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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구원의 장소 성소 뜰
https://www.youtube.com/watch?v=dysw4o-OebQ
딤후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오늘 말씀은 믿음으로 무엇에 이르는 지혜를 말하고 있는가? 구원에 이르는 지혜
무엇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고 하는가? 성경이
오늘 그 성경이 가르쳐 주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 함.
구약의 제사제도를 통해 나타난 성소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넘어 아버지 앞까지 이를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음.
오늘 그 첫단계인 성소 뜰을 통하여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음.
1.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장소
우리의 구원은 어디서 이루어 집니까? 하늘에서 이루어 집니까? 이 땅에서 이루어 집니까?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하늘이 아니고 이 땅 우리가 살아가는 땅입니다.
뜰은 그러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 세상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출 27:18 “뜰의 장은 백 규빗이요 광은 오십 규빗이요 세마포장의 고는 오 규빗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언급된 뜰의 포장은 성소와 백성들이 사는 곳을 구별한 장소였음.
떠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출 19:11-12 “예비하여 제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 시내산 사면을 지경을 정하여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셨음. 왜 그렇게 하셨을까?
죄인은 하나님 가까이 오면 죽게 됨으로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셨음.
우리도 하나님 가까이 나아갈 때 어떻게 나가야 할까요?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셨을 때 취한 이 조치는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일에 어떤 마음으로 나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런데 성경은 이 뜰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장소로도 언급됨.
계 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뜰을 왜 이방인에게 주셨을까?
구약 때처럼 들어오면 다 죽어버리도록 하셨으면 믿을 사람 더 많이 생길 텐데 라는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성소가 짖 밟혀서 우리는 42달 동안 진리가 회복되지 못하고 짖 밟혀혀 있었던 1260일을 생각하게 됨.
그리고 우리의 구원은 이러한 세상에서 이루어 져야 할 것임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 이해할 수가 있음.
이해가 되는가?
이 세상은 사탄에게 내어 준바 되었음. 그런 가운데 예수께서 오셨고 우리도 이런 가운데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임.
또 이런 말씀이 있음.
계 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은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가리키는 상징어임.
이러한 죄악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
그리고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한가? 사탄에게 내어준바 된 그 세상에 오시어서 당신의 몸에 죄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릴 구원하셨다는 이야기가 성소뜰에 이야기라는 것임.
우리에게 성소를 주시어 그러한 사랑을 알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되길 바람.
2.성소의 출입문
성소 출입문에 대하여 잠간 살펴보겠음 성소 출입문은 무슨 문인가 라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올려 놓았음.
물어볼까요? 성소 출입문은 무슨 문인가요? 성소 출입을 위한 문임.
성소는 하나님의 보좌로 나가는 길이라고 할 수가 있음.
그리고 성소 뜰은 구원의 과정을 보여주는 장소라고 할 수가 있고요,
그리고 그 성소 뜰로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꼭 문을 거쳐서 들어가야 됨.
그 성소 문을 이렇게 만들라고 지시 하셨음.
출27:14-16 “문 이편을 위하여 포장이 십 오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15문 저편을 위하여도 포장이 십오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16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 짠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찌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성소구조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씀드릴 시간이 없고요.
성소의 뜰은 세마포 포장으로 둘려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는 입구는 동쪽에 있고요.
오늘 말씀은 출입문 양쪽으로 기둥 셋의 포장으로 되어 있다는 말씀이고요
그 가운데 20규빗 약 10메타의 넓이의 문이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은 천의 문이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성소에는 취장으로 된 출입문에 세계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문은 이스라엘 진영과 성소 뜰 사이에 있는 성소 뜰로 들어오는 문이고
두 번째는 뜰과 성소사이에 있는 문이고,
세 번째는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임.
그 문들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문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성경 절 있죠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무슨 문이라고 하십니까? 양의 문
왜 양의 문이라고 하셨나요?
양이 들어가는 성소의 문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의 문이라고 하면 그게 무슨 말씀인지 아는 말씀이라는 것임.
둘째 문은 성소 뜰에서 성소로 들어가는 문, 그리고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 이 모든 것은 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것임,
그런데 그 상징적인 문들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시사 없어 졌음.
그리고 새로운 길을 열어 놓으셨다고 기록된 말씀이 있음,
히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무슨 말씀인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때 성소에서는 제사장들이 유월절 성소 봉사를 하고 있었음, 오후 세시에 양이 죽임을 당하는 시간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일이 발생하였음.
그리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지성소로 가는 길이 활짝 열렸음.
성소가 있을 동안은 지성소로 나가는 길이 양의 피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가 있었는데 그 양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시어 당신께서 죽으심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었던 휘장을 찢어 놓으심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임.
그리고 주님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음.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누구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는가? 나 예수로
하나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되신 예수그리스도께 오늘도 나아가는 시간 들이 되길 바람.
3.성소뜰에 있는 세가지
(1),제물,(2)번제단 (3)물두멍
이 세가지는 다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리키고 있는 것들임.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리키는지 짧게 좀 살펴보도록 하겠음
(1)제물
레 16: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레 16:5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 제물을 위하여 수 염소 둘과 번제물을 위하여 수양 하나를 취할 지니라”
아론이 성소로 들어갈 때는 제물로 무엇을 가지고 들어가고요? 수 송아지와 수양
회중이 들어 갈 때는요? 수 염소와 수양.
왜 재물의 차이가 있는가? 똑 같은 사람인데.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임.
왜 그럴까요? 직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시고 회중의 본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함.
성소 뜰에 있는 이 제물은 누구에 대한 상징인가?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누구에 대한 상징이라는 것입니까?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죠.
아담이후 얼마나 많은 양과 소들이 죽임을 당하였을까?
미 6:6-7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이곳의 내용은 수 많은 제물들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로 천천 만만의 양 어떤 학자들이 말 하는 천천 만만의 수=(1000x1000)x(10000x10000)=백조마리
어쩌면 그 보다도 더 많은 양들이 죽임을 당하였을지도 모름.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그 계산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백조x양가격(100.000)=1억만조원이라고도 하는가?
여하튼 상상 할 수 없을만한 금액이 예수님의 상징물로 하나님께 드려진바 되었음.
왜 그러한 짐승들이 죽어야 했는가?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함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무엇으로 정결케 된다고요? 피로서 그것을 에덴에서 보여주셨음.
에덴에서 피로서 정결하게 된다는 말씀 읽어보셨나요?
여기 있습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범죄하고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를 위한 가죽옷은 어떤 가죽이었을까요?
그 답이 이곳에 있습니다.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죽임을 당한 무슨 생명책이라고 합니까? 그리고 언제 죽임을 당하였다고 하나요?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편에 원시 성소를 창설하시고 양의 죽음으로 그 피로서 정결하게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한 가죽옷 이후로 예수님을 상징한 짐승들이 매일 매일 죽어나갔음.
예수님께서도 매일 매일 죽으셔야 하였습니까?
양은 상징이기 때문에 매일 죽어야 하였고, 예수님은 실체 이시기 때문에 한번만 죽으시면 그 죽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 되었음.
그런 말씀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음.
히 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있기 때문에 상징적인 양의 피가 필요 없게 되었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제물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인하여 감사하게 되길 바람.
(2)번제단
성소 뜰에 있는 내용 두 번째는 번제단입니다.
뜰에는 제물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번제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번제단을 이렇게 만들라고 지시하였음.
출 27:1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출 27:2-8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지며 3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4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고 5그물은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곧 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6또 그 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7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단을 메게 할지며 8단은 널판으로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많은 말씀을 주셨는데 가장 중요한 말씀은 하늘이 보여준대로 만들어라 라는 말씀임.
번제단은 무엇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 진 것인가?
글자 그대로 번제를 위한 단입니다.
번제는 왜 필요 하였습니까?
이제 회중 중 한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우리는 무릎을 꿇고 회개하면 되지만 그당시는 그렇게만 해서 되지 않았습니다.
죄인은 양을 가지고 와서 성소 뜰로 와서 제사장에게로 옵니다.
그럼 죄인은 그 양의 머리에 손을 얹는 의식을 통해 죄인의 죄가 양에게로 전가 됩니다.
그럼 죄인은 죄가 앙에게로 옮겨 졌으니 죄 없다 함을 받습니다.
죄인이 누구에 의하여 죄 없다 함을 받는 것입니까? 양에 의하여서.
그렇게 살다가 또 죄를 지으면 다시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또 반복하여 제사를 드려야 함.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 없다 함을 받지 못함.
그럼 죄인이 용서함을 받는 것은 자기의 어떤 공로로 용서함을 받는다는 것인가?
자기의 공로가 아닌 양의 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가?
자기의 공로가 아닌 100% 짐승의 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음.
그런일이 어디서 일어났었다고요?
성소뜰 다른 말로는 성소 마당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성소 마당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가르쳐 주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럼 죄를 지을 때마다 누가 계속하여 대신하여 죽어야 한다는 것인가?
오늘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신 하나님 감사한 일인가요?
히 9:11-1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우리가 양을 잡아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예수께서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성경에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히 9: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성소가 있다면 둘째 언약에도 무엇이 있다는 말일까요?
둘째 언약에소 무엇이 있다고요? 섬기는 예법과 성소가 있다..
첫 언약에는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다면 둘째 언약에는 하늘에 속한 성소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인가?
첫째 성소에서 죄인의 죄는 양에게로 전가되고 양의 몸은 번제단 위에서 불 태워 지고 양의 피는 받아서 성소안으로 들어가게 됨.
그럼 상징적으로 죄인이 뜰에서 의롭
첫째 성소는 둘째 성소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시각자료였음.
하나님 보좌로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을 양의 문을 통하여 양과 함께 들어온 죄인은 이제 양의 죽음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양의 피를 통하여 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번제단과 제물을 통한 뜰에서의 과정임.
번제단은 십자가라고 할 수가 있음.
성소 뜰에 있는 한가지 더 있음,
(3).물두멍
바로 물두멍입니다.
출 40:6-7 “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출 30:18-21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19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21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물두멍을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두고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성소들어갈 때에 씻으라
물두멍에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면 죽음을 당하였음.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를 구원케 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의 모든 죄들을 씻어 정결케 하시는 은혜가 있음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할 수가 있음.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중생의 씻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두멍에 씻음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는 것을 의미함.
우리는 지금 성전 뜰에서 이루어지는 죄인이 의롭게 되는 방법을 함께 살펴보고 있는 것임.
그것을 예수께서는 다시 나는 것으로 설명해 주셨음.
성전 뜰은 죄인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지
또는 어떻게 다시 나게 되는지를 가르쳐 주는 장소였음.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침례를 통하여 물로 태어남을 경험하고 예수그리스도의 거저 나누어 주시는 의롭다 함을 받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성소의 뜰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줌.
우리는 이미 성소의 뜰을 경험하였는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가?
침례를 통하여 물로 태어남을 경험하였는가?
그것이 구약 성소 어디서 이루어지는 경험이라고요? 성소뜰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말씀을 주고 있다.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 말씀을 성소의 뜰을 연상하면서 생각해 보시길 바람.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무슨 경험인가? 번제단의 경험.
그리고 맑은 물로 씻었으니 이것은 또 무슨 경험인가? 물두멍의 경험.
그러니 그런 경험을 하였으니 감사하면서 그 자리에 있으라는가?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 말씀은 무슨 말씀같은가?
성소의 뜰의 경험으로 만족하지 말고 어디로 들어가라고 하는가? 성소 안으로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모두 나의 모습이 악한 모습이었음도 말씀을 통하여 깨닫았고. 예수님의 보혈의 강수로 씻음도 말씀을 통하여 깨닫았으니 참 마음즉 새로주신 마음과 온전한 믿음 즉 하나님만 바라는 그런 마음으로 성소로 들어가서 좀 다른 차원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을 섬기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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