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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허중명서 역사 1. 해석중
在易學的百花園裏, 有一種數術從唐代開始盛行, 流傳於民間俗稱“算卦”、“算命”, 書房考證者稱其爲“子平術”、“八字命理”、邵偉華老師稱其爲“四柱預測學”, 名雖不同, 實指一物.
역학의 백화원 속에 있는, 유일한 술수가 당나라 대에서 개시해 성행하고, 민간에서 유전한 속칭 "산괘", "산명"이라 하고, 책방의 고증한 그 칭은 "자평술" "팔자명리"이다. 소위화 노사의 그칭은 "4주 예측학"인데,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실제는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
當今命壇三分天下, 老派、新派、盲派, 異彩分呈, 各領風騷. 今習命者無不以子平正宗自居, 更有葚者以徐子平後人自居, 稱“平派”.
의당 지금 명단은 3 천하로 나뉘는데, "노파", "신파", "맹파"이고, 이채 분정이며, 각영 풍소이다. 지금 명을 학습하는 것은 자평에서 없는 정종으로 자거가 없으며, 더욱 그 과함이 있는 것은 서자평 후 사람들이 자거하여 "평파"라 하고 있다.
凡此總總, 不一而足, 因此, 有必要爲命學淵源做一番考證, 以正視聽.
現在的命理學, 古稱祿命術, 系唐代先聖李虛中祖師所創, 舉證如下:
보통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가 아니니 충분한데, 이런 원인은, 필요가 있는 명학이 되는 연원이니 한번 고증을 바르게 보고들라.
현재의 명리학은 고 록명술이라 했고 당나라 대 선성 이허중 조사가 지은 묶음이다,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證一: 唐代大家韓愈爲其作墓志銘, 見於《昌黎文集》: “《殿中侍禦史李君墓志銘》 其十一世祖沖, 貴顯拓跋世.
父惲, 河南溫縣尉, 娶陳留太守薛江童女, 生六子, 君最後生, 愛於其父母.
年少長, 喜學, 學無所不通, 最深於五行書.
以人之始生年月日所直日辰支干, 相生勝衰死王相, 斟酌推人壽夭貴賤利不利, 輒先處其年時, 百不失一二.
其說汪洋奧美, 關節開解, 萬端千緒, 參錯重出. 學者就傳其法, 初若可取, 卒然失之. 星官曆翁, 莫能與其校得失. 進士及第, 試書判入等, 補秘書正字, 母喪去官. 卒喪, 壓太子校書.
河南尹奏疏授伊闕尉, 佐水陸運事. 故宰相鄭公餘慶, 繼尹河南, 以公爲運佐如初.
宰相武公元衡之出劍南, 奏奪爲觀察推官, 授監察禦史.
未幾, 禦史台疏, 言行能高, 不宜用外府, 即詔爲真禦史.
半歲, 分部東都台, 遷殿中侍禦史. 元和八年四月, 詔征, 既至, 宰相欲白以爲起居舍人.
經一月, 疽發背, 六月乙酉卒, 年五十二.
其年十月戊申, 葬河南洛陽縣, 距其祖澠池令府君僑墓十里.
昆弟六人, 先君而歿者四人. 其一人嘗爲鄭之滎澤尉, 信道士長生不死之說, 既去官, 絕不營人事.
故四門之寡妻孤孩, 與滎澤之妻子, 衣食百須, 皆由君出.
自初爲伊闕尉, 佐河南水陸運使, 換兩使, 經七年不去, 所以爲供給教養者. 及由蜀來, 輩類禦史皆樂在朝廷進取, 君獨念寡稚, 求分司東出.
嗚呼, 其仁哉! 君亦好道士說, 於蜀得秘方, 能以水銀爲黃金, 服之冀果不死.
將疾, 謂其友衛中行大受、韓愈退之曰: “吾夢大山裂, 流出赤黃物如金.
左人曰, 是所請大還者, 今三矣.
”君既歿, 愈追占其夢曰: “山者艮, 艮爲背, 裂而流赤黃, 疽象也. 大還者, 大歸也. 其告之矣.
”妻範陽盧氏, 鄭滑節度使兼禦史大夫群之女. 與君合德, 親戚無退一言.
男三人, 長曰初, 協律; 次曰彪; 其幼曰還, 適三歲. 女子九人. 銘曰: 不贏其躬, 以尚其後人.”
證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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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는 제요, 원서, 상중하, 부록으로 편제되었고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고법사주 이론서이다. 이허중(李虛中)은 당(唐)나라의 역술인으로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를 지어 명리학(命理學)의 중흥을 이루었으며 연월일시의 육십갑자로 사주기둥을 세우고 사주상 오행의 왕상휴수(旺相休囚)와 납음오행(納音五行) 및 년간 위주의 방식으로 운명의 길흉화복을 논하였다. 년주의 납음오행(身)을 중심으로 운명을 감정했다.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는 흠정(欽定) 사고전서에 실려 있다.
-흠정(欽定)은 황제가 손수 제도나 법률 따위를 제정하던 일이고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중국 청대 건륭(乾隆) 연간에 칙명에 의해 만들어진 총서(叢書). 사고전서(四庫全書)라는 명칭은 경(經)‧사(史)‧자(子)‧집(集)의 4부(四部)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국 고대로부터 당대(當代)까지의 모든 서적을 망라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2, 이허중은 전국시대 초나라 귀곡자가 찬한 귀곡자유문에 주해를 달아 <李虛中命書>를 저술하였고, 고법 사주학의 중요한 개념을 星命學으로 정리하였다. 사주를 태,월,일,시로 보고 년주 위주의 三命(祿命身)의 대입인 5柱 관법의 전통을 계승하고 납음오행, 귀인(천을귀인)을 중심으로 간명하였다. 年本日主론(복수주체)으로 추명하였으며 三元, 사주의 생극과 길흉의 판단을 중요한 요소로 보았고 신살의 작용도 보조하여 추명에 사용하였다. 당시 발달하고 정제된 당대 천문역법과 더불어 星學과 命學을 星命學이라는 하나의 術數學으로 집대성하고 사람의 年月日時의 干支를 통하여 生剋과 旺相과 衰死로 추론하여 사람의 壽夭와 貴賤, 利不利를 추산하였다. 星學이나 천문역법에 관하여 상당히 해박하였다.
3, 이허중(李虛中)은 사주(四柱)를 태(胎), 월(月), 일(日), 시(時)라고 정의(正義)하고 연주(年柱)를 논명(論命)의 기준으로 삼아 연주(年柱)의 천간(天干)을 녹(祿-貴,權,명예), 지지(地支)를 명(命-富,형상), 연주(年柱)의 납음오행(納音五行)을 신(身-形貌,재능,도량,친속,인륜)이라 하여 녹명신(祿命身/三命)을 각각 태(胎), 월(月), 일(日), 시(時)에 대입(代入)하는 五柱論命法을 취했다. 사주상의 오행의 왕상휴수사와 납음오행, 년간(本)과 일주(主) 위주로 명운을 논했다. 오행서에 심취하였고 사람이 처음 태어난 생년을 중심으로 태월, 생월, 생일, 생시를 간지로 배속시키고, 상생, 상극, 왕성하고, 쇠퇴함을 추론하여 인간의 수명의 장단, 부귀 빈천, 운의 이롭고 불리함 등을 추론했다. 그러므로 年을 중심으로 하는 唐四柱는 이허중 창제설이 아니며 달마대사가 창시한 것으로 일행선사가 전파하였다.
4, 三命은 년주의 천간=祿, 지지=命, 납음오행=身을 말하고 주역의 天地人 三才사상을 수용하여 천원,지원,인원의 三元을 三命과 연계하여 사용하고 있다. 간지로 연도를 처음 사용한 것이 한나라 순제~헌제이므로 사주(三柱,五柱)의 간지사용을 적용한 전국시대~한나라 사이인 귀곡자 낙록자 무렵에 고법사주학이 성립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허중은 현재 사주명리역의 기본원리를 이루고 있는 생극제화(生克制化)와 왕상휴수사(旺相休囚死)의 기초를 놓았기 때문에 사주명리역 발달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현대까지 통용되고 있는 사주명리역은 이허중의 납음오행 인원론에서 오대말~송대인 서자평(徐子平)의 지지장간의 인원론에서 완성되는 것으로 본다(子平學).
1), 연주(年柱)의 천간(天干) 녹(祿-貴,權,명예)은 군자의 성품으로 거처하는 居性은 납음오행 身이므로 본명이 천해도 시운이 있으면 천한 가운데 귀함이 생긴다. 연주(年柱)의 지지(地支) 명(命-富,형상)은 그 사람에게 정해진 성품의 定性이므로 그 사람의 정해진 성품을 알 수 있고, 연주(年柱)의 납음오행(納音五行) 신(身-形貌,재능,도량,친속,인륜)은 성품이 작용하는 것이므로 用性의 인원으로 사람의 재능과 그릇의 크기를 주관하므로 활용하는 성품이다.
2), 사주는 오행으로 보좌함이니 천간 천록은 正氣가 필요하고 지지에서 넉넉히 구비되어 貴가 의지할 곳이 있어야 하며 지지 命과 납음오행 身의 도움이 필요하다. 身과 命이 거스러지 않고 왕하면 財로 이어지므로 財가 그 중에 있다. 따라서 귀천의 판단은 납음오행(身)의 경중과 왕쇠로부터 판단할 수가 있다.
3), 三元이 모두 유용한 자리를 얻으면 필히 귀하게 되고 지위가 높아지며 청현한 命이 된다. 사주인 태,월,일,시가 번갈아 서로 합하여 命의 근본인 연간지(三命)를 향하면 더욱 귀해지고 지위가 올라간다.
4), 신법명리인 자평학에서는 天元인 일간 위주로 명운을 판단하는데 地元인 지지의 경우 지지 자체보다는 지지속에 포함되어 있는 地藏干을 인원화하여 지지를 일간과 같은 조건으로 바궈 천간으로 사용하는 편리함을 취했다.
*, 당나라 한문공 한유(퇴지,창려)의 이허중 묘지명의 내용과는 달리 이허중은 時를 제외하고 간명한 것이 아니고 時를 포함해서 간명하였다. 이허중(李虛中)은 당시 유행하던 불로장생의 신선술 비책을 병이 들은 후 한유(퇴지,창려)에게 전수하였는데, 한유(韓兪/769∼824)가 사후(死後)에 이허중(李虛中)의 묘지명(墓誌銘)을 작성했다는 기록이 그의 창려문집(昌黎文集)에 기록되어 있다.
1), 당나라의 한유(퇴지,창려)의 <昌黎文集>에는 “(이허중은) 五行書에 대해 가장 깊은 연구를 하였고, 사람의 출생 연,월,일이 놓여진 바 日辰을 가지고 干支의 相生, 勝衰, 死王을 짐작하여 사람의 壽夭, 貴賤, 利不利를 추리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 묘지명에 年月日만 있고 時가 없다고 하여 이허중은 時를 보지 않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고, 四庫全書의 편찬자들도 그와 같은 오해를 했으나 이허중은 時를 무시하지 않았다. 이는 徐樂吾가 그의 저서 <子平粹言>에서 밝힌 바가 있다. 한유의 묘지명에 <所直日辰>이란 4글자가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日辰>이란, 先秦의 문헌 뿐 아니라 韓愈 이전의 고문에서 한결같이, 日=甲乙丙丁...,(天干), 辰=子丑寅卯...(地支)로서 우리가 현재 쓰는 일진 개념이 아니고, 시경이나 서경, 춘추 등에 나오는 日辰 개념이다. 한유는 이것을 염두에 두고 묘지명을 썼다. 원-명-청대에 이를수록 한결같이, 歲 月 日 다음에 辰<時>를 넣어 소개한다.
2), 한유(퇴지,창려)의 이허중묘지명중 이허중 不用時說에서, 일은 日, 진은 時로 생일과 생시를 겸용한다. 낙록자는 전적으로 年만을 위주로 간명하였으나 이허중은 년(本)과 일(主)을 겸하여 간명했다(年本日主論). 이허중의 不用時說은 부정한다. 이허중은 “년이 本이 되고 일이 主가 되고 월이 사용자가 되고 시는 보조자가 된다. 사주는 胎,月,日,時이다”라고 했고, 납음오행을 설명하면서 “丙午 납음오행의 水가 癸巳월 丙寅일 戊戌시를 얻으면 巳午未는 火가 본방이고 寅午戌은 火의 정체이다”라고 사주의 예시에서 時를 들었다. 여러 곳에서 時에 대한 언급이 있다.
3), 李虛中에 의해 명리역이 진일보하고 당송대 무렵에는 日辰은 生日과 生時를 함께 의미했었다. 청나라 袁樹珊의 命理探原에 “日辰이란 하늘에 12辰이 있으므로 하루는 12時로 나뉜다. 태양이 某辰에 이르면 某時가 된다. 그러므로 時도 또한 日辰이라 한다”라고 소개하였는데 日辰이 시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 무게를 두고 있다.
5, 이허중은 祿,命,身의 年이 근본이 되고 日이 주체가 되며(일주의 상위개념이 年本이다) 명주는 日인 年本日主의 복수주체 명리론이다(자평학은 일간 위주의 단수주체이다). 年을 주체로 간명하던 것(낙록자)을 이허중이 日을 주체로 변환시켰다. 月은 사용자이며 時는 보조자이다. 主와 本이 화합해야 하고 태,월과 시는 주체인 日과 日의 근본인 年을 돕는 순서로 서로 받들고 순종해야 귀한 命이다. 本主論은 인간사회의 상하질서와 주체개념, 근본 등 천명개념을 철학적으로 반영한 조화론이다.
6, 이허중, 원천강의 명리론은 年柱을 本으로 胎,月,日,時(4주의 오행)으로 보좌하는 五柱論이다. 胎元은 잉태할 때의 기후를 보는 것으로 입태할 때부터 生이 시작되는 것이다(동양권의 合宮-서양권은 태어날 때를 生으로 본다). 胎는 일을 주관하고 선친으로 부모와 조상이고, 月(월건)은 시기와 일을 주관하고 사계절의 왕쇠휴왕의 氣로 월과 시가 빈주가 되어 三元의 氣가 나오며 氣를 세우고 일을 성사시키는 것을 주관하고 장차 닥아 올 재앙과 복을 주관하며, 日은 일의 성사를 주관하고 월내 4계절의 휴왕 순역의 氣를 주관하며 삼원귀천의 氣와 胎의 본기를 나타내고, 時는 용도로 재물의 씀슴이와 본명의 길흉과 일의 진퇴, 향배, 氣力, 승부를 나타내 본명의 길흉과 태,월,일의 氣를 주관한다.
1), 년주의 납음오행(身)을 주체로 보고 태원과 월주, 일주, 시주의 순서대로 년주의 납음오행을 대입시켜 왕쇠강약을 정했다.
2), 胎月(잉태월)은 수태월로 부모 조상을 안다. 자평학은 기후(胎元)를 중시하고 오성학은 궁도(命宮)를 중시한다. 月과 時가 빈주가 되어 三元을 보좌한다. 만물의 근본은 내 命보다 먼저 존재한다. 사주의 청탁은 순역을 분별하여 천간이 순서대로 배치되고 氣가 완전히 화합하면 사주가 청귀하다.
3), 고대에는 年命을 따로 적고 그 밑으로 년주의 위치에 胎元을, 그 다음에 月柱를, 그 다음에 日柱를, 그 다음에 時柱를 적었다. 서자평이 일간 위주의 사주학을 창안하면서 胎元의 자리에 年柱를 넣었다.
*, 胎元 정하는 법
①, 월지의 전 세 번째 지지(제자리 미포함)가 태월지지이다.
②, 천간은 태월지지에서 1위 후퇴한 월에서 생월천간과 합하는 간지에서 한자리 전진한 간지가 입태월주이다.
--정확한 계산은 출생일에서 임신일수 ...(아래 4항)일을 거꾸로 세어 잉태일의 월건을 찾는다.
4), 사람의 분만 일수는 日支로 알 수 있는데, 子午일생은 276일, 丑未일생은 266일, 寅申일생은 256일, 卯酉일생은 306일(신왕일 때), 卯酉일생 246일(신약일 때), 辰戌일 296일, 巳亥일생은 286일이다. 각 日支에 따라 출생일수가 10일간의 차이가 있는 것은 입태할 당시의 하루가 출생할 당시에 10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주의 時지지가 입태시 지지와 六合이 되며 사주의 일주와 입태당일 일주 간지가 六合이 된다.
5), 지축의 경사(23,5도)로 인한 타원형(365도) 궤도에서 지지의 子午선은 남북을 가리키고, 지축이 정위(0도)로 인한 정원형(0도) 궤도에서는 丑未선이 되며, 지축이 극으로 기울어질 때에는 27,6도가 된다. 이는 子午선이 지구의 중심선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여자의 생리일수가 정상적일 때 27일 6시간과 동일하고 정상적인 분만일수 276일과 동일하다. 인간은 천체의 운행인 曆數原理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운명을 알고자 그 曆數原理인 易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正易의 易也曆也).
7, 李虛中의 日爲主推命說은 명나라 만육오(민영)의 三命通會, 청나라 요영해(익형)의 子平四言集腋 등에 소개되어 있다. 李虛中命書의 본문의 내용인 “鬼谷子-大抵年為本, 則日為主. 月為使, 則時為輔(李虛中命書 卷中)”에 따르면 李虛中은 年本日主論에 의해 年과 日을 복수로 간명하고 있다. 萬民英(육오)이 ‘李虛中의 日爲主說 「子平説辯」:…珞琭以年, 虛中以日… 三命通會 卷七)’에서 말한 辰은 ‘珞琭子는 전적으로 年만을 爲主로 하였는데 李虛中은 日도 겸하여 爲主로 하였다’는 萬民英(육오)의 三命通會, 四庫全書․總目提要, 남송의 唐錦池의 淵海子平評註․序 등에서 日爲主論은 오류이다. 이허중은 年本日主론이다. 李虛中命書는 生年太歲와 四柱(胎月/生月/生日/生時)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五柱개념과 五柱에 의한 추명관점을 일러 五命論이라한다.
8, 이허중은 納音을 중심으로 年-태,월,일,시로(5柱) 사주를 日을 주체로 年을 근본으로 하여 간명했다. 日辰이란 시간대인 時, 일월이 운행하여 만난 주천도수를 12차로 나눈 시간대이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 태양의 운행과 관련된다, 辰은 별이 거처하는 것이 없고 지구의 공전으로 인한 1년 12개월 뿐만 아니라 지구의 자전으로 도출되는 낮과 밤의 시간개념인 辰이다.
9, 이허중은 <干支>에 의한 祿命術의 효시다. 한유(퇴지,창려)는 이허중 묘지명에서 이허중이 맨 처음으로 <간지술에 의한 록명>을 보았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간지납음의 氣가 逆하면 사주로서 휴수를 정하고 록마, 신살의 方을 二儀로 나누어 승부를 구한다. 三元은 만물의 本이고 사주는 오행의 보좌이다. 년주가 本이고 일주가 主이며 월주는 使이고 시주는 輔이다. 祿은 일간을 왕하게 하는 것이고 馬는 일간에 활동력을 불어 넣는 것이다. 사주가 왕한데 록마를 운에서 만나면 록마가 쓸모가 없다.
10, 이허중은 별자리 등 宿曜 등을 가지고 生歲(년) 중심으로 록명을 봤으므로 일주 중심이 아니다. 唐代(618~907)의 모든 명술은 年柱가 운명의 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당사주도 온전히 년주 중심으로 한다. 신살의 8~9할이 온통 년주 중심으로 짜여져 있음은 生歲 즉 년주 중심 사주 록명술이 장구한 세월을 거쳐 형성했음을 말해준다.
11, 오대말~송대초 서거이(자평)는 日元(생일천간인 일간)을 중심으로 4궁에 따른 天地人 三元論과 오행의 왕상휴수사, 생극제화의 이치를 참작하여 논명하였다. 일주를 本主로 월령을 용신으로 삼으며 歲柱(년주)와 시주를 보좌로 하였다(신법명리학, 자평학). 명대 유기(백온)의 적천수, 장남(신봉)-命理正宗(신봉통고,신봉벽류), 만민영(육오)의 삼명통회에서 자평술이 형성돼 가는데 서양 문물이 들어와 영향을 미친 서양 역법과 점성술이 있다. 서자평(서거이)는 고법사주학을 서술하고 있는 <옥조신응진경>과 <낙록자삼명소식부>를 주해했다. 신법명리인 자평명리론과 고법명리론(삼명학)이 구별되는 특징으로 日干爲主論과 人元藏干論이다.
12, 중국 古천문에서 북극성은 옥황상제이며 우주의 중심이었므로 그것을 받는 년주는 당연히 운명의 근본으로서 작용했으며 이것이 년주 중심으로 祿命을 보던 고천문의 배경으로 우주 전체를 보는 관점이다. 자평학에서 일간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태양계중심이며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관점으로 오성칠여의 사주학이다.
13, 우리가 실제 쓰는 <干支에 의한 사주>라는 말은 북송~남송 사이에 널리 사용됐고, 그때 구체적으로 <4柱8字>간의 운용법이 원시적으로 짥막한 詩賦나 詩訣로 하나씩 둘씩 만들어졌다. <四柱>란 말은 그렇게 많이 통용되지 않았고, 대부분 <祿命術>로 널리 불려졌으며, 명대(1368~1644) 중엽까지 <록명>이 명술의 대명사로 불리워졌다. 사주로써 록명을 변별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당연히 록명술로 불리운 것이다.
14, 귀곡자유문(鬼谷子遺文-주석서로 이허중명서)을 저술한 귀곡자(鬼谷子)는 종횡가(외교관)로서 생몰(生沒) 연대가 정확하지 않지만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 사람으로 그의 제자로는 손빈, 방연, 소진(蘇秦-합종책), 장의(張儀-연횡책) 등의 종횡가가 있다. <낙록자소식부>를 저술한 낙록자도 생몰(生沒) 연대가 정확하지 않으며 송나라(북송) 서거이, 이동, 왕정광, 석담영이 4인이 주석한 <낙록자소식부주>가 사고전서에 전하고 있다.
15,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는 상(上), 중(中), 하(下) 삼권(三卷)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육십갑자(六十甲子) 납음오행(納音五行)의 해설을 시작으로 고법사주의 중요한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서술하여 이후의 고법사주학의 모태(母胎)가 되었으며 청대 건륭 년간에 칙명에 의해 만들어진 흠정(欽定)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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