을 치고 올라가서 생긴 것이 바로 삼형제폭포라 한다. 선조 4년(1571)에 경상감사가 12월 18일 진시(辰時)에 낙동강 상류의 물이 끊어졌다고 장계 를 올려 보고하자 이때부터 민심이 흉흉해 졌다. 전하는 말에 낙동강의 물이 끊기면 국가에 큰 난리가 난다고 하였 다. 이것을 낙동강의 절류(絶流)라 하며 지금의 용소위에 있는 삼형제폭포의 물이 끊겨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 은《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로 그 후 임진년에 왜군이 쳐들어와 강토를 유린하자 백성들은 구무소의 영험 함을 확인하였고 신령스런 곳으로 두려워 하였다.
*용소 ― 삼형제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아래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소가 있는데 용소(龍沼)라 한다. 용이 살고 있다고 하여 용소라 하며 옛날 나라에서 가물 때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동국여지승람》 에 보면, "황지의 물이 남쪽으로 30여리를 흘러가서 작은 산을 뚫고 남으로 나오니 뚜루내라고 한다. 뚜 루내는 경상도 낙동강의 근원으로 관(官)에서 제전(祭田)을 두고 가물 때 기우제를 지낸다(黃池水南流 至三十餘里 穿小山南出 謂之穿川 卽慶尙道洛東 江之源 官置祭田 天旱禱雨)"라고 한 것이 바로 이곳이 다.
*여울목-물살이 세게흐르는 턱진곳.
*통소 ― 여울목과 마당소 사이에 위치한 깊은 소로 깊이 5∼6m 넓이 4∼5m 되는 암벽이 흡사 소여물통처럼 생 겼는데 그리로 물이 흐른다. 물 표면에 나타난 암벽의 높이가 5∼6m이지 물 속의 깊이는 알 수 없다. 통(桶)처럼 생겼다고 해서 통소(桶沼)인데 통소에는 지금도 1m가 넘는 뱀장어가 살고 있고 엄청나게 큰 메기도 살고 있다. 황 지천이 썩어 물고기가 살 수 없는데도 통소에 뱀장어와 메기가 있는 것을 보면 통소 안쪽에 맑은 물이 나오는 곳이 있는 것 같다. 통소의 물밑 한 가운데에는 촛대바우라는 바위가 물 속에 솟아 있는데 아주 가물면 나타나고 평소에 는 보이지 않는다. 40여년 전 어떤 여인이 비관 자살을 하려고 통소에 뛰어 들었으나 촛대바우에 걸려 살아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몹시 가물어 촛대바우가 물 위에 살짝 나왔는데 물에 뛰어든 여인이 본능적으로 촛대 바위를 붙잡 고 그 위에 올라 앉아 울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구해 내었던 것이다. 30여년전 모 신문사에서 통소에 철제 구름다 리를 가로 놓았었는 데 장마에 유실되었다. 30여년 전만해도 낙동강에서 은어 떼가 이곳까지 올라왔고 통소에서 여 울목으로 뛰어 오르는 은린옥척(銀鱗玉尺)의 비약은 가히 볼만한 구경거리 였다.
*마당소 ― 마당 처럼 넓다고 마당소인데 흔히 구무소하면 이곳 마당소를 말한다. 매우 넓어 수백평이나 되며 옛날에 는 이곳에서 뱃놀이도 하였다. 엄씨가 용궁을 갔다 온 곳이기도 한 마당소에는 50여년 전만해도 열목어가 살았다. 마 당소의 천정(天井)에는 크고 작은 석회동굴이 있어 굴 비둘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30여년 전만해도 구무소의 굴 비둘 기들은 수백마리에 달해 떼를 지어 날아 다니는 모양이 장관을 이루었으나 근년에는 그 수가 급격히 줄어 보이지 않 는다. 마당소의 천정은 큰 무지개 모양의 구름다리 처럼 생겨서 그 모양이 천하에 둘도 없는 장관인데 옛 문헌에 보면 지부석(地負石)이라 부르기도 하고 부영(負嶸), 석쟁(石觴)이라 하기도 하였다. 구무소의 거대한 구멍을 자개문이라 하며 이상향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여겼다. 40여년 전만 해도 구무소의 천장에는 큰 구렁이들이 많이 서식하여 굴 비 둘기들을 잡아 먹었다. 어떤 때는 굴 비둘기들을 잡아먹던 구렁이가 실수를 해서 천정에서 마당소의 물 위로 털썩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하곤 하는 데, 물 위에 떨어진 구렁이는 한동안 움직이질 못하다가 천천히 사라지곤 하였으며 그 길이가 두 발 정도 되는 대형이었다.
*닭벼슬 바우 ― 인공석굴 안쪽 남쪽 방향에 높이 약 10m, 넓이 약 6m, 두께 약 0.5∼1m 정도되는 넓적하고 얇 은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닭벼슬 바우라 한다. 얇고 넓적한 바위가 윗쪽은 삐죽삐죽하여 흡사 닭의 벼슬처럼 생겨 서 붙은 이름이다. 그 바위 밑에서 담쟁이 덩굴이 뻗어 올라가 바위면에 붙어 자라고 있어 가을에 담쟁이 덩굴의 잎이 단풍이 들면 바위 전체가 붉은 빛을 띄어 영락없이 장닭의 벼슬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깝게도 근래에 몰지각 한 사람들이 담쟁이 덩굴을 잘라버려 지금은 가을이 되어도 붉은 빛을 띄지 않는다.
*용천(龍泉 또는 湧泉) ― 용소와 여울목 사이의 도로 아래에 바위 틈이 있어 시원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 하 마의 입 처럼 떡 벌어진 바위 속에서 샘이 솟아 2m 정도의 폭포를 이루며 쏟아지는데 그 광경이 기이하게 생겼다. 옛날 용소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이곳 용천의 물을 이용하여 제수를 장만하였으니 제천(祭泉)이라 할 수 있다. 원래 구무안 사람들의 식수원이었으나 고수골의 연화광업소에서 둑을 막고 광미침전지(鑛尾沈澱池)를 만들고 부 터는 샘물에 악취가 나고 중금속에 오염이 되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샘이 나오는 곳도 석회동굴로 되어 있어 그 속에 용이 산다고 하여 용천(龍泉)이라 불리기도 하고 그냥 맑은 샘물이 솟아 나온다고 물 솟을 용(湧) 샘 천(泉) 하여 용천(湧泉)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개문 ― 구름다리 처럼 생긴 구무소의 거대한 석굴(石窟), 곧 뚜루내의 지부석을 자개문(子開門)이라 한다.《정감 록》에 보면, "낙동강의 최상류로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에 커다란 석문(石門)이 나온다. 그 석 문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축시(丑時)에 닫히는데 자시에 열릴 때 얼른 그 속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 년이 없으며 병화(兵禍)가 없고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오복동(五福洞)이란 이상향이 나온다"라고 하였다. 그 오 복동[牛腹洞]은 지금의 황지, 장성 땅인 태백시 일원을 말하고 석문은 낙동강이 산을 뚫고 지나간 뚜루내인 구무소 의 크고 둥근 구름다리 형상의 석굴이 바로 석문인 것이다. 구무소의 석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이상향의 관문으 로 알려져 있다. 《정감록》〈삼척국기노정기〉(三陟局基路程記)에 보면, "…기이한 돌이 있으니 이름하여 지부석이라, 그 형상은 활과 같고 양쪽 기둥이 섰으니 이것이 석문이라, 자시에 열리고 축시에 닫히니 열렸을 때 얼른 그 속으로 들어가면 궁해염지지의 이상향이 있느니라(…有奇異石 號曰地負石 其形如弓兩莖立 此是石門也 子時開丑時闔 乘其時入 其門則 有村曰 弓海鹽之地)"하였다. 여기에서 자시에 열린다는 자시개(子時開)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자개문(子開門)이라 부 르게 되었다.
엄종한의 백구 백병설
-13회 정하준-
비녀소와 구문소의 전설 (퍼온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는 나북댕이라고 하는 자연부락이 있다. 그 옆에는 운곡천이 흐르고 그 천(川)에는 낭자가 비녀를 잃은 곳이라 하여 ‘비녀소(沼)’라는 곳이 있다. 또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고갯길 도로변 오른쪽 낙동강 상류에 ‘구문소(求門沼)’라 하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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