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조금씩 쓰다 보면 어느덧 책 한 권 분량이 된다.
꾸준함이 분량을 만들어낸다.
블로그 이웃으로 오랜 기간 알던 분이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고 원고를 보내왔다. 콘셉트도 좋고 목차나 내용도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단 한 가지가 계속 눈에 밟혔다. 딱 한 가지 부족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분량이었다. 일반적인 신국판 책으로 엮을 때 딱 120쪽 분량이었다. 물론 이 정도 분량으로 아주 얇게 출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책으로 출간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소 180쪽 이상으로 원고를 좀 더 쓰시라고 안내드렸다.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서는 일정 분량이 필요하다. 보통 적게는 150쪽 남짓에서 많게는 400쪽이 넘는 경우도 있다(여기서 쪽은 A4가 아니라 일반적인 책 쪽을 의미한다). 너무 분량이 적으면 책으로 출간하기 쉽지 않고 반대로 너무 많으면 책이 두꺼워져서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적당한 분량의 쪽수는 책 출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적정 쪽수는 240쪽에서 300쪽이다. 이 정도 분량이면 책등(세네카)을 고려해 예쁘게 책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최근에 책이 많이 얇아지는 추세를 고려하더라도 최소 200쪽은 돼야 한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는 것들이 막상 그걸 하려고 하면 눈에 보이는 법이다. 나도 처음 책을 쓰려고 결심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의 겉모습에 대해 나름 많이 공부했다. 특히 책의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책의 두께가 결국 내가 써야 할 원고의 분량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첫 책의 페이지를 240쪽으로 정했다. 이 분량만큼만 쓰자고 결심하고 원고 작업을 시작했다. 실제 첫 책도 240쪽 분량으로 출간되었다.
240쪽의 원고를 쓰라고 하면 누구나 주눅 들기 마련이다. ‘내가 그 많은 분량을 어떻게 써?’하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기우다. 쓰다 보면 할 말이 계속 떠오르고, 욕심이 생겨서 원고의 양은 한없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오히려 나중에는 원고를 쳐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240쪽은 커 보이지만 그걸 쓸 때는 한 번에 쓰지 않는다. 조금씩 나누어 쓴다. 매일 8쪽씩만 써도 한 달이면 어느덧 원고가 완성되어 있다.
목차를 잡으면 목차에 맞는 꼭지가 나오고, 한 꼭지의 쪽수를 대략적으로 정하면 전체 원고의 쪽수가 계산이 된다. 가령 40개의 꼭지를 꼭지 당 4쪽으로 한다면 160쪽의 원고가 된다. 160쪽이면 책으로 출간하기에 조금 부족하다. 꼭지 당 5쪽으로 늘리던지, 꼭지 자체를 늘려 책으로 출간하기에 충분한 쪽수를 확보해야 한다. 꼭지 당 5쪽씩 쓴다고 하면 40꼭지 × 5쪽 = 200쪽이다. 여기에 편집의 마법을 거치면 240쪽 분량의 어엿한 원고가 완성된다.
산을 오르기 위해 정상을 쳐다보면 그 장대함에 주눅이 들지만 쪼개서 코스 별로 정복하면 어느덧 정복할 수 있다. 초고 쓰기도 마찬가지다. 꼭지가 총 60개이고 하루 두 꼭지씩 쓴다고 치자. 하루에 두 꼭지면 8쪽 분량이다. 60꼭지를 쓰기 위해서는 30일 즉 한 달만 고생하면 된다. 원고를 나누고 쪼개라. 그러면 240쪽 분량의 원고를 완성할 수 있다. 숲을 보지 말고 나무를 보아야 한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매일같이 꾸준히 쓰다 보면 안 될 게 없다. 책 쓰기도 마찬가지다. 그냥 아무 생각 말고 하루의 목표치만 보고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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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완성했음에도 책으로 출간할 분량이 도저히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고를 조금 더 쓰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그림이나 사진을 넣는 방식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혹은 각 꼭지나 대 목차 별로 요약 내용을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억지로 글을 추가하려다 보면 무리수를 두게 되고, 원고 자체가 틀어지거나 질척거릴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닥치면 무조건 원고를 늘리려 하지 말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나는 ‘늘리기’보다 ‘추가하기’를 권한다. 가령, 꼭지를 추가하거나, 아예 대목차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본문 내용을 늘리다가는 원고 자체에 흠집이 난다.
분량이 부족한 원고라도 콘셉트가 좋아 출판사와 계약한 경우 혹은 자비 출판일 때, 분량 부족의 해결을 위한 방법이 있다. 책 종이를 두꺼운 걸 쓰면 된다. 책 종이는 두께가 천차만별이다. 이를 ‘평량’이라고 하는데, 두꺼운 종이를 쓰면 200쪽짜리 원고도 꽤 두껍게 나오고 얇은 종이를 쓰면 300쪽 원고도 아주 얇아질 수 있다. 따라서 두꺼운 종이를 써서 두께를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한다. 그래도 확보가 안 된다면 표지를 하드 표지를 쓰자. 거기서 50페이지 분량의 두께는 너끈히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책이 너무 두꺼우면 어떻게 될까? 이럴 경우 독자에게 외면받기 십상이다. 최근 독자들은 두꺼운 책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두꺼운 책은 그 압도감으로 인하여 독자의 손이 선뜻 나가지 않는다. 원고 양이 너무 많으면 출판사에서 줄이자고 이야기할 확률이 높다. 간혹 분권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 쪽 이야기고 일반 단행본은 분권도 쉽지 않다. 따라서 편집의 마법을 동원한다. 한 페이지에 줄 수를 많이 넣고(보통 한쪽에 18줄~23줄이다) 종이를 얇은 것을 쓰는 수밖에 없다. 보통 이런 아이디어는 출판사에서 이야기해 준다. 출판사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
출판업계에서는 책 두께를 표시하는 ‘책등’을 ‘세네카’라고 부른다. 책등은 책을 책꽂이에 꽂았을 때 보이는 책 제목 등이 쓰여 있는 옆면을 말한다. 페이지 수가 늘어나면 책등도 두꺼워지고 페이지 수가 적으면 책등도 얇아진다. 책이 너무 얇으면 책등에 책 제목을 인쇄하기도 어려우므로 적정한 쪽수를 확보해야 한다. 나도 책 쓰기 초창기 때는 200쪽 초반 대의 책을 출간했으나 몇 권 출간하면서 욕심이 많아졌는지 최근에는 대부분의 원고가 300쪽을 넘고 있다.
간혹 책 쓰기 수업에서 ‘한글 파일로 바탕체에 10포인트, 검정 글씨, 줄 간격 160%로 쓰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렇게 이야기할까? 책 분량 때문이다. 위의 포맷은 책의 분량을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책을 쓸 때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원고 작업을 하므로 일정 기준점이 필요하다. 그래서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몇 매 혹은 A4 글자 10, 줄 간격 160%로 몇 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이렇게 기준점을 잡지 않으면 원고의 분량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출판사에서는 원고를 접수하면 있는 그대로 작업하지 않고 편집자 스타일로 변경한다. 글씨체, 글자의 크기, 자간, 장평, 줄 간격을 모두 다시 세팅한다. 따라서 작가는 편한 포맷으로 원고를 작성해도 아무 상관없다.
출판사는 한글 프로그램(hwp)을 주로 사용하므로 원고 작업도 가급적 한글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이 좋다. 한글 프로그램에는 원고지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측정하는 기능(ctrl + Q, I)이 있으므로 200자 원고지 얼마의 분량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보통 800장에서 1,000장 분량이면 책으로 만들 수 있다. A4 기준으로 한다면 글자 크기 10, 줄 간격 160%일 경우 200자 원고지로 5장 내외의 분량이 된다. 책 한 권 분량을 A4로 계산하면 대략 100장 정도면 충분하다.
최근에는 책 한 권 분량이란 말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요즘 출간되는 책을 보면 파격적 형식의 책이 많기 때문이다. 그림이나 삽화, 사진이 들어가는 책은 더욱더 글자가 들어갈 공간이 줄어든다. 시집은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정형화된 틀은 분명히 있다. 시중에 출간된 책을 벤치마킹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분량은 얼마나 되고 구성은 어떻게 했으며, 한 꼭지 당 얼마나 써야 하는가를 연구하다 보면 책의 분량에 대해 잘 알게 된다. 너무 많아도 문제, 너무 적어도 문제인 게 책 분량이다.